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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64화 (264/341)

〈 264화 〉 25장 - 서막이 오르다

왕국 북쪽, 제국, 그리고 요정들의 영토 일부에까지 걸쳐져 있는 대삼림.

워낙 삼림이 빽빽하게 들어찬 곳이라 인간 측에서는 자연 방벽이라 생각하여 숲이 끝나는 지점에만 요새 몇 개를 건설해두었다.

그나마 숲과 친한 요정 측 레인저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은 게 현실.

하지만 바로 며칠 전에 다수의 레인저들이 증원되었다.

그리고 그 증원군과 함께 무척이나 불쾌한 소식이 같이 전해졌다.

“모두 잘 들어라. 오늘부로 마족들과의 전쟁이 재개되었다.”

먼저 패배를 인정하고 정전 협정까지 내놓은 마족 측이 또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그 소식에 대다수의 요정들은 마족들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최근 들어서 과하게 평화적인 분위기를 취하더니 함정이었군요?”

“내전으로 인해 힘이 빠졌다고 하더니 그걸 정비할 몇 달의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사악한 것들. 그런 생각으로 평화의 손길을 내미는 척 하다니.”

올 것이 왔다는, 그 사특한 놈들이 그리 할 줄 알았다는 의견들이 주를 이루었다.

인간도, 수인도 마족이라는 종족에 대해서 유쾌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인식 대부분이 대륙 전쟁으로 인해 강해진 부분이 없잖아 있다면.

요정들은 원래부터 동부의 모든 것을 혐오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이유도, 유래도, 아무 것도 모른다.

그저 요정과 마족이 생각보다 비슷하게 생겼고, 다만 눈동자 색과 머리색이 반대로 간다는 부분에서 일종의 동족 혐오 비슷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뿐이었다.

“마족 놈들도 생각머리가 있다면 이곳으로는 들어오지 않을 거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니 이제부터 정찰 횟수를 두 배로 늘린다. 더불어 무슨 수상한 것이라도 포착되면 즉시 보고부터 해라. 너희들끼리 뭘 하려 하는 건 금지다. 설사 선 조치를 한다고 해도 반드시 보고를 할 인원은 보내는 것으로 한다.”

요정 측 레인저 지휘관의 명령에 단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미치지 않고서야 들어오는 것 자체가 자살 행위인 이곳으로 마족들이 올까만은.

그래도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 철저하게 대비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요정 측 레인저들이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숲의 경계에서 요새 방어를 맡고 있는 인간 측이 행운을 빌어준다.

대륙 전쟁에서 서로간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자들이다.

괜한 자존심 싸움으로 투닥거리다가 마족들한테 쓸려나간 적이 몇 번이나 있는 그들로서는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에 서로 한 발자국씩 양보를 하기로 했다.

“숲이 워낙 넓으니 임시 집결지를 숲 경계 근처로 해둔다. 사흘 간격으로 각 팀이 조우해서 정찰한 범위에 대해 알려주고 혹 빈틈이 있는지 점검한다. 하루 정도 늦는 건 상관없지만 이틀 이상 소식이 없을 경우 무슨 일이 생긴 것으로 간주한다. 괜히 동료들 고생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1차 대륙 전쟁 시기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했다.

적들이 정말로 이 숲으로 소규모의 게릴라 부대를 침투시켰다면.

분명 최단 시간 내에 들어와서 후방과 보급선을 유린하려고 할 것이다.

최고의 방법은 그들이 숲으로 들어와서 이동하는 때를 포착해 격멸하는 거다.

그게 힘들다면 흔적이라도 발견하여 최소한 적들이 침입한 걸 후방에 알리는 거라도 해야 한다.

1차 대륙 전쟁은 인간 측은 물론이고 요정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거의 한 세대가 쓸려나갈 정도로 처참한 전쟁이었고, 그들의 고고한 자세와 마음도 많이 무너졌다.

그러면서 얻게 된 교훈, 전쟁 앞에서는 고귀함이고 자존심이고 없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리고 이기기 위해서는 때로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

혼자 싸우겠다고 덤비면 혼자 다치고 혼자 죽어나갈 뿐이다.

그걸 알기에 지금과 같이 뒤를 인간 측에 오롯이 맡기고 전 레인저 대원들을 숲 안쪽으로 투입한 것이었다.

이전 같았다면 인간들을 믿지 못 하겠다면서 레인저 절반을 뒤에 대기시켰을 텐데 말이다.

“명심해라. 우리의 전장은 여기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여기를 막는 거야. 허투루 할 생각은 당장 집어치워라. 마족이라지만 절대 얕봐서는 안 돼.”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데 그 인간까지 있다지 않습니까.”

인간이란 종족에 대해서 고평가를 하고 싶지 않지만.

그 고평가를 내리게 만든 자가 현재 동부에서 마족 병사들과 함께 있다고 했다.

위치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연히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남부로 향하지 않을까, 거의 모든 서부 연합의 이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클라우스, 그 남자가 온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남부가 뒤숭숭하다고도 했다.

자신들을 지켜준 남자가 이제는 역으로 공격을 한다는데 그 남자를 상대로 이길 자신도 없고, 싸울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게 인간 왕국 남부 쪽의 상황이라나.

불안할 수밖에 없었지만 인간들도 아주 머저리는 아니니 어떻게 대처할 것이다.

무엇보다 수인들과 자신들도 재빠르게 원군을 급파한다니 저번과 같은 대참사는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게 요정들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각 팀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 지휘부에 정보가 날아오는 때였다.

“딱히 이상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통과한 흔적도 없고 오히려 삼림이 너무 울창해서 이제는 아군조차 움직이는 게 힘들 정도라는군요.”

“왕국 측 전선에서 첫 교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대규모 회전은 아니지만 적당한 수준의 전투였는데 역시나 인간 측이 패배했다고 합니다.”

“역시… 모든 힘을 왕국 측으로 쏟겠다 이거군.”

“내전으로 인해 병력도 병력이지만 군수 물자에서도 손해를 많이 본 자들입니다. 당연히 왕국부터 정리하고 그곳의 식량과 자원을 쓰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부관의 말에 레인저들을 이끄는 지휘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이 무슨 동네 앞마당도 아니고, 한 번에 싹 밀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드시 중간 거점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보급을 받든 병력을 보충하든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왕국은 동부 입장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중간 거점이었다.

“준비를 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더니 결국 또 지고 들어가는군.”

“어쩌겠습니까. 실수를 해도 또 하는 게 인간들의 본성인데요.”

“우리는 그런 실수를 시작도 하지 말자고. 아무 이상이 없어도 절대 방심하지 말고 더욱 조심하라고 일러둬. 알겠나?”

지휘관의 명령에 부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또 다시 사흘이 지났다, 여전히 별 다른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사흘, 또 사흘이 지났을 때 팀 하나가 원래 복귀 시간보다 더 늦게 도착하고 있다는 보고가 전해졌다.

숲은 거대하고 정찰해야 하는 범위는 광범위하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요정 레인저들은 바로 적이 들어왔다고 판단하고 준비를 갖추었다.

이후 그들을 찾아나섰던 레인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끊어졌던 팀원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복귀하는 도중에 하필이면 몬스터를 만나서 처리를 하는 와중에 부상자가 생겨서 조금 늦은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조금은 김이 새기도 했지만 적의 침입이 아니었기에 모두가 안도했다.

그보다 몬스터들이 이렇게 대놓고 공격을 한 적은 없었는데 왜 그러나 싶기도 했다.

이후로도 팀원들의 복귀가 늦어져서 비상 대기를 하고 있다 보면 몬스터들과 교전을 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게 공통 사항이었다.

원래는 무장까지 한 요정들을 몬스터들이 피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놈들이 이상하게 자신들을 향해 달려들었다는 말들이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생각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쫒아내고자 하는 게 몬스터들의 본능인 터라 또 이상하다고만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보다 부상병이 조금씩이지만 늘어나는 게 신경 쓰이는 군.”

“몬스터들이 너무 극렬하게 공격하는 터라 문제입니다. 기동성을 위해서 간단한 방어구만 착용하고 있다 보니 자잘한 부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대삼림에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그렇게 흉포한 개체들은 아닌지라 큰 교전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많은 전투가 발발하고 있어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을 불러 모아 숲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는 인간들의 요새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치료는 이곳에서도 가능하지만 환경이 그리 좋지가 않다.

얼른 완쾌하고 복귀해서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좋으니 이들이 괜히 아픈 몸을 이끌고 정찰에 투입되는 것보다 후방으로 잠시 물러나는 게 좋았다.

“부상자들은 최대한 빠르게 몸을 추스르고 복귀해라. 그게 도와주는 거다.”

레인저 지휘관의 말에 부상자들과 그들을 호위하게 된 요정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이 이동하고 다시 시간이 흘러갔다.

“…뭔가 이상하군.”

“부상자들은 그렇다 치고 호위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즉시 1개 팀을 보내서 인간 측에게 다녀오도록 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파악하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찰조의 자리 하나가 비게 되는데요.”

“어쩔 수 없지. 그 부분은 우리 지휘부가 대신한다. 우리라고 계속 뒤에만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야. 이럴 때에는 모범을 보여야 해.”

지휘관의 의견에 부관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고생하는 것이 싫다기보다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자칫 지휘관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로 인해 발생할 혼란이 너무나도 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솔선수범하는 지휘관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건 평시에나 그래주었으면 하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전시에는 뒤에 서서 적절한 명령을 내리고 아군을 살피는 게 최선이었다.

“준비하겠습니다.”

하지만 지휘관의 뜻이 워낙 확고했기에 부관과 호위병들은 그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인간 측에 보내는 한 개 팀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지휘부.

처음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막판에 몬스터와 조우하게 되었고 곧 교전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사망자나 중상자는 없었지만 경미한 부상을 입은 이가 나오기는 했다.

어찌 되었든 큰일은 치르지 않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임시 집결지로 돌아온 후.

지휘관과 부관이 막 조그마한 지휘 막사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이제 왔네. 생각보다 고생을 더 한 모양이야?”

“…?”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두 요정이 급히 허리춤의 검을 쥐는 순간.

등판에 거대한 충격이 전해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게 되었다.

“꺼헉!”

“끅!”

“쉿. 조용히.”

그들 바로 옆으로 얼굴을 가져다대면서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는 여인 하나.

은빛의 반짝이는 머리칼이나 보랏빛의 눈동자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그 여자가 걸치고 있는 메이드 복이었을 것이다.

“소란을 일으켜봤자 좋을 게 없답니다, 여러분.”

“끄륵!”

여인의 몸으로 요정 레인저 둘을 제압한 채 뒷목을 누르고 있는 메이드, 플랑슈.

눈매도, 입꼬리도 모두 웃고 있었지만 몸에서 나오는 살기는 그런 웃음 따위 믿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 했다.

그 사이에 그들 앞으로 다가온 클라우스는 냉소를 머금은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두 요정의 머리통을 발로 꾹꾹 밟아대면서 말했다.

“그동안 집 지키느라 고생 많았어. 이제 쉬어도 될 거야. 그 집, 방금 전에 다 털렸거든.”

“무, 무슨… 끄윽!”

“얌전히 죽어. 그나마 최선을 다 한 자들에게 마왕 전하가 베푸시는 자비, 거절치 말고.”

클라우스의 말이 끝나자 플랑슈는 바로 그 둘의 목을 꺾어버렸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그리고 실수도 없는 가히 완벽한 솜씨였다.

다른 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클라우스와 플랑슈, 단 둘이 전부였다.

“지금쯤이면 다 마무리 했으려나 모르겠군.”

“다 끝났을 겁니다. 마왕 전하께서도 계시고, 주변에 다 클라우스님이 붙여준 이들만 있으니까요.”

플랑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저 멀리 인간 측 요새들이 있던 곳에서 하나, 둘 시작하여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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