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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가 비선실세-194화 (194/341)

〈 194화 〉 18장 - 새로운 바람

칼라굴의 뒤를 따라 회의장으로 향해보니 많은 이들이 안에 모여 있었다.

상황이 워낙 막중하니 평소에는 자신들의 의무에 열중하느라 얼굴을 잘 비치지 않는 마족들부터 이번에 새로 합류한 중립파의 페르디난트 엘세까지 자리한 상태.

회의장 안이 꽉 차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모두가 전부 들어와 있었던 듯 했다.

다만 마지막으로 클라우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모양.

“마왕 전하.”

율리아를 향해 예를 갖추며 인사를 하니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착석하라 말했다.

그에 클라우스는 일부러 그녀와 약간 거리가 있는 곳에 자리했다.

바로 옆에 앉아있으면 모여 있는 자들의 면면을 확실하게 확인하기 불편하니까.

“다들 모인 것 같군. 그러면 시작해볼까. 아인.”

‘아인’ 이라 불린 남성 마족은 율리아의 말에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준비해둔 동부의 지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마왕성보다 더 동부로 떨어진 한 지점을 가리킨 후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오늘 아침에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대역죄인 아우펜 아그리시오와 그 추종자들이 기어코 군을 일으켰고 며칠 안으로 준비를 마쳐 이곳까지 진격할 것이라고요.”

“드디어.”

“으음.”

마왕의 숙부임에도 이제는 그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는 것.

더해서 대역죄인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그대로 말해버리는 것.

여태까지 그래도 전대 마왕의 형제이자 현 마왕의 숙부임을 감안하여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었지만 이리 대놓고 군을 일으키니 더는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직계 왕족에게 무례를 범했다, 따위의 명분을 혹 그들에게 줄까 우려하던 것도 사라졌다.

역으로 왕에게 반기를 들었다, 라는 완벽한 무기를 쥐게 되었다.

충성파로서는 일단 대의명분에서 확실하게 이기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적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조심스레 나서는 이는 다름 아닌 페르디난트 엘세.

얼마 전까지 중립파의 실세 중 하나였던 귀족이었으나 몇 달 전 클라우스에게서 귀띔 아닌 귀띔을 받은 후 결정을 내리고 바로 배를 갈아탄 귀족이었다.

본인의 세력도 그리 작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현 율리아 측에 있어서 가장 귀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장 경험이 있는 무인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는 다른 중립파 귀족들과는 다르게 이렇게 회의장에까지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클라우스의 입김도 일부 작용했지만 말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으로 보면 좌군이 4천, 우군이 6천, 그리고 중앙에 최소한 5천 이상의 병력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소식을 들은 귀족들이 속속 병사들을 이끌고 합류하고 있다고 하니 못 해도 2만에 가까울 것이라고 예상 중입니다.”

2만에 가까운 숫자라면 율리아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과 아무리 못 해도 2배 이상, 심하게는 3배까지도 차이가 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당장 서부와 동부 모두가 5년 전 끝난 대륙 전쟁의 피해를 반도 채 복구하지 못 한 상황.

그 와중에 2만이나 되는 병사들을 끌어 모았다는 건 그만큼 율리아의 숙부가 가진 세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회의장에 모인 이들도 그 부분을 확실히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2만의 숫자를 듣는 순간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이 확실한 증거였다.

심지어 페르디난트조차 순간적으로 입술을 깨물며 좋지 않군, 이라고 중얼거릴 뻔 했으니 지금 회의장에 모인 이들이 얼마나 긴장했을지는 안 봐도 뻔한 것이었다.

“….”

율리아는 그 긴장 속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제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왕이 침묵하니 신하들은 과연 어찌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논의에 들어갔다.

어떤 이는 적당한 곳에 진을 치고 방어를 주장하기도 했고 또 누구는 적들이 이곳 마왕성까지 오기 전에 큰 피해를 한 번 안겨야 한다고 외쳤다.

모두가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틀린 말이기도 하다.

해서 어느 누구도 쉽사리 누구의 의견이 옳다, 또는 그르다 라고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저들 모두가 이번과 같이 대규모 전투에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율리아 휘하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이 행정이나 후방 업무 담당이다. 아예 싸울 수 있는 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해봤자 몇 천 대 몇 천, 이 정도의 전투가 끝이었지.’

물론 율리아에게 합류하고자 하는 중립파 귀족들 중에는 지금 회의장에 있는 페르디난트와 비슷하게 대륙 전쟁에서 경험을 쌓은 자도 분명 있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그런 자들이 자신들도 이번에 합류하겠다고 서신을 보내는 것을 거절하라고 계속 율리아에게 주장했다.

이유는 그들이 정말 순수하게 충성심만으로 오는 게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은근히 율리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자들이기에 병사들을 이끌고 올시 자칫 지휘권이 흔들릴 수도 있어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덕분에 현재 율리아 측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5천도 채 안 되는 상황.

누구는 얼른 충성을 다하겠다는 자들에게 원군 요청을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과연 누가, 순수한 충성심만을 품은 채, 상황이 불리할 경우 갑자기 배신을 하지 않는 확실함을 가지고서 올지 미지수였다.

“….”

논쟁이 계속 오고 가는 와중에도 클라우스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차피 이 논쟁의 끝에 있는 해답은 단 하나다.

지금과 같이 대규모 전투에서 어느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전공을 세운 자.

그런 이를 찾아보자면 이 자리에 딱 한 명만이 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여러 의견들을 내놓던 마족들이 소강상태에 빠지고 회의장이 조용해지자 비로소 율리아가 다들 의견을 내놓았냐는 식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 모인 이들의 의견은 모두 경청했다. 모두가 틀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소 모두가 맞는 것도 아니지. 다만 그대들에게 확실히 말해둘 것이 있다. 다른 전쟁에서는 혹 전투에서 패한다고 하면 일단 물러나서 군을 재정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 번이라도 패한다면 그대로 모든 것이 끝이다.”

율리아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았다.

다들 제 의견만 내놓느라 미처 그 부분을 간과한 모양인데 만일 패배한다면 전열을 재정비할 틈도 없이 밀려나서는 이곳 마왕성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단 한 번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즉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누군가가 율리아와 함께 군을 지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

“….”

마침내 클라우스가 원하던 대로, 자리에 모여 있던 모든 마족들이 클라우스를 바라본다.

누구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또 누구는 조금은 경계하는 기운으로.

또 다른 누구는 아무리 그래도 인간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에 반발심을 가진 채로.

그렇게 서로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면서 말이다.

“클라우스.”

“네, 마왕 전하.”

“그대의 의견을 듣고 싶다. 나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자들 모두가 그리 할 것이다.”

율리아가 그리 말하니 클라우스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지도 바로 앞에 선 그는 잠시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한 곳을 손으로 짚고는 말했다.

“이곳에서 반역의 깃발을 내건 자들과 싸우면 될 것입니다.”

클라우스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확인한 이들.

곧 그들 모두가 ‘어?’ 하고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탄식을 흘리고 말았다.

심지어 대륙 전쟁에서 많은 전투를 거쳤던 페르디난트마저 ‘그게 말이 되나?’ 라는 눈빛을 할 정도였다.

“모두 조용.”

마왕의 명령에 일순간 소란스러워지려 하던 회의장이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제 신하들 모두를 침묵시킨 율리아는 클라우스가 가리킨 곳을 보고서는 말했다.

“클라우스. 지금 내가 보는 눈이 맞다면 그곳 지형은 우리에게 대단히 불리하고 반대로 적들에게는 무척이나 유리한 곳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적들이 저곳까지 도달한 상태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필시 역적들은 우리 군을 오목한 지형으로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다. 그 뿐인가? 높은 고지대는 전부 적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야.”

그 말대로 클라우스가 말한 곳은 아군 측에는 최악의 지형이었다.

차라리 적들이 그곳에 도달하기 전에 승부를 보거나 아니면 그곳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클라우스가 말한 곳은 전투를 피해야 하는 곳이었다.

“혹 그대는 병력의 차이를 걱정하여 평야에서의 전투가 아니라 협곡 전투를 생각하고 있는 건가, 클라우스?”

“그렇습니다.”

“아무리 협곡에서의 전투라고 해도 유리한 지형을 적에게 다 내어주고 우리가 안으로 휩쓸려 들어가야만 하는 전장이다. 심지어 숫자도 적이 아군의 배를 넘는다.”

“알고 있습니다, 마왕 전하.”

“헌데도 그대는 그곳을 전장으로 삼겠다, 이 말인가?”

왕의 물음에 클라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더는 참지 못 하겠다는 듯 몇몇 마족들이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 보면 그렇지 않아도 숫자에서 열세인데 심지어 좁은 길로 이루어진 협곡길을 돌파하여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냐고.

전쟁의 역사 어느 부분을 살펴봐도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은 어느 한 곳 틀린 부분이 없었다.

클라우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또 남부의 악마라는 호칭이 왜 붙은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페르디난트조차 저도 모르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정 협곡에서 전투를 치를 생각이라면 차라리 우리가 먼저 가서 진을 치는 건….”

“의미 없는 소리다. 아군의 숫자가 이리 적은데 그 넓은 곳을 어떻게 방어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전장입니다! 이것은 사지란 말입니다.”

그나마 소규모 전투 경험이 좀 있는 마족들이 이것은 말도 안 된다 외쳤다.

하지만 율리아는 지도 앞에 가만히 서있는 클라우스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 상태로 몇 분이 흘렀을까, 여태까지 침묵하고 있던 페르디난트가 발언을 하고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 모인 이들의 말대로, 방금 전 나온 전략은 막말로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병력의 숫자도 차이가 나는데 협곡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내어준 다음 공격을 하자니. 만일 적들이 이곳의 회의 내용을 들었다면 어리석다며 코웃음을 쳤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전략으로 인해 그 전략을 논하는 이가 누구인지, 모두가 잠시 잊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페르디난트의 말에 소란스럽던 회의장이 또 한 번 일순간 침묵에 빠졌다.

너무나 허무맹랑한 전략이라,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 반발을 하느라 잠깐 잊고 있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글 제안한 이가 어떤 남자인지 말이다.

“클라우스.”

“네, 마왕 전하.”

“내가 보기에도 지금 그대가 제안한 전략은 전략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것으로 보인다. 내 말에 이견이 있다면 지금 말하라.”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은 말입니다.”

“허면 나중에는 그게 아니라는 뜻인가?”

“그리 될 것입니다.”

확신에 찬 클라우스의 모습을 보며 어느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 했다.

저 남자의 손에 의해 죽은 마족 병사만 수만이 넘어간다.

단 한 명을 뚫지 못 해서, 고작 인간 하나를 이겨내지 못 해서 전쟁에서 패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낸 인물이 바로 앞에서 저리 말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말도 안 된다, 라는 생각 사이에서 ‘설마? 혹시?’ 라는 것이 충분히 피어날 수 있음이었다.

“이리 가까이 오라.”

율리아의 부름에 클라우스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예의 바른 모습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녀는 제 앞의 남자에게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검을 하사했다.

이제부터 모든 지휘권을 너에게 일임하겠다는 군주의 명확한 뜻이었다.

“과거 대륙 전쟁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 모르는 이가 없다. 그 전설이 이번에는 나의 밑에서 다시금 쓰여 지기를 기대하고 싶은데. 내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는가?”

그리 말하는 율리아의 입가에는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제 여인의 그런 반응에 클라우스 역시 입가에 웃음을 그리고는 그리 하겠노라,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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