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16장 - 너희가 원하는 대로
전투 마법 강의의 기말시험은 중간시험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진행되었다.
클라우스가 목표로 지정한 마력 응어리를 자신의 마법으로 일격에 격파하는 것.
언뜻 들으면 굉장히 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클라우스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사나운 고양이, 아니 호랑이 조교 카엘라가 방해를 한다.
거기에 더해서 그 주변에서 클라우스가 자신의 마력을 가속시키면서 또 온갖 마법들로 주변의 마력들을 흔들기까지 하니 비바람이 치는 날에 움직이는 과녁을 단 한 발의 화살로 맞추라는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카엘라. 적당히 해라, 적당히.’
일단 중간시험에서 하도 귀족 생도들이 지랄을 했기에 클라우스는 일단 그들의 항의를 들어주는 척 정도는 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카엘라라면, 자신만큼 아니 자신보다도 더 귀족에게 이를 가는 그녀라면 반드시 클라우스 본인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진득하게 인간 귀족 생도들을 괴롭힐 테니까 말이다.
“흐읍!”
생도들 중에서 가장 먼저 마법 표적을 맞춘 이는, 당연하게도 율리아였다.
이미 피나는 수련과 연습 끝에 마력 회로의 중간 중간에 마법을 박아 넣은 그녀다.
다른 생도들이 마력을 가속시켜 마력 회로 전체에 그 연료를 공급하고 그것들을 다시 끌어내어서 중심으로 몬 후에 머릿속에서 떠올린 마법을 발현하는 데에까지 시간이 걸리기 마련.
하지만 그걸 거의 반절 이상으로 줄이는 데에 성공한 그녀는 훨씬 더 빠르게 목표를 포착하고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공격을 할 수가 있었다.
파앙!-
마력이 깨지는 아주 청명하고도 기분 좋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말시험답게 상당한 난이도를 지니고 있었고, 그래서 성공하는 데에만 못 해도 20분 이상.
마력 운용 능력이 뛰어나지 못 하다면 30분은 훌쩍 넘는 시간을 예상하던 생도들이었는데.
단 10분 만에 율리아가 보기 좋게 성공을 하니 모두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서린다.
그 와중에 몇몇 생도들, 특히 인간 측의 귀족들은 클라우스를 노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왕과 은근히 사이가 가까워 보이던 그인데 설마 시험 부분에서 따로 도움을 준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의심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론 그런 의심을 증거도 뭣도 없이 그냥 제기했다가는 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해서 그들은 일단 두고 보자 식으로 눈을 뜨면서 자신들의 시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파아앙!!-
두 번째 합격자는 세실리, 약 15분이 지난 후였다. 이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고의 성적을 거두어서 오라는 것이었으니 세실리 입장에서는 정말 열심히 한 것이다.
덤으로 2등을 했으니 왜 1등을 하지 못 했냐며, 더 열심히 하라면서 클라우스도 괴롭힐 수 있는 매우 적절하고 논리적인 이유를 얻었고 말이다.
그 뒤로 20분이 지나자 다른 생도들도 하나둘씩 시험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나타샤도 껴있었는데 그녀가 지닌 원래의 마법 실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본인은 율리아나 세실리에 비해서 확실히 떨어진다고 생각했는지 퍽 아쉬운 표정.
‘리르도 평균 이상에 들어왔네. 확실히 버리기에는 조금 아쉬운 여자야.’
아무래도 조만간 속죄의 기회를 한 번 더 줘야 할 듯 싶다.
여전히 싸구려 여인의 맛이 나고 다른 여인들 마냥 자신의 마음을 홀리는 그런 매력은 없지만 때로는 그런 소소하고 평범한 부분이 별미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흐랴아아앗!!”
요상한 기합소리를 내면서 인간 귀족 생도들이 목표물을 격파하는 데에 성공한다.
저 정도 시간이면 상위권은 조금 힘들어도 중위권은 충분하다.
다른 생도들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귀족 생도들이 어떻게 성공을 하고 있냐고?
간단하다, 카엘라가 일부러 머리를 써서 몇몇은 적당히 건드리고 또 몇몇은 최대한 눈치를 채지 못 하도록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전에 귀족 생도들 전부를 밟아주니 그들이 서로 합심해서는 들고 일어났다.
결국 클라우스의 무력 진압에 바로 굴복하기는 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또 진압을 한다면 썩 좋지 않을 거라고 카엘라가 판단한 모양이었다.
해서 그들을 갈라놓기 위해 누구는 성적이 나름 잘 나오게, 누구는 성적이 엉망으로 나오게.
그렇게 차이를 두어서이전처럼 쉽게 단합을 하지 못 하도록 했다.
“끄억!”
해서 막 마법을 준비하려고 하는 순간 카엘라가 뒤통수를 쳐도 귀족 생도들은 불만스레 투덜거리는 게 전부였다.
자신들과 같은 귀족 생도들도 여럿이 일단 목표를 부수는 데에 성공했고 인간이 아닌 다른 생도들도 카엘라에 의해서 뒤통수를 계속 맞고 있는 중이니까.
더해서 굉장히 늘씬한 몸매를 지닌 수인 여성이 때려주니 그게 또 은근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전투 마법 강의의 기말시험은 예상했던 40분보다도 20분이나 늦은 1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다.
중간시험 때처럼 포기하고 관두는 이는 하나도 없었고 대신 누가 봐도 하위권인 이들이 꽤나 많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든 생도들이 시험을 치르자 클라우스는 생도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고생했다, 모두가 열심히 시험을 치렀으니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뭔가를 배워서 언젠가 유용하게 써먹는 것이니 너무 연연하지 마라.
끝으로 한 학기 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고 방학이 끝난 후 또 보기를 바란다.
뭐 이런 식의 말들로 생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뭐야. 왜 갑자기 저러는 거지?”
“클라우스 교수님 같지가 않은데.”
중간시험 때에는 하지 않았던 행동이기에 강의를 듣는 생도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한 학기의 끝이고 이중에서 몇몇은 다음 학기에 이 강의를 듣지 않을 수도 있기에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작별 인사라도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그들이었다.
실상은, 잠시 후 벌어질 일에 구경꾼들이 필요한 것이었지만.
“아, 그리고 기말시험에 대한 성적은 여러분들이 아카데미를 떠나 본가로 돌아가기 전에 이전처럼 강의실에 붙여서 알려둘 겁니다. 성적에 혹 의문이 생긴다면 언제든 찾아오고요.”
언제든 찾아와라, 성적에 의문이 생긴다면.
그 말에 몇몇 생도들이 움찔 몸을 떨면서 일단은 고개를 끄덕여둔다.
이미 중간시험에서 의문인지 불만인지 모를 것을 제기했다가 아주 신나게 털린 이들이다.
기말시험은 그 때보다 오히려 훨씬 나았고 괜히 가봤자 쳐맞기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병신이 아닌 이상 찾아올 리가 없었다.
“그러면….”
클라우스가 생도들에게 이만 해산, 고생했다. 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맞은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들로 향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린다.
생도들도 갑자기 전해지는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돌리고.
“뭐야. 왜 인간 측 병사들이 아카데미 안에?”
“이 안에서 교육 이외의 무장은 절대 금지라고 하지 않았어?”
척척척-.
열 댓 명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모두가 무장을 갖춘 왕국 측의 기사와 병사들.
어찌나 광이 돋보이게 갑옷을 손질했는지 햇살이 튕겨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선두에 선 기사는 검까지 차고 있었는데 이것은 서부와 동부가 합의한 ‘아카데미 내부에는 그 어떤 세력도 무장을 하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 라는 부분을 어긴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소용없겠지. 귀족 놈들이 기어코 서부에서의 뜻을 대충 모아서 한 번 정도는 눈을 감아주겠다고 답을 받았을 테니까.’
허면 동부의 마족들에게는 양해를 구했느냐? 아니, 그럴 리가 있을까.
어차피 동부의 상황이 이제는 서부에도 알려졌을 정도로 급박하니 그냥 저지른 것이다.
멍청한 놈들, 세상 모든 이들이 다 아는데 본인들만 여전히 잘났다고 생각하는 귀족들.
그들이 어떻게든 자신들의 위상을 세우겠다고 벌인 일이다.
“전(前) 남부 사령관 클라우스! 클라우스는 어디 있는가!!”
“여기 있습니다만, 아카데미 안에 무장을 하고 들어오다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미 서부의 요정, 수인, 그리고 제국과 왕국 모두가 수락한 부분이다. 그보다 클라우스. 어서 모든 업무를 중지해라. 그대를 당장 왕국으로 송환할 것이다.”
“송환이요.”
“그렇다. 군부에 몸을 담았던 이로서, 귀족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던 자로서, 왕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존재로서 어찌 마족, 그것도 마왕과 친밀한 관계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그대가 벌인 행동이 사람들을 모독하고 귀족들을 모독했으며 왕국을 모독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하여 귀족 회의에서 그대의 체포를 결의, 이렇게 우리가 아카데미까지 오게 되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생도들은 당연한 것이고 율리아와 나타샤, 세실리, 리르.
전부가 그 자리에 굳어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한다.
분명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있는데 너무 어이없는 이유로 체포를 하겠다는 말인지라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에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한편 카엘라는 바로 송곳니를 내보이면서 클라우스의 옆에 섰다.
만에 하나 저 인간들이 클라우스의 몸에 손이라도 댄다면.
당장 저들의 몸통을 조각내서는 그 잘난귀족 회의에 보내버릴 생각까지 품고 있었다.
“이게, 이게 도대체 무슨! 당장 멈추시오! 멈춰! 멈추란 말이야!”
뒤에서 아카데미의 총장을 맡고 있는 루스칼이 다급히 달려온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총장의 허락도 맡지 않고 밀어닥친 자들이라니.
너무나도 당혹스럽고 또 어이가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총장님은 침묵하시죠. 이건 귀족 회의에서 나온 체포 명령이고, 이미 서부의 이들이 우리들의 아카데미 행에 동의를 표했습니다.”
“아직 동부에서는 그 어떤 답도 받지 않았을 텐데 어찌하여! 게다가 서부의 모든 유력한 자들이 동의를 한 것도 아닐 테고 그냥 찬성만 하는 자들의 이름을 빌린 게 뻔히 보이는데!”
루스칼의 말대로, 서부의 동의를 구했다고는 하나 거기에 동조한 자들은 결국 대륙 전쟁에서 공을 세웠던 이들을 지워버리고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이들이었다.
시간도 충분히 지났으니 과거의 망령들은 다 거두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물러나십쇼, 루스칼 총장님. 그래도 당신이 귀족의 자리에 있던 분이라 최대한 예의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방해한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기사가 은근한 위협을 가하는데도 루스칼은 물러서지 않았다.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씩 험악해지려고 하는 순간, 클라우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뭐 배반이라도 했다. 전쟁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했기에, 왕국과 왕국민들 그리고 나를 신뢰해준 귀족들의 명예를 더럽혔기에 나를 체포하겠다. 뭐 이런 겁니까?”
“정확하다. 그러니 순순히 같이 가면 된다. 가서 네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면 될 것이다. 다시는 명예로운 이로서 이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될 것이다.”
“….”
“그대의 가슴에 달려있는 그 훈장. 그것의 가치를 안다면, 무엇의 희생으로, 누구 덕분에 그 훈장을 받을 수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다면 순순히 따르라.”
그래, 이렇게 나와야 우리 귀족들답지.
그렇게 고춧가루를 뿌려서 기어코 일을 진행하면 자신들도 그 매운 것들을 잔뜩 뒤집어써야 하는데 끝까지 지기 싫다고, 자존심 접기 싫다고 발악을 하는구나.
클라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늘을 위해 특별히 달고 나왔던 훈장을 가슴팍에서 떼어냈다.
그리고는 자신을 잡으러 왔다는 귀족 회의의 떨거지들을 향해서.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약간의 황금과 보석 몇 개, 그리고 철로 만들어진 장식품보다도 못 한 것을 그대로 내던졌다.
투욱!-
“뭐, 뭣….”
귀족들이 평민에게 하사한 훈장을 이리 험하게 굴리다니?
역시나 귀족가의 자제로 기사 자리에 오른 남자가 막 험악한 얼굴을 하려는 찰나.
“원하는 대로 해주마.”
“뭣이라?”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서부를 버리고, 왕국을 버리고, 너희 귀족을 버리고. 여태까지 내 적이었던 마족에게 넘어가주겠다는 거다. 전쟁 영웅? 때려치우지 뭐.”
“무, 무슨? 이, 이보게. 클라우스! 홧김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당장 귀족 회의에 출석해라! 가서 잘못만 시인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까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전해.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여태까지는 왕국의 전 남부 사령관 클라우스로 지내왔다지만. 너희들의 가장 든든한 방패였다지만 이제부터는….”
콰득-.
땅에 떨어진 그 잘난 훈장을 사정없이 짓밟으면서, 클라우스가 마침내 후련한 미소를 짓는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꾹꾹 참고 또 참으면서 기다려왔던 순간이, 비로소 찾아왔다.
“너희들 인생 최악의 적이, 왕국 역사상 최악의 배반자가 되어주겠다고. 그래, 너희 그 잘난 귀족 떨거지들이 그토록 원하던 대로.”
영원할 줄만 알았던 왕국의 충성스러운 방패가.
마침내 돌아서서는 반대로 서부를 으스러트리는 망치가 되는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