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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39화 (239/341)

〈 239화 〉 22장 - 숨 고르기

클라우스는 율리아만이 자리한 회의실에서 대륙 지도를 가리키면서 뭔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가 펼쳐둔 지도에는 온갖 기물들이 놓여있었는데 그중 다수가 국경에 위치한 상태였다.

뭔가를 열심히 설명할 때마다 율리아의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마침내 클라우스의 이야기가 전부 끝났을 때 자리에 앉아있던 마왕의 입이 열렸다.

“정말 괜찮겠어요? 당신의 예측이 맞다면 이건 맹수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꼴이에요.”

“맹수라고 부르기도 뭐할 겁니다. 해봤자 금방 꼬랑지 말고 도망갈 개 정도 되려나.”

“그래도 놈들의 이빨은 맹수들과 비슷해요. 아주 날카롭기 짝이 없죠. 그 턱에 잘못 씹히면 죽을 수도 있는 건 개나 맹수나 마찬가지에요.”

“걱정 마요, 율리아. 개도 개 나름이지 그놈들은 바로 아가리를 닫을 때임에도 상황을 더 읽으려고 하다가 사냥감이 유유히 도망가는 장면을 보게 될 테니까.”

자신만만한 클라우스의 대답에 율리아는 침음을 흘렸다.

그가 내놓은 계책은 앞으로의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은 이렇게 동부의 안정에서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왕 왕의 자리에 오른 것, 동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왕이 되고 싶다.

아니. 그것을 뛰어넘어 대륙을 통일한 초대 왕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복 전쟁이 필수인데 이전에도 동부는 전쟁을 일으켰다가 서부의 거센 저항에 밀려서 피해만 잔뜩 보고 물러난 적이 있다.

당시에는 클라우스라는 걸출한 인재가 서부에 버티고 있었고.

반대로 지금은 그 클라우스가 동부에 있으니 무조건 이길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서부가 대륙 전쟁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다른 부분도 한몫했다.

그것은 바로 자발적으로 일어나 침략자들을 몰아내던 서부의 사람들이었다.

전쟁을 왜 벌이는가, 땅을 얻기 위해서다. 허면 그 땅을 누가 개간하고 경작하는가.

당연히 그 땅에서 살고 있던 주인들이다.

적국의 모든 이들을 다 죽여 없애는 것, 그게 전쟁이 아니다. 그건 학살일 뿐이다.

당장 모든 전쟁이 끝나면 오로지 소비만 하던 군 집단들을 부담하느라 휘청이는 경제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래의 영토는 물론이고 새로이 정복한 영토의 안정화도 중요하다.

그 작업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원래 살고 있던 이들이다.

해서 동부는 대륙 전쟁 당시 정복했던 영토의 민간인들을 잘 구슬려서 대했었다.

그들이 갑자기 돌변해서는 보급로를 습격하고 게릴라전에 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륙 전쟁과는 분명 양상이 다르겠죠. 서부의 평범한 이들이 영웅이라고 생각하던 클라우스, 당신이 바로 내 휘하에 있으니까. 하지만 전쟁이 나면 결국 당신을 적이라고 여기는 자들도 많아질 거예요. 당신의 이름만으로 모든 이들의 무릎을 꿇리기에는 한계가 있겠죠.”

“당연히 그럴 겁니다. 마족과 함께 있는 나를 귀족들이 최대한 음해한다면 결국 평민들도 제 땅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창칼을 잡을 수밖에 없겠죠.”

“그들의 저항을 최대한 줄여야 국경을 넘어 진격하고 마침내 서부의 모든 영토를 흡수할 때까지 보급로도 안전하고 괜한 곳에 인력과 물자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어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해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선전포고를 누가 했냐는 그 부분만큼은 절대 내어줄 수 없는 겁니다. 명분까지 우리가 쥐고 시작해야 완벽한 시작에서 완벽한 끝까지 맺을 수 있어요.”

클라우스의 의견은 단순하고 간단명료했다.

서부가 초조함에 못 이겨 동부에 먼저 선전포고를 일으키게 만들자.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이러면 동부는 명분에서 앞서는 것이니까.

하지만 어떻게? 아니, 방법은 둘째 치고 여태 동부 쪽에서 조성한 평화 분위기는 뭔가.

차라리 이럴 생각이었다면 서부를 끊임없이 자극해서 결국 자신들이 먼저 전쟁을 외치도록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율리아의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았다.

“위기감을 주면 뭉치려고 할 겁니다.”

그런 율리아의 고민을 진작 알고 있었던 클라우스는 그렇게 말했다.

저들이 먼저 전쟁을 일으키되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남은 방법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것이라고 확실하게 인지시키는 것이었다.

자신의 설정 상 서부는 역사상 최악의 모습들만 전부 혼합된 세계다.

상황이 불리하면 그 불리함을 애써 없던 일로 치부하고 오로지 최고의 상황만을 가정하여 일을 계획하고 돌입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시선으로 보면 전혀 말이 안 되는 일일 테지만.

참 우습게도 역사를 돌아보면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꼭 벌어지곤 했다.

‘이곳의 세계관을 정할 때, 특히 서부를 만들 때는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형태만 죄다 모아서 만든 곳이니까.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해도 그게 아주 자연스레 일어나는 곳이야.’

자신은 그저 거기에 기름 한 방울, 그리고 불씨 하나 던져줄 뿐이다.

나머지는 서부가 알아서 건초를 집어던지고 기름을 들이붓고 하는 것이다.

“최대한 풀어져 있는 상태에서 동부를 견제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겠다는 생각 정도는 들 수 있게. 해서 전쟁을 논하면서 동부를 압박하려고 하는 생각을 품게 하는 거죠.”

“우리 손해다 만만치 않을 테지만 너희가 볼 손해 또한 막심할 터이니 서부의 조건을 들어줘라, 뭐 이런 식으로 생떼를 부리겠다는 거죠. 클라우스 당신의 예상은.”

“지금까지의 동부가 보인 자세를 보면 그리 오해할 만하죠. 교역을 재개하자고 하고 식량 교역도 허락하고, 손해가 심하니 전쟁이라는 것으로 협박 한 번 하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서부가 먼저 전쟁을 일으키게 만드는 또 다른 조건이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선전포고를 하고 최대한 빠르게 최고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래서 적의 약점을 쥐고 흔들 수만 있다면 모든 게 끝난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거다.

“아카데미에 굳이 다시 가자는 게 그 이유 때문이군요.”

“공식적으로 율리아, 당신은 아직 아카데미 생도니까요. 그걸 이유 삼아서 아카데미로 돌아가 2학기를 시작하면 분명 서부 연합은 당신을 붙잡고서 바로 협상에 이용하려고 들 겁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마왕이 있으니 쉽게 생각하겠죠.”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그 부분을 역으로 이용할 겁니다.”

맹수의 아가리에 목을 들이민다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동부의 일이 대강 마무리되면 클라우스는 다시 율리아를 데리고 아카데미로 향할 생각이었다.

왕이 제 자리를 비우고 갑자기 그게 무슨 짓이냐며 황당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시험, 그리고 걸러내기 작업이었다.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가 허튼 짓을 하고 누가 잔뜩 몸을 사리는지.

한순간에 너무 많은 이들을 받았기에 혹 나중에라도 가시가 되는 자들은 다 치워내야 한다.

그걸 위해서 굳이 마왕성을 잠시 비우고 서부로 향하려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동부에서 다시금 대규모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은요?”

“율리아가보기에는 어떤가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클라우스의 반문에 잠시 생각하던 율리아는 곧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자신도 눈앞의 남자만큼이나 생각하는 부분이 깊어졌다.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왕의 통찰력으로 예상했을 때 더는 동부에서 자신에게 반발할 이는 남아있지 않았다.

큰 규모를 자랑하던 귀족 가문들은 진작 반역자로 몰아 모조리 숙청한지 오래다.

그나마 남은 귀족들 중 가장 거대하다고 할 수 있는 레블랑 가문은 세실리가 접수했다.

듣자하니 요즘에도 계속 레블랑 가문의 지지를 끌어 모으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었다.

그 외에도 팔라티나트를 위시하여 항복한 자들이나.

엘세 가문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중립파 역시 현 체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지금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욕심을 부려서 그 강력하던 아우펜조차 박살낸 마왕과는 싸우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당신 말대로 안심하고 서부에만 집중할 수 있겠어요.”

당연히 서부에만 집중해야지, 내가 그렇게 만들 건데.

클라우스의 목표는 2년 안으로 모든 일을 끝내는 것이었다.

율리아가 서부의 끝까지 함께 할 필요는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마왕성으로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공을 세워야만 하는 자들에게 양보하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일이 반 넘에 진행이 되면 율리아도 거동하기가 조금 힘들 테고.

“마왕 전하, 플랑슈입니다.”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 찰랑거리는 은발을 휘날리며 플랑슈가 안으로 들어선다.

칼라굴의 업무를 이어받는다더니 확실히 이제는 시종장의 모습이 감돌고 있었다.

“방금 전 레블랑 가주가 마왕성을 방문했습니다. 마왕 전하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합니다.”

“레블랑 가문의 일로 바쁠 터인데 또 시간을 내서 찾아왔다니.”

그리 말하는 율리아는 슬그머니 클라우스를 바라보았다.

현 레블랑 가주, 세실리가 또 마왕성까지 찾아온 이유는 결국 클라우스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레블랑 가문의 여러 불만이나 기타 다른 부분들을 오롯이 제 능력만으로 제어해야하는 터라 정신없이 바쁠 게 확실한데.

틈틈이 시간을 내서 마왕성을 방문하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긴 했다.

“가봐요, 클라우스.”

“정말 괜찮나요?”

“이야기를 하는 정도면 괜찮아요. 현 레블랑 가주에게는 나에 대한 충성심보다 당신에 대한 신뢰가 아직 더 큰 것 같으니까. 내가 부족한 탓이에요. 세실리를 더 확실하게 내 사람으로 두지 못 한 것. 나 때문이니 너그럽게 이해해야겠죠.”

어차피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당신은 오직 나만의 것이니까.

라는 계산이 깔려있는 발언임을 클라우스가 모르지 않았다.

다만 율리아의 그런 생각이 무척이나 귀여워서, 그래서 그냥 넘어가주었다.

먼저 회의실을 나서서 세실리가 기다리고 있을 응접실로 향한다.

바로 앞에 도착해서 덜컥, 문을 여니 자리에 앉아있던 여인이 후다닥 일어선다.

현재 동부에서 율리아를 제외하면 가장 큰 귀족 가문의 수장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그럼에도 세실리는 여전히 클라우스 앞에서 무척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 달 만에 보는 건가?”

“네. 한 달 만에 보는 거예요.”

“그동안 많이 바빴다지. 고생이 많아. 전대 가주를 침묵시키는 것도 그렇고 가문 내의 불만 사항들을 수용하고 또는 억누르는 것도 말이야.”

세실리는 레블랑 가문의 차기 가주가 아니었다.

그녀의 위로 형제자매들이 여럿 있었고, 그녀는 어디까지나 집안의 막내였을 뿐이다.

그 여자가 마왕의 명령에 의해 가주가 되었다.

여태까지는 가문에서 정하여 가주를 뽑는 방식을 유지했는데, 마왕이 직접 관여한 것이다.

원래였다면 당장 반발이 나와도 모자람이 없었다.

허나 레블랑 가문은 율리아 덕분에 명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왕이 정한 가주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가문이 들고 일어서면.

그 말인 즉 마왕에게도 반기를 드는 것과 똑같다고 볼 수 있었다.

“…아버지, 그러니까 전대 가주는 일단 별장에 유폐했어요.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하마터면 가문을 사라지게 할 뻔한 죄인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했고요.”

“그래. 그 정도는 해야 죄를 지은 자에 대한 벌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게… 저, 죄송해요. 오빠와 언니들에 대한 부분은 저도 아직 함부로 정할 수가….”

막내가 가주가 되었으니 그 위에 있던 형제자매들의 위치가 붕 떠버리게 되었다.

클라우스는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는 세실리에게 냉정하게 대하도록 주문했다.

충성 서약을 받아내든가 아니면 가문에서 모조리 내쫓던가.

하지만 세실리는 아직 그 부분을 완벽하게 이뤄내지 못 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직접 방향까지 제시했는데도 말이다.

“또 마음이 풀어진 모양이네. 그렇지?”

“죄,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입 다물어라, 세실리. 다물고, 이리로 와서 엉덩이 내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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