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 22장 - 숨 고르기
손을 뻗어서 제 옆에 누워있는 율리아의 얼굴을 쓰다듬어본다.
따스하고, 보드랍고, 마치 신이 아름다움이란 게 뭔지 빚어낸 것 같은 여인.
그 여자가 자신의 품에서 앙앙 울며 더 해달라고 보챌 때마다 어찌나 가슴이 요동치는지.
클라우스는 혹 이 여자야말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당신에 대해서 더 말해줄래요?”
흠칫-.
회차를 진행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감정. 놀람, 당황, 두려움, 공포.
적게는 몇 번, 많게는 몇 백번이나 본 장면들이 계속 펼쳐지니 감정이 요동칠 수가 없다.
그런 중에 가끔, 아주 가끔 가다가 그것을 빗나가는 일이 생기곤 했다.
때로 아주 사소한 변화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지금처럼 무척 민감한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무슨 말이죠, 율리아?”
“그냥 그 말 그대로에요. 당신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고 싶어요. 예전에는 어떤 남자였는지. 대륙 전쟁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이에요.”
그래, 바로 지금 이 질문 그리고 이 상황처럼.
처음 겪는 상황들이 아주 가끔 가다가 앞에 펼쳐지곤 했다.
‘그보다 이전의 삶이라….’
자신이 지정한 이 몸뚱이의 원주인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기껏 해야 대륙 전쟁 이전에 부모를 모두 잃고 일가친척도 없는 고아라는 것.
그리고 전쟁에 투입될 적정기인 20대 초반의 청년이라는 게 전부였다.
그 외의 부분들은 전부 클라우스 본인이 임의대로 수정한 부분들이다.
생김새도, 체형도, 그리고 지닌 능력까지 전부 다.
아무래도 이 몸뚱이의 원래 삶과 자신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섞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더해서 약간의 허구까지 더해준다면 여인의 감도 어렵지 않게 지나칠 수 있을 거다.
“정발 보잘 것 없었어요. 너무 보잘 게 없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 정도였나요?”
“대부분의 왕국 평민들이 으레 그러하듯 아주 힘겹게 생활했죠. 뭐만 생겼다 하면 수탈해가기 바쁜 귀족들과 그 멍청이들한테 둘러싸여서 그 어떤 의지도 품지 않는 왕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신경을 쓸 시간 따위는 없었어요. 당장 먹고 사는 데에 바빴으니까.”
“….”
“그러다가 부모님을 전부 잃었어요. 그리고 일가친척들도 전부 사라져서 고아가 되었죠.”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니 오히려 율리아가 아아, 하고 탄식을 흘린다.
그리고는 괜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듯 어쩔 줄 몰라 한다.
허둥거리는 마왕에게 괜찮다고 속삭여준 후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아무 희망도 없이, 미래도 없이 그렇게 살다가 대륙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율리아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똑같아요. 싸우고, 이겼고, 점점 더 커졌죠.”
“…당신도 꽤나 힘든 삶을 살았군요. 아니… 나보다 더 힘들었겠어요.”
“아뇨. 그래도 나는 최소한 누군가 나를 해할 지도 모른다는 압박은 지니지 않고 살았어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생각했고 결정했고 또 행동했죠. 덕분에 평민 주제에 남부군 전체를 지휘하는 사령관 자리에도 앉았고요.”
“하지만… 내가 듣기로 귀족들이 당신을 질투해서 몇 번이고 죽이려고 한 적도 있다면서요.”
율리아의 말에 클라우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귀족들 입장에서는 자신을 당장이라고 죽이고 싶을 만큼 경계가 되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완전히 머리가 없는 건 아니어서, 클라우스가 마족들도 아니고 자신들의 손에 의해 제거가 된다면 어떤 역풍이 불지 잘 알고 있었다.
해서 죽이는 게 아니라 민심에 맞춰서 적당하게 대우는 하되 계속 견제를 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모든 권한을 내려놓도록 압박을 가했고 말이다.
몇몇 멍청하기 짝이 없는 귀족들은 아예 죽여 없애서 평화를 도모하자고 했지만.
키엔마이어 후작과 같이 친 평민파 귀족들은 물론이고 다른 귀족들 대다수도 반대했다.
어차피 왕국에 철저하게 충성을 바치는 평민인데 괜히 죽여서 평민들의 불만과 분노만 폭발시킬 수 있으니 괜한 짓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보다 율리아, 당신이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처음이네요.”
“그런가요? 음… 사실 물어볼까 말까 엄청 고민을 했어요. 보다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고 싶은데, 괜한 걸 묻는 건 아닐까 걱정도 들고. 조금 전에 그 후회를 진짜 하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부모님을 다 잃었다는 부분에서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율리아에게 있어서 가장 아픈 부분 중 하나이고, 그 곳을 자신이 건드렸다고 생각하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클라우스는 생각했다.
“그러면요, 클라우스. 혹시 뭔가를 해서 후회하는 건 있나요?”
이건 꽤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다.
뭔가를 해서 후회하는 게 있냐, 그 말은 율리아도 내심 뭔가 한 일에 후회를 가지고 있고 이 남자도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 하는 중이란 소리.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던 클라우스는 항상 그러던 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끔, 아주 가끔은 왕국을 위해서 모든 걸 바친 걸 후회하죠.”
“역시 그렇죠?”
“보상 받지도 못 하고, 이해받지도 못 하고, 오히려 매일 싫은 소리만 들으면서 버티고 또 버티던 날을 생각하면 후회가 안 될 수가 없는 거 아니겠어요.”
서부에 대한, 왕국에 대한 실망과 그로 인한 은은한 분노를 보여준다.
이러면 혹 자신이 서부를 도모한다는 것에 클라우스가 반감을 가질까 은근히 걱정하고 있을 율리아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
더해서 귀족들을 싸그리 조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말이다.
“갑자기 따스한 물에 몸 좀 담그고 싶네요. 당신은 어떤가요, 율리아?”
“나야 상관없지만… 우리 분명 씻고 나면 또 할 텐데 괜찮겠어요?”
“그러면 하고 나서 또 씻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또 다시 하고요.”
서로 몸을 몇 번이나 섞었는데도 아직도 서로를 탐하지 못 해 안달이 난 두 남녀였다.
단순히 마음만 잘 맞는 것이라면 이러지는 못 할 것이다.
아무리 잘 통하는 게 있어도 서로간의 몸이 맞지 않는다면 고생을 꽤나 할 터인데.
이 둘의 속궁합은 뭐 하나 끼어들 틈이 없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었다.
가볍게 율리아를 안아들고서 욕실로 향한 후 욕탕 안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는다.
그러는 동안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어내는데, 그 와중에 또 아주 세게 시동이 걸린 건지 율리아가 자꾸만 클라우스의 자지를 살살 건드리기 시작했다.
애써 무시하면서 율리아의 몸을 구석구석 씻겨주었지만 클라우스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발가벗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극적인데 거기에 물로 아주 흠뻑 젖은 율리아다.
이런 상황에서 자꾸 건드리면 그라고 해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안 되겠네요. 이렇게 고프다는데 그냥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하고 씻죠.”
“우후후! 대환영이에요.”
질꺽!-
마왕의 허리를 붙잡고서 옆으로 돌린 후, 발그스름하게 변한 보지에 바로 찔러 넣어준다.
이미 몇 번이고 오고 간 상태가 막힘없이 뿌리까지 머금는 율리아의 속살이었다.
“아아앙!! 하, 한 번에 안까지…!! 하윽! 흥아아아아!!”
율리아의 도발이야 항상 환영이라는 듯 힘껏 안으로 삽입하고서 바로 허리를 흔들어준다.
남자와 여자의 몸이 부딪치면서 이번에는 욕실 안에서 열락의 기운이 퍼져나간다.
“이번에도, 이번에도 안에 싼다. 율리아.”
“아앙! 좋아! 안에, 안에 싸줘! 임신시켜! 당신을 내 남자로, 나를 당신의 여자로!!”
이미 남자가 토해낸 정으로 가득 차있던 동굴에 또 다시 남자의 흔적이 가득해졌다.
후우우, 하고 깊게 숨을 토해내면서 자지를 꺼내니 미처 안까지 닿지 못 한 허여멀건 액체가 욕실 바닥으로 뚝뚝 흘러내린다.
연신 앙앙거리며 울어대던 율리아는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음에도 만족을 하지 못 한 듯 아예 더 해달라고 요구까지 하고 있었다.
“물 식어요, 율리아.”
“그래도, 그래도 좋았잖아요. 좋은 건 계속해도 되는 거잖아요.”
“쥐어짜내면 별로 맛이 없는 법이에요. 어느 정도 모았다가 다시 취하면 되는 거죠. 마치 양봉업자들이 꿀을 따는 것처럼요.”
그렇게까지 말하자 비로소 율리아도 알겠다는 듯 더는 요구를 해오지 않았다.
어차피 당장 이곳이 아니더라도 다 씻고 욕실 밖으로 나가면.
그래서 또 다시 서로의 알몸을 바라보면서 침대에 눕는다면 또 욕정이 치밀어서는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달려들 게 뻔했다.
율리아는 클라우스의 몸을, 그리고 클라우스는 율리아의 몸을.
아주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으면서 또 한 번 서로의 몸에 대해 자세히 알아간다.
어디에 얼마나 흉한 흉터가 있고, 어디를 만지면 간지럼을 타는지.
다른 평범한 연인들처럼 이 두 남녀도 그렇게 킥킥거리면서 몸을 씻어낸 후 알맞게 데워진 물로 가득한 욕탕 안에 몸을 담갔다.
“…이제 어쩔 건가요? 동부는 완벽하게 안정이 되었고, 어느 누구도 감히 내게 불복할 수는 없게 되었어요. 당신이 언젠가 내게 말했던 절대왕정. 그 시작이 아주 차근차근 잘 이루어지고 있죠. 후일 내 아이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었을 때 어떨지 참 궁금해요.”
어쩌면 율리아는 안정된 동부만 물려준다고 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이왕 물려줄 거 동부만이 아니라 서부까지 전부 다.
대륙을 통일한 여인을 전대 마왕이자 어머니로 둔 아이가 차기 마왕이 되기를 원했다.
율리아와 자신의 피를 이어 받은 아이라면 분명 그 거대한 세상을 유지할 수 있을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성가신 가시들부터 제거해야 한다.
동부의 가시들은 이미 진작 다 쳐냈고, 남은 건 서부의 가시들이다.
툭, 하고 건들기만 해도 부러지는 것이 가시이나 손가락에 박히면 세상 어떤 비수보다도 더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클라우스는 그 가시들을 전부 다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서부의 분열을 이용하는 거죠.”
“어떤 방식으로요?”
“기존의 서부에 불만이 많은 세력들을 흡수하고, 동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 같은 자들을 뿌리 뽑아서 가루 만드는 겁니다. 특히나 서부의 인간들은 기존 권력자들에게 큰 반발심을 지니고 있어요. 그걸 잘 이용한다면 아주 유용할 겁니다.”
“하지만 대륙 전쟁 때에는 그게 잘 안 먹혔잖아요? 오히려 서부 전체가 마족에 대항한다는 이름 아래 뭉쳐서 조직적으로 저항했고요.”
“당시 동부가 서부의 작전에 휘말려 먼저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명분상으로 물어뜯기 딱 좋은 것을 쥐었기에 이용할 수 있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지금은 우리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모습을 취했네요.”
율리아의 말에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탕 안에 들어가 있던 마왕의 몸을 갑자기 안아 들어서는 그대로 욕탕에 걸터앉게 한 후 그녀의 가랑이를 벌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가장 절묘한 순간이 오면 그 때 움직이면 될 거예요. 이번에는 서부가 먼저 참지 못 하고 우리에게 칼을 빼들도록 해야죠. 그래서 그 순간이 오면, 아주 거칠게 휘몰아쳐 항복을 받아낼 계획입니다.”
그 말과 함께 율리아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묻은 남자가 길게 보지를 핥는다.
제 말대로 아주 거칠게 휘몰아치는 그 공격에 오래 가지 않아 여인이 길게 교성을 내지르면서 항복하고 말았다.
감히 저항조차 할 생각이 안 드는, 무시무시한 일격이었다.
“이, 이렇게 또 달아오르게 할 생각이에요? 이러면 나 정말 못 참아요, 클라우스.”
탕 안에 들어앉아서 잠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육욕이 조금 잦아들었는데.
이렇게 먼저 공격을 해오니 율리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또 다시 제 남자에게 와락 안겨들면서 얼른 후계자를 위한 정을 가득 토해내라고.
마왕은 그렇게 귓가에 속삭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