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 19장 - 내전
시간을 살짝 돌려, 클라우스가 마법 공격을 지시하는 순간.
아인은 물론이고 세실리마저 화들짝 놀라서는 당황하고 말았다.
당장 눈앞에서 계속 부딪쳐 들어오는 적들을 놔두고,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진.
심지어 아직 전황을 살피고 있는 적들을 향해 마법을 날리라니?
남쪽의 적들이 산에서 내려와 아군의 측면을 강타한다면 그대로 진형 붕괴다.
당장 우측에 이어지는 공세가 너무 강렬해서 아인조차 조바심이 날 정도인데.
도대체 왜 남쪽의 적 진형 근처로 마법을 날리라 한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아인의 궁금증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클라우스는 몸을 돌렸다.
“아인.”
“네, 클라우스님.”
“한 번만 말해줄 테니 잘 들어라. 팔라티나트가 합류하고 그 뒤를 따라서 여러 가문들이 돌아서면 그 즉시 좌측에 늘인 예비대를 펼쳐서 적들을 포위해라.”
“예? 클라우스님께서는 그러면 어디로 가시려고….”
“당연한 거 아니냐. 저기에 아우펜, 그 반역자가 무척 신뢰하는 놈이 있다는데 목을 따줘서 반역자 놈의 앞에 던져줘야 할 거 아니냐. 나 간다.”
“자, 잠시만! 지, 지휘는 어쩌시려고 이리 자리를 비우신단 말입니까!!”
“지휘 포기한다고 한 적 없다. 현장 지휘할 테니까 너는 내가 말한 대로 남쪽 산의 병력이 오거든 바로 좌측에 미리 배치했던 예비대를 돌려서 포위망을 구축해.”
그 말 직후 클라우스는 훌쩍 말에 올랐다.
다시 한 번 아인이 말려보려고 했으나 그는 그 틈조차 주지 않고 그대로 말을 달렸다.
지휘관이 움직이니 그 주변을 지키던 호위병들도 모두가 말머리를 돌려 전장으로 향한다.
다들 지휘관이 갑자기 일선으로 돌진하니 황당한 표정들이었지만.
그래도 전장을 두려워한다거나 꺼림칙한 얼굴들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사실 지휘라고 할 것도 없어. 나는 그냥 흘러가는 강물에 맞춰서 노를 젓는 거지.’
다른 이들은 전술, 전략의 천재라고 하지만 실은 그보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
그것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부 줄줄 꿰차고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듣지 않아도 이미 전부 다 알고 있다.
당장 예비대를 전격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 것도 적의 움직임을 예측했다기보다는 그냥 원래부터 다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이쯤해서 에슐 리가 팔라티나트의 미래와 관련하여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전부 훤히 꿰차고 있는 부분 중 하나였다.
아우펜은 그녀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평소와는 다른 방법으로 회유하려고 했지만.
클라우스는 그냥 대놓고 마법 한 번 날려주었다, 그리고 확실히 인지시켜주었다.
지금이 네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라고.
계속 망설이다가 때를 놓치면 그때는 너의 가치가 나락까지 떨어져있을 거라고.
자신이 이렇게 손을 내밀 때 고민 따위 하지 말고 얼른 잡으라고 말이다.
두두두두!!-
진형을 빙 돌아 우측으로 크게 꺾어 들어가니 그곳에 미리 대기 중이던 기병들이 그 뒤를 따라 일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적들에게 물밀 듯이 쳐들어간다면 순식간에 진형 일부를 잘라낼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하나의 빙하는 쉽게 녹지 않는다고 하지만 잘게 잘려나간 얼음덩이는 금방 녹아내리는 것처럼 곧 그 병사들은 아군의 압박에 그대로 사라질 게 분명하다.
“클라우스님! 저기 보십쇼!”
뒤를 따르던 호위병의 외침에 클라우스는 앞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군 진영의 변화를 알아차린 것인지, 그리고 기병들이 드디어 움직이는 것을 포착한 모양인지 적들 진영에서도 한 무리의 기병들이 이쪽을 마주보며 달려 나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클라우스가 가장 기다리던 먹잇감이 번쩍이는 칼을 든 채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리리오 레트르, 아우펜의 최측근이자 군 지휘 능력도 나름 괜찮고 특히 싸움에 도가 튼.
말하자면 반 마왕군을 대표하는 맹장이라고 할 수 있는 마족이다.
원래 흐름에서는 율리아를 꽤나 애먹이는 마족인데, 다른 이들처럼 회유할 수도 없는 인물이기에 클라우스 입장에서는 더더욱 빠르게 죽여 없애야 하는 놈이었다.
“뭘 해야 하는지 다들 잘 알겠지. 여기서 패하면, 다음은 아군 진형이 쑥대밭이 된다. 마왕 전하께 반역자들의 패퇴 소식을 전하는 게 너희들 임무다. 실패하지 마라.”
남부의 악마라는 별칭과는 다르게 제법 담담하고 부드러운 어조다.
덕분에 그를 따르던 이들은 순간 자신이 전장의 소음으로 인해 뭔가를 잘못 들었나 싶었다.
대륙 전쟁을 치르면서 클라우스에게는 마족이 철전지원수가 아니었던가?
아무리 자신들의 왕에게 귀의했다고는 해도 아직 쌓인 응어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인다, 녀석들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수라고 불러도 무방한 마족들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 마족 병사들이 어느 순간부터 같은 인간들보다 더 정이 들었을 정도다.
아직 저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자신은 다 알고 있다.
이제야 비로소 집에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을 하면서 클라우스는 속도를 올렸다.
동시에, 그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도록 마력 회로를 은밀하게 가속시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땅이 흔들리면서 양측의 기병들이 마침내 바로 앞까지 당도했다.
그 순간이 되어서야 선두에 서있던 리리오는 제 상대로 나선 이가 일개 기병 지휘관이 아니라 군 전체를 아우른다는 클라우스임을 알 수 있었다.
“클라우스!!”
리리오의 두 눈에 살기로 점철된 빛이 번쩍였다.
여기서 저 남자를 살해한다면 곧장 적의 사기는 뚝 떨어질 것이다.
원래는 비교적 후방에서 지휘를 할 줄 알았는데 설마 이렇게 나설 줄이야.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여기면서 리리오는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러다가 순간, 그는 클라우스의 손이 크게 휘둘러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삐라도 잠깐 놓쳤던 건가 하는 찰나, 곧 그는 자신의 앞으로 뭔가 엄청난 것이 쇄도해 들어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마법!’
그러고 보니 클라우스가 단순히 뒤에서 지휘만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했었다.
필요할 때에는 직접 앞에 나서서 전투를 치르기도 했는데 그 실력이 상당하단다.
특히 전투 마법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데, 그런 이유로 많은 마족들이 그가 적임에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리리오는 급히 말머리를 틀어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속도가 원래의 마법보다 훨씬 더 빨랐으며, 무엇보다 너무 은밀했다.
알아차리는 것이 늦어도 너무 늦었기에 어쩔 수 없이 검을 베어내고자 결정했다.
“흐읍!”
마법이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말을 돌리고 막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바로 앞에서 마력 응어리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마치 떨어지던 별똥별이 마찰에 전부 다 타버려 그대로 재가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무, 무슨?’
당연히 리리오의 검은 허공을 갈랐고, 그 직후 보다 몇 배는 더 은밀하게 날아들고 있었던 마력 응어리가 그대로 그의 몸통을 강타했다.
퍼엉!-
“아!”
“리, 리리오님!”
그의 호위병들과 기병들이 애타게 그를 불렀으나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 모두가 리리오를 지나치고, 자리를 뒹굴던 그의 말만이 일어나서는 어딘가로 도망칠 뿐이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 눈 뜨고 지휘관을 잃은 적 기병들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면서 바로 지척까지 들이닥친 마왕군 측 기병들과 조우했다.
그리고 곧, 보병들과의 접전과는 또 다른 양상을 띠는 기병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촤악! 촥!-
쾅! 콰쾅!!-
사방에서 기수가 날아다니고 말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피가 튀고,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고, 비명과 고함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사이에서 클라우스는 몇 명의 기병을 해치우면서 리리오가 쓰러진 곳까지 내달렸다.
마침내 그 근처까지 이른 순간 클라우스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 등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잘 달리다 말고 갑자기 왜 그러나 싶기도 하겠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느 틈에 당도한 것인지, 클라우스가 앉아있던 말 등 위로 리리오의 검이 매섭게 날아든 것이었다.
“쳇.”
낙마하면서 상처를 입은 것인지 피를 대충 닦아낸 리리오는 아쉽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클라우스가 완벽하게 방심을 하고 있다 판단하여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공격이었는데.
그걸 간발의 차로 피해내고야 만 클라우스였다.
타탁!-
가뿐하게 바닥에 착지한 클라우스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아군과 적군의 기병들이 이제는 서로 돌진력도, 속도도 거의 잃고 한 군데 어우러져서 난전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되는군. 전장에서 말이야!”
“꽁지 빠지게 도망이나 간 주제에 말은 참 멋지게 하네.”
“그 때는 내 참패였지. 인정하겠다, 클라우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거다. 반드시 네놈을 끝장내고 나의 주군, 나의 전하께 대륙 전쟁의 원수를 끌고 가리라!”
“마왕의 자리에 오른 적도 없는 놈이 마왕이라고 칭하고, 그런 놈을 또 마왕 전하라고 불러주는 거냐? 아주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군. 부끄러운 줄 알아라.”
비아냥거리는 클라우스의 대답에 리리오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륙 전쟁의 영웅이라 적임에도 어느 정도 대우를 해주고 있었건만.
저 남자는 그런 자신에게 원색적인 비난과 날 선 시선만을 보낼 뿐이었다.
더는 할 말이 없다고 결심이 들었는지 리리오는 자신의 검을 갈무리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클라우스는 미리 손에 들고 있던 창을 가볍게 한 번 휘둘렀다.
원래 무기 종류는 가리지 않고 다 쓰는 클라우스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굳이 창을 선택하여 들고 왔는데,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창이라. 그런 무기를 든다면 검을 이길 수 있다 하는 치들이 종종 있었지.”
“….”
“하지만 결국 죽어가면서 깨닫더군. 모든 무기에 있어서 검이 최고임을. 그리고 그 차이를 고작 거리의 우월함으로 채우려고 하던 제 미련함을 말이야!!”
리리오는 이상하게 창이라는 무기에 대해서 좋지 않게 보는 경향이 강했다.
일반 병사들이나 쓰는 무기, 많은 훈련을 받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그래서 더더욱 천하고 또 찌르는 것 외에는 보잘 것 없다고 하는 병기라고 말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창이란 결국 ‘찌르기’ 를 주목적으로 하는 병기이니 거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거기에 검보다 제조하는 데에 있어서 철도 더 적게 들어가고 수리하기도 용이하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기에 대부분의 병사들은 이 창으로 무장하고 적들과 싸우게 된다.
때문에 창이란 무기가 말단 병사들의 무기, 실력 없고 돈 없는 자들의 무기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히고 말았다.
그리고 검을 쓰는 자들은 비록 창이 거리에서는 우월하다고 할지 모르나 안으로 치고 들어간다면, 강제로 그 거리를 좁힌다면 될 것이라고.
찔러 들어오는 창을 쳐내거나 힘으로 누르고 또 감으면서 들어간다면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방진을 뚫어낸 사례도 있고, 그런 방법으로 혼자서 병사들을 죽이고 다니던 자들도 분명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전문적으로 그 무기를 다루는 자와 붙지 못 했을 때 나오는 이야기다.
방진을 위한 창이 아니라, 눈앞의 적을 그저 참살하기 위한 창을 마주한다고 해도.
과연 검을 쓰는 자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곧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