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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41화 (241/341)

〈 241화 〉 23장 - 돌아왔다

“휴우….”

대륙 아카데미의 총장직을 맡고 있는 루스칼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원래 아카데미의 방학은 두 달에서 길어도 두 달 반이 최대치였다.

혹 무슨 큰일이 일어나는 한이 있어도 늦어도 세 달이면 개학을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서부에 온갖 일들이 연달아 터지는 바람에 거의 평소보다 두 달이나 늦은 때에, 그것도 아주 간신히 아카데미의 교문을 열게 되었다.

차라리 자연재해라도 불어닥친 것이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칫 아카데미에 배움을 청하러 오는 이들이 다치면 그것은 루스칼 총장으로 가장 가슴 아픈 일로 기억에 남을 테니까.

‘저들 밥그릇 싸움에 미쳐서 신성한 교육의 장에까지 손을 뻗다니. 이런 빌어먹을 놈들.’

대륙 전쟁 당시의 영광파와 치욕파, 이 둘이 갈라져 벌인 정쟁으로 서부가 개판이 났다.

심지어 영광파는 대부분이 평민이고 치욕파는 반대로 귀족이었기에 명분은 전자가 앞서지만 힘이나 재력은 후자가 앞서는 상황이었다.

이리 되니 서로 역겨운 자들과 상종할 수 없다면서 아카데미의 복귀를 거부했고 결국 애꿎은 불길을 뒤집어쓴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영광파가 대륙 전쟁 당시 가장 앞에서 싸운 자들이고.

반대로 치욕파가 도망을 치면서 전쟁이 다 끝난 후에 돌아와 이득을 취한 자들이니 할 말이 없어야 함이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대부분의 귀족들이 그러한 짓들을 한 자들이다.

당연히 그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치욕을 지우고 싶어 안달이리라.

그나마 다행히도 그 대립이 가까스로 진정되는 분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더 우스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단초를 제공한 쪽이 다름 아닌 동부, 마족이라는 것이었다.

‘동부에서 일어났다는 대규모 반란. 그로 인해 못 해도 반 년, 길면 몇 년이 동부가 혼란스러울 줄 알았겠지.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동부의 마왕이라는 율리아의 곁에 누가 따라갔는지.

따라간 이가 어떤 능력을 선보였었는지 아무래도 서부의 자들은 다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부의 혼란스러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루스칼 총장은 그런 귀족들의 헛소리에 귀를 닫고 조용히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었다.

머지않아서 반란이 모두 진압되고 그에 가담한 모든 반역자들이 처단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루스칼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부의 멍청한 것들은 어떻게든 클라우스의 공적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그래서 자신들이 하는 말들이 진짜라고 착각하고, 클라우스의 공적에 과장이 많이 섞인 줄 알고 있는 모양인데 아주 위험한 착각이었다.

클라우스가 대륙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말하는 서부 연합의 지원도, 귀족들의 후원도, 다른 병사들의 희생 때문도 아니다.

그냥 그 남자 자체가 강력한 병기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병기를 아주 대놓고 동부의 손에 넘겨줬고 말이다.

‘나중에 땅을 치면서 후회할 날이 올 거다.’

자신도 귀족이지만 이 정도로 혐오스러운 자들과 같은 계층에 있다는 게 끔찍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진짜배기 귀족들이 있어서 위로가 조금 되었다.

키엔마이어 후작이 좋은 예였고 인간 외에도 요정이나 수인들 측에서 대륙 전쟁에 참전하여 본인을 희생한 자들을 어떻게든 대우하려고 했었다.

그런 이들이 남아있기에 서부가 끝내 분열하지 않고 한 번 더 버틴 것이었다.

“후우.”

루스칼 총장은 한숨을 내뱉으며 드디어 기나긴 방학을 끝내고 막 기지개를 켠 아카데미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정식으로 2학기를 시작하는 건 내일 모레부터다.

개학이 너무 많이 늦었기에 이번 일정에는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2학기도 많이 해봤자 2개월이 전부일 테고.

귀족들에게는 딱히 큰 손해가 아닐 것이다.

어차피 그들에게 있어서 이곳은 배움의 장이라기보다는 그냥 자신들의 인맥과 인지도를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했으니까.

루스칼 총장이 걱정하는 건 진정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래도 아카데미가 다시 문을 여니 반 정도의 학생들은 돌아왔다.

아카데미 등교를 거부하는 쪽은 극렬 귀족파의 자제들이었는데 솔직히 그놈들이 오든 오지 않던 루스칼 총장 입장에서는 단 하나도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저들은 이곳을 정말 정치판의 연장선이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최소한 자신이 있는 선에서 그것만큼은 막을 생각이었다.

‘이번 학기는 아카데미가 무척 썰렁하겠군.’

심지어 서부 쪽의 학생들만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원래는 방학이 끝난 후 동부에서 왔어야 할 마족 학생은 단 하나도 오지 않았다.

동부 상황이 정리가 되었기에 조금은 기대를 했건만 아직 그쪽 여건이 좋지 않은 모양.

무엇보다 이번 반역 사건으로 엄청난 수의 귀족들이 쓸려나갔다고 하니 마족 학생들도 아마 많은 수가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참 여러모로 슬픈 학기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루스칼 총장이 자리에 막 앉으려는 순간이었다.

“총장님!”

벌컥!-

당연하게도 노크를 하고 들어와야 할 아카데미 쪽 사람이 그대로 안으로 들이닥친다.

제 실수를 알아차린 것인지 아아, 하고 신음을 흘리는 남자.

하지만 루스칼 총장은 그 부분에 대해서 굳이 언급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무슨 일로 그리 급하게 자신을 찾느냐, 그걸 물어볼 뿐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남자에게서 어떤 내용을 전해들은 루스칼 총장은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무척 놀라고 흥분해서는 의자가 뒤로 나가떨어지도록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게 무슨 말이지? 동부에서 누가 와?”

“마, 마왕 말입니다. 이전에 저희 아카데미에 있던 그 여성 마족. 그 분이 오셨습니다.”

“동부의 상황을 보느라 가장 바쁠 인물이 어째서….”

“그걸 여쭤보니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방학이 끝났고 개학을 한다고 하니 당연히 온 것인데 왜 그리 놀라는 거냐고 하셨습니다.”

동부와 서부 간의 날이 섰던 분위기가 동부의 저자세와 더불어서 교역 재개를 통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루스칼이다.

혹시 클라우스의 동부 행 이후 얼어붙은 분위기가 다시 녹는 건가 싶었는데 마왕이 국경을 넘어 서부에 있는 아카데미로 왔다는 것은 무척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루스칼은 얼른 마왕을 자신의 집무실로 모셔오라고 했다.

이전까지는 되도록 마왕으로서 대접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반역을 모두 진압하고 순식간에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마왕 율리아다.

그녀가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와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그 일이 정말 일어났으니 당사자에게 감사의 뜻이라고 전하고 싶었다.

잠시 후, 총장실의 문이 열리면서 율리아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카데미가 방학을 맞이할 때 동부로 가는 것을 본 게 4달 전이다.

길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기도 한 시간.

그 사이에 눈앞의 마왕은 제 강력한 적을 무너트리고 동부를 장악했다.

단순히 왕의 자리에 오른 수준이 아니라 자신을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자가 단 하나도 없게 모든 것을 끝낸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루스칼 총장님.”

“아아, 어서 오십쇼. 마왕 전하.”

“왜 이러세요. 아카데미에서는 바깥의 지위를 두고서 들어오는 게 아니었나요? 저는 지금 마왕이 아닌 일개 학생으로서 총장님의 부름을 받고 온 건데.”

율리아의 말에 루스칼 총장은 웃으면서 그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율리아가 집무실로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한 명의 학생으로 대하자, 그렇게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루스칼 총장은 당장이라도 고개를 조아리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아내야만 했다.

‘말도 안 돼. 고작 4달 만에 저렇게 완전히 바뀌었다고? 이건 거의 다른 사람이잖아.’

풍기는 분위기가 처음 만났던 그 율리아와 동일인물인가 싶다.

어딘지 모르게 초조하게 보이고 또 주눅이 들어 보이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인지.

지금은 여유가 넘치면서도 위엄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는 마왕 그 자체였다.

더해서 주변에 흐르고 있는 마력이나 잘 정돈된 신체를 보면 무력마저도 이전과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성장한 듯 했다.

마왕 율리아가 보통 여인이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었던 루스칼 총장은 율리아의 부름에 아아, 하고 정신을 차렸다.

“총장님.”

“…아, 아아. 네. 아니, 말하게. 율리아 생도.”

“저를 시작으로 동부에서 다시 마족 생도들이 아카데미로 돌아올 겁니다. 아마 오늘에서 내일 사이로 돌아올 수 있는 이들은 다 돌아올 거예요. 마왕이 먼저 이렇게 모범을 보였음에도 아카데미로 돌아오지 않는 마족 생도들은 반역에 가담한 죄를 죽음으로 갚은 자들이죠.”

그 말을 하면서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서늘한 뭔가가 등골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었다.

저도 모르게 꿀꺽, 하고 침을 삼키며 루스칼 총장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생도들이 돌아와 주면 아카데미도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이전과 같이 배움의 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아무쪼록 동부는, 우리 마족들은 서부의 여러 이들과 계속 평화롭게 지내기를 희망합니다. 그에 대한 증거로 이렇게 마왕인 제가 직접 돌아오기까지 했죠. 이 정도면 서부 연합의 분들에게 확실한 메시지가 되었으면 하네요.”

미소를 짓는 율리아를 루스칼 총장은 멍하니 바라보아야만 했다.

아름다워서? 남자의 본능이 혹해서? 아니, 설마. 그럴 리가.

그게 아니라 너무나 두려워서, 본능적으로 드는 감각에 몸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저 미소가 왜 저리 차가워 보이는지, 분명 웃고 있는데 웃는 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루스칼 총장은 이만 방으로 돌아가 보겠다는 율리아의 말이 나올 때까지도 긴장감을 거두지 못 한 채 그저 마왕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허면 가보겠습니다, 총장님.”

“어… 아, 아아. 그러게. 아무쪼록 2학기도 저번처럼 열심히… 해주게.”

율리아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얼굴을 한 채로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사이로 한 남자의 모습이 잠깐 드러났는데 그가 다름 아닌 클라우스임을 루스칼 총장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

그리고 클라우스와 율리아의 모습을 보는 순간 루스칼 총장은 또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무서운 마왕이 저렇게 진실한 의미의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

더해서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인간 남자라는 부분을 말이다.

아무래도 클라우스와 율리아 사이에 돌던 그 소문이 아예 다 거짓은 아닌 모양.

잠시 둘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그는 피식, 미소를 짓고서는 총장으로서 할 법한 고민이나 하기로 했다.

“아아, 교수랑 학생이랑 저리 붙어 다니면 분명 제 할 일에 소홀할 터인데.”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일은 장담하건데 방금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두 남녀.

동부의 마왕 율리아와 서부의 인간 클라우스 손에 의해 벌어질 것이라고.

아카데미 총장이자 한 때는 귀족으로 살아가던 루스칼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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