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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35화 (235/341)

〈 235화 〉 22장 - 숨 고르기

열락으로 가득 찼던 밤이 지났다.

문득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감겨있던 눈꺼풀을 올려본다.

곧 제 앞에 세상 그 어떤 말로도 부족한 미녀가 잠들어있음을 확인한 클라우스는 혹 그녀가 단잠에서 깨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지금 수준이면 이 정도 기척에도 깨어나서는 눈을 뜰 수 있다.

장담하건데 1년 안에 이 여자는 자신마저 뛰어넘는 괴물이 될 것이다.

다만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정말 쉬지 않고 달린 터라 무척 피곤할 거다.

그런 이유로 지금도 세상모르게 잠이 든 것이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바로 씻을까 하다가, 요즘 들어서 너무 섹스에만 매달린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다른 쪽으로도 몸을 움직여줘야 병신 같이 전장에서 죽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대충 옷을 걸친 후 율리아가 깨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레 방을 나선다.

아직 이른 시간, 잠든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긴 하지만 몸은 가뿐하다.

율리아가 미친 듯이 달려들 줄 알고 미리 스킬을 켜둔 게 정말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그녀가 아니라 자신이 먼저 나가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샥! 우웅! 촤아악!!-

마왕성 내부에 마련된 연무장으로 향하던 클라우스의 귓가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이른 시간에 자신보다 누군가가 먼저 나와서 몸을 풀고 있다.

잠시 누구일까 생각해보던 클라우스는 역시 한 명 밖에 없지. 라고 중얼거리면서 발을 뗐다.

“흣! 하앗!”

대련장 중앙에 한 여인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면서 주변 공기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손에 든 무기는 없다,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섬뜩한 빛이 번뜩이고 있다.

그게 무엇이 알고 있기에, 더해서 여인의 정체도 전부 알고 있던 클라우스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카엘라.”

쫑긋!-

이름을 불러주자 그제야 대련장에 클라우스가 들어섰음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호랑이 귀가 귀엽게 쫑긋거리고, 균형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흔들리던 꼬리가 기분 좋은 느낌으로 살랑거리기 시작한다.

다급히 고개를 돌려 클라우스와 눈이 마주친 호랑이 여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클라우에게로 우다다! 하고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냥감을 발견하고서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상황 모르는 이가 곁에 있었다면 아마 피하라고 비명이라도 질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아주 여유로운 모습으로 저 호랑이 여인을 그대로 놓아두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다다르자 정확하게 멈춰 선 카엘라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사령관님.”

“또 이런다. 이러다가 다른 이들이 보면 너도 나도 곤란하다고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령관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그 어떤 이의 기척도 느끼지 못 했습니다. 감히 장담하건데 저와 사령관님의 관계를 아는 이는 원래 알고 있던 자들이 전부일 겁니다.”

카엘라의 기척 감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물은 아마 셋이지 않을까 싶다.

클라우스, 율리아, 그리고 플랑슈. 리르는 아슬아슬하게 아직 숨기지 못 하는 단계고 세실리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기에 한참 멀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인원들이야 카엘라와 클라우스가 어떤 사이인지 다 알고 있다.

믿을 수 있는 부하, 신뢰하는 상관,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몸을 섞은 남녀 사이.

때문에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 하는 이들이 다가온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카엘라의 충성심은 의심할 게 못 된다.

수인으로서 자신이 한 번 지정한 무리의 리더에게는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다.

위계질서가 확실한 강자일수록 그런 부분은 더욱 강해지고 한 번 대장으로 따르면 그보다 더 강한 이가 그를 꺾고 무리를 접수해도 어지간해서는 옛 대장을 버리지 않을 정도다.

더구나 카엘라는 클라우스를 따르기 위해서 수인 사회조차 저버린 여인이다.

왕국에 정식으로 귀화 신청까지 했고 받아들여졌으며 귀족들의 밑에서 지내기도 했다.

수인 사회의 가장 영예로운 전사인 호랑이 수인이라는 자존심조차 버린 것이다.

해서 클라우스는 카엘라의 충심을 항상 믿어주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한 번도 클라우스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충성스러워서 걱정을 했던 적이 있으면 있을 뿐이다.

“카엘라. 시간이 된다면 오랜만에 한 판 진하게 하고 싶은데.”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클라우스의 몸에서 진하게 풍겨오는 율리아의 냄새를 맡은 모양이다.

두 남녀가 지난밤에 어울려서 무엇을 했을지는 안 봐도 뻔한 것이다.

반은 장난에, 또 반은 진담인 게 율리아 역시 엄청나게 정열적인 여자라 스킬을 쓴 클라우스도 아주 조금은 지칠 정도였으니 카엘라의 걱정은 옳은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카엘라에게 밀릴 정도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클라우스 본인이 접어주는 건 어디까지나 율리아 한 여인일 뿐이다.

나머지는 자신의 아래에 둘 뿐이다, 카엘라도 세실리도 나타샤도, 그리고 플랑슈도.

“상당히 기고만장하구나. 한동안 대련을 해주지 않았다고 건방져진 건가?”

“하도 저와 겨뤄주시지 않으셔서 건방져진 모양입니다.”

“좋아. 그러면 간만에 서열 정리를 다시 한 번 해줘야겠지.”

카엘라의 장난에 클라우스 역시 장난으로 받아친다.

이미 정리된 서열에 그걸 넘을 생각 따위 전혀 없는 카엘라.

하지만 이렇게라도 분위기를 좀 내야 진지하게 임할 것 같았다.

그러자 호랑이 여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기대가 된다는 모습을 가득 내보였다.

꽤나 오랜만에 서로가 서로에게 적의를 내보이며 맞서게 되었다.

죽여 없애겠다는 뜻은 아니나 충분히 험하게 대할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그에 앞서서 명령한다. 괜히 어중간하게 하지 마라. 다쳐도 좋으니까 진심을 다해.”

“…사령관님의 신체에 해를 가하라는 명령이십니까?”

“그래. 송곳니든 발톱이든 다 써. 저번처럼 그냥 주먹이랑 다리로 때우려고 하지 마.”

카엘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따를 수 없다고 해도 기어코 명령을 또 내려서 따르게 만들 테니까.

호랑이 여인의 손에서 보고만 있어도 절로 섬뜩해지는 손톱이 솟아난다.

어떤 칼날보다도 더 예리해보이고 위험해 보이는 그 모습에 다른 이들이었다면 아마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카엘라와 수십 번도 더 부딪친 클라우스로서는 일상과 비슷한 부분이다.

적당하게 봉을 하나 잡아 든 후 대련장 중앙으로 나서니 카엘라가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바로 클라우스에게로 달려들었다.

화악!-

마치 호랑이가 사냥감을 덮치듯 허공으로 도약한 카엘라가 벼락 같이 날아든다.

번쩍이는 빛이 토해내지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클라우스가 들고 있던 봉에 카각! 하고 섬뜩한 기운을 내는 손톱이 박힌다.

어지간한 날붙이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 것임을 감안했을 때 카엘라의 손톱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또 그 힘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제 공격이 완벽하게 막히자 카엘라는 공중에서 빙그르르 돌고서는 땅에 안착했다.

동시에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허벅지를 튕겨내며 다시 한 번 클라우스에게로 달려들었다.

“흡!”

다른 이들의 눈에는 움직임 하나 포착하기 힘들었을 공격.

하지만 클라우스는 아주 여유롭게 봉을 휘둘러서는 그대로 카엘라를 완벽하게 튕겨냈다.

단순히 그녀의 공격을 튕겨낸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그녀 자체를 밀어낸 거지.

“크읏?!”

분명 가벼운 방어인줄 알았건만 몸에 전해지는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봉의 끝에 실린 힘이 보통이 아님을 직감하고 다급히 몸을 비틀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대로 어디 한 곳이 부러질 뻔 했다.

살의를 품고서 하는 대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벼운 분위기에서 하는 것 역시 아니다.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알아가면서 카엘라는 이번에는 선공을 취하는 게 아니라 클라우스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공략할 부분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맹수가 사냥감으로 지목한 자를 탐색하듯 그렇게 살피던 카엘라는 상대방의 하단을 노리고는 이전보다 더 빨라진 속도로 클라우스의 발목을 노렸다.

부웅!-

한 끗 차이로 공격이 닿지는 않았지만 카엘라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견고하던 클라우스의 방어를 무너트렸고 그와 거리를 좁히는 데에 성공했으니까.

여세를 몰아 다음 공세로 나아가려고 준비를 하던 그녀는 어? 하고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분명 바로 앞에서 제 다음 공격을 회피하고 있어야 할 클라우스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의문은 등판에서 전해지는 화끈한 감각이 대신해주었다.

퍼억!!-

“크앙!!”

과장조금 보태서 뼈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등판에 불이라도 난 것 같은 고통이 몰아치고 욱신거리는 통에 눈에 불꽃이 튄다.

그 고통 속에서도 카엘라는 이를 악물고서 몸을 굴려 다음 공격을 간신히 피해냈다.

그리고 직후 카엘라의 등 뒤에서 클라우스가 가볍게 땅을 딛는 소리가 들렸다.

‘그 틈에 공중으로 피했다고?’

분명 발을 노렸다, 스텝이 꼬이고 큰 회피 동작이 불가능하도록.

그런데 클라우스는 그걸 가뿐하게 무시하고는 아예 공중으로 치솟아 한 바퀴를 돌면서 거기에서 얻은 힘으로 제 등판을 후려쳤다.

그나마 저게 봉이기에 타격을 당한 수준이니 만약 창이었다면 그대로 등판이 꿰뚫리고 폐에 구멍이 났을 게 분명하다.

“….”

자세를 바로 하고 클라우스를 응시한다.

조금 전과 다르게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방금 자신이 본능적으로 하단을 노리고 들어간 이유는, 다름 아닌 클라우스가 그렇게 공격이 들어오도록 유도했기에 그런 듯 했다.

둘 사이의 격차가 크다, 아무리 살펴도 더는 어찌 할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등판에 전해진 충격이 꽤 컸는지 팔을 움직이는 것조차 조금 부담스럽다.

먹잇감을 앞에 두고 포기를 하는 것은 수인으로서 최악의 수치.

허나 상대가 보통 상대도 아니고, 오히려 먹잇감은 자신이고 사냥꾼은 앞에 있는 남자다.

이 정도가 되었다면 인정하고 물러서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스르륵-.

천천히 손톱을 거둔 카엘라는 그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해보였다.

몇몇 이들이 오해하곤 하는 게, 수인이라 하면 죽기 직전까지 싸우는 종족으로 알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더 싸워서 얻을 것이 없다면, 도저히 어떻게 해볼 가능성이 없는 상대라면.

어떤 수인이든 꼬리를 내리고 이빨을 숨긴 채 패배를 시인하기 마련이다.

“졌습니다, 사령관님. 더는 어떻게 해볼 생각조차 들지 않는군요.”

“고생했어. 방금 전 일격은 정말 위협적이었다, 카엘라.”

“그것도 사령관님께서 틈을 일부러 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기어코 그 공격을 적중시킨 걸 보면 너도 만만치 않은 거지.”

“예?”

무슨 말이냐는 듯 카엘라가 클라우스를 바라본다.

제 손에 걸린 느낌이 없었는데, 공격이 적중했다는 건 당최 무슨 말일까.

카엘라의 반문에 클라우스는 슬쩍 제 다리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아주 가늘게 그어진 선이 하나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너무 얕게 들어가서 피는커녕 그냥 피부만 조금 붉어진 게 다인 수준.

언뜻 보면 신경조차 쓸 가치가 없는, 할퀴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갔다면 분명 내 혈관과 힘줄까지 가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자가 상대였다면, 이미 다리 하나를 통째로 잃었겠지.”

어차피 카엘라는 자신과 싸울 일이 없다.

그보다 훨씬 더 약한 자들을 상대하는 일이 전부인 호랑이.

그 호랑이가 자신에게조차 스치는 게 전부였다지만 분명 닿는 데에 성공했다.

허면 다른 상대들을 대할 때는 어떤 위용을 떨칠지 안 봐도 뻔한 것이었다.

“머무르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더 빨라졌구나.”

“아… 그게, 마왕 전하께서 매일 강해지는 걸 보고 있자니 왠지 조금 그래서….”

예상치 못 한 칭찬에 괜히 부끄러워진 것일까.

이리저리 몸을 꼬아대는 카엘라를 보고 있자니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진다.

해서 클라우스는 그녀를 제 곁으로 부른 후 찬찬히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노력하는 수하에게는 상을 내려주는 게 맞겠지. 원래는 마왕 전하께서 내려주는 게 맞겠다만… 이번만은 특별히 내가 내려주마. 네 사령관으로 말이다.”

그러자 카엘라의 황금빛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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