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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18화 (218/341)

〈 218화 〉 20장 - 나의 왕이시여

포위망을 구축하기는 했지만 아군의 숫자가 적은 지라 불안한 상황 속.

그 와중에 아인은 클라우스에게서 황당한 명령을 받았다.

조만간 성문이 열릴 터이니 그리 된다면 재빠르게 안으로 돌입하여 내성으로 향하는 길을 전부 점거할 준비를 마치라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클라우스님.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원래 이런 스타일이 아닌데, 상관의 명령에 토를 다는 게 제 특기가 아닌데.

요즘 들어서 클라우스와 붙어 다니면서 그런 모습을 참 많이도 보이고 있었다.

혹 율리아가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실망하면 어쩌나 싶다가도.

아인은 클라우스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이럴 수밖에 없었다.

“포위는 유지하되 최소한으로 하고 성 안으로 진입하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라고.”

“성문이… 열리는 겁니까?”

“아마도.”

아마도, 라는 저 말을 다른 자가 했다면 장담하건데 아인은 바로 인상을 찡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 전투에서 클라우스가 몇 수 앞을 보며 예비대를 움직인 것이나 리리오가 이쪽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출전하여 그를 참살한 부분까지.

아인으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혜안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클라우스였다.

때문에 이게 말이 되는 명령인가 싶다가도 결국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마왕 전하께서 클라우스님이 내리는 명령은 당신을 해하는 게 아니라면 따르라고 했으니.’

대륙 전쟁의 영웅이니 남부의 악마이니 결국 헛소문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 전황을 모조리 꿰뚫고 있는 자라면 조만간 성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리 된다면, 어렵지 않게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물론 정말로 성문이 열린다면 말이지.’

적의 남은 핵심 세력은 죄다 저 성 안에 들어갔다.

역적의 수괴 아우펜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 전원이 저 안에 있다.

지원이 올 수도 있다지만 저들의 성에 남은 건 제 성의 방비를 위한 최소한의 인원들이다.

만일 그들마저 성을 비운다면 율리아 쪽으로 돌아선 또 다른 귀족들의 가문들이 역시나 똑같은 수로 수비병들을 빼내서 뭔가를 도모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건 적들도 저 성의 방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설사 이전처럼 배신자가 안에 있다고 해도 성문을 여는 것은 도통 쉬운 일이 아니다.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가장 중요한 성문과 도개교에 확실한 자들을 배치할 것이다.

도개교를 내리고, 성문을 열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 둘을 모두 하려면 꽤나 많은 자들이 반란에 가담해야만 한다는 소리다.

포위를 시작한지 몇 달이 된 것도 아니고 이제야 겨우 며칠이다.

적이 식량난을 겪는 것도 아니고 아군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역시나 아니다.

어느 부분으로 봐도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성문이 열릴 이유가 없다.

라고 생각하던 것이 아인기 가지고 있던 저녁때까지의 생각이었다.

쿠르르르…!

마침내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밤이 깊은 시간.

도개교가 내려오고 성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슬슬 가볼까?”

“….”

마치 자신의 말이 맞지 않냐는 듯 미소를 짓는 클라우스를 바라보면서.

아인은 이제 그냥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왜 율리아가 인간인 그를 그토록 신임하는지, 왜 대륙 전쟁의 참전자들이 하나 같이 클라우스를 두려워하면서도 또 경외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적들이 혹 도망을 칠 것을 대비하여 최소한의 포위 병력만 남겨둔 채.

마왕군은 아우펜의 성 안으로 물밀 듯이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적들은 갑작스레 도개교가 내려오고 성문이 열리자 꽤나 당황한 듯 우왕좌왕하다가 그대로 마왕군을 맞닥트렸고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은 뻔한 것이었다.

“쳐라!”

와아아아!!-

사방에서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설마 성문이 열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던 것인지.

그게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방어 병력이 어딘가로 빼돌려진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왕군은 너무나도 쉽게 도개교를 건너 성문 일대를 완벽하게 점거하는 데에 성공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건 내성까지 진격하여 역적의 무리가 도망치기 전 일망타진 하는 것이다.

외성의 부분은 아인에게 맡긴 채 클라우스는 근위병들와 함께 내성으로 내달렸다.

속전속결, 동부의 일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만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막아! 적들을 막아라!!”

이제야 변고를 눈치 챈 듯 아우펜 측의 지휘관들이 나서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내성까지 순식간에 들이닥친 마왕군은 거침없이 역적의 무리들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창을 휘두르며 마족들을 휩쓰는 클라우스가 있었다.

한창 적들을 상대하던 클라우스는 문득 이질적인 마력이 모여드는 것을 감지했다.

거의 동시에 본능적으로 방어막을 펼쳤고 그 직후 둔중한 소리가 들리더니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어벽에 꽤나 흉한 균열이 새겨졌다.

“클라우스!”

제대로 무장도 걸치지 못 한 채 뛰쳐나온 인물은 레블랑의 가주, 세실리의 아버지.

잠시 그를 응시하던 클라우스는 열심히 제 뒤를 쫓아오던 한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세실리.”

“네, 클라우스님.”

“마지막 전투에요. 공을 세울 수 있는, 저지른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죄를 덮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소리죠. 내 말, 확실히 이해했습니까?”

클라우스의 얼굴이 시리도록 차갑게 변하자 움찔 몸을 떠는 세실리였다.

하지만 곧 그의 말을 이해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최선을 다 하겠다 답했다.

믿는다며 바로 병력 일부를 이끌고 다시 내성으로 진격하는 클라우스.

그런 클라우스를 레블랑 가주가 막아서려고 했지만 그 전에 자신에게 날아드는 마력들에 의해 움직임이 봉쇄당하고 말았다.

“…세실리.”

“가주님.”

레블랑 가주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제 딸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막내딸이 가문이 아니라 마왕성으로 향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마왕과 엮이지 말라고 누차 경고를 했음에도 결국 벌어진 일.

덕분에 자신과 레블랑 가문이 아우펜에세 은근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그저 철없는 한 소녀가 벌이는 철없는 짓이라고, 그렇게 애써 여겼건만.

“…이미 결심을 한 게로구나.”

세실리의 두 눈동자 속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고서 그는 체념하고 말았다.

자신이 아우펜을 따르듯, 제 딸은 마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부녀간에 서로 그 의견차를 좁힐 생각도, 제 뜻을 굽힐 생각도 없어 보인다.

“가주님. 이미 대세는 기울었어요. 지금이라도 항복 의사를 보이신다면 레블랑 가문의 가주로서 마왕 전하께서 받아주실 거예요.”

“…가문에서는 철이 없기 그지없던 네가 갑자기 몰라보게 달라졌구나.”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알았어요. 훌륭하신 분의 밑에서.”

“그 훌륭한 분이라 함은 현 마왕을 말하는 것이냐.”

원래는 클라우스를 말한 것이지만, 세실리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카엘라가 혹 클라우스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모든 언행에 주의하라 했으니까.

그리고 본인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무지한 게 아니기에 조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현 마왕을 훌륭하다고 여기는구나. 그래서, 나의 뜻과 정 반대되는 곳에 너를 직접 던져 넣고 거기에 가문의 안위까지 두고 있구나.”

“….”

“딸아. 나의 사랑스러운 딸아. 네가 그렇게 말하듯 내게는 내 주군이 훌륭하신 분이다. 비록 모자라고 못난 부분이 있을지언정 그건 네가 따르고자 하는 분도 그러할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이는 없다. 그것이 어찌 할 수 없는….”

“아뇨.”

레블랑 가주의 말을 끊고 바로 부정하는 세실리.

그녀의 두 눈에는 제 아버지를, 제 가문의 주인을 염려하던 기운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 남은 것은 클라우스를 완벽하지 않은 자라 칭한 자에 대한 적의였다.

“훌륭하신 분이에요. 저기 성에 있는 작자와는 다르게. 비교조차 불가능해요.”

“네가 이렇게 날이 선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구나.”

“가주님. 아니, 아버지. 마지막으로 말씀드릴게요. 포기하세요. 그리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시고 저항하지 마세요. 우리들을 방해하지 마세요.”

“그러할 수 없다는 걸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레블랑 가주는 그리 말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세실리 역시 제 아버지와 비슷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래 전에 제게 말씀하신 적이 있죠. 천륜마저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와 권력이라고. 본인이 살기 위해서, 본인이 누리기 위해서 그리 될 수밖에 없다고.”

“그래. 그리 말했다.”

우우웅-.

세실리의 등 뒤로 마력 응어리들이 자리를 잡아간다.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닌, 자그마치 세 개가 동시에 말이다.

여태까지 마력으로 만들어진 화살 정도가 전부였던 것에 비한다면 놀라울 따름.

레블랑 가주 역시 진심으로 감탄하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세실리. 하나만 묻자.”

“….”

“현 마왕의 옆에 있는 그 인간 말이다.”

“클라우스님 말인가요.”

“그래. 그 남자에 의해 죽은 우리 레블랑 가문의 마족이 몇인지 아느냐?”

“관심 없어요. 전쟁에서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게 문제가 되나요?”

“아니. 당연히 되지 않지. 다행이다, 딸아.”

혹시나 세실리가 그 말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면 혀를 찼을 것이다.

이 냉정한 권력판에서, 언제 강물에 빠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에서 그런 여린 마음으로는 몇 년도 버티지 못 할 게 분명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클라우스가 가문의 마족 몇을 죽였든 개의치 않는다는 딸의 모습을 확인한 레블랑 가주는 그래도 아카데미에서 나름 철이 든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왈가닥 딸아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구나.”

“실망하시지 않을 거예요.”

“이미 실망하지 않겠다는 확신은 들었단다. 설마 네가 이렇게나 단단한 모습을 지닐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거든. 아카데미에 널 보낸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실리가 아카데미에서 정확히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면 과연 저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세실리는 제 아버지에게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말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두 부녀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움직였다.

마력 응어리들이 순차적으로 날아가고 검을 쥔 이가 그대로 몸을 날린다.

한 번의 마력 응어리는 가까스로 피해내고, 다른 하나는 막아내며 단번에 거리를 좁힌 레블랑의 가주가 막 검을 휘두르는 찰나.

차아앙!!-

“…!”

레블랑 가주의 두 눈이 크게 뜨인다.

제 딸이 마법에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근접 전투 부분에서는 거의 최약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세실리가, 자신의 막내딸이, 제 공격을 아주 여유롭게 막아냈다.

어느 틈에 뽑아든 것인지 손에 굳건히 쥐고 있는 검으로 말이다.

“하아앗!”

순식간에 레블랑 가주를 날려버리면서 날카롭게 검을 휘두른다.

그냥 막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목을 노리는 일격.

레블랑 가주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은 원래 금방금방 큰다고 했던가? 아카데미에 보낸 것이 반년이 조금 안 지났는데.

여태까지 검에 대해서 그 어떤 재능도 보이지 않던 딸이 이 정도로 성장했다.

‘다행이구나. 떠나는 순간에, 그래도 막내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

그리 생각하면서 가주는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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