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17장 - 마왕성 도착
‘도대체 뭐야. 왜 마왕이 이리도 빨리 돌아온 거지? 수하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마왕성의 성문 앞에서 율리아를 맞이하면서, 전사장 헤에타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권력이 약한 마왕이라고 해도 그렇지만 왕이라는 여자가 타지에서 제 성으로 돌아오는데 소식 하나 보내지 않고 이렇게 찾아오는 경우는 정말 생각하지도 못 했다.
아카데미 1학기가 거의 다 끝났다는 것은 그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언제 아카데미를 출발해서 언제 국경을 넘고 언제 마왕성에 도착하는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사장인 자신이라고 해도 정확하게 아는 바가 없었다.
해서 며칠 전부터 시종장이나 재무관, 그 외에 마왕성의 많은 이들에게 은근한 어조로 마왕 측의 일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는지 물었다.
전사장인 자신은 몰라도 다른 이들이라면 혹 마왕에게서 일정을 전달 받고서 대충 일정을 아는 이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마왕의일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다들 전혀 모르는 기색이었다.
그러다가 하루 전 갑작스레 마왕이 이미 국경을 넘어 마왕성 인근까지 다다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헤에타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큰일이군. 아우펜님한테 아직 보고를 못 드렸는데.’
미리 율리아의 복귀 일정을 알아내서 그녀의 숙부에게 전달하기로 되어 있었다.
헌데 그녀가 정말 뜬금없이 등장해버렸으니 헤에타리 입장에서는 시작부터 일이 꼬여버렸다.
아우펜이 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얼마나 짜증을 내는 남자인지 잘 알고 있다.
아마 이번에도 보고가 늦고, 그럼으로 인해 계획을 짜는 데에 지장이 생겼다는 걸 안다면 필시 자신에게 일을 똑바로 하라고 엄포를 놓을 게 분명했다.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금이라도 빠르게 이쪽의 일을 알려야만 했다.
무엇보다 외성 쪽에는 아우펜의 눈과 귀가 있다고 하지만 내성 쪽은 정보를 줄 수 있는 이가 오직 자신 밖에 없으니 엄포를 놓는다고 해도 그 이상은 뭐라 하지 못 할 게 분명했다.
헤에타리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면서 수하들과 함께 내성을 나섰다.
“전사장님. 도대체 요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온갖 소문이 나도는 와중에 갑자기 그 남부의 악마라는 인간이 마왕성에 들어왔다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봐. 전사장님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정치 부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말라고.”
수하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면서 헤에타리는 항상 향하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사장인 그가 이렇게 가끔 가다가 바깥으로 나서는 것, 표면적인 부분으로는 마왕성의 화려한 식사보다는 이전부터 먹던 음식들이 입에 더 맞다는 게 그 이유였다.
허나 실상은 필요한 순간에 보낼 정보가 있을 때마다 바깥으로 나도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항상 가던 식당, 항상 먹던 메뉴를 주문하는 전사장.
그를 따라서 수하들 역시 이제는 거의 고정이 되어버린 식사들을 주문한다.
이들이야 제 대장이 다른 귀족들 마냥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는 것보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다른 마족들과 마찬가지로 별 다를 게 없는 음식을 먹는 부분에서 친근감을 느끼겠지만.
헤에타리는 그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짓도 역겹군. 지겨워 죽겠어. 빌어 처먹을.’
자신이라고 화려하고 멋들어진 식사를 하고 싶지 않을리가 있겠나.
다른 마족들처럼 근사한 식사 앞에서 포도주 한 잔을 곁들이면서 즐기고 싶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면 위의 신뢰는 물론 아래의 신뢰도 받기 힘들다.
해서 헤에타리는 이런 역겹기 짝이 없는 식사를 잊지 못 해서 사는, 그런 순박한 전사의 모습을 보이면서 그 긴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마침내 식사가 다 끝나자 헤에타리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는 주인에게 다가가 계산을 하고 식당을 벗어났다.
“….”
한 눈동자가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주인이 돈과 함께 뭔가를 챙기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을 미처 모른 채로.
“전사장님. 오늘도 마왕성 내부를 살피실 거죠?”
“그래야지. 내성만큼이나 외성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도 마왕 전하께 득이 되는 일이다.”
이후 그의 일정은 잠시 마왕성 내부의 순찰을 도는 것이었는데 때때로 다른 곳을 돌기도 했지만 어지간해서는 정해진 길을 도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되도록 이쪽이 마왕을 모시는 전사장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해서 누군가와 부딪쳐서는 서로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고 무거운 수레를 끌고 가는 이를 도와주기도 했으며 잡상인 앞에 가서 물건 몇 개를 사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래서 전사장님과 함께 내성 바깥으로 나서는 게 좋다고 말한 거구나.’
‘보람차다. 이게 바로 마왕 전하께 충성하는 무인으로서의 참 모습.’
오늘 헤에타리를 따라 나서기로 되어 있던 마왕성 병사들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동료들이 왜 전사장을 따라 나서는 길이 보람차다고 했는지, 이런 분이 마왕 전하의 곁에 계시는 한 불충한 무리들이 감히 마왕성으로 쳐들어오는 일은 없다고 자신하는지.
왜 마왕성의 병사들이 전사장을 따르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으음?”
그렇게 길을 걷던 헤에타리는 문득,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전사장이 걸음을 멈추니 뒤에서 따르던 병사들도 모두가 자리에 멈춰 선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듯 그들이 헤에타리를 쳐다본다.
“….”
한동안 말없이 한곳을 바라보던 그는 곧 몸을 돌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분명 뭔가를 느낀 것 같은데, 상당히 이질적이고 불편한 시선을 받은 것 같은데.
또 다시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기에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바깥 순찰을 돌던 헤에타리는 내성으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이제 병사들 사열이 있을 예정이고 저녁에는 그에 대한 보고를 올려야 한다.
헤에타리는 오랜만에 마왕성으로 돌아온 마왕을 대하면서 도대체 그녀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 많은 자금을 얻은 것인지 알아보자 생각했다.
‘마왕성의 형편은 물론이고 병사들의무장 상태까지 전부 향상되었어. 보통 일이 아니야. 분명 아무도 모르는 뭔가가 마왕과 닿아 있다.’
헤에타리는 문득 클라우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율리아 입장에서는 제 부왕이 권력을 잃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던 그 남자가 미운 것이 당연할 터인데 어제 봤던 마왕과 그 인간 남자의 모습은 그런 느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둘의 관계는 무척이나 친근한 사이, 아니 그를 넘어서서 아주 가까워 보이는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남자라면 마왕에게 어느 정도의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헤에타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그 상황에 대해 예측해보았다.
일단 서부에서의 클라우스는 전쟁 영웅으로 불리지만 동시에 귀족들에게 갖은 견제와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했었다.
제일 최근 소식은 결국 그가 군부의 모든 권한을 내려두고 아카데미로 갔다는 것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세운 공이 많아도 여태까지 철저하게 견제를 당했다.
추종하는 세력들이 많다고 해도 그 스스로가 그들의호의를 대부분 거절했다고 하는 과거 일들을 떠올리면 딱히 가진 게 많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이 헤에타리의 생각이었다.
‘일단 그 악마 놈이 마왕에게 돈을 지원했을 리는 없는 것 같군.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승리만 원하던 남자 손에 남은 게 뭐가 있겠어. 우리마족들의 회유에도 넘어오지 않은 걸 보면 물욕은 없는 놈이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헤에타리는 당장 동부의 마족들을 걱정해야만 했다.
대륙 전쟁의 패배를 다른 시선으로 돌리기 위해 많은 마족들이 자신들의 상대였던 클라우스에 대해서 거의 찬양하는 수준으로 평가를 해댔다.
덕분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세대들까지 클라우스라고 하면 불세출의 명장, 뭐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율리아가, 여태껏 아무런 능력도 없다고 하던 그 마왕이.
남부의 악마라고 하는 그 무시무시한 인간을 갑자기 데리고 와서는 자신을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말을 꺼낸다?
‘망할 인간 놈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마족들이 자연스레 마왕에 대해서도 평가를 다르게 할 게분명해. 혹자는 그저 마왕의 미모에 넘어가서 줏대 없이 배신을 한 남자라고도 할 테지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분명 난리가 나겠지. 그것도 아주 큰 난리가.’
고작 미인계에 넘어가서 제 왕국을 배신하고 넘어온 남자라고 말한다 치자.
과연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침묵할 마족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당장 클라우스를 추종하는 세력들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클라우스의 대단함 덕분에 패배를 당하고서도 큰 처벌 없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귀족들이다.
클라우스를 그렇게 폄하하면 그런 멍청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남자에게 아주 시원하게, 영혼까지 탈탈 털려서는 병사고 물자고 죄다 잃어버린 최악의 병신들이 되는 것이니까.
당장 율리아의 숙부인 아우펜조차 클라우스에 대해서는 말을 아낄 정도였다.
제 휘하에 대륙 전쟁 시기 그에게 대패를 당했던 귀족들이 다수 있는 게 그 이유였다.
그를 까 내리면 그런 놈에게 당한 제 사람들은 정말 답도 없이 멍청한 자들이라고 돌려 까 내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상황이 정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막 훈련장으로 이동하려던 헤에타리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헤에타리 전사장.”
“아아. 칼라굴 시종장이 아니십니까. 지금쯤이면 마왕 전하의 귀환 때문에 많이 바쁘실 텐데 갑자기 훈련장으로 향하는 곳까지는 어쩐 일로….”
“마왕 전하께서 급하게 전사장님을 찾으십니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왕 전하께서 병사들의 훈련 시간에 저를 찾는 일은 극히 드문일인데요.”
“아마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병사들의 훈련 상황에 대해서 물어볼 것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 부분이라면 이해하지 못 할 것도 아니다.
헤에타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칼라굴의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겨 마침내 마왕의 집무실까지 다다르자 칼라굴은 어서 들어가 보라는 듯 자신이 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평소와 딱히 다를 게 없는 것들이라 헤에타리 입장에서는 의심을 할 것도 없다.
그렇게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전사장은 저 앞에서 뭔가를 열중하여 읽고 있는 마왕, 율리아 아그네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아름답긴 하군.’
저런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미모라면 그 남부의 악마라고 해도 무조건 넘어갈 것 같은데.
동시에 아우펜이 왜 그리도 조카에게 집착하는 지도 볼 때마가 이해가 가고.
헤에타리는 그리 중얼거리면서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가 안으로 들어가고 칼라굴에 의해 집무실의 문이 닫히는 순간.
휘릭-.
“…어?”
쿠웅!!-
갑자기 제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르는 것 같더니 그대로 엄청난 충격과 고통이 전해진다.
설마 넘어진 건가? 발에 뭔가 걸리는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바닥을 짚으려던 헤에타리는 문득, 제 두 팔이 뒤로 모아져서는 전혀 힘을 쓸 수 없도록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 무슨….”
“다짜고짜 이래서 미안한데, 일단 팔 하나만 뽑고 시작하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 그리고 상황이었지만.
곧 헤에타리는 제 귓가에 들려온 그 말이 진짜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우득! 뿌득! 뻐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