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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195화 (195/341)

〈 195화 〉 18장 - 새로운 바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제는 말해줘도 되는 거 아닌가요?”

회의장에서 모든 마족들이 나가고 단 둘이 남게 되자 율리아는 바로 입을 열었다.

신하들 앞에서는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 아주 굳건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도저히 클라우스의 의견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적들이 이곳까지 오는 데에는 못 해도 일주일이 넘게 걸리겠죠.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그 협곡은 적들보다 우리에게 더 가깝고요.”

“그렇죠.”

“당신의 의견대로 일부러 합류하겠다고 계속 서신을 보내는 중립파 귀족들도 막고 있어요. 엘세 가문의 페르디난트가 합류하였고 흩어져 있던 이들도 전부 끌어 모았다고 하지만 우리 병력은 7천을 아주 간신히 넘기고 있는 상황이에요. 심지어 이건 방어 병력까지 전부 포함해서 계산한 수라고요.”

“정확히 알고 있군요.”

“그런데도 정말 그 협곡을 내어준 다음, 그곳으로 들어갈 계획인 건가요?”

율리아의 물음에 클라우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서 일말의 흔들림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왕좌에 앉은 율리아는 하아, 하고 한숨을 흘리고는 이마를 감싸 쥐어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클라우스의 계획대로라면 아군은 수적 열세에 지형적 불리함을 안고서 적들의 안방으로 들어가 전투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인데.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대륙 전쟁, 그 중에서도 남부의 전황 부분을 떠올리면 도저히 클라우스답지 않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신이 대륙 전쟁에서 남부 사령관으로 있을 당시에 어떤 전투를 어떤 방식으로 벌였는지 아카데미에서 나름 열심히 배웠어요.”

“영광이군요. 동부의 마왕께서 나에 대해서 그렇게 열심히 배웠다니.”

“장난치지 말고요. 당신이 7년 동안 치른 수십 번의 전투, 그 중에서 아군이 불리한 지형이나 혹은 숫자, 그게 아니더라도 전략적으로 열세에 있는 부분을 두고서 싸운 적은 없었어요. 항상 아군이 유리하도록, 그게 불가능하다면 적들이 자신들의 이점을 버리고 싸우도록 만들었죠. 클라우스, 당신이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인 불리함을 안고 싸운 적은 딱 한 번 이었어요. 멍청한 귀족들로 인해 피땀 흘려 이룩한 남부군이 전부 무너지고 한줌 병력으로 우리 마족들의 대군세와 마주했던 바로 그 전투, 메라 대전 때 말이에요.”

확실히 그 때 카엘라를 제외한 다른 부하들조차 용기와 믿음을 잃기는 했다.

카엘라도 여기서 끝까지 싸우다가 죽겠다는 말만 했을 뿐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보인 적도 없었고 말이다.

“그 때 혹시 내가 패배했었나요? 이긴 것으로 기억하는데.”

“네. 당신이 이겼죠. 그것도 마족 역사상 가장 끔찍한 패전이라는 결과를 만들어주었죠.”

“그러면 된 거 아닙니까? 왜 그리 걱정하는지 모르겠네요.”

“당신이 자꾸 불리한 곳으로 나아가려고 하니까요. 누가 봐도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걸 택하지 않고 자꾸 그곳을 고집하니까요.”

율리아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슬며시 왕좌에서 일어나서는 클라우스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곧 아카데미에서처럼 그의 위에 살짝 몸을 앉히고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제 남자의 체취를 한껏 들이켰다.

“이러다가 누가 보면 당신은 둘째 치고 내가 무척 난감한데요.”

“아무도 없잖아요. 그리고 혹시 있을까봐 내가 직접 확인했잖아요.”

“그래도 마왕성이고 당신의 왕궁이에요, 율리아. 항상 조심해야죠.”

“알고 있어요. 알고 있는데, 당신이 자꾸 날 이렇게 만들잖아요.”

언뜻 보면 상당히 달아오른 여인 같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독점욕을 활활 불태우고 있는 무서운 여왕님 같기도 하다.

그 둘 사이에서 꽤나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율리아를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이 여자가 여기서 더 곤란하게 만들기 전에 얼른 이유를 말해달라고 외치고 있음을 확인했다.

어차피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율리아에게는 말을 해줄 생각이었기에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연다.

“확실히 그곳 협곡은 들어가는 순간 아군의 무덤이 될 거예요. 진입을 하게 되면 일단 측면이 무방비로 노출이 되고 사방에서 적과 싸워야 하며 고지마저도 전부 점령당한 후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석적인 공략을 한다면 백전백패일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변칙적인 공격 수법을 사용하겠다는 건가요?”

“아뇨. 말했잖아요? 협곡 안으로 들어가서 사방에서 전투를 치를 생각이라고.”

클라우스의 대답에 율리아의 표정이 요상하게 일그러진다.

설명을 해달라고 이리 요구하는데도 자꾸 돌고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율리아가 더욱 깊숙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는 그래도 남자의 다리 위에 앉아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예 대놓고 정사를 하자며 덤벼드는 여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순순히 대답한다면 대낮의 섹스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상당히 엄하게 다가오는 마왕의 앞에서 결국 클라우스는 백기를 들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뜸을 들이면 분명 이 여자는 얼씨구나, 하고 바로 달려들 것이 뻔했다.

‘뭐, 솔직히 달려든다면 나야 좋은 일이지만…. 할 일 많잖아. 지금은 일에 집중해야지.’

율리아 역시 이런 클라우스의 속내를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

이렇게 달려들면 클라우스가 곤란해서라도 제 속마음을 털어놓을 것이라고 예측을 한 것이다.

“적들은 아마 알아서 무너질 겁니다.”

“당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떨다가 무너진다는 건가요?”

“설마요. 대륙 전쟁에서 내가 악마라고까지 불렸지만 이곳은 왕국 남부도 아니고, 지금이 대륙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도 아니에요. 거기에 내가 지휘하는 병사들이 나와 함께 몇 년을 함께한 이들도 아니고요. 그런 부분들로 병사들을 설득하면 무너지는 일은 없어요.”

“하지만 방금 전 당신이 적들이 알아서 무너진다고….”

거기까지 말한 율리아는 아, 하고 탄식을 흘리더니 뭔가를 눈치 챘다는 반응을 보인다.

생각해보니 병사들은 그 사이에 대부분 교체가 되었다거나 아직 클라우스와 수도 없이 부딪쳐본 자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병사들을 지휘하는 귀족들, 특히 대륙 전쟁에서 활약했던 무장들은 거의 대부분이 클라우스를 알고 있었다.

“배신을 종용할 생각이군요.”

“눈치 챘나요?”

“숙부, 아니 그 역겨운 남자가 초기에는 자신과 돈독한 귀족들을 주축으로 세력을 결성했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세력을 키우다보니 누구는 소외되고 또 누구는 너무 과하게 신임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도 대충은 알고 있어요. 그로 인해 불만이 터져 나오기는 했지만 워낙 그 남자의 세력이 막강해서 대놓고 입 밖으로 내놓지 못 한다는 것도요.”

시작은 믿을 수 있는 자들과 함께 했겠지만 이후 점점 힘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따르는 자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세력 개편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거기에서 아우펜은 제 성격을 못 버리고 자신을 더 빛나게 해줄 수 있는 자들을 곁에 두고 여태껏 묵묵히 뒤를 받쳐주던 자들을 등한시 여기고 말았다.

다만 그들의 성정이 가벼운 이들도 아니고 초기부터 함께 한 자들이기에 다시 마왕에게로 돌아설 수도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걱정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율리아의 숙부 측에서 배신을 하는 자들은 그가 그렇게나 신경을 썼던 세력들이었다.

다들 한가락 하는 자들이라 최대한 맞춰주고 어떻게든 끌어들이려 애썼던 자들인데.

클라우스가 미리 말을 맞춰둔 핵심 인물 몇이 돌아서니 배신하라고 종용한 적도 없는데 알아서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서신을 보내기에는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

“이미 아카데미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설득할 가치가 있는 쪽에는 전부 서신을 보냈습니다. 적당한 때가 되면 잘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나한테는 말도 안 하고요?”

“배신을 종용하는 이런 더러운 일에는 왕이 나서면 안 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뒤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이가 맡아야 하는 법이에요.”

욕을 얻어먹는 건 자신이 할 터이니 너는 최대한 빛나는 것에만 집중해라.

그 뜻을 바로 이해한 율리아는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면 누구누구에게 돌아서라는 뜻을 전달한 거죠?”

“나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대륙 전쟁 당시 지휘관 출신들의 마족들에게는 전부 다요.”

“그리 했다가 그걸 숙부에게 보여주는 이가 생긴다면요?”

“보여주라고 해요. 그 남자 성격에 그걸 보는 순간 바로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의심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단기간 내에 세력이 너무 커져서 결속력이 느슨해졌는데 거기에 그런 의심까지 가득 더해진다면 이쪽이 환영할 일이죠.”

제 뜻대로 일이 풀리면 꽤나 능숙한 부분을 보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때라고 할 수 있는 위급한 순간이 오면 자꾸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남자.

그게 바로 율리아의 숙부, 아우펜이 가진 단점이나 한계였다.

여태까지는 그걸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계획에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진행한 것이지만 클라우스가 갑자기 일의 진도를 강제로 확 빼주는 바람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가 절대 얻지 않으려면 꼬리표, 왕에게 창칼을 들이민 반역자 소리를 듣게까지 했다.

이렇게 되면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뒤집기 위해서라도 그는 어떻게든 성가신 충성파 놈들을 일격에 격퇴하고 바로 마왕성까지 진격해서 왕좌에 앉으려고 할 것이다.

“어지간한 이들한테는 모두 서신을 돌렸다고 했죠, 클라우스.”

“네, 그렇죠.”

“그러면 누가 배신을 할 것 같나요?”

“그건 모르죠. 마음속을 전부 알 수 있다면 어디 가서 점을 보고 있지 않을까요?”

“당신이 예상하는 수준이 있을 거 아니에요. 설마 막연한 기대감으로 내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일을 벌였을 것 같지는 않은데.”

“율리아, 당신이 보기에는 과연 몇이나 배신을 할 것 같나요.”

역으로 클라우스가 질문을 해오자 율리아는 슬며시 그의 품에서 벗어난 후 생각에 잠겼다.

명색이 마왕인데 그 앞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스스로에 대해서 못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그의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몇이나 배신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세 싸움에서 우리에게 확 기울 수 있는 쪽의 인물이 돌아설 것 같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자신만만한 게 눈에 확 보이잖아요. 그렇다는 건 지형의 불리함, 수적 열세, 그 외 모든 불리한 능히 부분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니 그만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죠.”

율리아가 제대로 정확하게 짚어내니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슬쩍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손으로 지도를, 그 중에서도 자신이 짚은 협곡 부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협곡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산이 있죠. 저곳에서 가장 큰 전투가 발생할 겁니다.”

“적들의 지형이 우리보다 훨씬 좋아요. 저기서 싸우면….”

“그래도 싸워야합니다. 저기에서 밀려나지 않아야 모든 게 뜻대로 될 거예요.”

“그곳에서 배신자가 생기는 건가요?”

그에 클라우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가 그렇게 싸우는 동안 남쪽 산에서 진을 치고 있는 쪽이 움직여줄 겁니다.”

“만에 하나 그들이 배신을 하지 않는다면, 동쪽의 산에 집중하고 있던 우리 군은 그대로….”

“아뇨.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다 경험해봤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이미 다 손을 써두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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