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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11화 (211/341)

〈 211화 〉 19장 - 내전

아우펜의 본대와 율리아가 이끄는 마왕군의 중군이 그대로 부딪쳤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두 군대의 가장 중요한 부대가 이 전투의 향방을 결정짓기 위해서 뒤는 돌아보지 않고 엄청난 기세로 격돌한 것이었다.

숫자는 반 마왕파가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질에서는 마왕군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덕분에 전투는 금방 끝날 것처럼 보이다가도 꽤나 팽팽하게 이어졌다.

“밀어! 무너트려!!”

진형과 진형이 부딪치면 그 때는 병사 개개인의 능력과 서로의 신뢰가 중요해진다.

옆의 병사가 겁을 먹고 자리를 이탈하면 그 두려움이 사방으로 퍼지고, 곧 모두 무너진다.

설사 제 목에 창이 날아들어 그대로 고꾸라진다고 해도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리고 빈자리가 생긴다면 그 자리는 다른 이들이 채울 것이다.

와아아아아!!-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과 고함 소리가 모든 것을 뒤덮는다.

한쪽은 패배하면 죽는다는 결연한 의지로, 다른 한쪽은 이긴다면 새로운 왕을 세우는 새로운 주역들이 될 수 있다는 기대로, 모두가 그렇게 창칼을 휘두르고 방패를 굳건히 든다.

“나의 병사들이여! 이 한 번의 전투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저 극악무도한 반역자를 처단하고 동부의 역사에 길이 남을 왕실의 수호자로서 남으라!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율리아는 한창 전투가 벌어지는 바로 앞에까지 와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다른 신하들이 혹 그녀가 다치기라도 할까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곧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슈욱! 슉!-

미처 막아내지 못 한 화살들이 율리아에게로 향하는 순간.

두 눈을 번뜩이면서 날아든 호랑이 수인이 순식간에 그걸 쳐낸다.

심지어 그 중 한 대는 아예 멀쩡한 상태로 손에 쥐고 있기까지 했다.

율리아는 그 후로도 무척 여유롭게 전선을 나돌다가 뒤를 돌아보곤 미소를 지었다.

“고생이 많아, 카엘라 전사장.”

“전하. 최전선은 위험합니다. 조금만 뒤로 물러서시는 게 어떨까 조심스레 말씀드립니다.”

참고로 카엘라는 이런 제안을 클라우스에게도 몇 번이나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도 하도 최전선을 전전하면서 때로는 돌격까지 직접 감행하던 그였기에 카엘라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클라우스의 실력이 자신보다도 더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수하로서 지휘관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 마음이 이제는 클라우스의 주군이고 또 자신의 주군인 율리아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율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자칫 자신이 정말 다치기라도 한다면 단순히 사기가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마왕의 이름 아래 모인 모든 병사와 모든 기세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직접 자신의 두 눈에 담고 싶어서.

자신을 위해서 목숨이 오고 가는 전장에서 싸우는 자들과, 자신에게 이리 소중한 자들을 해하려고 하는 적들의 모습, 그 모든 것을 말이다.

“전하. 저기 보십쇼.”

카엘라의 말에 율리아는 고개를 돌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클라우스가 이끄는 좌군이 또 다른 적의 대군과 본격적으로 붙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적의 병력이 좌측이 아닌 우측으로 쏟아져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클라우스의 명령 하에 좌군의 예비대가 움직여서 우측을 지원해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좌측으로 또 병력을 보내는 게 살짝 보였는데 그 부분은 율리아도, 카엘라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좌군이 생각보다 잘 버티는군.”

“예비대 투입이 적절한 시기에 행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클라우스의 진형 중앙이 일순간 흔들리는가 싶더니 원래는 지휘부에 머물러야 할 호위병들이 일제히 우측 전선으로 움직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항상 지휘관 곁을 지켜야 하는 자들이 저리 움직인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그들의 호위 대상이 그들보다 앞서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선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클라우스가 직접 전선으로 이동하는 모양이야. 그렇지, 카엘라 전사장?”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제 몸 하나 돌보지 않고 저리 싸우는데, 나라고 해서 안전한 막사 안에서 턱을 괸 채 머무는 것이 더 괴로운 일이야.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엘라.”

저런 지휘관을 데리고 있었던 너라면 내가 왜 이러는지 알 것이다.

그리고 정 내가 걱정이라면 네가 나를 지키면 되는 것이다.

율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카엘라도 그 부분을 인지하고서는 말없이 율리아의 곁을 지키면서 혹 그녀에게 날아드는 것이 없는지 재빠르게 훑어냈다.

와아아아!!-

바로 그 때, 거대한 함성이 남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클라우스가 이끄는 좌군의 측면에서부터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반 마왕파의 병력들.

한창 리리오가 이끄는 군과 싸우고 있는 좌군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신하들은 모두 큰일이라는 기색을 숨기지 못 했다.

좌군이 무너지면 그건 곧 이곳 본대의 측면도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아직 팽팽하게 전선이 유지되는 이 상황에서 그런 부분은 패배로 직결된다.

해서 그 걱정 어린 시선들은 당연한 것인데, 당연히 걱정해야 하는 것인데.

율리아도, 카엘라도 이상하게 걱정이 된다는 눈빛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마왕이 그런 모습을 보이니 밑의 신하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침묵 뒤로, 도대체 얼마나 큰 신뢰를 클라우스에게 가지고 있기에.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인지.

그런 궁금증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편, 남쪽에서부터 시작된 소란스러움은 아우펜의 진영에도 전해졌다.

전령을 보냈음에도 도통 팔라티나트를 위시한 남쪽 병력이 움직이지를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던 찰나에 비로소 그들이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완전히 때를 벗어난 건 아니다. 이 정도면 적절해.’

아우펜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최대한 빨리 아군이 적의 좌군을 무너트리고 그 기세를 이어서 율리아가 지휘하는 중군까지 덮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군을 지휘하고 있는 율리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저 여자를 낚아채서는 그대로 끌고 가고 싶다는 욕망이 일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공격이 비로소 시작되었으니 그로서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최고의 그림이 아우펜의 머릿속에 착착 그려진다.

적의 좌군이 이렇게 무너지고 그대로 여기까지 밀고 들어온 리리오와 남부의 병력들이 율리아의 중군을 그대로 압박하여 완전히 찢어발긴다.

적들이 패배를 직감하고 퇴각을 하려 하거나 후방에 남긴 우군이 진입을 하려고 한다면 또 다른 카드를 이용하여 모든 희망을 전부 앗아갈 것이다.

아직 저들은 모르고 있을 테지만 협곡 안에서 대기 중인 병력은 이게 다가 아니다.

적들이 협곡 안으로 들어오면 그 허리를 끊고 안에 완전히 가두기 위해서.

마왕군과 비교했을 때 병력의 수적 우세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

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기 위해 은밀히 병력 일부를 움직여서 대기시켜두기까지 했다.

만에 하나 율리아가 협곡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클라우스에 이어서 율리아까지 진입하니 아우펜으로서는 최고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거야말로 낚시질 한 번에 대어 두 마리가 한 번에 걸린 게 아닌가.

그리 생각하면서 아우펜은 적의 좌군이 무너지는 때를 총공세로 삼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면서 상황을 지켜보라고 막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이, 이런!”

남쪽 산에 대기시켜두었던 군세가 그대로 자신이 가장 믿는 측근, 리리오의 군이 있는 곳으로 물밀 듯이 밀려들어간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저들이 기어코 자신을 배신하고 율리아에게로 붙었다는 것이다.

카앙!-

들고 있던 지휘봉을 내던진 아우펜은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팔라티나트의 에슐리에게 그렇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 말을 해주었는데.

약간의 서운함 때문에 기어코 일을 망치다니, 역시 써먹을 곳이라는 한 곳도 없다!

그리 생각하며 아우펜은 전령들의 보고를 기다렸다.

사실 팔라티나트가 배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해서 남쪽 산에 배치된 군의 사이사이에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들과 그 병력들을 배치해두기까지 했다.

설사 팔라티나트가 배신한다고 해도 그 뒤를 이어서 배반할 놈들이 없도록.

더 이상은 이탈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대비를 하라고 직접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기다리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남쪽 산에서 오는 전령 자체가 단 하나도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남쪽의 군세 전체가 돌아섰고 제 수하들은 진작 제압당해서 배신을 막는 그 어떤 울타리의 역할조차 하지 못 했다는 것.

“어째서! 빌어먹을! 멍청한 놈들!!”

그렇게 주의에 주의를 주면서 대비를 하라고 일러두었는데.

배신자들 따위를 막지 못 해 적의 측면이 아니라 아군의 측면을 위험하게 만들다니!

아우펜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믿고 있던 제 수하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역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고 팔라티나트는 배신에 다른 것들은 그 조그마한 군세조차 막지 못 하니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이를 악물던 아우펜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화를 가라앉혔다.

비록 남쪽 산에 배치해두었던 함정은 죄다 망가져서 쓸모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직 자신에게는 다른 함정이, 그것도 남쪽 산의 군세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 남아있다.

협곡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봉쇄하고 역으로 율리아의 중군을 압박할 수 있는 자신의 우군.

그들이 현재 서쪽 방향에서 대기 중이었으니 그들을 부르면 되었다.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다. 남쪽 산의 놈들이 돌아섰다고 해도 그 수를 합치면 결국 내 병력과 율리아의 병력이 비슷해지는 수준에 불과해. 적의 우군은 협곡 너머에서 들어오지도 못 했다. 이 상태에서 협곡 입구를 끊고 내 우군이 들어오면 승기는 다시 우리에게 기운다.’

마왕군이 훈련 상태는 양호하니 전투에서 꽤나 괜찮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부분.

남쪽 산에 배치된 자들이 아직 확실하게 충성을 바치지 않고 있다는 부분.

그리고 적들이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부분까지, 전부 예상했던 범위다.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유리한 지형을 잡은 건 아군이고 적들은 불리한 곳에 있다.

병력 차가 좁혀졌다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고 아군이 합류하면 그마저 원점으로 돌아간다.

“전령을 보내 서쪽에서 대기 중인 병력들에게 당장 협곡 입구를 끊고 움직이라 전달해라. 최대한 빨리 놈들의 뒤를 쳐서 앞뒤에서 섬멸하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전하.”

아우펜의 명령을 받은 수하 중 하나가 바로 전령을 불러 소식을 전달한다.

남쪽 산에는 약간 불안한 자들이 있었지만 서쪽에는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자들을 배치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뒤에 또 자신에게 충성을 다 하는 자들의 대병력을 배치해두었으니 만약 그들이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일거에 놈들을 밀어버리고 진격하면 될 것이었다.

‘계속 발버둥 쳐라, 율리아. 그렇게 저항하면서 끝내 붙잡혔을 때 표정이 참 궁금해.’

조금만,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바로 잡힐 순간까지 다가왔다.

이제 머지않았다. 왕좌에 올라 율리아의 목에 줄을 감고서 대전이든 제 침실이든 가리지 않고 끌고 다닐 수 있는 그 달콤한 꿈이!

와아아아아아!!!!-

그 순간, 엄청난 함성이 옆에서 들려왔다.

리리오의 군과 클라우스의 좌군이 싸우고 있던 곳에서 들려온 소리.

그 속에서 뭔가 환희와 통쾌하다는 기운이 묻어있음을 알아차린 아우펜은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 불길한 기운은 현실이 되어서 다가오고야 말았다.

“저, 전하! 리리오가 전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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