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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13화 (213/341)

〈 213화 〉 19장 - 내전

“지금 즉시 협곡 입구를 봉쇄하고 적의 뒤를 치라는 명령입니다.”

“드디어! 드디어 우리 차례가 온 것이군.”

전령의 말을 전해들은 한 마족이 주먹을 쥐며 좋아라 떠든다.

그와는 반대로 다른 이는 조금은 걱정이라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전하의 명령이 예상보다 너무 이르군. 아직 이쪽 병사들이 이 좁은 곳에 몸을 숨기기 위해 적당한 자리를 잡고 식사조차 못 한 상황이다. 전하께서도 그걸 알고 조금 더 후에 병력을 움직일 것이라고 했는데.”

“듣고 보니 그렇군. 그보다 남쪽 산에 위치한 아군은 어찌 된 것이지? 그들이 있는데도 전하께서 이리 급하게 출진 명령을 내리셨다는 건 일이 잘못 되었다는 건가?”

“자세한 건 모르나 남쪽 산에 있는 병력의 절반 이상이 배반했습니다. 현재 리리오님이 계시는 곳으로 물밀 듯 밀고 들어가고 있다고….”

“허어, 그러면 당장 움직여야겠습니다. 자칫 본대가 휩쓸리겠어요.”

“그럽시다. 선두에 있는 자들에게 바로 전령을 보내도록 하시오.”

협곡 안에서 미리 대기 중이던 또 다른 아우펜 휘하 병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입구를 끊고 한창 아우펜을 공격하고 있는 적 본대의 뒤를 치면 된다.

적들이 아직 자신들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

진형 뒤에 별 다른 목책조차 세우지 않았을 테니 한 번만 쓸고 내려가도 모든 게 끝이 난다.

승리를 자신하면서 서쪽 틈바구니에서 막 움직이던 찰나.

그들은 얼마 가지 못 해서 그 좁은 틈에 꼼짝없이 붙잡히고 말았다.

가장 앞에서 먼저 진격해야 하는 제 1군이 그대로 멈춰서서는 움직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지? 왜 1군이 진격하지 않는 건가?”

“당장 전령을 보내도록. 혹 출진 명령을 받지 못 한 걸 수도 있다.”

협곡의 서쪽 틈에 병력을 배치해둔 터라 지나쳐가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때문에 1군이 움직이기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는데 전령을 보냈더니 돌아온 소식은.

“저, 다녀오니 조금 전 급히 병사들의 식사 시간을 주었던 터라 아직 출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제 식사 시간이 끝났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는가! 이 급한 때에 식사라니!”

“전령이 오면서 분명 1군에도 명령을 하달한 것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게 뒤에 자리하고 있는 군이 움직이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하여 병사들을 먹이고 대기시키다가 움직이려고 했답니다. 이리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화를 내던 반 마왕파의 일원들 사이로 문득 설마, 하는 표정이 번져간다.

남쪽 산에 있던 자들 중 반이 아우펜을 배신하고 마왕 쪽으로 돌아섰다고 했다.

덕분에 일이 대차게 꼬여버렸고 아우펜은 원래 시간보다도 더 이른 때에 서쪽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에게 급하게 출진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에게 미처 식사를 배급하지 못 했다고 하지만 어디 전쟁이 밥 먹을 시간과 자는 시간을 가려가면서 일어나는가.

그런 때에, 이 중요한 순간에 보고도 없이 식사를 배급하느라.

병사들 배를 불리느라 출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을 전한다?

“1군! 1군을 맡고 있는 자가 도대체 누구냐. 누구이기에 이러는 것이야.”

“오토 헤들러입니다.”

“오토 헤들러라면 전하께 충성을 다 하던 자가 아닌가. 대륙 전쟁에도 참가한 경험이 있는 자가 어찌 이런 실수를 한단 말이야!”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냥 1군을 지나쳐 갈 수는 없는 것입니까?”

다급하기에 그런 말이 나왔지만, 지형 상으로도 불가능하고 또 지형이 된다고 해도 군기 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1군이 가장 먼저 선두를 맡기로 하고 그 다음이 2군, 3군이 나아가기로 모든 게 맞춰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아군을 지나쳐 간다는 것은 자칫 ‘너를 공격하겠다.’ 라는 부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아직 오토 쪽이 배신자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이들로서는.

이 좁은 곳에서 괜한 짓을 하다가 혹시 오토가 자신들을 배신자로 오해하고 막아서기라도 한다면 시간이 배는 더 늦춰질 게 확실하기에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비로소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은 그 후로 40분이 훨씬 지난 후였다.

언뜻 보면 크게 늦은 게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전장이 돌아가는 상황이 몇 분 단위로 시시각각 돌아가고 있었기에 그 시간차는 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식사를 하라고 해서 한 건데 날벼락이 떨어졌군.”

“우리야 오토님이 식사를 하라고 했으니 별 문제 없겠지?”

1군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척 당황한 모습들이 역력했다.

말단 병사들인 자신은 먹으라고 해서 먹은 것이고, 대기하라 해서 대기한 게 전부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1군을 책임지는 오토 헤들러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

그리고, 1군을 맡고 있는 오토 헤들러는 이제 겨우 출진 준비를 마친 1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누군가가 보낸 서신을 굳게 쥔 채로 말이다.

- 무리할 필요 없다. 저들도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길만 막아도 될 거야. -

오토 역시 대륙 전쟁에 참전했었다.

그리고 그때 절대 인간으로 태어나서는 안 될 남자를 마주했다.

마족으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그래서 자신이 그 남자를 주군으로 따라야 했었는데!

그러다가 오토는 그 남자가 서부를 등지고 동부로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른 누구의 입도, 소문도 아닌 클라우스가 직접 보낸 서신으로 말이다.

그가 현 마왕 율리아를 따른다고 했을 때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이곳을 떠나 마왕의 밑으로 들어갈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반 마왕파에서 활동한 지가 꽤나 오래 되었기에 아무리 봐도 각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어, 하는 사이 결국 출진까지 하게 되는 날이 가까워진 순간에.

자신에게 서쪽 틈바구니에서 대기하며 적의 숨통을 끊는 비수 역할이 떨어지는 그 때에.

비로소 클라우스가 보낸 서신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었는데.

설마 여기까지 예측했다는 말인 건가, 오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자신에게 이런 자리가 맡겨질지 어떻게 알고 그런 서신을 보냈단 말인가.

‘이미 아우펜, 그 자는 희망이 없어. 클라우스, 그 남자가 현 마왕에게 귀의한 이상. 그리고 그가 그녀를 선택한 이상 나도 더는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

자존심 때문에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고 있지만.

오토와 같이 내심 클라우스를 존경하고 있는 마족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게 대륙 전쟁의 참전자로서 가지는 경외심이든, 아니면 전쟁 이후 패배를 감싸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띄워주기 작업을 하여 젊은 자들의 마음에 스며든 호감이든.

결국 그 남자는 이번에도 승리할 것이라고, 오토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 * * * * * *

뭔가 잘못 되었다, 그것도 너무 크게, 감당할 수조차 없이 잘못 되었다.

일이 꼬이면 뭔가 수습이 가능한 선이 보여야 정상이다.

실제로 아우펜 본인도 계획이 틀어질 때를 대비해서 제 2, 제 3의 대책을 다 마련했다.

미리 파둔 함정 중 하나만 제대로 작동해도 아군이 무조건 이기는 전투였다.

당장 적의 우군은 여전히 협곡 바깥에서 아직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 한 상황이다.

제 본대는 거센 기세로 몰아치는 적을 상대로 잘만 버티고 있다.

오히려 적이 조금씩 밀려나면서 이대로 시간을 조금만 더 끌 수 있다면 결국 승자는 자신이 될 것이다.

와아아아아!!-

제 측면을 보호하던 리리오의 군대가 무너지며 패주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돼.’

마치 신이 자신을 농락이라도 한 듯 모든 것이 철저하게 망가졌다.

리리오는 전사했고 남쪽 산에 있던 병력은 적이 아니라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

배신을 대비해서 미리 배치해둔 자들은 모조리 패주했고 아마 지금쯤 간신히 몸만 빼냈을 것이다.

일이 꼬인 것을 직감하고 급히 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에게 출진 명령을 하달했다.

원래라면 지금쯤 적의 뒤가 소란스러워져야 하는데.

그래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숨에 밀어붙여야만 했는데.

아무리 봐도 적의 진형에서는 한 줄기 혼란조차 일지 않았다.

이것은 미리 대기시켜둔 서쪽에서도 일이 터졌다는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말이 안 되고 적의 농간이라면 그도 말이 안 된다.

아군의 배치를 어찌 알고 모든 것을 준비하고 또 대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자라고 해도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신만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이다.

“리리오님의 군대가 무너졌습니다! 이렇게 가면 아군 측면이 완전히 노출됩니다!”

“곧 아군의 원병이 적들의 뒤를 칠 겁니다! 그 때까지만 버티면 될 겁니다!”

상황이 어지러워지니 수하들도 당황한 모습을 숨기지 못 한다.

곧 원군이 당도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들의 얼굴에서는 희망의 빛보다는 절망스러운 기운의 그림자가 더 짙게 느껴졌다.

아직 끝이 아니다, 협곡은 곳곳에 산길이 열려있다.

길이 험하고 좁지만 잘만 하면 이 지옥을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거대한 미끼가 필요하다.

적들이 이곳에 붙잡혀 계속 전투를 치를 그런 미끼가.

즉 제 본대 대부분을 이곳에 두고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살아남느냐, 아니면 여기서 다 묻히느냐.’

수천이 훨씬 넘는 병사들, 다시는 모을 수 없는 제 힘이다.

만일을 대비해서 제 성에 수비를 위한 병력을 두긴 했지만 그건 정말 한 줌에 불과하다.

여기서 살아나간다고 해도 산 게 아닐 것이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

아우펜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고민에 빠졌다.

전투에 대해서 까막눈이 아니니 더더욱 초조해졌다.

졌다, 이제 이걸 되돌릴 수는 없다, 방법이 없다.

이곳에서 죽더라도 최대한 큰 피해를 입히고 죽던가.

아니면 살아서 불확실한 가능성에 덧없는 희망을 걸어보던가.

“아우펜 아그리시오!!!”

바로 그 때, 저 멀리서 마법으로 증폭된 여인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쌓이고 쌓인 분노와 증오로 점철된 마왕이 내지르는 일갈.

그 괴성이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던 아우펜을 공포로 밀어 넣었다.

진정 이게 자신이 알던 그 여리디 여린 조카란 말인가?

클라우스, 그 남부의 악마가 왜 그런 애송이를 따르겠다고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 했는데.

만에 하나 그 여자가 여태껏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모두를 속인 것이라면.

그리고 그걸 클라우스가 알아차리고 바로 고개를 숙인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태 무시하던 존재가 자신을 진작 넘어선 괴물일 수도 있다.

그 생각이 아우펜을 완전히 무너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이를 악물고서 무엇이 되었든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예비대로 측면을 막는다. 원군이 오기 전까지 모두 버텨라. 아군이 패주해오면 절대 받아들이지 말고 진형부터 유지하도록.”

“알겠습니다, 전하!”

“여기서 버틴다. 적들이 더는 오지 못 하도록, 무조건 막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가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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