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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196화 (196/341)

〈 196화 〉 18장 - 새로운 바람

회의장에서 물러난 마족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지 않아도 도통 따를 수가 없는 전략을 내세우는 클라우스인데.

거기에 자신들의 왕인 율리아가 무조건 신임하겠다는 뜻으로 보검까지 하사하면서 명령권을 내어주었으니 괜스레 불안감이 치솟은 것이었다.

“이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클라우스가 누구입니까. 남부의 악마이지 않습니까.”

“저도 걱정입니다. 우리 마족들에게 잃은 병사가 꽤 될 터인데, 마족들에게 짓밟힌 국토를 반드시 되찾겠다고 칼에 대고 맹세하던 자입니다.”

클라우스가 지닌 명성이야, 그리고 능력이야 그들도 인정한다.

당장 멀리 볼 것도 없이 이곳이 병사들조차 그의 이름을 모르지 않는다.

그가 전투에 들어가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눈에 보듯 훤하다.

다만 문제는, 그 남자가 정말 자신들의 아군이 맞느냐는 것이다.

“전 아직도 어안이 벙벙합니다. 남부의 악마가 갑자기 마왕 전하께 충성을 다하겠다니.”

“대륙 전쟁에서 우리 마족들이 왕의 자리를 제외한 원하는 모든 것을 준다고 했음에도 씨알조차 먹히지 않은 인물입니다. 헌데 어찌하여….”

“그동안 인간 놈들이 저 남자를 박대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참다 참다 못 한 그 울분이 터진 게 아닐까요?”

한 마족이 낸 그 부분은 꽤나 가능성이 있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곧 그 의견은 다른 마족이 낸 말에 묻히고 말았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대륙 전쟁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모함을 받고 그동안 세운 공이 무색하게 지위를 박탈당하고 남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우리 군에 의해 남부군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그 윗대가리들이 다시금 그를 남부군 사령관에 앉히겠다고 했을 때 반응을 생각해보세요. 그가 거부했습니까? 침묵을 했습니까. 바로 수락했단 말입니다!”

이미 다 무너진 남부군을 다시 맡으라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싸우다가 죽거나, 아니면 싸우다가 패해서 죄가 더해져 나중에 그 죗값을 치르거나.

무엇이 되었든 클라우스에게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최악의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클라우스는 기꺼이 지휘권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이어진 메라에서의 전투에서, 그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부분이 마족들의 위화감을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클라우스라는 인간이 정도로 왕국에 충성을 다하던 인물인데.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왕국을 포기하지 못 하던 남자인데.

이제 와서 마왕에게 충성을 다 하고 군권을 다 맡는다.

하필이면 단 한 번의 패배가 궤멸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이 중요한 순간에 말이다.

“여러분.”

모인 이들의 생각이 점점 어둡게 변하는 찰나.

여태 침묵하던 페르디난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 모두가 원래부터 율리아와 마왕가에 충성하든 마족들.

하지만 그는 이번에 중립파의 자리를 버리고 새로 들어온 인물이다.

그런 이유로 눈치가 조금 보이는 게 사실이라 할 말이 있어도 침묵했고 지켜보았다.

다만 이번만큼은 그라고 해도 묵과하고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지금 하시는 말씀들을 들어보니 결국 클라우스가 우리들에게 앙심을 품고 뭔가 술수를 꾸미고 있다, 이렇게 들리는데 이게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페르디난트 엘세님.”

“그렇군요. 헌데 그리 따지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우리 마족들을 무너트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내분이 최대한 오랫동안, 아주 길고 질기게 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 하면 서부는 그 사이에 더 빨리 세력을 회복할 것이고 국경 인근을 공격하여 어느 방식이 되었든 우리 동부를 압박할 수 있겠지요.”

“으음….”

“해서, 정말 그런 술수를 품고 있다면 여러분들 모두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정석적인 전략을 가지고서 우리와 역적들의 싸움을 길게 늘이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방금 전 클라우스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 같은데요.”

페르디난트의 말에 모여 있던 마족들은 침음을 흘리고는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클라우스가 정말 그런 의도를 품고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괜한 의심만 사는 것이니 멍청하다는 것만 증명할 뿐이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저 안에 있는 인간이 어떤 자였는지. 그걸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왕국에 대한 충성을 어찌 저버린 것인지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그가 정말로 마왕 전하께 충성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충성을 미끼로 더러운 수를 쓸 남자는 아닙니다.”

여태까지 클라우스가 최대한 더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고 명예롭고 또 대단한 전쟁 영웅 놀음을 한 것이 이렇게 힘을 발휘했다.

항상 전쟁 영웅이었음을 다른 이들이 강조하게 만들었던 부분이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전사장 헤에타리의 배신 사실을 알아낸 것도 클라우스, 그 남자였지요.”

“마왕 전하께서 보통 분도 아니고 음흉한 자를 끌어들이실 분도 아니고….”

“거기에 레블랑 가문의 세실리 영애까지 있지 않습니까.”

잠깐이나마 클라우스를 의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에 대한 질투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이 목숨을 다 바쳐 따르는 마왕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것.

마왕에게 도움이 된다면, 정말 충성을 다 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이들이야말로 클라우스를 강력하게 지지할 이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인간을 믿자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마왕 전하를 믿읍시다. 신하된 자들이 자신의 군주를 믿지 못 하는 것보다 더 한 불충은 없을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마왕가에 충성을 바쳤던 이나 할 법한 말을 다른 이도 아니고 페르디난트가 하고 있다.

그 부분에 부끄러움을 느낀 이들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클라우스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를 믿은 자신들의 마왕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들의 왕을 더욱 잘 보필하지 못 한 본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짐임을 깨닫는다.

뚜벅뚜벅-.

막 마족들이 헤어지려고 하는 찰나, 저 앞에서 무심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전사장의 갑옷을 입은 채 무표정한 얼굴을 한 호랑이 수인이 조금은 피곤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소식은 들어 알고 있다.

율리아가 헤에타리를 직접 처단하면서 전사장의 빈자리는 이제부터 카엘라 티거, 클라우스와 함께 자신을 따르겠다고 한 호랑이 수인에게 맡기겠다고 천명했으니까.

솔직히 클라우스를 영입한 부분까지는 신하들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대륙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그의 이름값이 떨어지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전쟁 도중에는 정신이 없어 미처 알지 못 했던 각종 미담까지 발굴될 정도.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서부는 물론이고 이곳 동부에까지 있으니 잘만 하면 그들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사장에 카엘라라는 수인을 임명한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그녀가 클라우스의 부관을 지내면서 능력은 확실히 입증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바로 그 클라우스의 부관을 지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문제였다.

전사장이란 마왕 한 사람에게만 충성을 다 하는 직책이다.

유사시에는 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마왕을 지켜야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 클라우스라는 인간에게 충성을 다하던 여인을 앉히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 부분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왕 전하께서 저 호랑이 수인 역시 자신에게 충성을 다 하는 이라고 못박으셨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이들은 율리아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다.

단순히 마왕에게 이득만 되는 자들을 보는 게 아니라 해가 될 수도 있는 자들 역시 눈여겨보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만 한다.

전사장의 배신마저 알아차리지 못 했던 부분도 있기에 더더욱 민감했고 말이다.

“카엘라 티거 전사장.”

이때 페르디난트가 카엘라를 불러세웠다.

그러자 서늘한 예기를 내뿜는 호랑이 수인이 발걸음을 멈추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페르디난트 엘세님.”

“조금 전 회의장에서 그대가 보이지 않아 의아했습니다. 분명 마왕 전하에 의해 전사장으로 임명되셨다고 했는데 말이죠.”

“저는 마왕 전하의 명령을 받고 마왕성의 근위병들을 조련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허면 병사들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그래도 근위병들이니 조금은 후한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헤에타리가 비록 배신을 하려고 한 역적이긴 하나 그 무력만큼은 나쁘지 않았으니 그 휘하에 있던 병사들 모두가 인정 정도는 받지 않았을까 했다.

하지만 카엘라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그 기대들을 모두 때려부수는 것이었다.

“구제불능 쓰레기입니다.”

“에?”

“아, 아아?”

“그렇지 않아도 역겨운 배신자 밑에서 지내던 병사들이라 그냥 전부 쳐내고 다시금 새로 뽑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마왕 전하께서 위의 잘못을 아래에까지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시어 부득이 거두어 병사 구실을 하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서늘한 칼날과도 같은 대답이었다.

아니, 아니다. 서늘한 칼날도 아니다, 이것은 맹수의 기세였고 본능이었다.

약자에게 보내는 경멸, 그러나 그걸 결국 이겨내는 리더에 대한 충성심.

다른 이들은 몰라도 수인들과 전투를 치러본 경험이 있는 페르디난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수인 역시 클라우스처럼 걱정할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마왕 전하께서는 정말 상대를 보는 눈이 정확하신 분인 건가.’

왕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통솔력? 아니면 지혜로움? 그도 아니면 정치력?

물론 그것들 모두가 중요하다, 지나칠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페르디난트는 이것을 가장 중요하게 꼽고 싶었다.

상대를 파악하는 눈, 즉 통찰력.

이 자는 믿어야 하는 자고 이 자는 버려야 하는 자이며 어떤 자는 죽여 없애야만 하는 자다.

그걸 능히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왕이라는 자리에 걸맞은 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암군은 알맹이는 아무 것도 없이 겉만 화려한 자를 곁에 둔다고 했고.

명군은 비록 겉은 투박할지 몰라도 속은 꽉 차있는 자를 곁에 둔다고 했다.

그런 부분에서 볼 때 클라우스와 카엘라를 데리고 있는 율리아는 충분히 합격이라고 볼 수 있었다.

더해서 그런 왕이 자신을 이렇게 성으로 불러들여서는 여러 일을 시키고 있다는 부분에서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듣자하니 곧 격전이 벌어진다고 들었습니다.”

페르디난트의 생각을 깨는 카엘라의 말이 들려온다.

그녀의 말에 마족들이 고개를 끄덕이니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마왕 전하께 역심을 품은 자들이 얼마나 잘 싸울지 참으로 궁금하군요. 부디 그 헤에타리인지 뭔지 하는 쓰레기보다 낫기를 바라겠습니다.”

얼핏 들으면 아무 것도 없는 자의 오만 같기도 하지만.

카엘라가 뿜어대는 기세를 읽지 못 할 정도로 자리에 모인 이들이 부족한 이들은 아니었다.

이들은 그녀가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고 있음을, 자신들의 주군이자 이 동부의 마왕에게 역심을 품은 적들을 도륙하고 싶다는 마음이 사실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흠흠. 카엘라 전사장. 혹 시간이 남으신다면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만 가능하신지요.”

어차피 이제는 모두가 한 배를 탔다.

그리고 이 배가 가라앉으면 모두 그냥 반역자들의 바다에 빠져 죽는 수밖에 없다.

해서 마족들은 모든 의심을 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곧 벌어질 전투에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으로 증명이 될 것이다.

“…바쁘기는 하지만 아주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클라우스에게서 마족들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물의를 빚지 말고 잘 지내라는 명령을 받은 카엘라는 그 부분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중이었다.

원래의 그녀라면 많이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이미 귀족들과 지낸 몇 년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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