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 19장 - 내전
마왕성으로 들어가는 목구멍과도 같은 곳.
그 세하라 협곡 안으로 클라우스가 이끄는 마왕군이 진입해왔다.
원래는 이곳을 틀어막는 것이 전략적으로 더 맞는 판단이겠지만.
그리해서는 아우펜을 완전히 무너트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결정한 부분이었다.
“클라우스님. 적의 본대가 협곡 안의 비탈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군이 진입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대로 공격하려는 것 같습니다.”
정찰병의 보고를 받았음에도 클라우스는 멈추지 않았다.
좌군을 먼저 협곡 안쪽으로 전부 들인 후, 곧바로 전령을 보내 율리아가 직접 이끄는 중군까지 들어오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덕분에 좌군에 소속된 지휘관들은 하나 같이 당황한 표정들.
율리아의 명령에 따라 클라우스 곁으로 옮겨진 카엘라만이 오직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러다가 적들이 공격이라도 한다면 좌군이 무너질 겁니다. 중군을 벌써 들이는 건….”
“어차피 아우펜, 저 반역자 놈도 시간을 끌 생각이 없다. 중군을 마왕 전하가 이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터이니 안으로 들인 후 승부를 보려고 하겠지. 벌써부터 우리를 친다면 중군이 들어오지도 않고 그냥 물러날 테고, 그러면 많이 아쉽겠지.”
클라우스의 말대로 비탈에 자리를 잡은 아우펜의 본대와 그 충성파들이 이끄는 병력은 자리를 굳건히 지킨 채 진영을 벗어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양새가 ‘너희가 준비가 되었다면 어디 한 번 들어와 봐라.’ 뭐 이런 식이라고 해야 하는 게 옳다고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사실 저 수가 틀린 게 아니다, 오히려 아주 적절하다.
협곡 안으로 들어온 마왕군은 이제 공격 밖에 남은 답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방어 진지에 목책까지 세우고 버티고 있는 반 마왕군이 유리한 것이 사실.
더해서 전투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도 반 마왕군이 더 많을 것이다.
어느 부분으로 보아도 마왕군이 불리했기에, 모두가 불안해하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클라우스가 굳이 선봉을 자처한 것이다.
고작 사람 하나가 전황을 뒤짚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그것도 그 대상이 정말 ‘사람’ 이어야 그런 말이 통하는 법이다.
괜히 어디 보면 누구 하나가 들어가서 쑥대밭을 만드니 군이 무너졌다, 따위의 기록이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카엘라.”
“네, 클라우스님.”
“중군이 들어오는 즉시 아우펜의 본대와 전투를 치르도록 유도해라. 서로 간만 보는 형식이 아니라 전면전이다. 훈련 상태는 서로 엇비슷하다지만 그래도 우리쪽이 조금 더 우세하다는 걸 숙지하고 임할 수 있도록.”
“클라우스님께서는 그 오른쪽을 치려는 것이군요.”
“듣자하니 저기에 아우펜이 굉장히 신뢰하는 마족이 하나 있다더군. 그런 기대는 진작 목을 잘라서 창대에 걸어줘야 하는 법이거든.”
“명령 따르겠습니다. 중군이 들어오는 즉시 진형을 갖춰 공격토록 하겠습니다.”
카엘라가 약간의 병사들을 이끌고 중군을 맞이하러 간 사이.
남은 병력들을 이끌고서 클라우스는 아우펜을 지나쳐 그 옆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반역의 무리들과 창칼을 마주하게 되었다.
살짝 비탈이 져있기에 아군 쪽이 불리할 테지만 일단 한 번 기세를 업고 난다면 그 이후에는 큰 장애물이 되지 못 할 것이었다.
“적의 방어 진지 바로 앞입니다. 더 접근하면 마법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옆에서 부관 형식으로 따라붙은 마족, 아인이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진형을 갖추고 천천히 진격하는 마당에 마법을 얻어맞고 혹 붕괴라도 된다면 그건 필패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개의치 말고 계속 적의 진형 앞으로 다가가라 말했다.
언제 자신들의 눈앞에 마력으로 똘똘 뭉쳐진 마법 폭격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
겁을 먹거나 망설일만함에도 병사들은 이를 악문 채 앞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훈련 하나는 잘 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한편, 아우펜의 측근들 역시 클라우스의 좌군이 비탈을 올라오는 걸 확인했다.
이미 아군 측은 진형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충분한 휴식까지 취했다.
지형도 자신들이 유리한 마당에 공격까지 하고 있다니, 과연 저기 선봉에 서있는 인간이 정말 그 클라우스가 맞는가 싶었다.
“마법 폭격부터 시작한다. 마법사들에게 명령해라. 바로 마력을 충전했다가 일시에 공격하라고. 그 이후는 우리들도 진형을 갖춰서 맞선다.”
아우펜의 측근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하나.
특히 전투 부분에서는 아우펜이 믿고 의지하는 마족인 리리오가 그리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바로 휘하 마법사들이 마력을 운용하면서 곳곳에서 새파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웅웅!-
혹시 적들이 먼저 마법 폭격을 할 수도 있기에 미리 마력 점검을 해보았지만 다행히도 그런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금이 오래 전에 막힌 마왕파로서는 가장 많은 돈을 잡아먹는 마법에 대해서 대부분의 이들을 아군 측에게 내어주고 만 것이 컸다.
‘적들이 마법을 대거 운용하지 못 하는 건 분명 이점이다. 하지만 워낙 전장이 불안하다보니 마법사들도, 마법도 한 번에서 두 번밖에 운용 못 하고. 결국 남는 건 군과 군의 싸움인데 하필 상대가 클라우스, 그 인간이라니.’
리리오도 대륙 전쟁 시절 남부에서 대패를 당한 전적이 있다.
정말 말 그대로 간신히 몸만 뺐을 정도로 최악의 패배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패배를 오늘 설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또 묘하게 불안감이 커졌다.
“리리오님. 마법 공격 준비가 거의 다 끝났습니다. 이대로 잠시 후면 공격이 가능합니다.”
“측면에 마법 공격을 집중해라. 그래서 적들이 중앙으로 더 몰리게 만들도록. 공간을 빼앗고 적들을 중앙으로 몰면 우리 기병들이 활약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리리오는 핵심 중의 핵심인 기병들을 뒤에 숨겨둔 상태였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적의 마법 공격에서 보호를 해야 했고 또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진형이 열리면서 달려드는 기병은 보병에게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다만 기병들이 많이 상하지 않고 활약할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의 진형을 흐트러트리거나 역으로 움직일 공간도 없이 빽빽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좋아. 그러면 즉시 마법 공격을 시작….”
리리오가 막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갑자기 그들의 하늘이 순간 빛으로 가득해지는가 싶더니 곧 붉게 물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모두가 앞을 바라본 순간, 리리오를 포함하여 아우펜의 측근들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저, 저게 무슨….”
“아, 아아아!! 다, 당장 마법 취소해라! 마력을 거둬! 마력을 거두라고!!”
리리오가 목청껏 소리를 질렀으나 이미 의미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정확하게 적의 마법사들이 있는 곳을 겨냥하여 수십 개의 마력 응어리가 쏘아진 것은 그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퍼퍼퍼퍽!! 콰콰쾅!!-
애당초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마법이 아니니 위력이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법을 준비하느라 무방비가 된 마법사들을 순식간에 살해하거나 더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 하도록 부상을 입히는 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난리가 난 적의 진형을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한 마족 여인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막 마법을 거두고 있는 중이었다.
“고생했어요, 세실리.”
“하아, 하아….”
“설마 했는데 그걸 정말 성공할 줄은 몰랐군요.”
일종의 대(對) 포병 전술과 비슷한 방법이 이곳에도 있다.
다만 그 상대가 대포를 사용하는 포병이 아니라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마력의 운용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의 좌표를 빠르게 읽어내서 그 일대에 정확하게 마법 공격을 가하는 것이 원리였는데 사실 많이 쓰이지는 못 했다.
일단 상대방의 마법사들보다 그 대 마법 전술을 쓰는 아군의 마법사 실력이 더 뛰어나야 하는데 어차피 일제 폭격 후에 뒤로 물러서는 마법사들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전술로는 한 명의 마법사가 한 명의 적 마법사를 탐지하는 것이 전부였기에 만에 하나 적의 공격을 탐지하지 못 할 경우 시간 낭비와 인적 낭비는 물론이요 자칫 아군의 마법사까지 휘말릴 수가 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차라리 서로 마법 폭격을 한 번씩 주고받은 후 승부를 보는 경향이 아직도 많이들 남아있었다.
피해는 그리 크지 않고 그저 진형을 망가트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으니 그냥 서로의 진형을 누가 먼저 휘젓느냐, 그것으로 승부를 가리려고 했던 것이다.
클라우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치 어디 독립 전쟁마냥 일렬로 쭉 서서는 한 번 쏴 갈기고 다음 적의 공격에 우르르 쓰러지는 이들이 생각날 정도였다.
“대, 대단합니다. 세실리 영애. 그, 그런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마왕성에서 있던 아인조차 전혀 예상치 못 했다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실리는 클라우스의 말이 아니라면 제 실력을 드러내는 걸 최대한 비밀로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아군도 적군도 세실리 레블랑을 여태까지 그저 이상한 유혹에 넘어가서 마왕 곁에 붙어있는 철없는 귀족 아가씨 정도로만 보고 있었다.
‘실상은 이런 고난이도의 마법을 기어코 성공해내는 마법 천재지만.’
세실리는 율리아마저 마법으로는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직접 인정한 마족이다.
거기에 특성 개발로 인해 그 능력이 보다 더 빨리, 더 강렬하게 개화되었다.
이런 식이니 적의 입장에서는 미처 눈치를 채지도 못 하고 그대로 제 마법사들의 위치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놈의 변태 성향만 조금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클라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군 차례라는 뜻으로 재차 손을 들어보였다.
곧 마왕군 진영 측에서 여러 마법들이 날아가서는 리리오의 진형 측면들 두들기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일격은 아니었으나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해지고 병사들의 사기가 흔들리게 만드는 데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이대로 진격한다. 진형 잘 갖추고, 절대 먼저 흥분해서 뛰쳐나가거나 진을 이탈하는 병사가 없도록 철저히 챙겨.”
“알겠습니다.”
아인이 물러나고 클라우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세실리를 바라보았다.
별 것 아닌 일로 보이지만 방금 전 그 마법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세실리와 나이가 비슷한 이들은 저런 마력 위치 추적 마법은 고사하고 그냥 일반 마법을 사용하는 것조차 힘든 마당에 그걸 성공했다.
“세실리.”
“네, 네. 클라우스님.”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어느 정도 마력을 보충한 후 후방에서 대기하세요.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절대 전선에 나서는 걸 금합니다. 당신이 해줄 일이 하나 더 있어요.”
그 말 그대로, 세실리가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단 군대와 군대가 서로 맞붙기 시작하면 마법사들은 자연스레 할 일이 없어짐에도.
클라우스는 그녀가 할 일이 남았다고 언급했다.
세실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좋다는 듯 미소를 지은 클라우스는 바로 앞을 바라보았다.
지금쯤이면 카엘라의 안내를 받아 중군도 대부분이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아우펜은 다른 함정을 발동시키려고 할 테고.
이곳에서 모든 걸림돌들을 한 번에 치우려고 할 게 분명하다.
“앞으로 진격한다. 대열을 맞춰서 움직이도록.”
“알겠습니다, 클라우스님.”
클라우스는 그 설레발을 얼른 망가트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 빌어먹을 마족 놈의 얼굴이 어떻게 구겨지는지, 어떤 괴성을 지르는지.
벌써부터 눈앞에 선해서 즐거워 미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