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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208화 (208/341)

〈 208화 〉 19장 - 내전

돌격! 하면 병사들이 와! 하면서 쏟아져 들어가는 장면들은, 다 개소리다.

그렇게 싸웠다가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깨져서는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진형과 진형이 부딪치는 것, 그래서 그 힘 싸움에서 밀려난 쪽이 등을 돌리면 그때 비로소 살육전이 벌어지는 것, 그게 바로 이곳의 전쟁 방식이었다.

심지어 이곳은 서부 연합과 동부 마족들이 싸웠던 대륙 전쟁의 한복판도 아니다.

내전, 동부의 마족들이 동족에게 창칼을 겨누는 상황이니 싸우는 방식이 다를 수가 없다.

보병끼리 부딪쳐 힘과 용기를 겨루다가 틈이 보이면 기병들로 측면을 와해시키고 전열을 붕괴시킨다.

그 후 패주하는 적들을 하나씩 살해하여 다시는 재기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게 시작이고 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흐트러지지 마라! 진을 유지해라! 옆 전우와 간격을 맞춰라!!”

“뻗어라! 너희가 적을 찌르지 못 하면 적이 네 앞을 찌른다! 그러면 다 죽는 거다!”

중견 지휘관들의 다급한 명령이 사방에서 날아들고 지근거리까지 다다른 병사들은 방패를 들고 창을 찌르면서 먼저 진형을 무너트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때로 틈을 노리고서 조직적으로 달려드는 자들도 있기는 하였으나 곧 서로 준비한 방어책에 가로막혀 피해만 입고 번번이 뒤로 물러나야 했다.

쾅쾅!!- 퍼억! 퍽!-

아주 얕은 비탈이기는 하나 어찌 되었든 고지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며 공격하는 자들과 반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공격해야 하는 자들 사이에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바람의 방향마저도 전장의 분위기에 영향을 주는데 이런 부분은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아인. 우측에 예비대를 투입해라. 예비대가 도착하면 그들까지 전부 몰아넣어서 억지로라도 밀고 올라가게 만들도록.”

“우측 말입니까? 적의 군세가 좌측 쪽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은데….”

“함정이다. 우측의 공세를 무너트리면 자연스레 한 방향으로 포위할 수 있다는 걸 알아. 적 기병들도 우측을 노리고 있을 거다. 아군 기병들에게 언제든 나아갈 준비를 하라고 일러둬.”

“알겠습니다.”

원래는 좌측을 위해 남겨둔 예비군을 우측으로 투입한다.

상황을 모르는 이들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짓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적들의 작전들을 뻔히 알고 있는 클라우스 입장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짓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갑자기 적의 진형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마왕군의 우측으로 강렬한 공세가 몇 번이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쾅!! 쾅쾅쾅!!-

방패를 두들기는 소리, 창과 창이 부딪치는 소리,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소리.

그리고 사방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가 쓰러지는 병사들의 비명과 신음소리까지.

하나하나가 듣는 이의 정신을 하얗게 만드는 비참한 것들 천지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클라우스는 냉정하다 못 해 이제는 아예 무감각한 얼굴을 한 채 그저 한 곳만을 조용히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클라우스님! 말씀하신대로 방금 막 예비대가 우측 진형에 당도하였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우측 전열이 뚫릴 뻔 했는데 참으로 다행입니다.”

소식을 가져온 아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멀리 보니 이제는 중군도 비탈을 오르면서 아우펜의 본대와 제대로 붙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 때 중군의 측면을 맡고 있는 자신들이 흔들리거나 자칫 완전히 와해되어 진형이 붕괴된다면 중군은 말 그대로 삼면 포위를 당할 수도 있었다.

“아인.”

“네, 클라우스님.”

“남은 예비대 중 반을 좌측으로 빼내서 2열로 길게 늘여라.”

“예?”

“좌우로 길게 늘여서 좌측 진형이 더 길게 보이도록 만들어.”

“저, 그… 크, 클라우스님.”

지금 아인은 마왕의 뜻을 따라 클라우스의 부관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부관은 지휘관의 명령을 받아 그걸 다른 이들에게 확실하게 전파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인은 이번에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2열로만 해서 진형을 늘인다면 반드시 돌파당할 겁니다. 지금도 좌측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비대를 그런 식으로 썼다가 자칫 뚫리기라도 한다면….”

“안 뚫린다. 그러니까 이행하도록.”

“에, 예?”

“어차피 저놈들도 좌측에 공세를 퍼부을 마음이 없어. 우측을 먼저 밀어내서 우리들을 중군과 완전히 떨어트린 후 도망칠 곳이라곤 남쪽 밖에 없도록 만들 셈이다.”

적들이 우측에 공세를 집중했다면 예비대를 준비시켰다가 우측에 더 지원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아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해서 그 말을 한 번 해볼까 했지만 흔들림 하나 없는 클라우스의 눈동자를 본 후 그런 생각이 순식간에 싹 사라지고 말았다.

시작부터 적의 마법 공격을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고 진형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조정해서 빈틈이 없도록 만든 것도 눈앞의 저 인간이 해낸 일이다.

거기에 또 어떻게 상황을 파악하고서 귀신 같이 예비대를 움직여 필요한 곳에 지원하는지.

아인은 이 남자가 혹시 공중에 떠올라서 전황을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어차피 좌측의 병력을 늘리는 건 다른 일을 위한 거다. 잔말 말고 이행해라. 아까부터 자꾸 토를 다는 것 같은데 나로서는 딱히 유쾌하지 않군.”

“죄, 죄송합니다. 바로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화들짝 놀란 아인이 바로 예비대를 준비시키기 위해서 자리를 비운다.

그 역시 클라우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마족이기도 하고, 거기에 무조건적으로 그를 따르라는 율리아의 명령까지 있었으니 더더욱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괜히 바보 같은 짓을 해서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용서받지 못 할 최악의 죄를 짓는 것이 될 테고 말이다.

“….”

아인이 자리를 비운 후 클라우스는 한창 격돌이 벌어지고 있는 제 진형의 왼쪽 방향을.

그러니까 협곡 기준 남쪽에 위치한 낮은 산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팔라티나트를 위시한 또 다른 반 마왕파 군이 대기 중이다.

아마도 리리오가 이끄는 병력이 아군과 거의 호각을 이룰 때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와서 이곳을 밀어버리고 그대로 마왕군의 본대까지 휩쓸려는 속셈이겠지.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지형과 병력 숫자의 유리한 부분을 한 번에 이용할 수 있으니까.

아마 지금 상황이 보통 때와 같은 것이었다면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남쪽 산에 위치한 병력들이 과연 뜻대로 움직여 주느냐 였다.

한편, 율리아의 본대와 제 본대가 부딪치기 직전.

아우펜은 리리오의 병력과 클라우스가 이끄는 좌군이 전투에 돌입했음을 보고 받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남쪽 산에 위치한 아군을 움직여 측면부터 무너트리는 것이다.

“남쪽 산에 머무르고 있는 팔라티나트 측에 전령을 보내라. 지금 즉시 움직이라고. 단 아주 정중하고 부탁하는 어조로 전해라. 혹 그들이 허튼 생각을 품지 않도록.”

여태껏 강제하고, 억누르고, 은밀하게 협박까지 하면서 완전히 눌러두었다.

초창기에 자신과 함께 했다고 하여 스스로 으스대지 말라는 뜻으로.

팔라티나트보다 더 대단한 가문들도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이런 조그마한 거에 마음 상한다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으로 말이다.

당장 남쪽 산의 배치도 그렇다.

팔라티나트 뒤에 배치된 부대는 아우펜에게 충성을 다하는 곳이다.

만약 이상한 생각을 품는다면 그대로 뒤를 공격당할 것이고 설사 합류를 한다고 해도 전장의 기세를 크게 바꾸지 못 할 게 분명하다.

반대로 아우펜이 원하는 대로 충실하게 창날의 역할을 완수한다면.

팔라티나트는 다시금 모든 것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크게 성장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아우펜은 휘하 귀족들을 길들이려고 했다.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뒤집을 수 있고,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으며.

그런 상황에서도 다들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서 묵묵히 제 할 일을 수행하는.

이전과 비교되지 않는 강력한 왕권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다.

아우펜의 뜻을 받아 전령이 재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팔라티나트와 다른 가문의 군대들이 머무르고 있는 남쪽 산.

적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는 비수를 날리기 위해서.

“에슐리 팔라티나트 가주님. 전하의 전언입니다. 지금 바로 적들의 숨통을 끊어준다면 결정적인 공을 세우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가주님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대단한 전공을 기대하시겠다는 말씀 또한 제게 남기셨습니다.”

“….”

마침내 그 전령을 마주한 에슐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배를 갈아타기로 작정했는데, 이 빌어먹게 얄미운 남자가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내민다.

여기서 이걸 물면 결국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여태까지의 섭섭함은 뒤로 미뤄두고 함께 동부의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지 않겠냐고.

딱히 그 손을 잡을 생각이 크게 들지 않았지만, 고민이 살짝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은 팔라티나트를 이끌어야 하는 가주다.

자신의 가문이 존속하는 것이 곧 제 의무이고 해야 할 일.

클라우스에게 무장으로서 호감은 분명 지니고 있다, 그 남자가 따르는 마왕이라니 자신 역시 바로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칫 팔라티나트가 큰일을 당할 수도 있다면, 그건 별개의 문제다.

‘차라리 고압적인 태도로 명령이나 했다면 시원하게 뒤통수를 쳤을 텐데.’

에슐리는 저 멀리 펼쳐진 전황을 바라보았다.

이미 아우펜의 본대와 마왕군의 본대가 완전히 들러붙어서는 백병전 단계까지 돌입했다.

또한 리리오가 이끄는 군과 클라우스가 이끄는 군 역시 접전에 접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것에 따라 자신과 가문의 운명이 갈린다.

이미 클라우스에게 답까지 했건만 이리 흔들리고 만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누구의 편에 가담해야 하는 것일까.

막 에슐 리가 고민에 빠지는 순간 도움의 손길이 날아들었다.

“가, 가주님! 저, 저기!!”

선택 장애가 왔다면 내가 도와주마. 그렇게 말하는 듯이.

한창 접전이 벌어지고 있던 클라우스의 진형 쪽에서 갑작스레 거대한 마법 하나가 아군 진형 근처로 작렬한 것이었다.

설마 바로 앞에서 혈전이 벌어지는데 거리가 꽤나 되는 이곳까지 마법을 쓸 줄은 몰랐다.

때문에 병사들이 잠시 허둥거리는 사이 진형 바로 앞쪽에 마법이 뚝, 하고 떨어졌다.

콰아앙!!-

다행히 사상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폭발력 하나는 확실히 상당했다.

아무래도 꽤나 좋은 실력을 지닌 마법사가 끼어있는 모양인데, 이런 수준의 마법을 왜 한창 싸우고 있는 적이 아니라 굳이 이 먼 곳까지 쏘아 보낸 것인지.

아우펜이 보냈다는 전령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 하는 중이었다.

“….”

하지만, 에슐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마법이 날아와 터진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 마법이 어디서 날아왔는가, 바로 클라우스 진영 측에서다.

자신 바로 앞에서 엄청난 군세를 이끌고 계속 공격을 하고 있는 적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남쪽 산의 자신에게 굳이 이 마법을 날린 것이다.

설마 마법이 빗나갔을 리는 없고, 선공을 하기 위한 목적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클라우스는 이 마법을 왜 날렸을까.

아마 저 밑의 남자는, 자신에게 이런 말을 전하려고 했을 것이다.

- 뭐하는 거냐. 정신 차려. 지금 안 오면, 더는 기회가 없어. -

지금이 상종가다, 이 여자야.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나락이야.

클라우스는 에슐리에게 그렇게 속삭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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