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18장 - 새로운 바람
“그대는 우군을 맡고, 그대는 좌군을 맡는다. 마지막으로 중군은 내가 직접 지휘할 것이다.”
“각 군 선봉은 누구에게 맡기시겠습니까?”
“음, 일단 좌군 선봉은….”
아우펜의 고민에 반 마왕파의 귀족들이 저마다 시선을 회피한다.
좌군은 대게 적의 우군을 맞이하여 공세를 견디는 쪽이다.
그러는 동안 우군이 적의 좌군을 밀어붙여 진형을 무너트리고 중군이 진격하여 쐐기를 박을 때까지 일종의 시간을 끄는 부대라고 볼 수 있었다.
해서 좌군에 소속된다는 것, 특히 그 선봉에 서야 한다는 것은 자기 세력의 피해가 가장 막심할 확률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아우펜의 밑으로 들어와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그런 식으로 제 세력을 완전히 잃는 것은 귀족들 입장에서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현 마왕 율리아 아그네스를 몰아내고 아우펜이 마왕이 된다고 해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을 세웠다고 해도 결국 논공행상은 세운 공보다는 원래 가지고 있는 세력이 얼마나 크느냐에 따라서 1등과 2등이 나뉘기 마련이다.
이런 식이니 자신의 세력을 온전히 보존하여 논공행상 때 더 큰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은 좌군의 선봉에 서는 것을 거부하고 싶어 했다.
아우펜이 시키면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한다지만 자신만 아니면 되니까, 다른 누군가가 걸리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눈빛들이 사방에서 번쩍였다.
‘다들 좌군 선봉은 싫다 이건가.’
아우펜 역시 바보가 아니기에 그 부분을 잘 알고 있다.
해서 가장 세력도 미약하고 딱히 쓸모도 없는 귀족을 넣고 싶지만, 그래도 적의 우군을 맞이하여 버티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즉 어중이떠중이를 넣을 수도 없으니 결국 어느 정도 힘이 있는 귀족이 이용당하고 또한 희생을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누구를 보내야 할까. 누구를 보내야 후일 마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손짓 한 번만 해도 무너트릴 수 있는 약해빠진 가문이 되어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아우펜의 눈에 한 여성 마족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 자신을 따르던 중년 남성처럼 상당히 매서운 눈매를 지닌 여인.
호리호리한 몸매와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외모와는 달리 허리춤에는 검이 매달려 있었다.
그 마족 여인의 정체는 팔라티나트의 새로운 가주, 에슐리 팔라티나트.
“…?”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것인지 에슐리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정확하게 허공에서 아우펜과 시선이 마주하는 순간 에슐리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말았다.
왜 저 남자가 자신에게 시선을 두고 있는지, 그 이유는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에슐리 팔라티나트.”
“…부르셨습니까. 주군.”
“그대가 휘하 병사들을 이끌고 좌군 선봉을 맡아라.”
“….”
역시, 또 이렇게 이용해 먹는 거냐. 개자식.
속으로 욕설을 퍼붓는 에슐리였으나 어쩔 도리가 없다.
팔라티나트의 힘이 약한 것은 아니나, 저 능구렁이 같은 남자의 곁에 더 강한 세력을 지닌 귀족들이 붙으면서 그 위치가 매우 모호해졌다.
거기에 아우펜의 노골적인 견제가 들어오니 이전까지만 해도 간이고 쓸개고 내어줄 것 같았던 주변 귀족들까지 전부 등을 돌리고 말았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전대 가주되는 남자는 여전히 아우펜을 제 주군으로 모시고 있지만.
졸지에 명망 있는 무인 가문에서 아무 것도 아닌 가문으로 전락하게 되는 꼴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던 에슐리는 달랐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불만을 아우펜이 모를 리가 없다.
초창기에는 제 아버지를 실컷 이용하더니 이제 와서 버린 것을 어찌 모를까.
이쯤 되면 사과의 의미로 뭐라도 조금 챙겨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이전에 자신을 찾아온 한 인간 남자의 말마따나 아주 완벽하게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어찌 대답이 없는 것이오. 에슐리 팔라티나트!”
귀족들 사이에 서있던 베드르 영주가 혀를 차더니 입을 연다.
그에 에슐리는 입술을 깨물며 저 혀만 나불거리는 귀족 놈들 당장이라도 쳐죽이고 싶다는 살기를 억누르나 무던히도 애를 써야만 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혀를 놀려 아첨하는 것이 전부인 주제에.
아무 것도 아니었던 놈이 그 천박한 짓으로 그 자리에 오른 주제에.
팔라티나트의 가주인 자신에게 저리 무례한 짓을 할 줄이야.
“…주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자신의 실력기, 그리고 병사들의 수준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수적 열세는 이겨내기 쉽지 않으며 그런 수준의 강자는 또 얼마든지 있다.
아마 그런 부분 때문에 아우펜도 자꾸 자신을 자극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배신하고 싶다면 해라, 하지만 해봤자 너만 손해일 것이다.
너와 네 사람들을 제압하여 목을 칠 수 있는 이들이 내 곁에도 얼마든지 있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챙겨줄 터이니 이번 한 번만 더 고생해라.
뭐 이 따위의 말들이 에슐리의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다.
“팔라티나트의 희생에 감사를 표하겠다. 매번 궂은일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군.”
“아닙니다, 전하. 팔라티나트의 가주라면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당사자는 열불이 나고 복장이 터져 죽을 것 같은데.
도대체 저 쓰레기들이 왜 나서서 자신이, 자신의 가문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매번 궂은일만 시켜서 미안하다는 놈이 끝까지 구렁텅이로 쳐민단 말인가.
꾸욱-.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간 에슐리는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자신에게 누가 찾아왔는지도 모른 채 저리 막 대하는 역겨운 것들.
그리 생각하면서 에슐리는 찾아온 인간 남자, 클라우스의 말을 떠올렸다.
- 당장 행동할 필요는 없어. 하던 대로 조용히 지내다가 출병 요청을 받으면 수락해서는 선두에 서면 된다. 그 후 그대로 다 끌고 투항하면 되겠지. -
마치 팔라티나트가 선봉에 설 것을 다 예상했다는 듯 한 내용이었다.
하긴 그 정도는 되어야 동부 전체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남부의 악마답지.
에슐리는 그리 생각하면서 자신의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저 빌어먹을 놈에게서 마음은 떠난 지 오래다.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리고 무인으로서 주군을 배신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 하지만.
그 아버지가 주군을 잘못 택했다면, 그 주군이 자신들을 먼저 배신했다면.
팔라티나트의 현 가주인 자신은 합리적인 결과를 내고 행동해야만 했다.
“…가주님.”
자신의 막사에 들어와 호흡을 가다듬으며 분노를 조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깥에 서있던 자신 휘하의 병사 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예. 호위병도 없이 혼자 은밀히 오셨기에 최대한 조용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병사의 말에 에슐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안으로 조용히 들이라고 답했다.
그 직후 막사의 입구가 잠깐 펄럭이더니 몇몇 마족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들의 면면을 살핀 에슐리는 곧 그들이 모두가 중간 이상은 가는, 나름 세력을 지닌 귀족 가주들임을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에슐리가 여기는 어쩐 일이냐고 묻는 찰나.
그 중에서 리더 격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팔라티나트 가주는 어쩔 생각입니까?”
“예?”
“가주님도 분명 서신을 받았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저는….”
“숨기는 것 하나 없이 말하겠습니다. 허니 당신도 숨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애당초 숨기는 것이 없는데 뭘 숨긴단 말인가.
답답해진 에슐리가 한 마디를 막 쏘아붙이려는 찰나, 그의 입에서 예상치 못 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남부의 악마, 클라우스 사령관.”
“…?”
“그 자가 서신을 보냈습니다. 쥐새끼들이 가득한 배에 남아서 물을 퍼내지 말고, 순풍을 가득 받고 곧 출항할 배의 영광스러운 선원이 되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에슐리는 알 수 있었다.
클라우스가 준비한 균열의 씨앗은, 자신만이 아니었던 것을.
이미 진작 준비를 끝내고 한 어리석은 마족 놈이 적당히 이용하고 버리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말이다.
“어서 행군 준비를 서둘러라! 거짓된 왕을 몰아내고 새 역사를 쓸 것이다!!”
이쪽의 사정을 알 리 없는 반 마왕파의 귀족들은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다.
당장 이대로 진격하여 충성파 놈들이 협곡을 점령하기 전에 먼저 들어가야만 한다고.
그곳을 빼앗기면 시작부터 매우 피곤하고 짜증나는 전투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반 마왕군의 진군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아무 능력도 없이 그저 전대 마왕의 직계라고 하여 왕좌에 올라 동부를 망친 마왕을 벌하자는 기치를 내걸면서 그들이 진격하는 동안 반대편에 있는 마왕성에서는….
“하아, 하아….”
한창 열락의 기운이 한가득 퍼지고 있는 중이었다.
* * * * * * * * * *
큰일들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좀 자제하자고 그렇게 말했건만.
결국 율리아의 협박 아닌 협박에 클라우스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에서야 교수와 생도라고 해서 어떻게 할 수라도 있었는데.
여기는 아카데미가 아니라 마왕성이며 율리아는 생도가 아니라 마왕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마왕을 따르는 일개 신하에 불과하고 말이다.
“벗어요, 클라우스.”
“….”
“표정이 왜 그래요?”
“아니, 뭔가 내가 해야 할 말을 빼앗긴 것 같아서요. 이상하네.”
“분하면 당신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요. 아카데미와는 다르게 하도 몸을 빼니까 결국 왕으로서 신하인 당신에게 이렇게 명령까지 내리게 되었잖아요.”
배신자를 골라내고, 재정 문제를 해결했고, 마왕성 내부를 정돈했으며 그의 조언대로 믿을 수 있는 귀족들을에게 서신을 보내 언제까지 어느 장소로 모이라 명령을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병사들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 이곳을 떠나 역적의 무리들과 싸우는 일.
해서 율리아는 잠깐이나마 좀 안아주면 안 되겠냐고 칭얼거렸다.
클라우스가 마왕인 당신이 신하에게 그리 칭얼대면 어쩌냐고 면박을 주자 그녀는 ‘그러면 명령하겠어요, 클라우스. 당장 나랑 섹스해요.’ 라고 왕명을 내리고 말았다.
덕분에 한바탕 격렬한 정사가 흘렀고, 그 후에도 율리아는 계속 더 해주기를 요구하면서 이렇게 제 가랑이 사이에 남자의 물건을 삽입한 채로 엉덩이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내가 천박해보이나요?”
“…어찌 마왕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방금 대답이 조금 늦었는데.”
“왕 치고는 너무 성욕이 왕성하시긴 하네요. 조금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믿기 힘들겠지만 이게 절제한 거예요. 그동안 당신을 잡아먹고 싶어 미칠 뻔 했는데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서 애써 모른 척 한 건데 눈치 못 챘나봐요?”
눈치를 못 챘을 리가. 며칠 전부터 두 눈에 아주 그냥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데.
저 남자를 언제 잡아먹을까, 아카데미에서는 잘만 쑤셔주더니 왜 여기 와서는 갑작스레 마왕이라고 아무 것도 안 해주는 것일까, 뭐 이런 생각들이 그대로 보였다.
찰박-.
“흐응!”
허리를 가볍게 튕겨주자 율리아가 교성을 흘리면서 클라우스를 껴안는다.
남자의 자지를 한가득 물은 여인의 보지에서 애액이 또 한 번 줄줄 흘러나왔다.
“하아, 하아…. 대답해 봐요, 클라우스. 이렇게 요구하는 내가 천박한가요?”
“아름답죠. 그리고 후계자를 잉태하는 건 선택 사항이 아닌 의무에요. 왕에게 후계자 생산은 천박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모든 이들을 위한 신성한 것이죠.”
“말 참… 너무 맞는 말만 해서 뭐라고 할 수가 없네요.”
그러면서 이번에는 율리아가 제 허리와 엉덩이를 움직였다.
곧 보지에서 뽑혀져 나온 자지가 막 떨어져 나가려는 찰나.
율리아는 그대로 몸을 내리면서 다시금 제 깊숙한 곳까지 클라우스의 자리를 찔러넣었다.
“하으으!! 이, 이거 너무 좋아요. 미쳐버릴 것 같아….”
속궁합이 잘 맞으면 이런 식이다.
할 때마다 쾌감은 배가 되고 이전을 넘어서는 끝내주는 경험들이 찾아온다.
벗어나려고 해도 자꾸 생각나고, 관두려고 하면 몸이 원하게 된다.
“이러다가 정말로 아이라도 가지면 곤란할 텐데요, 율리아.”
“뭐 어때요. 해봤자 인간과 마족의 혼혈이 전부인데. 오해를 하는데 혼혈이라고 해서 약하지도 않고 일찍 죽지도 않아요. 그냥 피가 섞였네, 뭐네 하는 멍청한 소리들이 전부이죠.”
“그래도….”
“난 오히려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은데요. 클라우스. 생각해봐요. 마왕인 나와 전쟁 영웅인 당신에서 태어날 아이. 얼마나 대단하고 강한 녀석이 나올지 보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율리아는 더욱 더 강하게 클라우스를 껴안았다.
제 품에 이 남자의 씨를 받아들이고, 아이를 배어서 제 앞의 남자를 완벽하고 확실하게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