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17장 - 마왕성 도착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잘 붙어있던 제 팔이 덜렁거리는 꼴을 본다면.
도저히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관절이 다 꺾여서는 흐느적거리는 장면을 본다면.
아무리 냉정한 자라고해도 두 눈을 홉뜨고는 몸을 잘게 떨 것이 확실하다.
하물며 마왕성의 명예로운 무인, 왕의 곁을 지키는 전사장이라고는 하나 시커먼 속내를 숨기고 있는 역겹기 짝이 없는 기회주의자라고 한다면.
“끄억! 꺽! 끄아아아악!!”
전사장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은, 말 그대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낼 게 뻔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래도 꼴에 무인이라고 제 오른팔이 기괴하게 뒤틀려서는 덜렁거리는 꼴을 보고 있으니 헤에타리는 믿을 수 없다는 부분까지 더해서 정말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분명 자신은 마왕의 집무실에 들어왔는데 왜 갑자기 기습을 당해서는 이 꼴이 났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저번처럼 시끄럽다고 혀를 뽑으면 안 되는 거 알죠, 클라우스?”
“당연한 말을. 나도 듣고 싶은 말이 한 두 개가 아니에요.”
클라우스? 클라우스라고?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헤에타리는 그 이름을 듣고서는 간신히 고개를 돌리고 그 다음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곧 제 위에 올라타서는 자신의 오른팔을 거의 뜯어버릴 듯 박살내버린장본인이 바로 그 남부의 악마임을 알 수 있었다.
“끄으으! 이, 이게 무슨 짓… 크아아악!!”
우드드득!!-
이번에는 왼손의 손가락 다섯 개가 일시에 부러졌다.
심지어 단순히 부러트린 게 아니라 아예 완전히 꺾어서는 손등 쪽으로 구부려준 상황.
“입 닫고, 이제부터 나나 율리아가 대답해, 하고 말하면 그 때만 말하는 거야. 혹시나 다른 말을 한다면 부러트릴 수 있는 뼈란 뼈는 죄다 하나씩 부러트릴 거고 마음에 별로 안 드는 대답이 나와도 그렇게 할 것이며 진실이 아닌 답이 나와도 역시나 그리 될 거다. 전사장.”
“끄윽, 끅….”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비명 듣고 누군가가 문을 열고서 ‘전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따위의 상상은 하지 마. 이미 마법으로 이 방에서 무슨 짓을 하던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게 조치를 해두었거든.”
싸늘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클라우스가 전사장의 등 위에 철퍽, 앉아버린다.
헤에타리는 도대체 지금 이 상황이왜 벌어진 것인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미 양 팔 모두가 박살난 와중에 괜한 말을 해서 더 끔찍한 고통은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때문에 그는 입술을 깨문 채 그저 저 앞에 앉아서 여전히 뭔가를 열중하며 보고 있는 율리아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혹시 자신의 행보가 들킨 건가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곧 고개를 내젓는다.
그 어떤 충성파의 일원들에게도, 심지어 시종장조차 속인 자신이다.
마왕이 돌아왔다고 해서 변할 것이 없으니 어떻게 상황만 모면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품던 찰나 율리아의 입이 열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겠죠, 전사장. 전대 마왕부터 충성을 다해 주인을 모시던 자신이 왜 이 꼴이 되었는지, 클라우스가 왜 당신의 팔을 박살냈는지, 무슨 말을 듣고서 당신을 그리 대하는 것인지. 모든 게 다 궁금할 거예요.”
“…그, 그렇습니다. 마왕 전하.”
“우리 이렇게 하죠. 아주 간단한 거예요. 헤에타리 전사장, 당신한테 이제부터 질문을 할 거예요. 거기에 맞는 답을 한다면 나 역시 당신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답을 해줄게요.”
“그러십쇼. 그렇게 하십쇼. 제가 아는 건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첫 번째로….”
휘릭! 툭! 투툭!-
자신이 읽고 있던 뭔가를 내던지는 율리아.
그 서신은 바닥을 몇 번 구르다가 이내 헤에타리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마침내 그 안에 적혀있는 모든 것을 읽은 전사장은 어어? 하고 탄식을 흘리고 만다.
“왜 아버지를 배신했고, 나를 배신했지? 헤에타리.”
“그, 그건….”
“아니라고 잡아뗄 생각은 마. 이미 그 안에 네놈이 오늘부로 내 잘난 숙부에게 보내려고 했던 모든 것이 적혀 있으니까. 다시 한 번 묻겠어. 왜 나를 배신했느냐.”
“마, 마왕 전하. 이, 이걸 어떻게….”
“대답이 틀렸잖아. 마왕 전하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지.”
우드득!!-
헤에타리의 위에 앉아있던 클라우스가 바로 그의 왼손을 꺾어버린다.
완전히 안쪽으로 접혀져 더는 움직일 낌새조차 보이지 않게 된 헤에타리의 왼손.
덕분에 커흑! 하고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른 남자가 눈물, 콧물에 침까지 질질 흘린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이렇게 잘근잘근 밟아 죽이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아주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이번에는 팔꿈치라고 중얼거리면서 손의 위치를 옮긴다.
율리아의 질문에 얼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이 다음에는 팔이 바깥쪽으로 굽을 판국이었다.
“혀, 협박! 협박을 받았습니다. 용서하소서, 마왕 전하. 제게는, 제게는 선택권이….”
“클라우스.”
헤에타리의 말에 바로 고개를 저으며 그리 말하는 율리아였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클라우스는 바로 가차 없이 헤에타리의 팔꿈치를 반대로 꺾어주었고 곧 또 한 번 관절이 부서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도 좀 감당이 되는 고통이어야 흘러나오는 법이다.
이미 수용 가능한 고통의 범주를 뛰어넘어도 아주 한참 뛰어넘은 상태.
헤에타리는 이제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 하고 그저 컥! 커억! 하고 숨이 넘어갈 듯 꿱꿱대는 소리만 내는 것이 전부였다.
들켰구나,발각되었구나, 결국 모든 것이 다 끝나버렸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헤에타리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마음이 차분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몸에 불이 붙은 듯 강렬해지는 고통 속에서도 정신이 더욱 또렷해진다.
“…무슨 근거로… 이리 몰아붙이는 겁니까…?”
대답 이외의 말이 또 흘러나오자 이번에는 그대로 쇄골을 부서트릴 듯 손아귀에 힘을 주는 클라우스였다.
하지만 그런 그를 잠시 제지한 율리아는 어디 한 번 말이나 해보라는 듯 바닥에 엎어져 조금씩 분해가 되어 가는 전사장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지금 제가 이런 대접을 받는 확실한 증거라도, 전하를 속였다는 증거를….”
“네 놈 말대로, 여태까지 나와 내 사람들을 아주 잘도 속였더구나. 정보만을 넘기는 게 아니라 아예 나까지 팔아넘기려고 했지. 대단하구나, 아주 대단해. 칭찬이 절로 나올 정도야.”
“….”
“어떻게 알아냈느냐고. 거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다. 거의 매일 같이 가서 처먹는 곳에 계산을 하면서 정보를 같이 내어주고, 누군가와 부딪치면서 전달하고, 수레를 끌어주면서 그곳에 남겨두고, 물건을 사면서 내미는 돈 사이에 넣고. 더 필요하느냐? 네놈이 이번에 전달하려던 것들이 아주 상세하게 적혀있더구나.”
율리아의 말에 헤에타리는 기가 막히다는 탄식을 흘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아까 느낀 그 이질적인 것이 전부 사실이었다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 전에 여태까지 잠잠했는데 갑자기 자신의 모든 행적을 아주 샅샅이 알고 있었다는 듯 정보를 넘기는 현장 모두를 파악했다는 부분이 놀라웠다.
“여태 단 한 번도들키지 않았는데,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 했는데… 어, 어떻게….”
“인정하는 것이냐.”
“….”
“얼른 대답하라고 몇 번을 말하나. 꼭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말을 듣지, 아무튼.”
우드득-.
클라우스가 한 번 힘을 주니 그대로 헤에타리의 쇄골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또 한 번 정신을 후려치는 아찔한 고통에 전사장의 입술 사이로 잔뜩 쉬어버린 비명이 힘없이 흘러나온다.
“…대체 언제부터… 알았던 겁니까…?”
“인정한다는 소리구나.”
“여태 아무도 몰랐는데… 누구도 눈치 채는 기색이 없었는데… 어떻게….”
“너를 믿어 전사장이라는 자리에 앉히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나를 부탁하셨던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은 있는 것이냐. 너를 믿고 나의 안전을 명령한 내게 미안하지도 않은 것이냐.”
정말 아무렇지도 않느냐, 그런 질문을 하는 율리아.
그러자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헤에타리는 제 온 몸이 부러질 것을 각오하고서 여태껏 제 마음에 품고 있던 말들을 천천히 꺼내놓기 시작했다.
“당신이 약한 것이니…. 당신이 붙잡지 못 한 것이니… 누구도 탓하지 마시오.”
“뭐라고?”
“마왕 율리아 아그네사. 당신이 아무 것도 약속할 수 없으니까.결국 모두가 떠난 것입니다. 나도 그 때 떠난 것이고…. 다만 새로운 둥지에서 다른 놈들보다 더 높은 곳에 있고 싶었을 뿐. 그래서 이쪽의 내부 정보를 빼돌려 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헤에타리의 말에 율리아는 애써 스스로를 제어했지만 크게 분노한 티가 확 드러났다.
당장 두 눈동자에서 이글거리는 불길이나 덜덜 떨리는 몸, 굳게 쥐어진 주먹이 그 증거.
심지어 앙다문 입술 사이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릴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바로 헤에타리의 다리고 허리고 모조리 부러트려도 될 테지만.
클라우스는 이번만큼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가만히 율리아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율리아가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기에,그것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었다.
“…고맙구나, 전사장.”
“무슨 말을….”
“그대 덕분에 하나를 알아간다. 내가 약하면, 내가 왕답지 못 하면 결국 너와 같은 쓰레기들이 곁에 생겨나 주위의 충실한 자들마저 병들고 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썩은 열매는 아무리 크더라도 가차 없이 쳐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전까지 당장이라도 사방으로 번질 듯 거칠게 타오르던 분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율리아의 눈동자에 머무는 감정은, 지극히 차갑고 싸늘한 냉철함 뿐이었다.
율리아가 보인 변화에 헤에타리의 얼굴에 당황과 놀라움이 연속해서 떠오른다.
자신이 여태 알고 지내던 마왕은 저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데.
항상 분노에 대한 솔직한 반응을 보이며 그것이 꽤나 오래 가곤 했는데.
이제는 화를 내다가도 그것을 바로 제어하여 씻은 듯이 지워내는 단계에 이른 것이었다.
이제 그만 되었다는 듯, 더는 꼴도 보기 싫다는 듯.
율리아는 클라우스를 향해 가볍게 손짓을 해보였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클라우스는 방 전체에 걸어두었던 침묵 마법을 해제했다.
이후 가볍게 헛기침을 하니 이내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선다.
“마왕 전하. 클라우스님.”
호랑이 수인, 카엘라가 완전 무장을 갖춘 채로 입을 연다.
특이한 것은 그녀가 원래는 마왕성의 전사장이나 착용하는 갑옷을 입고 있다는 점.
율리아가 잠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니 곧 호랑이 여인은 클라우스에게서 거의 걸레짝이 된 헤에타리를 받아서는 그대로 어딘가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율리아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면서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클라우스의 말에 이제는 거의 확신하고 있던 그녀였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자신을 따른 마족으로서 일말의 기대 정도는 걸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국 오늘로서 그 기대가 헛된 것임을, 저 빌어먹을 놈이 최악의 배신자였음을 전부 알게 되었다.
“고마워요, 클라우스. 이제라도 저 끔찍한 놈을 잡게 만들어줘서.”
“이제 시작이에요. 깨부숴야 할 놈들은 많고, 죽여 없애야 할 놈들도 많습니다.”
“그렇겠죠. 당연히 그렇겠죠. 역겨운 놈들, 그렇게나 믿었는데 뒤에서 저런 짓을….”
이를 갈며 분노하던 율리아는 다시금 숨을 고르면서 화를 가라앉혔다.
이미 다 지난 일이고, 이제라도 발견한 것이 다행이니 이제부터는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보다, 헤에타리가 이런 식으로 몰래 정보를 내어주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아낸 거죠? 그리고 이걸 또 어떻게 빼내왔고요. 분명 클라우스, 당신은 내 옆에 계속 붙어 있었는데.”
“한마족 덕분이라고 해두죠. 한 번 만나보겠어요? 마침 앞에서 기다리게 해두었는데.”
클라우스의 말에 율리아는 그렇게 하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허락이 떨어지자 다시금 문이 열리고 그 너머에서한 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마족의 얼굴을 확인한 율리아는.
“어어?”
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