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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61화 (261/341)

〈 261화 〉 25장 - 서막이 오르다

대륙 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아카데미에서 생도 신분으로 지내던 마왕이 도시로 외출을 나갔다가 습격을 받았다.

하지만 마왕은 긁힌 상처 하나 없이 그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이후 생존자 하나를 생포하여 심문한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그들의 정체는 전원이 인간들이었으며 그 중에는 귀족 가문의 일원인 자도 섞여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신고를 받고 도시 경비대가 출동했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게 끝이 난 상태였다.

시체만 가득한 상황에서 유일한 생존자라고 하며 그들에게 사람 하나를 넘겨주었다.

세부 조사 결과 동부의 마족들에게 불만을 품고 나선 자들이라는 것만이 확인되었다.

그 외의 상세한 부분들, 정확하게 어떤 부분들이 불만이었는지.

개인적으로 벌인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을 했다든가 사주를 했다든지.

그런 상세한 부분들은 마지막 생존자가 죽어버려서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일단 확실한 것은 왕국의 인간들이 동부의 마왕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동부의 마왕이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자들에게 살해당할 뻔 했다.

당장 소식이 전해지자 아카데미에 머무르고 있던 마족 생도들이 집단으로 반발했다.

서부와의 전운이 감돌 것임을 직감한 그들은 빠르게 아카데미를 나서기 시작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아카데미를 떠난 이는 다름 아닌 마왕 율리아.

그녀는 아카데미의 총장인 루스칼을 만나서는 어떤 이야기를 꽤나 오랫동안 나누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을 보이던 총장은 마침내 대화가 다 끝났을 때 상당히 고민이 된다는 표정을 지은 채였다.

그렇게 마왕 율리아와 클라우스가 아카데미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후.

대륙 아카데미로 한 무리의 병사들이 살기등등하게 몰려들었다.

이것이 그저 소수의 극렬한 강경파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면 어떻게든 마왕에게 가서 오해를 풀고 용서를 구하는, 뭐 그런 해결 방안을 선택했을 터인데.

병사들이 몰려왔다면 이제 어떤 상황으로 일이 흘러갈지는 안 봐도 뻔한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비로소 회복되고 있던 동부와 서부의 분위기는 다시 난장판이 되었다.

국경 인근에서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사방에서 피난민들이 발생했다.

특히나 동부보다는 서부의 사람들이 훨씬 더 난리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륙 전쟁 시기 마족들이 보여준 전면적인 공격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특히 전방은 뭐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말 그대로 모든 게 휩쓸려나갔다.

생존자들 모두가 대륙 전쟁에서 서부가, 왕국이 승리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저 간신히 버텨냈다고,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건 동부의 수작질이다! 우리들이 왜 마왕을 공격하겠는가!”

“금지한 품목을 들이다가 들키자 이상한 수작질로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때는 이 때다, 하고 사방에서 극렬 강경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동부와의 평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투자했던 세공 사업이 요 근래 무척이나 힘들었기에.

대륙 전쟁에서 입었던 피해를 되돌려주고 싶었기에.

마지막으로 전력이 반 정도 없어졌다는 바로 이때가 최고 적기라고 생각했기에.

조금만 자세히 봐도 전혀 논리적이지 못 한 것들이 전부 먹혀들었다.

거기에 더해서 평화적인 분위기가 흐를 때에는 그래도 유한 모습을 지닌 자들이 죄인이 아니었으나 전쟁이 임박하자 그런 자들은 순식간에 죄인, 혹은 배신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

우리 서부가 잘못한 게 아니라 동부가 수작질을 부리고 있는 거다.

그렇게 믿고 싶은 자들에 의해 모든 게 조작되었고 거기에 다른 의견을 펼치는 자는 동부의 끄나풀, 서부의 배신자가 되어서 욕을 먹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원래라면 걱정하는 자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부도 여태 멍청하게 주저앉아만 있던 건 또 아니었다.

수인도, 요정도, 그리고 인간 측도 나름 준비라는 것을 했다.

거기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남아있던 불안감을 전의로 바꿔버렸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숭리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들의 불신으로 보일 뿐이었다.

“서부에 들어온 마족들의 끄나풀부터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동부에서 들어온 그 교역단원들! 그것들도 전부 첩자일 확률이 높아요!”

“가능성이 매우 높은 수준이 아니라 맞을 겁니다. 당장 모조리 잡아서 심문해야 합니다.”

동부의 병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반란으로 인해 전력의 반이 날아갔다고 하는데 그걸 회복할 수가.

그리고 내부에서 여전히 마왕의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세력들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외부로 쏘아질 화살촉이 날카롭다고 해도 시위를 당길 공간이 없다면 곤란하다.

내부가 혼란스럽다면 동부는 이전의 대륙 전쟁처럼 전력을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해서 서부 연합은 공격을 당했다는 마왕의 주장을 뒤엎기 위해서.

역으로 죄를 저들에게 뒤집어씌우고 내부의 결속을 위해서 미리 붙잡아두었던 동부의 교역단원들을 처단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분명 감옥에 있어야 할 자들이 사라졌다.

누군가가 탈옥을 도운 모양인데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의심이 가는 자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정을 하고 지목하기는 모호했다.

만에 하나 과열된 분위기가 그들에게 쏘아진다면 자칫 서부가 먼저 내전에 빠질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을 탈출시킨 자들이 누구인지, 그걸 알 수 없게 되었다.

덕분에 서부 연합이 그들을 이용해 명분상에서 앞서려고 했던 계획이 어그러졌다.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거기에서 시간을 질질 끌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마족들의 군세가 강력하다는 건 경험으로서 다들 알고 있다.

여기서 결정을 해야 한다, 먼저 선공으로 나서느냐 아니면 방어를 고집하느냐.

“이전처럼 왕국 중부와 남부로 밀고 들어올 겁니다.”

“가도를 이용하려고 하겠죠.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대륙 전쟁 이후 요충지마다 성을 지어놓고 병력을 배치해두었습니다. 적이 한 곳을 뚫어도 다른 곳에서 막히고 그 사이에 보급로와 후방을 유린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교훈으로 요정도, 수인도 모두 인간 측이 무너지면 다음은 자신들이라고 알고 있으니 바로 지원을 한다고 나섰고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그 순간, 요정과 수인 측의 병력이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왕국과 제국에서 그렇게 재촉을 한 후에야 지원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그와 다르게 전쟁이 임박했다는 상황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병력을 꾸려서 보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좋게 돌아가니 서부 측으로서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동부를, 마족을 상대로 압승을 거둘 수는 없다고 해도 이전처럼 맥없이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동부의 마왕, 율리아에게서 정식으로 선전포고문이 날아왔다.

참으로 역겹게도 화합을 위해 타지를 찾은 자신을 해하려고 했으니 이것은 동부에 칼날을 겨눈 것과 똑같다고, 이것을 결코 좌시할 생각 따위는 없다고.

너희들이 이전 전쟁에서의 행운을 실력으로 오해하고서 이상한 상상을 하는 모양인데.

이전과는 다를 것이니 만에 하나 싸울 생각이 없다면 항복하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당연히 율리아의 선전포고문은 별 의미 없이 스러졌다.

여기서 항복을 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클라우스라는 최고의 카드가 적의 수중에 있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그 카드를 제대로 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알아본 결과 클라우스가 딱히 변변한 자리조차 얻지 못 한 채 그저 마왕의 옆에서 커피 심부름이나 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어서.

애써 그 부분은 뒤로 밀어둔 채 최대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했다.

율리아의 선전 포고가 날아오고 정확히 일주일 후.

마침내 동부의 병력이 국경 인근으로 모이기 시작했다는 첩보가 전해졌다.

속속 날아오는 소식들에 의하면 각각 왕국의 중앙과 남부로 향하고 있단다.

각각의 지휘관은 페르디난트 엘세, 그리고 에슐리 팔라티나트라고 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조율을 하는 것이 마왕 율리아란다.

병력의 수는 역시나 전해진 정보대로 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이전 대륙 전쟁의 시기에 십만을 넘어갔던 병력이 이제는 채 3만도 되지 않는 규모란다.

물론 서부 역시 그 당시 입었던 피해가 워낙 궤멸적인 수준이었던 터라 세 종족의 병력을 다 합쳐도 6만이 간신히 넘을까 말까였다.

혹자는 두 배 차이가 나는데 유리한 게 아니냐고 말하지만 저들은 마족이라는 단일 종족으로 이루어진 병력이고 이쪽은 국가도, 종족도 다른 연합체가 모인 병력이다.

움직이는 데에 차이가 있을 테고 무엇보다 이쪽은 지켜야 할 곳이 생각보다 많다.

방어 요새를 건설한 만큼 그곳에 배치해야 하는 병력이 필수적이다.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병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만에 하나 그 병력을 그 클라우스가 지휘한다면.

대규모 회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그 전쟁 영웅이 창을 서부로 돌린다면.

이쪽으로는 두 배가 아니라 열 배가 넘는 병력을 가지고 있어도 결코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클라우스가 천 명으로 3만이 넘는 마족 병사들을 막은 건 여전히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마족 병사 3만을 지휘해서 서부로 밀고 들어온다면?

악몽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것이다, 아마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서부의 군 인사들이 온갖 가능성으로 머리가 깨지도록 고생을 하는 동안.

동부에서는 그와 반대로 아주 정적인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저번에 말한 것처럼, 둘은 이전 대륙 전쟁과 같이 움직이도록.”

“알겠습니다, 마왕 전하.”

“데스테, 그대는 후방 보급을 책임지고 맡아라. 잘 해낼 거라 믿는다.”

“마왕 전하의 믿음에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인은 선봉을 맡아서 각 길목을 알아보고 정보를 전달하도록 한다.”

율리아는 한창 바쁘게 제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중이었다.

헌데 조금 이상한 것이, 율리아 본인도 분명 군을 이끌 터인데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명령을 하는 게 꼭 본인은 다른 전선으로 이동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율리아는 그 날 이후 몇 명의 인원들만 데리고 갑작스레 사라졌다.

심지어 그 인원들에는 전사장 카엘라, 레블랑의 가주 세실리, 그리고 마왕을 지근거리에서 모시기 위해 따라왔다는 플랑슈가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가 전투에서 한 가락 이상은 한다는 자들로만 모인 것이었다.

미친 듯이 내달린 여인들이 당도한 곳은 바로 앞에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는 국경 인근.

어찌나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찼는지 자연 방벽이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오셨습니까, 마왕 전하.”

바로 그곳, 거대한 방벽 앞에, 서부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 한 1개 군단을 이끌고서.

말 위에 올라서는 안장 위가 비어있는 말을 내미는 클라우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자 율리아는 미소를 짓고서 바로 그 말 위로 재빠르게 올라탔다.

“기대되네요. 그 전쟁 영웅과 함께 내달리는 창끝이 된다고 생각하니.”

율리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저 멀리 보이는 숲, 그 너머를 노려보았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불길이 모든 것을 삼키고 활활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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