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19장 - 내전
아우펜 휘하 무장 중에서 최고라 하는 맹장이 리리오하고 하지만.
애당초 자신과의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마족이었다.
검과 창의 대결이라는 부분은 둘째 치고서라도 이미 그의 공격 패턴과 아주 사소한 습관 하나, 하나가 회차를 반복하면서 클라우스의 머릿속에 자동 재생이 되는 중이다.
이 타이밍에 무슨 공격을 할지, 방어 자세는 어떻게 취할지, 그리고 마법 공격은 어느 타이밍에 할 것인지, 전부 클라우스가 꿰차고 있는 중이었다.
타탓!-
이번에도 거리를 좁히겠다는 심산처럼, 리리오가 재빠르게 안쪽으로 파고든다.
별로 할 것도 없이 그냥 클라우스가 창만 내질러도 그 공격이 바로 막힐 터인데.
어찌 된 것인지 리리오는 제 어깨가 창으로 꿰뚫려도 기어코 간격을 좁히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인 채 쇄도해오고 있었다.
물론, 그가 미쳤다고 동귀어진이나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지는 않는다.
아직 남은 수가 많으니 그걸 이용하려 할 게 당연했다.
‘지금!’
둘의 거리가 좁혀진 순간 리리오는 최대한 숨겨두었던 마법을 일시에 터트렸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 충격에 의해 자신도 위험할 수 있음에도 오직 클라우스의 창을 떨어트리기 위해 그런 행동을 벌인 것이었다.
터엉!!-
덕분에 리리오의 바로 앞까지 들어왔던 창끝이 그대로 옆으로 꺾이고 만다.
리리오를 찌르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창을 길게 뻗었던 클라우스고, 그리 된다면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쉽사리 갈무리를 할 수 없다는 걸 노린 것이었다.
오직 지금이 유일한 기회라는 듯 두 눈을 번뜩이며 리리오가 그대로 검을 찔러넣었다.
아우펜이 자랑하는 맹장답게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이용하는 것이 꽤나 매서웠다.
퍼걱!!-
“어…?”
다만 그가 한 가지 잊은 것이 있다면, 전투 마법은 자신보다 클라우스가 한 수.
아니, 몇 수는 더 위라는 사실이었다.
창의 간격 안에 들어오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는 리리오에게 마법 공격은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저쪽에서 알아차리고 막아내든 피해내든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리리오가 이렇게 알아서 그 거리 안으로 들어와 준다면.
이건 클라우스의 입장에서는 고맙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마력 응어리가 정확하게 손목을 가격하면서 꽤나 흉한 소리가 들렸다.
검로가 완전히 뒤틀린 리리오는 다급히 몸을 빼내려 했으나 클라우스가 그걸 두고 볼리 만무.
그대로 상대방의 배를 걷어 차준 클라우스는 창대로 리리오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뻐억!-
“컥!”
눈 몇 번 깜빡이는 사이에 차례대로 손등, 배, 옆구리를 내어주었다.
특히 손은 제대로 마법에 적중 당한지라 제대로 검을 쥘 수조차 없게 망가졌다.
실력자들 간의 싸움에서 이런 부상은 승패와 직결된다는 걸 리리오가 모를 수가 없다.
“…악마 같은 놈. 설마 여태까지 본 실력을 숨겼던 거냐?”
대륙 전쟁에서 이 정도의 무위를 지녔다는 소식은 듣지 못 했다.
클라우스가 분명 최전선에서 적들을 맞아 싸우기도 했지만.
그 부분보다는 천부적인 지휘 능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보 수집, 그리고 적의 약점을 귀신 같이 알아차리고 후벼 파는 부분이 그의 강점으로 알려져 있었다.
해서 자신이라면 어떻게든 이 남자를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큰 부상을 입는다고 해도 기어코 저 악마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저 악마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한심한 자신일 뿐이었다.
“숨긴 게 아니라, 드러낼 필요성을 못 느낀 거다.”
“….”
“그리고 너도, 딱히 본 실력을 드러낼 필요성이 없었고.”
으득!-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지만 반박할 수 있는 말이 단 하나도 없다.
동부에서 자신과 능히 대적할 마족을 꼽자면 열 명이 채 넘지 않는다.
지휘 능력은 자신보다 뛰어날지 몰라도 근접 전투 부분에서는 자신이 우위에 있다.
당장 대륙 전쟁에서도 좀 싸운다 하는 인간 측 기사는 물론이고 요정과 수인의 전사들까지 모두 꺾어본 자신이었다.
해서 이번에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클라우스가 전장에서 싸우는 모습을 몇 번 지켜보기는 했으나 그와 상대하던 자들은 대부분이 그저 그런 지휘관들, 전투 부분에 있어서 내로라 하는 마족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자신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었는데.
아무리 상대가 그 클라우스라고 해도, 전투 마법의 달인이라고 해도 부딪치다 보면 틈 정도는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여겼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수는 단 하나다.’
자신의 패배는 이미 정해진 수순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본인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눈앞의 저 남자가 상상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으니 어떻게든 피해를 주어야 한다.
비록 자신이 패한다고 해도 클라우스가 제 주인의 앞길을 더는 가로막지 못 하게 해야 한다!
동귀어진, 그게 아니라도 반드시 부상 정도는 입힌다.
리리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검을 고쳐잡았다.
자신이 살 길 따위는 없다, 오직 죽음만이 자신 앞에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자신은 완전히 망가졌다.
혹 그로 인해 마음을 놓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부분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탓!!-
방어 따위는 이제 필요 없다, 오직 저 인간의 몸에 제 검이 들어가면 된다.
이를 악문 채 리리오는 클라우스의 바로 앞까지 쇄도해 들어갔다.
그러자 클라우스는 원래 그가 보이던 모습대로 창을 뻗어 리리오를 견제하고자 했다.
이런 식이면 결국 리리오도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찔러라. 마음대로 해. 나도 네 몸통에 검을 쑤셔 박고 말 테다.’
이런 공격이 무서운 이유는, 방어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공격에만 집중한다는 것.
아무리 숙련된 실력자라고 해도 이런 방식의 공격에는 꽤나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예상 밖의 공격, 절대 내어주면 안 되는 것을 내어주면서도 기어코 달려드는 상황.
그로 인해 결국 공격을 허용하게 되는 것이 지금과 같은 수법이었다.
닿을 수 있다, 저 남자에게 유효한 타격을, 중상을 입힐 수 있다! 리리오는 그리 생각했다.
웅!-
퍼억!!-
갑자기 느껴진 마력의 파동과 함께, 제 몸통에 구멍이 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뭣…?”
아무 것도 느끼지 못 했다, 몸통을 꿰뚫을 정도의 마력 응어리라면 반드시 그 기운이 느껴져야 정상인데 몸에 구멍이 나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리 생각하는 사이 섬광처럼 날아든 창날이 그대로 리리오의 목을 꿰뚫었다.
푸억!-
“끄르륵!!”
동귀어진을 노리던 이가 가래가 끓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아직 창날이 그대로 목에 틀어박혀 있었기에 마지막 숨이 붙어있기는 하다.
그 상태에서 리리오는 클라우스를 노려보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 한 시선을 띠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끄륵, 끄르륵….”
“아까 네 손목을 후려칠 때, 마력을 가속시켜 구현한 응어리는 하나가 아니었다고.”
클라우스의 말에 리리오가 두 눈을 홉뜬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응어리가 하나가 아니었다고? 자신은 분명 하나만을 감지했는데?
아무리 은밀하게 마법을 써도 이 정도 거리에 다가가면 그 파동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전장에서 수도 없이 뒹굴던 자신이 그 당연한 것을 모르고 놓칠 리 만무하다.
“끄륵, 끄르륵….”
“알아차리지 못 했다면, 지금도 알지 못 한다면, 그게 딱 네 수준인 거다. 궁금해 하지 말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말고. 그냥 죽어라.”
푸확!- 주륵! 주르륵!-
창을 뽑아내니 비로소 막혀있던 곳에서 붉은 피가 울컥거리면서 흘러나온다.
검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며 당장이라도 손잡이가 부서질 듯 쥐어보지만.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이 빌어먹을 인간을 베어보기 위해서 힘을 내보지만.
이미 한계에 다다른 몸은 리리오의 뜻대로 더는 움직여주지 않았다.
창에 묻은 피를 털어낸 클라우스는 자리에 주저앉은 리리오를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다.
기병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미 승기는 확실하게 아군으로 기울었다.
남쪽 산에 있던 반 마왕파의 병력이 대부분 이쪽으로 돌아서면서 숫자에서 가지는 우위가 사라지니 적들이 순식간에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나름 잘 싸우는 집단이라 할 수 있는 팔라티나트, 그리고 그곳의 가주인 에슐리가 아예 직접 우측 전선으로 난입했다.
상황이 이러니 재아무리 리리오 휘하의 기병들이라고 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
“아.”
탄식을 내뱉은 클라우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끄륵거리며 죽어가고 있는 리리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보아하니 저렇게 검을 짚은 채로 자리에 주저앉은 채, 나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고 싶은 모양인데….
“지랄마라. 뒈질 거면 더 비참하게 뒈져야지.”
퍽!-
그의 등판을 걷어차면서, 클라우스가 그렇게 조소를 머금었다.
덕분에 리리오는 간신히 제 몸을 지탱하고 있던 검을 놓치면서 그대로 땅바닥에 철퍽! 하고 주저앉았다.
제 목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피로 만들어진 웅덩이에 점점 잠겨가면서.
그냥 엎어진 것도 아니고 상체는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엉덩이는 위로 치솟은, 누가 봐도 비참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끄륵, 끄르륵….”
아마 저 마족은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승자로서 패자에게 보이는 자비도 없냐고.
그리도 무참하게 승리를 거두었으면서 이리 비참한 최후까지 줄 필요가 있냐고.
리리오의 속마음을 다 파악하고 있던 클라우스는 그에 카악! 퉤! 하고 들으라는 듯 침을 내뱉고서 전장으로 돌아갔다.
패자에 대한 자비는 승자의 권리일 뿐이고, 클라우스는 그걸 거부했을 뿐이었다.
“클라우스!”
한창 적 기병을 쫓고 있던 에슐리가 클라우스를 발견하고서는 급히 말 하나를 챙겨온다.
이미 이런 상황이 다 올 것임을 예견하고 있던 클라우스는 별말 없이 그녀가 내민 말에 훌쩍 올라서는 에슐리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늦어. 이런 식이면 마왕 전하께서 상당히 곤란해 하실 거다.”
“빌어먹을, 나도 다 사정이 있었어! 남쪽 산에 있는 나머지 이들을 설득하고, 또 낌새를 알아차리고 이쪽을 막으려 했던 역적 놈들을 처리해야 했다고.”
“그건 네 사정이다. 배신자의 사정까지 일일이 다 들어줄 정도로 이쪽이 여유롭지는 않아.”
예상 외로 굉장히 차가운 반응에 에슐리는 슬쩍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나름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을 다잡고 심지어 다른 자들까지 전부 데리고서 아우펜의 군대 중 그의 본대를 제외하면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리리오의 병력을 공격했다.
그 결과 적의 공세를 완전히 꺾고 심지어 역으로 반격까지 하기 직전의 상황인데 이 정도면 당연히 자신을 환영할 줄 알았다.
‘…아냐.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이게 나을 지도 몰라.’
배신을 하고 붙은 자를 너무 우대하면 자칫 원래 있던 자들을 자극하는 게 될 수도 있다.
클라우스가 일부러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더해서 에슐리는 나름 고급 정보라 할 수 있는 걸 알려주기로 했다.
“이게 다가 아니야. 더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걸.”
“왜. 협곡 입구를 봉쇄하고 앞뒤에서 아군을 덮치려 아우펜이 서쪽 틈에 병사들을 배치하기라도 했나?”
“…어? 그, 그걸 어떻게….”
“걱정 마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짓이야.”
“그렇게 쉽게 말할 게 아니야. 서쪽에 매복하고 있는 놈들도 리리오 못지않게 아우펜에게 충성하는 자들이야. 남쪽의 우리들 마냥 쉽게 마음을 바꿀 자들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말하는 거다. 에슐리. 걱정하지 마. 어차피 그놈들, 움직이지 못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