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17장 - 마왕성 도착
“이상하네. 왜 전사장님께서 안 오시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늦으신 적이 없는 분인데.”
오후 훈련이 잡혀있던 마왕성 안의 훈련장 안은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단 한 번도 제 시간에 오지 않은 적이 없던, 1분이라도 늦은 적이 없던 헤에타리 전사장이 30분이 훨씬 넘도록 그림자조차 내비치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마왕성 내부 곳곳을 살펴봐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리 되면 남은 결론은 마왕의 호출을 받아 현재 그녀의 공간에 들어가 있다는 소리인데, 설사 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보내 늦을 거라고 말이라도 했을 게 확실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마왕성의 병사들의 의문은 점점 커졌다.
마왕이 돌아오고 그 휘하에 남부의 악마가 같이 온 것만으로도 이미 큰 충격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전사장이 사라졌으니 답답함만 커져가는 중이었다.
지이익, 지이이익-.
이때, 어디선가 뭔가를 질질 끄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뭔가를 끄는 소리만 들려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는데, 문제는 그 사이로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끄윽… 어, 어디까지….”
“닥쳐라.”
마침내 그들의 정체가 병사들 앞에 드러났을 때, 그들 모두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완전히 짓뭉개졌다고 봐야 할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진 남자는 전사장 헤에타리.
그리고 그런 헤에타리의 다리를 붙잡고서 훈련장까지 질질 끌고 온 이는….
“수, 수인?!”
“호랑이 수인이다. 분명 마왕 전하와 함께 성으로 들어온 그 수인이야.”
마왕의 뒤를 따라 마왕성 안으로 들어왔던 호랑이 수인, 카엘라 티거.
그녀의 등장에 병사들은 잠시 당황하다가 곧 적의를 일으키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저 수인이 자신들의 상관인 헤에타리를 거의 반쯤 죽여 놓은 것도 그렇고 감히 전사장이나 입는 갑주를 착용한 것도 매우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다만 이들 모두가 율리아에 대한 충성심으로 모인 자들이기에.
그리고 카엘라는 분명 그 율리아에 의해 정식으로 마왕성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 받은 인물이기에, 자신들의 군주가 허락한 인물에게 최소한의 예의로서.
모두가 당장이라도 싸울 준비를 마친 상황임에도 일단 상황을 살피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뭣들 하는 거냐.”
하지만 카엘라는 그런 병사들의 반응이 퍽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카엘라는 그나마 간신히 붙어있는 헤에타리의 다리를 잡고서는 제 발을 들어 그대로 그의 무릎 관절을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박살내주었다.
콰득! 와직!!-
“끄아아악!!!”
“…!!”
크게는 마왕의 병사들이지만, 작게는 전사장의 명령을 받으며 여태껏 훈련을 같이 한 자들.
이런 상황이니 헤에타리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그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가자 병사들은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듯 당장 카엘라를 포위하고서는 입을 열었다.
“그만 두시오! 마왕 전하의 손님이기에 여기까지는 참고 있소만 이 이상 전사장님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그 때는 우리 또한 자비 없이….”
“이미 늦었어. 내가 너희들의 지휘관을 이리 망가트렸는데 그렇게 혀나 놀리고 있을 시간이 있는 건가? 아직도 덤빌 생각이 없다면 그 생각이 들게 해주마.”
와직!!-
이번에는 반대편 무릎을 박살내는 카엘라였다.
덕분에 마왕성 병사들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더니 곧장 카엘라에게로 쇄도하여 들어갔다.
일반 귀족 영지도 아니고 자그마치 동부의 왕가가 거주하는 곳이다.
때문에 이곳에 모인 병사들은 어지간한 이들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뛰어나다.
거기에 단순히 일대일 전투만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섬멸전, 포위전 등 군대가 받는 훈련까지 전부 완벽하게 숙지한 정예 중의 정예라고 할 수 있었다.
콰앙!! 쾅!-
“끄억!”
“꺽!”
하지만 그런 마왕성의 정예병들조차도 섬광처럼 쏘아 다니며, 자신들의 방진을 들고 있는 방패 째로 부숴버리며, 단순히 손과 발만으로 깨고 다니는 호랑이 수인 앞에서는 너무나도 심한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방진을 짜도 소용이 없고 포위를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분명 숫자가 많은 쪽은 자신들이고, 이곳 훈련장을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자신들이다.
이용할 수 있는 부분도 이쪽이 훨씬 많고 하다못해 명분에서도 이쪽이 꿀릴 것이 없다.
그럼에도 모든 마왕성의 병사들은철저하게 패배하고 또 패배했다.
포위를 할라치면 순식간에 그 사이를 빠져나가 진을 교란시켰고 방진을 형성하여 한 곳으로 몰려고 하면 귀신 같이 가장 약한 곳을 찾아내서 힘으로 뚫어버렸다.
난전으로 몰고 가서 등을 노리려고 해도 절대 그 뜻대로 놀아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정신없는 싸움의 와중에서 착실하게 병사를 하나씩, 하나씩 제압해서는 다시는 싸우지 못 할 정도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뭐, 뭐 저런 미친 수인이 다 있단 말이야!’
‘말도 안 돼.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저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뛰어난 이라고 해도 사방에서 날아드는 병장기에는 결국 틈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움직임을 봉쇄당하면 제아무리 날랜 호랑이라고 해도 창칼에 노려지기 딱 좋다.
헌데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여인인지, 자신들의 모든 공세를 마치 대놓고 비웃듯 아주 철저하게 때려 부수는 카엘라였다.
퍼억! 퍽!-
“끄윽!”
“커헉!”
주먹 한 방, 발차기 한 방에 병사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가떨어진다.
마침내 몇 차례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살펴보니 남은 이들은 채 반도 되지 않았다.
나름 마왕성의 정예라고 하는 자들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처량한 모습이었다.
“너희 같은 것을 여태 믿은 마왕 전하가 참으로 안쓰럽다.”
거기에 숨을 고르면서 날아드는 카엘라의 조롱은 무척이나 날카롭고 또 자비가 없었다.
그 조롱에 병사들이 흥분하여 다시금 일제히 돌격한다.
마왕에게, 자신들의 군주에게 처벌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저 건방진 수인을 반드시 참살하고 말겠다는 살의를 줄기줄기 흘리면서 말이다.
‘이제야 조금 전투답네.’
카엘라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자신보다도 확실하게 약한 놈들이 단순히 자신을 제압할 목적으로 들어올 때는 솔직히 기가 차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해서 원래의 계획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저들을 짓밟아주었고,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니 병사들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살의를 풍기면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번의 공격으로도 상대방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공격들이 카엘라에게로 쇄도한다.
갑주를 걸치고 있다곤 하지만 목이나 관절 부분 모두를 가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곳에 공격을 허용한다면 제아무리 카엘라라고 해도 전투를 이어가는 부분에 있어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확률이 높다.
뻐억!!-
하지만 카엘라는 그 따위 것들은 걱정도 하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주먹 한 방에 흉갑 부분이 찌그러든 채 뒤로 날아가는 병사가 생겨났다.
공격 한 번, 한 번이 무슨 쇠망치를 휘두르는 것과 비슷한 수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제 발로 훈련장 바닥을 딛고 서있는 병사들의 수가 계속 줄어들었다.
풀썩!-
“하아, 하아….”
마침내 마지막 병사마저 쓰러지고, 훈련장 한가운데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카엘라만이 남게 되었다.
죄다 둔중한 충격을 받은 터라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 하고 끙끙거리는 병사들.
바로 그 때 뒤편에서 박수 소리가 들리더니 곧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이것으로 내 호위가 모두 사살되었구나. 안타깝구나, 나의 병사들아. 너희들은 결국 적의 손에서 왕의 목숨도, 너희들의 목숨도, 그리고 명예도 지키지 못 한 것이 되었어.”
율리아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에 조용히 클라우스가 뒤를 따른다.
마왕이 나타나자 카엘라는 바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는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그 이질적인 모습에 땅바닥에 엎어져있던 병사들이 멍하니 카엘라를 바라보는 사이.
율리아는 옆에 온몸의 관절과 뼈가 다 박살나 널브러져 있는 헤에타리를 쳐다보았다.
“전사장이 나를 배신했다. 왕가를 배신했다. 그리고 너희들을 배신했다.”
“…!?”
“저, 전하?!”
“술독이 망가졌으니 그 안에 담겨 있던 술도 당연히 썩었겠지. 그리고 직접 확인을 한 결과, 역시나너희들은 썩은 게 분명하다. 너희 모두가 한 명의 인원을 당해내지 못했고, 저 여인이 적이었다면 곧장 내게로 왔을 것이야. 그렇지 않은가?”
율리아의 말에 병사들은 바닥에 부복한 채로 고개조차 들지 못 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마왕을 호위한다는, 군주를 지킨다는 그 명예로움 하나로 살아온 자들인데 그것이 통째로 부정 당하고 있다.
심지어 이유 없는 부정이 아닌, 명백한 자신들의 실책으로 인한 것이기에 더더욱 비참하다고 할 수 있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건 모두 자신들의 부족함 때문이다.
병사들은 그런 분위기로 더더욱 침통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카엘라 티거.”
“네, 마왕 전하.”
“저들에게 그대가 누구인지 이제 확실하게 밝히도록.”
“명 따르겠습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카엘라는 바로 직전까지 자신의 손에 의해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은 병사들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반갑다, 제군들. 이번에 새로이 전사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 카엘라 티거다. 이 자리에 있기 전에는 클라우스, 너희들이 남부의 악마라 부르는 이의 밑에서 부관으로 있으며 너희 마족의 군대와 싸우던 사이라고 해두마.”
그러자 병사들 사이에서 작은 동요가 일었다.
클라우스, 남부의 악마, 그 이름에 대해서는 당연하게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리고 그 클라우스의 밑에서 부관으로 있었다면 눈앞의 저 수인 또한 대단하다는 증거.
당장 전사장의 갑주를 왜 입고 있느냐, 라는 부분마저 순간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병사들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가 묘하게 바뀐 것을 율리아는 바로 알아차렸다.
이전까지는 자신의 병사이기도 하지만 또한 헤에타리 휘하의 직속 수하들이기도 했던 자들.
때문에 자신에 대한 충성심과 헤에타리에 대한 충성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도 했었다.
바로 그 부분을, 율리아는 카엘라를 이용하여 헤에타리의 존재감을 일순간에 지워버렸다.
그를 썩은 술독이라 부르며 또한 자신의 병사들을 썩어버린 술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이후 새로운 술을 담을 독으로서 새로운 전사장, 카엘라를 그들 앞에 소개했다.
“당장이라도 너희들을 다 내치고 싶다만, 그것은 이제부터 너희들의 새로운 대장인 전사장이 결정할 사항이겠지. 하여 그대에게 묻겠다, 카엘라 티거 전사장. 그대는 어찌 생각하나?”
“…약한 자들입니다. 마왕 전하께서 고민할 가치도 없이 모조리 내쳐도 아쉬울 것 하나 없고 문제될 것 하나 없습니다.”
카엘라의 혹독한 답변에 병사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들이 지닌 마왕에 대한 충성심은 누구보다도 높고 진하다.
하지만 주군을 지킬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그 충성심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해서, 제가 한 번 데리고 지켜볼까 합니다.”
“데리고 지켜보겠다, 라.”
“헤에타리라는 약해빠진 자의 밑에 있었기에 이 사달이 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강합니다. 헤에타리라는 마족 열 명이 몰려와도 모두 격퇴할 수 있습니다. 하여 이들을 지금보다 열 배는 강하게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가능하겠나? 카엘라?”
“불가능하다면, 다 내치고 다른 이들을 찾아야겠지요. 근성도 없고 악도 없는 자들은 병사로서 가치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카엘라는 힐끗 병사들을 살폈다.
저들의 머릿속에서 헤에타리 따위는 지우고, 대신 새로운 전사장의 이름을 새겨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