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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화 〉17장 - 마왕성 도착 (192/341)



〈 192화 〉17장 - 마왕성 도착

당장이라도 손수 헤에타리의 목을 뜯어주고 싶은 클라우스였다.
하지만 이것은 한때나마 그의 충성을 받던 왕이, 율리아가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었다.
이미 병사들은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카엘라에게 맡겨졌고 시종장 칼라굴과 재무관 메이로어는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해서 율리아는 다른 이들을 전부 모아놓고 헤에타리의 배신 사실을 알렸다.
여태까지 야금야금  마왕성의 정보를 빼돌리고 첩자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며 가장 중요한 이 동부의 심장에 구멍을 숭숭 뚫어둔 자가 바로 헤에타리라고 말이다.

당연하게도 처음에는 율리아의 신하들조차 그걸 믿지  했다.
헤에타리는 전대 마왕부터 충성을 다 하던 남자였기에,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그것을 바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허나 칼라굴이 여태까지 그에 대한 행적들, 그리고 이번에 클라우스와 리르를 통해서 알게 된 증거들을 보여주니 모두가 침묵하고 말았다.
마왕이 돌아왔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부터 이후 마왕성 내부의 흐름이나 충성을 맹세한 중립파 귀족들의 동향, 클라우스 이외에 또 다른 이들이 마왕성에 들어온 것까지.
다른 첩자들은 최소한 며칠은 더 걸렸을 정보들이 죄다 적혀있었다.

“나의 불찰이다.”

가장 믿었던 신하 중 하나의 배신, 때문에 남은 이들은  왕의 진노가 미치지는 않을까 은근히 걱정을 하는 눈치였다.
그런 반응에 율리아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헤에타리의 배신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고.


“내가 그대들에게 있어 한  의심 없이 충성을 다 바칠 자격이 있는 그런 왕이었다면 어찌 그가 배신을 할 생각을했을까. 이것은 나의 탓이 크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마왕 전하.”
“송구하옵니다.”
“하여, 이제 더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그대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 나를 믿고서  힘든 시간을 견뎌내며 이렇게 자리를 지켜준 그들에게 반드시 보답할 거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감히 동부의 군주이자 모든 마족들의 왕인 내게 반기를 드는 자들을 심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자리에서 그대들에게 선포한다. 나는 나의 숙부, 아우펜 아그리시오를 반드시 처단할 것이다. 감히 신하된 자로서 왕을 참칭하며 오만한 짓을벌인 것에 대해 죄를 물을 것이다.”



도망치듯 아카데미로 떠날 때만 해도 아직 왕으로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율리아가 당시만 해도 무척이나 힘들어 했음을, 당장이라도 쓰러져버릴 듯 아슬아슬했던 것을 칼라굴과 메이로어, 그리고 마왕성의 모든 이들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율리아의 모습은, 자신들의 왕이 내보이는 그 자태는.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면서도 강렬하고 굳건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어떤 경험을 하셨기에 그 몇 개월 만에 완전히 달라진 기운을 내비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말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이제부터는 정말 그대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왕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율리아는 그렇게 선언한 이후 가장 먼저 헤에타리를 끌고 오라 명령했다.
이미 증거는 차고 넘치고 들어야 할 말은 충분히 들었으며 필요한 것은 서릿발과 같이 혹독한 처벌뿐이다.

스르릉-.

대전 바닥에 벌레마냥 엎어진 헤에타리는 마왕의 보검을 빼어든 채 천천히 다가오는 율리아를 바라보면서 아무런 말도 할  없었다.
죄책감이나, 혹은 삶에 대한 체념 따위로 인해 침묵하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혹 쓸데없는 소리를 할까 이곳으로 데려오면서 클라우스가 아예 턱까지 박살을 내놓아서였다.



“네놈의 행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것이다. 하여 당장이라도 거리로 끌고 나가 나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사지를 찢어도 마땅한 일이야. 허나 그대가 전대 마왕께 바쳤던  충성만큼은 인정하여 이렇게 대전 바닥에  피를 흘리는 것을 허락해주겠다. 헤에타리여.  할 말이라도 있는가?”

아마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턱을 완전히 박살내서 침을 질질 흘리며 덜렁거리는 상태였으니까.
동정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그 몰골은 율리아의 마음을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잠시 최악의 배신자를 내려다보던 율리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움직였다.
심장이 위치한 곳을 정확하게 찔러 넣어 상대방의 목숨을 완벽하게 취한 후.
그대로 검을 뽑아 유려한선을 그리며 죄인의 목을 쳐 비참함까지 더해주었다.



촤악! 촥!-

배신자의 역겹고 더운 피가 대전 바닥에 흩뿌려지고 또한 율리아의 얼굴에 튄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붉은 피가 묻은 장면이 상당히 이질적이면서도, 또 묘하게 매력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이 자의 목을 내 숙부에게 보내도록 해라.”
“뭐라 적은 서신을 같이 보내면 되겠습니까, 마왕 전하.”
“쓰레기를 돌려주는데 무슨 서신이 필요할까. 이것만 던져주어도 충분할 거다.”

그렇게 말하며 율리아가 제 보검을칼라굴에게 내민다.
시종장은 미리 손에 들고 있던 새하얀 천 위에 그녀가 내민 검을 받은 후 고이 접어서는 그 째로 들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대전에 모인 이들이 바라보는 와중에 율리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는 내가 침묵하는 것으로서 숙부를 최대한 눌러두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정면에서 그 남자를 맞이해야 한다. 왕을 참칭하며 왕보다  한 권세를 누린 그자와 말이다. 많은 자들이 이미 이곳을 등졌고 나를 버렸다.”
“….”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훨씬 바쁠 것이다, 이전과는 비교도  수 없게 힘들 것이다.”




율리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인 자들이 대충 알아차렸다.
애둘러서 표현하고는 있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에게서 빠져나갈 자는나가도록 해라.
붙잡지 않을 것이고 탓하지 않을 것이며 실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이니 정말 각오가  이만 남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자신들의 앞에 선 왕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

대전에 모인 자들은 두 눈을 깜빡이면서 고민에 빠졌다.
지금의 마왕을 버릴 것이었다면 진작 버렸을 것이다.
누군가는 율리아에 대해서 아무런 잘난 것도 없이 그저 혈통 하나로 왕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녀의 곁에서 여러 모습들을 본 그들은 희미하게나마 율리아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해서 여태까지  옆을 지키며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헌데 바로 오늘, 그 왕이 스스로 배신자를 베어내고  목을 숙적에게 보내라 한다.
이제까지는 조용한 암투만이 오고 가는 싸움이었다면 내일부터는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사는 생사결이  것이 확실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이탈할 자는 이탈해도 좋다, 율리아는 그리 기회를 주고 있었다.
마왕을 버릴 생각은 없었으나,  마왕이 그렇게 말하니 참으로 간사하게도 잠깐이나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뚜벅 뚜벅-.

바로 그 때, 여태까지 침묵한 채로 귀퉁이에 서있던 남자가 가장 앞으로 나섰다.
얼핏 보면 다른 신하들과 마찬가지인 마왕성의 마족 중 하나 같으나.
결정적으로 붉은 빛을 띠는 마족과는 다른, 인간들의 어두운 갈색 눈동자를 지닌 이였다.



스윽-.

 인간 남자는 거침없이 율리아 앞에 무릎을 꿇고는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낮게 가라앉았으나  어떤 포효보다도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臣) 클라우스, 마왕 전하께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마왕 전하의 적, 그들의 마지막 살점 한 조각까지 모두 멸하겠나이다.”

원래부터 마왕성에 있던 인물도 아니고, 하다못해 마족도 아니다.
심지어 몇 년 전만 해도 마족들을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적장이라고 할  있다.
그 남자가 율리아의 앞에 무릎을 꿇은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하고 있다.
남부의 악마가, 대륙 전쟁에 참전했던 모든 마족들이 경외했던 그 인간이 충성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터억! 턱!-

그것이 아주 약간이나마 흔들리던 다른 이들의 중심도 굳세게 잡아주었다.
이미 나의 왕이신 저분께 남부의 악마마저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데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저분의 당당한 신하였던 자신들이 망설인다면 그보다   치욕이 어디 있을까!


“마왕 전하!!”
“신들의 뼈가 삭아 없어지고 그 넋마저 문드러질지언정! 전하의 곁에서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임을 감히 맹세하겠나이다!”



모두가 자리에 엎드려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감히 나의 주군께 반기를  적들에게 시뻘건 적의를 불태운다.


“….”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왕좌에 앉아 상당히 오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는 율리아를 쳐다보면서 클라우스는 속으로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오글거릴 수도 있고, 이게 갑자기 무슨 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왕의 건재함을 알리는 것, 그리고 모두의 뜻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중하고 효과적인  없었다.

권력이라 하는 것, 사실 생각보다도  유치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의 연속이다.
애들 골목 싸움과 다를  없이 침묵하면 만만히 여기고 보여주면 움찔거리며 흩어지면 무시 받고 반대로 뭉치면 놀라서는 다르게 쳐다보기 마련이다.

그 부분을 율리아도 이제는 이해하고 있다.
아카데미에 있을 적 단순히 마법이나 근접 전투 부분만 알려준 것이 아니었다.
클라우스는 기회가  때마다 율리아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해야 숙부를 이길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자신의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동부의 훌륭한 마왕이 될 수 있는지 말이다.

이제까지는 그녀의 신하들도, 그녀의 숙부도, 하다못해 그녀 자신도 잘 몰랐을 것이다.
율리아 아그네사라는 여인이 과연 어떤 마족인지.
그저 운이 좋게 마왕이 되었고 또 운이 좋게 클라우스를 얻어서 일이 풀리는 줄 알겠지만.
실상 율리아는 원래부터 최강자가 될 운명이었고 그리 될 수밖에 없는 능력을 지녔다.
 부분을 여태까지 말한 대로 그저 본인 스스로가 알아차리지  했을 뿐이다.



‘저 여자를 동부, 아니 대륙 최고의 왕으로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뒤에서  최고의 마왕을 녹여내면서 여유롭게 사는 한량 정도가 되면 그만인 거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은 고삐를 조이고 박차를 가할 때다.
앞으로 두 달,  안에 모든 것을 정리한다.

어차피 율리아의 숙부도 마음의 결심을 내렸을 때다.
 세력을 이끌고 마침내 반기를 들려는 순간에 헤에타리의 목과 함께 배신자가 너를 따르고 있었구나, 라는 말을 들을 터이니 더는 망설일 것도 없을 거다.
왕으로서 의지도, 능력도 없는 여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감히 신성한 마왕성에 인간과 수인을 끌어들였으니 그 저의가 심히 의심스럽다는 이유를 얹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평범한 자의 무능은 죄가 아니라고 하지만 가장 정점에 앉은 자의 무능은 그 어떤 죄보다도 더  죄라고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그리 말한다면, 장담하건데 율리아보다 그녀의 숙부가 몇 백, 몇 천 배는  끔찍한 죄인이라고 클라우스는 조소를 머금으면서 말할 것이었다.

‘얼른 군 좀 일으켜라. 얼른 이곳으로 질주해라. 단순히 자신들의 우위만 믿고 달려오는 바로 그 순간, 사방에서 네놈이 믿었던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거다.’



율리아를 향해 충을 외치는 다른 마족들과 함께 연신 고개를 조아리면서.
클라우스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승리만 생각할 한 어리석은 마족 남자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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