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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56화 (256/341)

〈 256화 〉 24장 - 일렁이는 불길

아마 최근 들어서 가장 행복하고 또 안정감이 가득 깃든 시간이 아닐까 싶다.

율리아의 옆에 앉은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은 채 계속 그녀의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율리아는 못 말리겠다는 듯 입술을 떼었다.

“정말이지…. 이봐요, 팔불출 씨? 아직 한참 멀었어요. 당장이라도 아이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너무 그러면 나 서운할 것 같은데요?”

“원래 초기에 조심해야 하는 법이라고 했잖아요, 율리아. 초기에 자칫 잘못되면 아이는 물론이고 당신도 위험할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나보다도 더 애지중지 할 것 같은데요?”

“흐음. 글쎄요? 난 오히려 당신의 사랑을 다 빼앗을까 그게 걱정인데.”

율리아의 중얼거림에 클라우스는 걱정도 팔자라고 하면서 마왕의 코를 가볍게 쥐고 흔들었다.

그러자 우으으! 하고 비명을 지르던 그녀는 왕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이는 정말 세상에 당신 딱 하나만이 유일할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클라우스는 율리아가 인정한 왕의 반려다.

그 반려가 제 짝을 어루만지는 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다.

한편, 율리아의 배에서 손을 뗀 클라우스는 그녀를 살짝 안아들었다.

아직 몸을 움직이는 데에 그 어떤 불편함도 없는데 산모 취급하는 게 조금은 우습지만.

제 남자가 이렇게 소중하게 대해주는 건 율리아 입장에서도 바라던 일이었다.

해서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클라우스에게 몸을 맡겼다.

“율리아.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뭐든 물어봐요. 성심성의껏 대답해줄 테니까.”

“질문하기 전에 한 가지 확실하게 할게요. 이건 절대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네?”

“진지하게 받아들여 달라는 말이니 웃으면서 지나치지 말란 말이에요.”

클라우스의 말에 율리아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그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하기에 저렇게 바람까지 잡는 것일까.

어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한 번 들어나 보자는 모습을 취한다.

팔짱을 끼고 턱을 살짝 들고서 상당히 오만한 자태를 뽐내는 마왕님이다.

그 모습에 크흡, 하고 웃음을 터트린 클라우스는 헛기침을 하고서는 말을 이었다.

“만약에 말이에요. 내가, 이 클라우스가, 모든 일을 끝내고 나서 당신의 왕좌에 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혹 그런 비슷한 걱정이 들어온다면 어찌 할 건가요?”

“…뭐에요. 그런 거였어요?”

어떤 말을 하려고 하기에 진지한 분위기를 만드는가 싶었다.

율리아는 한숨을 내뱉고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한 놈들은 모조리 잡아 족치고 그 소문의 근원을 찾아내서 뿌리를 뽑아야죠. 왕의 반려를 몰아가는 행위가 곧 왕실에 반하는 행위이고, 결국 왕인 내게 반하는 짓인데요.”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때로는 맞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만, 거기까지 해요. 클라우스. 그만요.”

율리아는 확실하게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걱정을 하고 있다, 클라우스가 왜 자신을 배신하느냐.

그리고 왜 자신이 그를 버리느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굳은 표정을 짓는 것이 꼭 진지한 대답을 듣고 말겠다는 뜻 같았다.

“내가 정말로 당신에게 해가 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정말로 왕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서있느냐. 나를 따르는 무리들이 왕을 따르는 무리들이 경계할 만큼 많느냐. 이런 부분이 중요한 거죠.”

“클라우스. 그만해요. 그만해줘요. 오늘은 그냥 이렇게 있고 싶어요.”

“나도 그래요, 율리아. 이런 멍청한 말은 집어치우고 당신과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생각을 해둬야 해요.”

생각을 해두라, 그 말에 율리아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면 뭔가. 혹 자신이 걸리적거리는 순간이 노면 내치기라도 하란 말인가?

율리아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클라우스가 제 숙부 같은 자도 아니고.

심지어 제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차기 마왕의 아비가 되는 자다.

더해서 클라우스라는 이를 살펴봤을 때, 그리고 전례들을 보았을 때.

그는 절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을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낌새가 보이면 스스로 비켜줄 정도의 위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확신할 수 있다, 장담할 수 있다, 모든 걸 걸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난 알아요, 클라우스. 당신은 절대 그럴 남자가 아니야.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알아서 뒤로 물러날 남자이지 이용당하거나 할 인물은 절대 아니야.”

“당신 말대로 난 그런 남자죠. 하지만 그렇게 확신하는 당신도, 그 대상인 나도 바뀔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당장 서부에 충성하던 내가 돌아선 것처럼.”

“돌아선 게 아니야. 그대는 버림받은 거지. 충성을 다하고, 몸과 마음을 바쳐 지켜낸 땅과 사람들에게서 버림받고 내게로 오게 된 거야. 단지 그뿐이야.”

그러자 클라우스는 잠시 율리아를 쳐다보았다.

그 눈길이 꽤나 차가웠지만 율리아는 개의치 않고서 그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제 뜻인 확고하다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부분을 강조하듯이.

“후우.”

잠시 후, 클라우스는 가벼운 한숨을 내뱉고는 율리아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그 전까지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율리아는 제 남자의 몸이 좀 풀어진 것을 느끼자 뒤를 이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는 그를 토닥였다.

“미안해요, 율리아. 혹 내 질문이 무례했다면….”

“아뇨. 다 알고 있어요. 정치라는 게 원래 이러하다는 걸. 그 어떤 사랑도, 그 어떤 우애도, 그 어떤 신뢰도 참으로 별 것도 아닌 일로 인해 깨지고 망가지고 부서지는 곳이라는 걸.”

“특히나 대륙을 통일하고 난다면 그 기세는 더더욱 심해질 거고요.”

“언제까지고 내 곁에 뛰어나고 충성스러운 이들만 있을 수는 없을 테죠.”

“그렇죠.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걸 챙기기 위해, 그 선을 지키면서 나라를 운영하기에 지금의 이 모든 체제가 유지가 되는 겁니다. 희생만 있을 수는 없어요. 권리가 있어야죠.”

“그러다가 그게 선을 넘고, 너무 과해지면 결국 무너지는 법이고요.”

권력의 정점에 앉은 자가 편할 것 같은가? 아니, 절대 아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는 항상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꾸는 법이다.

한 번 떨려나면 다시는 오를 수 없다, 그리고 떨어지면 기다리는 건 오직 죽음뿐이다.

그게 바로 권력의 차갑고 냉혹한 현실이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 했고 속박되면 되었지 휘두르지는 못 했다.

다만 그걸 지혜롭게 이용하고 또 때로는 헤쳐 나가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세상 많은 이들이 그러기를 꿈꿨지만 그걸 이룬 이들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그 율리아조차도, 그리고 나조차도 그 권력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휩쓸린 적이 있었지. 그것도 은근히 많이. 참으로 바보 같았던 순간이.’

그저 강하고, 대단하고, 훌륭하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그 생각이 족쇄가 되고 끝내는 몸을 해치는 창칼이 될 줄 모르고서 말이다.

클라우스가 율리아에게 간 이후 왜 여태까지도 변변한 직함 하나 달고 있지 않느냐.

아우펜의 반란을 제압할 때 거의 군 수뇌부 역할을 했음에도.

그 이후 율리아의 곁에서 각종 업무를 보면서 여러 부분에서 두각을 드러낼 때도.

끝끝내 작위도, 직함도, 정말 아무 것도 없이 왜 그냥 율리아의 옆에만 있었느냐.

바로 그런 부분들을 경계하고 또 진작 싹을 잘라내기 위함이었다.

언젠가 맞이할 그 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애당초 다른 자들의 경계를 최대한 사지 않는 선에서 지내기 위해서.

그런 목적을 띠고서 마왕의 뒤에 자리를 잡은 비선실세를 꿈꾸는 것이었다.

클라우스가 미소를 지으면서 슬그머니 율리아에게서 떨어진다.

그러자 율리아는 와락 인상을 찡그리고는 슬쩍 제 배를 내려다보면서 외친다.

“아가! 보렴. 네 아빠 되는 사람이 저렇게 못난 사람이야. 쓸데없는 걱정으로 엄마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아주 못난 사람! 심지어 임신 초기라고 걱정할 때는 언제고 정작 가장 큰 걱정을 안겨주기까지! 못 나도 너무 못 났어!!”

“저기, 율리아?”

“…바보. 아이 앞에서 그런 말이나 하고 있고. 정말 나쁜 아빠네요.”

“조금 전에는 아주 조그마한 아이니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클라우스의 소심한 반항에도 율리아는 어림도 없다는 듯 클라우스의 코를 꼬집었다.

딱히 아프지는 않았지만 이럴 때에는 일부러 아프다고 과하게 반응하는 게 좋다.

해서 으악! 비명을 지르니 율리아는 킥, 웃음을 흘리고는 클라우스의 손을 붙잡았다.

“걱정하지 마요. 이전의 나는 무척이나 바보 같고, 어리석고, 미련한 여자였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당신에게서 많이 배웠고, 다른 이들에게서도 배웠고, 스스로에게서도 배웠어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혼자 끙끙거릴 필요 없이 당장 곁에서 도와줄 이들도 있죠. 잘 될 거예요, 클라우스. 그러니까 먼 미래의 일은 일단 치워둬요. 당장 우리에게는 지금 닥친 문제부터가 중요한 걸요.”

“서부를 점령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겠군요.”

“아뇨.”

고개를 내젓고서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율리아.

허면 무엇이 문제냐고 클라우스가 중얼거리니 마왕은 슬그머니 다리를 벌린다.

“나, 당신이랑 하고 싶거든요.”

“아아. 참아줘요, 율리아. 임신 초기에는 뭐든 조심해야 해요.”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나타샤에게서 엄청 많은 말을 듣고 왔어요. 초기에는 관계도 피하라 하고 먹는 것도 조심하고 혹 감정적으로 힘든 일도 멀리 하라고 하고… 세상에, 나는 요정이 그렇게 마족을 챙기는 건 처음 봤어요. 아마 다른 요정들이나 마족들이 본다면 식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 정도로요.”

나타샤에게는 율리아가 단순히 클라우스의 여인만이 아니라 이후 자신이 따라야 할 군주.

더 나아가서 자신의 입지를 보장해줄 유일한 존재이기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결코 미련한 여인이 아니니 이번 기회에 자신의 자리는 확고하게 해둘 생각이 분명해보였다.

“그런데 진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나 지금 여기가 너무 간지러워서 미칠 것 같은데.”

“안 돼요, 율리아. 초기에만 참아줘요. 정말로 왕가의 핏줄을 위한다면 말이지요.”

“아… 하지만 나 정말로 당신이랑 하고 싶단 말이에요.”

은근한 표정을 지으면서 계속 가랑이를 비비적거리는 율리아.

그러다가 갑자기 클라우스의 손을 붙잡고서 침대로 잡아당긴다.

덕분에 그의 몸이 딸려오니 곧바로 제 팬티를 휙, 하고 벗어던졌다.

아직 아무 것도 안 했음에도 살짝 벌어져서는 촉촉하게 젖어있는 율리아의 가랑이 사이.

마치 꿀에 잔뜩 버무려진 선홍빛의 과일을 보는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 이 불쌍한 마왕을 위해서 고생 좀 해줄래요?”

다른 여인들도 좋아하는 것이지만, 특히 율리아는 입술과 혀로 제 은밀한 곳을 애무하는 걸 너무나도 좋아했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거의 중독 수준으로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클라우스는 결심을 했다는 듯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임신 초기에는 부부 간의 성교를 지양하는 편이 좋다고들 한다.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유산 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안정기에 들어가면 괜찮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해서 클라우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율리아의 두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여인의 몸을 뒤로 밀면서, 꿀로 버무려진 균열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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