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가 비선실세-237화 (237/341)

〈 237화 〉 22장 - 숨 고르기

“우으….”

율리아의 입에서 자그마한 비명이 새어나온다.

고통에 찬 비명이라기보다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 내는 소리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꿈틀거리며 아침을 맞이한 그녀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착각인지 아닌지 아직 모르겠는데, 잠결에 침대가 살짝 움직였던 것 같다.

그렇다는 건 클라우스가 먼저 일어났다는 것이고 자리에서 움직였다는 것인데.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을 하지 못 해서, 그리고 너무 피곤하고 또 잠에 취해서.

미처 일어나서 그를 붙잡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만약 옆을 봤는데 그가 없다면, 조금은 서운하지 않을까.

밤새도록 그를 안았고 품었으니 충분하다 못 해 넘치도록 독점한 것인데.

그런데도 자꾸만 그를 예속하고 싶은 이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부담주지 말자, 얽매려고 하지 말자, 그에게 강요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또 제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마음이 야속할 지경이었다.

“….”

없다, 분명 그가 누워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로 아침이 되자마자 방을 나가버린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아침이 되면 마왕성 곳곳에 사람들이 오고 다니기 마련이다.

아직 주군과 신하 관계인 둘 사이인데 그 이상이 다른 이들에게 드러나서 좋을 게 없다.

조금만 기다리면 어차피 만천하에 드러날 테니 초조해 하지 말자.

이 남자도 이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였으니 너무 손에 쥐려고만 하지 말고….

“아, 일어났네요. 마침 차를 끓이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급히 고개를 돌려본다.

거기에는 방금 전 막 씻고 나왔는지 아직 물기가 좀 남은 상체를 드러낸 채.

따스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클라우스가 서있었다.

그의 모습을 눈에 담은 순간 율리아는 저도 모르게 안심하고 말았다.

잠든 자신을 혼자 두고서 가버리지 않았구나, 그래도 이제는 자신의 여인이기에 최소한 깨어나는 모습은 보고자 하는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하복부가 왈칵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분명 밤사이에 그렇게나 했고, 새벽까지도 내달렸으니 한동안은 괜찮을 거라 여겼는데.

고작 이렇게 옆에 있다는 걸 확인만 했음에도 이리 달아오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참자, 참아, 율리아. 저 이도 피곤할 거야. 초조해 할 필요 없다니까. 이제 내 거야. 나에게 묶인, 그리고 나를 묶은 남자야. 여유를 가져.’

왜 자꾸 날이 가면 갈수록 독점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욕망을 떨치려고 얼마 전부터 정말 미친 듯이 몸을 단련하고 있다.

땀을 흘리면, 몸을 힘들게 하면 자연스레 이런 감정이 사라질 줄 알았으니까.

아카데미 시절 클라우스와 함께 지낼 때에도 실력이 많이 성장한 자신이었다.

하지만 요 근래 두 달 정도를 그 때와 비교하자면 정말 말도 안 될 수준이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클라우스의 공격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보이고 있었고.

절대 닿을 수 없을 거라 여겼던 클라우스의 몸에도 공격이 점차 닿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정말 엄청나게 몸을 놀렸지만, 그래서 더더욱 강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이 욕망은 옅어지거나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농밀해져갔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라도 나는 건 아닐까 걱정까지 들 수준으로.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다 보인다, 이 무서운 마왕님.’

독점욕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결국 율리아가 아닌 클라우스 본인이 나서야만 한다.

그녀의 능력이 찬란하게 꽃을 피우는 원동력도, 그리고 그 불안함을 없애는 방법도 똑같다.

외부의 충격이나 뭐 깨달음 이런 게 아니라 내면의 평화 그리고 만족감이다.

그래서 클라우스가 계속 율리아를 보듬어주고 품에 안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 잠이 다 안 깼나요? 무척 피곤해 보이는데.”

손을 뻗어서 아주 부드러운 느낌이 들도록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어디를 갈 생각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고, 오직 당신의 옆이 내 자리임을 알려준다.

그렇게 인식하게 만들어서 더는 독점욕을 불태우지 않도록 수를 쓴다.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율리아가 멍한 시선을 보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조금 전까지 들끓던 욕망이 점점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느 누구도 채갈 수 없다, 지금 내 앞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내가 일어나기 전에 어디 다녀온 건가요?”

솔직히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씻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까.

잠시 생각하던 클라우스는 정공법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율리아 곁에 있으니 그녀도 한 발자국 정도는 뒤로 물러서야 한다.

언제까지고 독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줄 생각도 없다.

“카엘라를 잠시 만나고 왔어요.”

“…카엘라 전사장을요. 왜요?”

“몸이 워낙 찌뿌둥해서 좀 휘두르려고 연무장을 찾았는데 마침 그곳에 있더군요. 해서 둘이 시원하게 한 판 붙고 왔습니다.”

“나와 해도 되는 것 아니었나요? 최근까지 그래왔잖아요.”

“카엘라도 우리 핵심 전력 중 하나이니 상태를 점검해야죠.”

“그건 나도 해줄 수 있는 일….”

막 말을 이어가던 율리아가 별안간 멈칫하더니 이내 입을 다문다.

잠시 동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것 같던 그녀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말이 맞네요. 언제까지고 나만 봐줄 수는 없으니까.”

“미안해요, 율리아.”

“당신의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채울 수는 없나요? 혹시 내가 할 수는 없나요?”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율리아, 당신이 그들의 처지라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클라우스의 말에 율리아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사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것도 어찌 보면 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마다 자신과 클라우스를 위해서 힘껏 노력한 이들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런 여인들에게 약속했다. 다 내어줄 수는 없지만 질투하지 않겠다고.

빼앗기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빼앗지도 않겠다고 말이다.

자신은 클라우스, 저 남자를 원한다. 동시에 동부는 물론이고 서부까지 다 밑에 두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만이 아닌 다른 신하들의 조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능력 부분에서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도와주는 자들이 있어야 가끔은 자신도 마음을 놓고 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미안해요. 이해하겠다고 계속 하는데 자꾸 이러네.”

“그게 정상이죠. 마음 쓰지 말아요, 율리아. 다 내 잘못이랍니다.”

저렇게 이해한다는 말을 하고, 그리 하겠다는 모습을 보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회차에서는 질투에 완전히 눈이 돌아가서는 다른 여인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겠다고 발광을 한 적도 있고 그보다 더 전의 회차에서는 실제로 그러기도 했다.

나중에 가서 방심을 했던 게 치명적인 실수였다.

강점이 점점 더 강해질수록 율리아의 감정도 점점 증폭된다.

당시 그걸 미처 파악하지 못 한 클라우스는 이제 율리아가 적응도 했고 마왕으로서 확실하게 자각도 하고 있으니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마음을 놓고 말았었다.

그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확실하게 케어를 해줘야 한다는 것을.

마침내 동부와 서부를 아우르는 마왕이 되었을 때 오히려 이전보다 더 꽉 안고서 앙칼진 고양이를 대하는 것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었다.

“그보다….”

카엘라를 만나고 왔다, 몸을 섞은 게 아니라 그냥 대련만 하고 온 것이다.

그렇게 말해주었음에도 율리아의 표정이 영 좋지가 않다.

이럴 때에 확실하게 그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렇게 이불도 안 뒤집어쓰고 있으면 너무 혹하는데.”

“에? 아, 아….”

클라우스의 이야기를 듣느라 미처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임을.

그 상황에서 이불로 대충 가리는 것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앉아있기만 했다는 걸 깨달은 율리아는 슬쩍 이불을 잡아당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그녀를 찍어 누르는 남자의 몸놀림이 훨씬 더 빨랐다.

“클라우스?”

“땀 좀 흠뻑 빼고 샤워까지 하면 당연히 이럴 마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방비 상태의 마왕님을 뵙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네요. 조금은 무례해도, 용서해줄래요?”

“…용서 못 하겠다면요?”

“그러면 벌을 받아야겠죠. 무슨 벌이라도 받겠습니다, 마왕 전하.”

“좋아요. 그러면 감히 아침부터 위에 올라탄 죄로, 아주 실컷 해줘야겠어요.”

붙잡았던 이불을 치우고, 다시금 제 몸을 활짝 드러내는 율리아.

특히나 간밤의 기나긴 정사로 여인의 은밀한 곳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율리아는 색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참지 말고 얼른 달려들라는 듯 손짓까지 해오고 있었다.

아무튼, 정말이지 끝을 알 수가 없는 마왕님이었다.

* * * * * * * * * *

“…서부에서 손님이 왔다고?”

“그렇습니다.”

아침에 시작된 정사는 오전이 다 지나가서야 겨우 끝났다.

그것도 율리아와 클라우스가 자의로 멈춘 것이 아니라 칼라굴이 찾아와서 급한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고 해서였다.

서부에서 찾아온 손님, 정확히는 서부 연합의 뜻을 가지고 온 사신이라고 했다.

대륙 전쟁 이후 완전히 끊어졌다가 정전 협정을 맺은 후 아주 가끔 왕래가 있긴 했다.

그것도 딱 한 번, 전대 마왕이 죽었을 때 보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 타이밍에 사람을 보낸 걸까요?”

대전으로 향하면서 율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마왕의 자리에 즉위했을 때도, 그리고 반역자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동부를 완벽하게 평정했을 때에도 사람은커녕 서신 한 장 보내지 않은 자들이다.

그런 서부 연합이 갑자기 사람을 보냈다니, 그 이유가 궁금한 것은 당연했다.

“아마도 그거 아니겠습니까.”

“그거라고 한다면….”

“동부만 계속 돈을 버는 것이 상당히 배가 아플 테죠. 서부의 은이 계속 동쪽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니 그게 결코 유쾌하지 않을 겁니다.”

은의 흐름이 곧 부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동부가 교역을 재개하면서 서부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세공품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양은 적지만 질적으로는 엄청나게 향상된 보석들.

당연히 인간 귀족들은 물론이고 요정들, 심지어 몇몇 수인 기득권 세력까지 그 아름다운 보석들을 사가려고 안달이 나있을 정도였다.

그 영향으로 그들이 쌓아두었던 자금이 급격하게 동부로 흘러들어갈 정황이 포착되었다.

그걸 절대 보고 넘어갈 수 없었던 자들, 그나마 머리가 아주 조금은 돌아가는 놈들이 어떻게든 손해를 메우고자 나선 것이었다.

“역시 각종 식품에 관련해서 그 부분을 동부에 교역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하려는 거군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교역은 손해만 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뭐, 당연한 반응입니다. 저들도 자신들의 부가 동부로 들어가서 순환이 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는 거죠.”

“다 좋아요. 문제는 나중에 놈들이 그걸로 또 다시 동부의 자체적인 식량 생산 체계를 무너트리고 식량 공급을 독점한 다음 값을 올릴까 걱정이죠.”

“그 때와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율리아.”

클라우스의 말에 율리아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쳐다본다.

이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식량 생산량은 서부가 동부를 앞지른다.

질에서도 양에서도 이길 수가 없으니 가격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동부에는 서부에서 들여온 식품들이 다시 한 번 가득해질 것이다.

그런데 다른 게 있다고 말하니, 율리아로서는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

“당시에는 동부가 서부를 압도할 만한 힘이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국제 정세는 돈으로, 명분으로, 그 외 잡다한 것들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을 판별하는 것은 ‘힘’ 일 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