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3화 〉16장 - 너희가 원하는 대로 (183/341)



〈 183화 〉16장 - 너희가 원하는 대로

“클라우스님. 저희 왔어요.”


플랑슈의 안내를 받으면서 안으로 들어선 이들은 나타샤와 세실리, 그리고 카엘라였다.
왕국을 떠나 동부의 군주, 마왕에게 고개를 숙이겠다는 클라우스의  안에 모여든 여인들.
자칫 다른 이들에게 좋지 않은 눈길을 받을 수도 있으나 그 셋 모두가 그런 눈길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을 여인들이기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나타샤야 애당초 벨라루스에서 약간 겉도는 인물이었고 세실리는 아예 레블랑 가문이 아니라 마왕가로 따라가겠다고 하고 있으며 카엘라는클라우스의 부관이다.
다른 사람들의 백 마디 속삭임보다 클라우스의 말 한 마디가 더 중요한 여인들이었다.



“어서 와요. 아까 어땠나요? 생도들에게 아주 좋은 가르침이   같나요?”
“제가 보기에는 무조건 그랬습니다. 훌륭한 교훈을 남겼을 겁니다.”
“카엘라. 너는 귀족들한테 개인적인 감정이 너무 많잖아. 네 평가 기준이아니라 생도들 기준에서 바라보고 대답을 해야지.”
“아…. 음, 그렇긴 해도 역시나 훌륭한 교훈을 남기지 않았을까 합니다. 입을 함부로 놀리다가 목이 달아나는 것은 어디를 가서도 있는 일이지 않았습니까.”



카엘라의 대답에 클라우스는 그렇긴 하지, 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나타샤와 세실리의 생각은 어떠냐는 눈빛으로 그녀들을 바라본다.

“교훈은  모르겠어요. 다만, 좋은경고는 되었겠죠.”
“경고라. 그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나타샤.”
“네. 생도들 중에는 피를 보는 일조차 겪지 않은 이들이 꽤 많을 테니까요.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곱게 자랐다고 해야 할까요? 대륙 전쟁을 분명 겪은 세대들이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냥 전쟁이 났다, 하고 생각하던 이들이잖아요.”

싸운 자들은 망신창이가 되어서는 거지꼴이 되었고, 도망쳤던 자들은 죽은 자들의 빈자리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역으로 더 강성해졌다.
다행히도 싸운 공로를 인정받은 이들도 있긴 하나 그들  또 대다수는 다 잊혀졌다.
근본이 귀족이 아니라면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일들이었던 것이다.

“그 인간 기사놈의 혀를 뽑으실 때 통쾌했어요. 주제도 모르는 것들은 그런 꼴을 당해야죠.”
“나타샤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나도 그랬는데. 그 부분은 동일한 모양이네요.”

율리아가 미소를 지으면서 나타샤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그러자 얌전히 차만 홀짝거리던 세실리가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세실리의 그런 모습이 퍽 귀여웠는지 율리아와 나타샤가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 두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단순히 귀엽다고만 볼 수 없는 것이 지금 세실리의 마음속을 조금 살펴보니 클라우스가 자신의 혀를 잡아당기면서 괴롭히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나마 조금 전처럼 혀를 아예 뽑아내는 수준까지는 아니고 그냥 혀를 잡아당겼다가 놓기를 반복하면서 엉덩이를 때려주는 장면 정도를 상상하고 있다고 할까.

진짜 저것도 중증의 중증인데 나중에는 어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이전 회차에서 했던 것처럼 율리아한테 도움을 청해야 하나? 같이 괴롭혀보지는 않겠냐고?
율리아 입장에서는 감히 제 남자한테 자꾸 들러붙는 여인을 괴롭히는 것이고.
세실리 입장에서는 클라우스 앞에서 다른 여인에게 희롱을 당하는 것이니  부분에서도 충분히 쾌락을 느낄 수 있었다.



“그보다… 이제 곧 방학이 되면 클라우스님께서는 정말 동부로 향하시겠군요.”
“그렇겠죠. 이런 소란을 피워두고 멀쩡히 왕국으로, 서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카엘라는 원래부터 클라우스님의 부관이었고 세실리는 동부에 기거하는 마족이며 그건 율리아도 마찬가지이니 전부가 클라우스님을 따라갈 수 있다지만… 저는 불가능하네요.”


대놓고 레블랑 가문마저 버릴 수 있다고 하는 세실리와는 다르게.
나타샤는 그래도 벨라루스라는 자신의 가문을 버리기보다는 그것을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여인이었다.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것도 마법이 영 아닌  같으니 뭐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재능이었다.

클라우스도 나타샤의 그런 욕망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이용하려고 한다.
동부를 정리하면  다음은 바로 서부의 차례다.
지금부터 율리아의 숙부라는 놈을 조질 때까지,  2개월에서 3개월간은 서부에서 극심한 혼란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클라우스가 곳곳에 미리 뿌려둔 분란의 씨앗에 물을 줄어 발아시켰다.

하지만 그것도 오랫동안 가지는  할 것이다.
마침내 동부의 혼란스러움이 진정되고 율리아가 마왕으로서 당당히 그 자리에 앉아 동부가 완벽하게 평정되었음을 알린다면 서부도 뭔가 불길함을 느끼고는 어떻게든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려고 노력할  분명하다.

동부의 마족들은 서부 연합을 상대로 결국 승리한다.
율리아가 있든 없든, 그것은 변하지 않는 정해진 미래다.
다만 그것이 1년이  수도 있고 10년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걸 되도록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이번만큼은 마음 놓고 쉬고 싶다.’


외부에서만의 공격으로는 꽤나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클라우스는  부분을 대비해서 대륙 전쟁 시기부터 곳곳에 준비를 해두었다.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 서부를 이탈하여 율리아에게 고개를 조아릴 자들을 말이다.
더해서 서부에서 계속 율리아 쪽을 은밀하게 도울  있는 강대한 세력이 있다면.
그것만큼이나 더 반길 일도 없을 것이었다.


“나타샤, 당신은 벨라루스로 돌아가서 그곳을 틀어쥘 생각을 해아죠. 그게 당신이 원했던 것이고 또한 내가 돕겠다고 한 일이니까요.”

클라우스의 말에 나타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벨라루스 가문을 자신의 손에 넣는다,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그녀 자신 역시  거대한 곳의 주인이 되는 것에 대한 욕망이 없을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능력이 있는 자가  가문의 수장이 되어 모든 것을 쥔다.
자존심 강하고 재능도 뛰어난 나타샤 입장에서는 욕심을 낼 만 했다.
다만 마법 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거의 반쯤 포기한 상태이긴 했는데.
그 부분을 클라우스가 완전히 뚫어주었으니 이제는 충분히 도전할 만 하다.


‘그리고,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나타샤는 슬쩍 곁눈질로 율리아를 살폈다.
보랏빛의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 거기에 요정인 자신조차 조금은 주눅 들게 만드는 미모.
거기까지만 해도 이미 충분했지만 그보다 더 걸리는 것은 그녀의 자리였다.

‘마왕이잖아. 동부의 모든 것을 제 발 밑에 두는 절대 군주. 지금이야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왕이라는 호칭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율리아는 그 왕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 분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상대가 안 돼.’



클라우스를 자신의 남자라고 당당히도 선포한 율리아다.
그녀의 주장에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당장 클라우스도 그리 생각하니까.
하지만  곁에서 그래도 클라우스의  일부를 주장하려면 그만한 뭔가는 있어야 한다.
벨라루스의 많고 많은 요정 여인 따위가 아니라 벨라루스의 주인으로.
그렇게 당당하고 고귀한 자리에 올라야만 비로소 클라우스의 곁에 있을  있다.
또한 동부의 군주, 마왕 율리아 아그네사의 친구로서 어깨는 펴고 다닐  있다.

자리에 연연할 필요는 없으나, 그 자리보다 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건 없다.
자신을 낳아주신 어머니께서 부디 높은 사람이 되라며 남기신 말씀이었다.
나타샤는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방학 사이에 어떻게든 벨라루스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로 마음먹었다.



“저, 이렇게 되어서 드리는 말씀인데.”


슬며시 손을 들고서 발언권을 요청하는 세실리.
정확히는 클라우스에게 청하는 것이 아니라 여인들 사이에서 첫 번째라 할 수 있는 율리아에게 청하는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마왕 전하. 이번 방학  저는 레블랑 가문이 아니라… 마, 마왕성으로 가서 지내고 싶습니다. 혹 그게 가능할지 여, 여쭙고 싶습니다만.”
“응? 잠깐만요, 세실리. 지금 레블랑 가문이 아니라 마왕성이라고 했나요?”
“그,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존대가 아닌 하대를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세실리 레블랑. 확실히 말하세요. 당신은 레블랑 가문의 직계입니다. 당신이 나와 이렇게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픈 일이죠. 헌데 이제는 나를 따르겠다? 이것으로 당신의 가문이 어떤 곤란함을 겪을지 알고 있는 건가요?”

곤란함 수준이 아닐 것이다, 아카데미에서의 접점이야 어떻게 지나간다고 해도 동부로 돌아왔는데 집이 아니라마왕성으로 향하면 의심도 확신이 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확신을 받은 이가 어떻게 될 지는 안 봐도 훤한 것이 아닌가.
지금 율리아는 세실리에게 너희 가문이 자칫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는데 당장 네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냐,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해, 해서! 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레블랑 가문의 또 다른 대표가 되어서 마왕 전하께 충성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레블랑 가문은 감히 왕좌를 꿈꾸는 반역자의 편이 아니라 마왕 전하 옆에 설 것입니다!”
“이미 그대의 아비는 내 숙부 옆에 있어요. 그건 어찌  생각이죠?”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고려해보겠습니다. 모든 방법을.”

클라우스 앞에서 변태 모습을 숨기지 못 하는 여인이지만 결국 그녀도 레블랑의 마족이다.
가문 특유의 결단력과 그것을 결행하는 부분은 제 아비, 제 선조와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을 율리아 또한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눈매를 좁히고는 세실리를 쳐다보았다.

“…그 말, 후회는 없겠지. 세실리 레블랑.”
“네, 마왕 전하.”
“좋다. 허면 그대를  성으로 초대하도록 하마. 그리고 그대에게  명령을 내리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레블랑 가문을 나의  빌어먹을 숙부에게서 빼내 와라. 그대 입으로 그리 하겠다 하였으니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따위의 말은 이제 의미가 없어. 다만 행하느냐, 행하지 못 하느냐 그것뿐이다. 이를 완수한다면 레블랑 가문의 과오는 모두 묻어두도록 하겠다.”



말은 저렇게 하였으나 결국 방법은 둘 중 하나다.
레블랑 가문의 가주, 즉 아비를 설득하여 돌아서게 만들던가.
그게 아니면 가주를 죽이고 가문의 수장이 되어 뜻을 반대로 세우던가.
율리아는 세실리에게 그  중 하나를 택하라 명령한 것이다.

명심하겠다는 세실리의 대답을 끝으로 잠깐 여인들의 대화가 끊어진다.
그러다가 율리아가 갑자기 멋쩍은 미소를 짓더니 클라우스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하하…. 오, 오늘 따라 쓸데없이 자꾸 분위기를 잡게 되네요. 미안해요, 클라우스. 혹여나  거북했다면….”
“아뇨. 오히려 당연한  아니겠습니까. 이제 곧 동부로 돌아가게 되면율리아, 당신은 절대적인 마왕이 될 것이고 나는 당신의 신하가 되겠죠. 그러니까 거북할 것도 없고 불편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아주 당연한 거예요. 조만간 내게 하대를 해야 할 텐데 그리 불편해 하면 오히려 당신만 힘들 겁니다.”

그리 말하며 클라우스는 손에 들고있던 수첩을 펼쳤다.
안에는 뭔가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는데, 순서대로 해서 앞의 부분들은 모두 완료되었다는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거나, 혹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잠시  안의 것들을 살피던 클라우스는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카데미의 방학이다, 그 시간동안 동부를  정리한 후 2학기 때 완벽하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부의 귀족들을 좀 놀려주다가 결국 불안감을 버티지 못 하고 전쟁을 선포하는 머저리들의 사지를 뽑아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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