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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화 〉16장 - 너희가 원하는 대로 (181/341)



〈 181화 〉16장 - 너희가 원하는 대로

“지금… 그게 무슨 말이지, 클라우스.”
“귓구멍에 진흙이라도 처발랐나. 관두겠다고 했다. 전쟁 영웅인지 뭔지, 여태껏 참으면서 귀족들이 싸지른 똥을 치워댔더니 이제는 선을 넘는데 내가 뭐라고 더 붙어있을까.”
“무엄하다! 평민이 감히 귀족을 모욕하는 것이냐!”
“왕국의 평민이 왕국의 귀족을 욕하는 것,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 그런데 말하지 않았나?  이제 왕국의 일원이기를 관두겠다니까? 너희가 원하는 대로 반역인지 배신인지 해주겠다고.”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사는 바로 이해했다.

귀족들은 지금 클라우스에게 마족과 결탁하여 뭔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아니냐.
그게 아니라면 얼른 왕국으로 돌아와서는 그에 대한 사죄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행동에 각별히 유의하겠다 맹세를 하면 된다, 이렇게 말을 전하고 있었다.

클라우스의 고개만 숙이게 만들면 자연스레 대륙 전쟁의 다른 공로자들도 침묵하게 된다.
그만큼 대단한 공을 세운 이는 없으니 클라우스의 길만 확실히 들여 둔다면.
귀족들 앞에 그가 고개를 숙이는 장면을 서부의 모든 평민들에게 알릴 수만 있다면.
대륙 전쟁 이후 어지러운 정국을 다시금 진정시키고 귀족 사회의 근간을 유지할 수 있다.

‘혹 클라우스, 그 남자가 체포 명령을 거부하면 어쩝니까?’
‘그럴 일은 없다.  긴 전쟁 속에서도 왕국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버틴 자다. 그 이후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고자 전공을 논할 때도 나서지 않았고 추종자들이 등을 밀어도 침묵했으며 마침내 모든 실권을 빼앗겼음에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 그 평민은 그런 놈이다. 명예 따위를 위해서 그런 멍청한 짓을 벌이는 놈이지. 걱정마라.’
‘….’
‘그래도 혹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부분을 상기시켜라.’


요제프 대공의 말을 떠올리면서, 클라우스를체포하러 온 귀족 기사는 입을 열었다.

“말조심하라, 클라우스. 홧김에 아무 말이나 던져보는 모양인데 허면 그대를 지지하던 키엔마이어 후작님부터 시작해서 많은 이들이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
“그대 하나의 그런 어리석은 짓으로 인해 그들이 그런 상황에 쳐한다면 어쩌려고 그러지?”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해야지.”
“…뭐?”
“여기서 나보고 뭘 더 어쩌라는 거냐. 10년이 넘도록 고생해서 뒤를 받쳐주었으면 이제 알아서 살아남아야지. 내가 그들에게 신세를   아니라 그들이 내게 신세를 진 거다. 그리고 너도,  부모도, 네 가족, 네가 떠받드는 왕국의 잘난 귀족들 전부 다!  덕분에 호의호식을 누리면서 귀족이 대단하다느니 그딴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 거다.”




클라우스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병사들은 물론이고 기사까지 움찔 몸을 떤다.
눈에 번뜩이는 진득한 살기는 클라우스가 단순히 홧김에 지금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님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어디 갈만한 곳도 없어서 참고 참았다만, 이제 행선지가 명확해졌으니 더는 더러운 꼴 볼 필요 없겠지. 너희가 그렇게나 찾던 전쟁 영웅은 바로 오늘 여기서 뒈졌으니 그 훈장이나 챙겨가라. 그리고 전해. 원하는 대로 이렇게 떠나주니 알아서들 하라고.”
“크, 클라우스! 그대는 왕국의 은혜를 저버리려는 것인가!”
“은혜는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은혜를 베푼  너희가 아니라 나고, 상대를 저버린 쪽은 내가 아니라 너희 귀족 꼴통들이다. 왕국을 등진 배신자가 되어줄 테니 해봐.”
“이놈! 역시 음험한 모략을 꾸미고 있었구나! 너를 당장 추포하여 귀족 회의로….”


기사가  손잡이를 움켜쥐고 거의 동시에 카엘라가 손톱을 빼어드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클라우스의 기사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모여있던 모든 이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세게 기사의 뺨을 후려쳤다.

짜아악!!-

기사의 입술이 다 터지고, 그 사이로 피가 줄줄 새어나온다.
도대체 얼마나 세게 후려친 것인지 여실히 다 드러나는 대목.
그리고 그의 뺨을 후려친 이는 클라우스보다도 더 한 살기를 품은 채 입을 연다.


“대륙 아카데미에서는 출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규칙이었다. 헌데 네놈이 쳐들어와서는 그걸 엉망으로 만드니 그 놀이에 나도 잠시 끼겠다, 버러지 같은 놈아.”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번뜩이며 율리아가 기사의 멱살을 틀어쥔다.
상대방의 키가 자신보다 더 큼에도 그녀는 그까짓 신체 차이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그를  바로 앞까지 내려앉혀서는 여태껏 한 번도 낸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남자는 너희들 따위의 노예가 아니야. 이제부터 내 사람이다.  사람, 내 것이라고. 헌데 이곳까지 쳐들어와서는 동부의 마왕 밑에 있는 이를 체포하겠다? 지금 너희가 그토록 원하던 평화를 내던지고 다시 전쟁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인가.”
“마, 마왕이여! 무슨 소리를! 크, 클라우스는 왕국의 사람입니다! 남자에 대한 신변은 우리들이 응당 관리해야 하는 것이며….”
“그에게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면서 배신이다, 체포를 하겠다,이런 헛소리를 하던 너희가? 무슨 권리로 그의 신변을 주장하는 거냐. 너희의 소유였나? 너희가 가진 적은 있었나?”

율리아의 분노가 가득 서린 질문에 기사는 함부로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제 앞에 선 마왕의 기세가 워낙 흉흉하고 날이 서서 두려움이 일기도 했고.
무엇보다 클라우스라는 저 남자가 비록 평민이기는 하지만 노예마냥 귀족들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이는 결코 아니다.

사실 체포이니 귀족 회의이니 가서 용서를 구한다는 것이니 전부가  거대한 연극이다.
몇 전부터 서부 대륙 전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대륙 전쟁에서의 공로자들과 그게 상당히 아니꼬운 자들이 바로 그 정체였다.

왕국의 귀족들은 당연히 공을 세운 이들을 불만스레 쳐다보는 쪽에 있다.
딱히 전쟁에서 도움이 되지도 않았고오히려  순간에조차 피해를 주었다.
그래도 딴에  짓들이 양심에 찔리기는 했는지 전쟁이 끝난 후 자신들의 과오를 최대한 축소시키려고 아주 갖은 수를 썼었다.

이번에도 그런 이유로, 아예 완전히 기를 꺾어두기 위해서 무리까지 했다.
어떻게든 클라우스가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의 명예를 깎아내리게 만든다면 안으로는 평민들을 잠잠하게 만드는 데에 더 효과적일 것이고 밖으로는 내심 자신들의 위세를 다시 찾고 싶어 하는 서부의 다른 이들과 조금  돈독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당연히 클라우스가 순순히 따라나서서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것이라고. 거기에서 끊임없이 압박을 넣어서 조금씩 깎아내리면 될 것이라고. 대공께서 그리 말씀하셨는데….’

설마 클라우스가 자신을 따르는 이들마저 죄다 버리고 원하는 대로 왕국을 떠나주겠다.
이건 너희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지 않느냐, 그렇게 말을 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 했다.
대륙 전쟁의 7년, 그리고 그 이후 5년이 흐르는 동안 클라우스에게 얼마나 많은 견제가 있었던가.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침묵하면서 끝내 왕국을 저버리는 모습 따위 보이지 않았다.

클라우스의 그런 모습 때문에 귀족들은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 이놈은 절대 왕국을 배신하지 않는 그런 쉽고 단순한 놈이구나.
충성이니 명예이니 하면서 기어코 그 자리에 고고히 서서는 죽음까지 맞을 놈이구나!



“꺼져. 그리고 가서 전해. 고맙다고. 이 남자를 내게 가져다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헌데  클라우스가 정말 이럴 줄이야.
심지어 요정이나 수인도 아니고 동부의 마족들에게, 자신이 그렇게나 혈전을 벌이면서 싸우고 막아내던 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줄이야!

‘상상도 못 했겠지. 자그마치 12년 동안 올곧고 충성스러운 영웅 연기를 했으니까. 안 속으면  지랄을 떨면서 개고생을 한 내가 너무 억울하잖아.’


클라우스는 속으로  기사와, 그 뒤에 있을 귀족들을 비웃었다.
이것으로 이제 서부는 이전과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더 혼란스러운 정국에 빠질 것이다.
자신이 동부로 넘어간 것에 대해서 누구는 배신이라고 침을 튀겨가면서 소리칠 테고.
또 누구는 귀족들이 그렇게 쪼아대니 결국 버티지  하고 넘어간 것이지 않느냐면서 귀족들의 끔찍한 만행에 목청을 세우고 비난을 할 게 분명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클라우스의 뒤에 있던 대륙 전쟁의 공로자들도 무조건 나서서 클라우스를 비난하면서 줄을 바꿔타던가 아니면 그를 이해한다고 외치면서 귀족들과 대립각을 세워야만 했다.
이 난리가 났는데 어중간하게 중립 따위를 지킨다던가 침묵하고 있는  가장 수상해 보이는 짓으로 보이기에 딱 이니까 말이다.

클라우스가 서부를 뒤로 하고 동부를 선택한 것은 사실.
그리고 그런 클라우스를 귀족들이 미친 듯이 괴롭힌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제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서 서로 물어뜯고 쪼아댈 것이다.



‘이렇게 서부가 난장판이 되어야 율리아가 방학 동안에 마음 놓고 동부를 정리할 수 있다. 뒤에 위협이 될  있는세력을 두고서 앞에 힘을 집중할 수가 없어.’


당장 몰래 율리아의 숙부와 손을 잡은 놈들이 서부에 몇몇 있다.
만에 하나 율리아가 자신에게 대항을 한다면 서쪽에서는 그들이 바람을 잡아서 동부의 국경을 압박하고 자신은 동쪽에서부터 천천히 제 조카를 밀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당장 서부가 개판이라면 억만금을 줘도 무시할 것이다.
제 코가 석자인데 하물며 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심지어 남보다  못 한 마족들 도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클라우스! 클라우스! 저, 정말 왕국을 배신하겠다는 것이냐!? 그대를 항상 믿어주던 자들을! 그리고! 아, 그래! 그대 휘하에서 마족들과 싸운 병사들. 피를 흘리고 전우들을 잃어가면서도 네놈을 따라 마족과 싸운 그들! 그 모두를 배신하고 마왕에게 기대겠다는 것이냐!”
“….”
“죄를 피하겠다고 도망치는 곳이 고작 그 따위라니! 너 같은 놈에게 전쟁 영웅이라는 과분한 칭호를 붙여준 여러 귀족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없는 것이더냐!!”

조금전 말은 어떻게 들어줄 수 있어도, 방금   넘네.

“죄를 피하다니? 내가 무슨 노예도 아니도 왕국의 사람으로서 동부의 마족과 친분을 다진 게 잘못인가? 전쟁 중도 아니고 이미 정전 협정까지 맺고 평화니 뭐니 떠드는 이 상황에?”
“네, 네놈은 군부의….”
“그 군부에서 있던 것도 너희 귀족 나부랭이들이 원하는 대로 물러났는데. 그래서 전(前)남부 사령관이지 지금도 사령관은 아니잖아. 아무 문제도 없는데 죄를 뒤집어씌운다, 라.”


여태껏 귀족들의 억지를 괜히 참아준 게 아니다.
놈들의 그 허황된 믿음이 절대 깨지지 않도록 만들어두고, 마지막 순간에 고춧가루를 뿌리기 위해서. 다만 그게 이유일 뿐이었다.

“하나 더. 전쟁 영웅이라는 칭호, 그거 너희가 붙여준  아니잖아.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부른 것일 텐데? 그리고서 저 잘난 훈장 하나 가슴팍에 박아주고 고생했다! 고생했으니까 이제 그만 뒤로 빠져라! 단물 다 빨아먹었으니 필요 없다! 이렇게.”



클라우스의 대답에 어버버거리던 기사가 막 한 마디를 내뱉으려는 찰나.
다시금 율리아가 그의 멱살을 강하게 움켜쥐면서 거기까지 하라는 뜻을 분명해 해 보인다.



“그쯤 해두는  좋을 것이다.  지껄인다면 그 때는 내가….”
“이이잇! 이 마족 때문에, 여인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정말 미색에 홀라당 넘어간 것이야?! 역겹다, 클라우스! 네놈을 믿었던 왕국의 이들 모두가 배신감을… 으븝?!”


 깜짝할 사이에 기사의 앞까지 날아온 클라우스가 그의 입술을 움켜쥔다.
그리고는 상당히 섬뜩한 미소를 짓더니 반대로 힘을 줘서 이번에는 입을 벌린다.


“내 왕이시다. 나까지 뭐라 하는  좋은데, 또 선을 넘네. 혓바닥은 몸을 베는 칼이다. 이런 좋은 말씀이 있는데 혹시 아나?”
“으븝!”
“알면 이럴 리가 없겠지.”



기사의 혀를 강하게 잡은 클라우스가 시퍼런 안광을 번뜩인다.
그런 클라우스의 눈을 바라보면서 기사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짓는다.
눈앞의 이 남자가 무슨 짓을 할지 거의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었다.

“아무튼 네놈이고 귀족 놈들이고….”
“으우우! 으우!”


주우우우욱--.



“이놈의 혓바닥이 문제라니까.”


찌지지직-.
찌이이익!!!-
투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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