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가 비선실세-210화 (210/341)

〈 210화 〉 19장 - 내전

선공은, 검을 들고 있던 리리오가 먼저 날렸다.

클라우스가 길게 창을 늘어트리고 있는 틈을 타서 검으로 창날을 튕겨내며 그 안으로 파고들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거리를 벌린 클라우스는 창의 머리 부분으로 리리오의 상단을 공격하려는 듯 창대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에 맞춰 리리오 역시 회피 동작을 취하는 찰나.

“…!”

틈을 노렸다는 듯 재빠르게 창대를 뒤로 빼낸 후 하단, 즉 다리를 노리는 창날.

검과 검이 서로 맞붙을 때는 잘 공격하지 않는 하단 방향으로 공격이 날아오니 리리오로서는 살짝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서 다급히 뒤로 훌쩍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리리오가 물러나자 클라우스는 조급하게 나서지 않고 다시 창을 물렸다.

어차피 거리에서는 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검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거리, 그리고 간격에서 창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

혹자는 말한다, 창이 아무리 거리가 좋아도 그게 전부 아니냐고.

결국 검이 안으로 파고든다면 허우적거리다가 죽는 게 다 아니냐고 말이다.

클라우스도 한때는 그런 말을 믿었고, 그래서 아직도 종종 검을 쓰곤 했다.

하지만 회차를 진행하면서, 어디선가 들었던 그 말이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았다.

서로 동급의 실력을 가졌을 경우 검보다는 창이 더 유리하다는 부분 말이다.

“하앗!”

거리가 부족하니 찌르기 공격은 오히려 독이다.

해서 리리오는 창이 방어하기 가장 어려운 상단에서의 공격으로 나섰다.

위에서부터 뚝 떨어져 내리는 베기로 방어를 유도한 후에 그대로 검을 걸쳐서는 창을 빼앗거나 하다못해 균형을 망가트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곧 그의 공격은 시작도 못 해보고 가로막히고 말았다.

분명 어느 정도 충분한 거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클라우스가 가볍게 찌르는 동작을 취하니 순식간에 바로 앞까지 창날이 날아든 것이다.

‘이런!’

클라우스가 창을 들고 있을 때에는 그 길이가 전부 보이는, 선의 형태만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저 긴 선이 짧은 간격 안으로 들어오면 단점으로 작용할 것이라 여겼다.

해서 안으로 들어만 간다면 저런 조잡한 무기를 쓰는 인간 따위 단숨에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리리오는 확신했었다.

그 선이, 정작 바로 앞에서는 동전만한 크기의 점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우웅!-

바람을 꿰뚫고 날아오는 창날의 소리가 그대로 들릴 정도였다.

이를 악문 채 리리오가 그 공격을 간신히 피해낸 것과는 다르게.

클라우스는 제 공격이 닿지 않자 바로 창을 뒤로 빼서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절대 줄일 수 없는 간격, 절대 이길 수 없는 거리 싸움.

리리오는 자신이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빠져드는 걸 느꼈다.

‘빌어먹을.’

거리를 좁힐라치면 계속해서 날아드는 견제 공격들.

특히나 그 공격들이 상단이 아닌 하단, 특히 다리를 노리는 것들이라 리리오 입장에서는 단 하나의 공격도 허투루 여기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본인은 칠 수가 없는데, 상대방은 잠깐 자신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그대로 치고 들어온다.

그 공격을 역으로 막아내고 거리를 좁힐라치면 재빠르게 창대를 빼내거나 아예 역으로 창대를 휘둘러서 창술이 아닌 봉술로 자신을 제압하려고 하니 또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겉만 나돈다면 결국 클라우스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꼴이다.

어떻게 해서든 안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리리오의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해서 이번에는 최대한 속도를 내서 창날이 들어오기 전 거리를 좁히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타타탓!!-

아우펜이 자랑하는 맹장답게, 리리오는 어지간한 실력자도 식겁할 정도의 속도로 클라우스 바로 앞까지 날아들었다.

그리고 반드시 공격을 적중시키겠다는 의지로 검을 휘둘렀으나 이미 자신은 창날의 사거리 안에 정확하게 들어와 있었고 그걸 피해서 제 공격을 적중시키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부웅! 붕!-

클라우스는 단순히 창의 머리 부분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봉을 다루듯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리리오의 공격을 말 그대로 완벽하게 봉쇄해냈다.

비록 창대가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만 칼질 한 번에 툭! 하고 잘려나가는 썩은 나무가 절대 아니다.

머리를 내려치면 두개골 정도는 깔끔하게 깨부술 정도의 강도를 자랑하는 창대.

그런 무기가 휘둘러지니 아무리 리리오라고 해도 더는 다가갈 수가 없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리리오의 공격이 빗나가는 틈을 노려서 클라우스가 창날 부분을 휘두르니 그 끝이 리리오의 볼을 스치면서 피를 방울방울 흩뿌릴 정도였다.

“…후우.”

제 볼을 훔쳐내다가 붉은 피를 보게 된 리리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도대체 왜 저 남자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창이라는 무기를 선택했는지 의문이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항상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는, 그렇게 상황을 만들기 위해 적을 끌어들이는 남자.

그게 리리오가 알고 있는 클라우스라는 인간의 주특기였다.

‘답이 안 보이는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창을 누르거나 감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길이가 길다는 건 그만큼 회수하기 힘들다는 소리이니 그 틈을 잘만 이용하면 치명타는 몰라도 약간의 검상은 입힐 시간이 충분하다고 여겼었다.

그런 리리오의 생각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클라우스는 오직 공격할 시기가 아니면 함부로 창을 뻗지 않았다.

오히려 그 외의 시간에는 계속 창의 길이를 줄였다 늘렸다 하면서 리리오가 공격도 방어도 함부로 하지 못 하도록 했고 또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면서 상단으로 찌르고 들어올지 아니면 다리 부분을 공격할지 전혀 알 수 없도록 만들었다.

…샤샥!!-

틈을 노리던 리리오가 재빠르게 찌르기 공격을 감행했다.

여태까지 베기 공격에만 집중하던 그가 갑작스레 찌르기로 들어오니 당황할 수도 있었지만.

클라우스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면서 그저 창날을 리리오의 상단 부분을 겨냥하여 들어주었다.

그 단순한 행동이 리리오에게는 거대한 방패, 혹은 울타리보다도 더 성가신 것이었다.

자신의 찌르기보다 이 단순한 움직임이 훨씬 더 가까웠던 탓이었다.

우웅!-

리리오가 공격을 물리며 뒤로 물러나는 순간, 클라우스가 그대로 찌르고 들어온다.

당연히 반격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리리오는 어렵지 않게 검을 세워서 창날이 제 얼굴로 날아오는 것을 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직후, 리리오는 또 한 번 클라우스의 농락에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아주 미세한 틈으로 빗나간 것 같은 그 공격이, 실상은 일부러 빗나가게 만든 공격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도 빠르게 창을 회수하여 하단으로 날아올 수가 없었다.

창날이 발목 부근에 닿기 직전에야 리리오는 간신히 그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이게 도대체 뭐냔 말이냐. 젠장!’

다가갈 수가 없다, 아무리 거리를 좁히려고 해도 그 전에 이미 그 경로에 창날이 들어와서 조금만 더 발걸음을 뗀다면 그대로 꿰뚫릴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파고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충분히 창을 걷어내고 무방비 상태의 상대방을 베어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부웅!-

거리도 거리고 간격도 간격이지만, 특히나 다리를 노리는 저 공격.

잊을 만하면 들어오는 하단 공격에 리리오는 머리 끝까지 분노가 일었다.

검을 들고 다리를 공격하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전에 상대방의 공격이 들어올 수도 있기에 되도록 하지 않는 수법이다.

그런데 클라우스는 저 긴 창을 이용해서 너무나도 쉽게 다리 견제를 해오고 있었다.

대충 툭툭, 하고 찔러 넣거나 쳐보는 수준에 불과했으나 만일 그 공격이 성공하여 다리에 부상이라도 입는다면 그것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했다.

더해서, 리리오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와아아아!!-

이히힝!! 히이잉!!-

쿠당탕! 우당탕!!-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접전.

반 마왕군와 마왕군의 전투가 점점 마왕군에게로 기울고 있는 중이었다.

현장 지휘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거의 아우펜 쪽으로 넘어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동부에서 왕이라 하면 율리아 하나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일반 마족들이 많다.

때문에 그런 마족들의 남편, 동생, 그리고 아들이기도 한 자들은 여전히 마왕군에 남아있었다.

훈련 강도는 아우펜 측에 뒤지지 않을 정도이니 병사들의 수준은 거의 동일하다.

그것을 숫자에서 압도하는 것으로서 승기를 잡으려고 했던 아우펜이다.

병력의 수가 승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않는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니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리리오 휘하 기병들이 클라우스가 맡은 좌군의 기병보다 더 많았다.

해서 이 싸움은 분명 아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했는데….

‘어째서, 어째서 아군이 밀리고 있단 말이냐.’

곁눈질로 전장을 살피던 리리오는 제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분명 남쪽 산에서 클라우스의 좌군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어야 할 누군가가.

팔라티나트의 가주, 에슐리 팔라티나트가 휘하 기병들을 이끌고 제 기병들을 참살하고 있는 장면을 확인하고 만 것이었다.

“무, 무슨?!”

“어디다가 한 눈을 파냐.”

클라우스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리리오는 자신이 잠깐이나마 정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었음을 자각했다.

동시에 하단으로 날아오는 것 같은 창의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검을 밑으로 내려서 다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창을 막아내려 했던 리리오.

하지만 클라우스의 창날이 자신의 다리가 아니라 뜬금없이 땅을 치는 걸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애당초 하단을 공격할 생각이 없었던 공격자와 하단을 무조건 막아낼 생각을 한 방어자.

이런 상황에서 누가 더 빠르게 자세를 수정하고 다음 공격을 취할 수 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너무나 뻔한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슈욱!!- 피슛!-

리리오의 검이 밑으로 향하는 걸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위로 찌르고 들어가는 클라우스.

곧 피가 튀면서 리리오의 목에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졌다.

조금만 더 상처가 깊었다면 그대로 경동맥이 베이는 치명상으로 이어졌을 것이었다.

“아. 조금 얕았군. 이거 아쉬운데.”

“하아, 하아….”

처음 맞붙을 때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리리오가 조금씩 흔들린다.

그저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는 무기 정도라고, 저 긴 사거리쯤이야 접근해서 얼마든지 능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병사들도 그런 식으로 초근접전에서 대패한 적이 있기에.

리리오는 자신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라 여겼었고 바로 직전까지도 그리 믿었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사거리를 직접 경험해보니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가갈 수가 없다. 이건, 이건 정말 방법이 없어.’

심지어 상대는 제 특기인 전투 마법도 없이, 오직 창 하나로 이렇게 자신을 몰아붙였다.

여기에 마법까지 들어온다면 이미 진작 승부는 갈렸을 것이다.

“왜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지? 그대의 전투 마법이 뛰어나다는 건 다 알고 있는데.”

“딱히 네게는 사용할 이유를 못 느껴서. 지금도 이미 충분하지 않나?”

“….”

자신의 자존심을 강하게 긁는 말이었으나,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마법을 사용하게 만들어주마.

리리오는 그리 생각하면서 검을 살짝 늘어트린 다음 은밀하게 마법을 준비했다.

원래는 공격을 위한 마법이나 클라우스의 창이 날아오는 순간 그 마법으로 창날을 튕겨내고 그 틈을 타서 공격을 할 생각이었다.

‘시간을 더 끌면 아군이 전멸한다. 도대체 왜 에슐리가 배신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남쪽에는 더 많은 아군이 있다. 팔라티나트가 멀쩡한 군세로 이반했을 수는 없어. 당장 우측으로 달려온 것이 그 증거다. 아직 시간은 있어!’

반드시 저 악마를 쓰러트려야 한다, 그러면 단숨에 기세를 돌릴 수 있다.

리리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력을 최대한으로 가속시키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