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2화 〉15장 - 차곡차곡 (172/341)



〈 172화 〉15장 - 차곡차곡

“정말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까? 평민이 귀족을 때려서, 그 부분에 갑자기 마음이 ‘불편’ 해져서 이상한 신념으로 무장한 채 내게 찾아와서 이러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클라우스의 말에 로머스는 순간 멍한 얼굴이 되어서는 제 앞에 앉아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담담한 목소리이나, 로머스에게 들리는 클라우스의 목소리는  어떤 것보다도 더욱 신랄하게 그를 비난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 경우를 다르게 잡느냐, 왜 여태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나서는 것이냐.
너와 같은 귀족이 이리 했어도 너는 당당하게 잘못된 것이다, 사과해라, 이렇게 말할 수 있냐.
클라우스의 그런   반문에 로머스는 순간적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했다.

‘평민에게 귀족이 사과를 한다? 귀족이, 평민에게??’

평민이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일만 하는 존재들.
하루하루 먹고 사는 낙으로 사는 게 전부일  미래를 보는 눈이 없다.
해서 그것을 대신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들 귀족, 평민들을 대신하여 미래를 설계하고 그곳으로 이끄는 존재들, 로머스는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믿어 왔다.

귀족들은 항상 옳다, 당장은 그렇지 못 한 것 같아도 결국 나중에 가서는 그리 될 것이다.
그게 바로 귀족들이 평민 위에 서서는 그들의 우러름을 받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그런 부분에 자긍심을 가지고 더더욱 옳은 길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것이 여태까지 로머스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었다.



“말해보세요.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생도들에게 시련을 준 나는 옳지 못 하다 말하고, 아무 이유도 없이, 혹은 그저 길을 가다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평민을  잡듯이 대하는 귀족들에게는 여태까지 침묵하지 않았는가,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달란 말입니다.”
“그건….”
“무, 무례하다! 아무리 교수라지만 감히 평민 따위가 귀족 자제에게 겁박을!”
“로머스님! 아, 아니! 로머스 생도! 그냥 나가죠. 역시나 평민답게 어리석게도 화풀이를 하기 위해서 다만 귀족 생도들에게… 으븝?!”
“커헉?!”


로머스의 떨거지들이 그대로 비명을 내지르더니 바닥에 엎어져서는 바동거린다.
두 명은 나타샤에게, 나머지  명은 플랑슈에게 붙잡힌 것이었다.
다 큰 청년들이 가녀린 여인들의 손에 얼굴을 붙잡히곤 바닥에 처박혀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 하고 다만 허우적대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사이좋게 붙잡혀서는 하는 말이 무엄하다! 내지는 로머스님! 도와주세요! 따위가 전부.
이런 쓰레기들이 심지어 인간 귀족들 사이에서는 최악이 아니라 오히려 평균이라고  수 있으니 용케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고   있었다.

“저것 보세요, 로머스 생도. 평민 주제에 무엄하다. 저런 말이 바로 튀어나오지 않습니까.”
“….”
“대답해보세요. 지금 내게 와서 이러는 것이, 정말로 불의를 보고서 참지 못 하는 것. 그 대단한 신념으로 인해 찾아온 건지. 아니면 다만 평민이 어떻게 귀족한테 그런 짓을! 이라는 생각에 신념이라는 것을 끼얹어서는 되도 않는 이상한 헛소리를 하기 위함인지. 확실하게 말해 달라 이 말입니다.”
“… ….”

로머스는 대답이 없었다, 아무런 말도 할  없었다.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클라우스의 말이 정곡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자신도 귀족이고 그들도 귀족이니까, 그래서 평민인  클라우스라는 남자에게 당당하게 옳지  한 부분에 대해서 말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니까.
자신들이 옳지 못 하다고 여기지 못 했다. 아니, 그렇게 여긴 적이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니까, 귀족이 옳지  하다는 것은 귀족으로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적에게 투항한다거나 그게 아니면 반역을 꾀하는 것 정도였으니까.


“대답을 못 하는  보니,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는 모양이군요. 그 요상한 신념 따위로 무장한 채 옳다, 옳지  하다  그런 헛소리를 하면서 찾아온 게. 실은 평민이 귀족에게 함부로하는 것이 너무나도 불편해서 그냥 ‘평민이면 주제를 알고 이렇게 해라!’ 라고. ‘해라!!’ 이렇게 겁박을 주기 위해서 날 찾아온 게 확실합니다.”

짝짝-.

클라우스가 가볍게 박수를 친다.
그러자 당장이라도 이 잡것들을 이대로 바닥과 하나로 만들어주겠다는 듯 경쟁적으로 로머스의 떨거지 친구들을 바닥에 쑤셔 박고 있던 나타샤와 플랑슈가 바로 손을 뗀다.
물론 여전히 이 천둥벌거숭이, 주제도 모르고 입만 놀리는 쓰레기들에게 가지는 반감이 상당했는지 험악한 표정은 전혀 지우지 않은 채였다.

클라우스는 그런 여인들에게 너무 흥분하지 말라는 뜻에서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러자 나타샤는 후우, 하고 가볍게 한숨을 흘리고서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다만 플랑슈는 메이드로서 의무를 다하겠다면서 그의 옆에 서서는 여전히 그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시선으로 로머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머스 차가르 생도.”
“에, 예. 클라우스 교수님.”
“내가 생도를 가르치는 교수된 입장에서, 동시에 당신에 비하면 인생을  많이도 산 선배로서 가르침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평민이라고, 나이만 먹은 자라고 어리석다거나 옳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린 채 경청하기를 바랍니다.”



경청하기를 ‘바란다’ 라고 말은 했지만 클라우스의 표정을 보자면.
그리고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경청 안 하면 상당히 험한 꼴 볼 거다.’ 라는 느낌이 아주 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당연히 눈치가 아예 없는 수준은 아닌 로머스는 바짝 긴장한 채로 클라우스의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한다.



“누구에게 적용되고 누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상한 정의. 되도 않는 요상한 신념 따위로 무장한 채 만만해 보이는 이를 찌르지 마세요. 한 두 번 맞아주고서 물러나는 게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언젠가는 상당히 기분이 더러워져서는 당신의 것과는 비교도 되게 날카로운 ‘진짜’ 창칼로 푹푹 쑤셔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억지에 걸맞은 것은 매밖에 없고 머저리 같은 신념에 어울리는 것은 죽창 밖에 없으니까요.”
“어, 어으….”
“부디 내 충고를 가슴에 새기고 나중에는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신념이나 정의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불가능할  같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지만요.”

클라우스는 그렇게 미소를 짓고서는 여전히 자신의 뒤에 얌전히 서있는 플랑슈를 바라본다.



“먼저  손님들은 이만 간다는구나, 플랑슈. 네가  배웅해주면 좋겠는데.”
“제가 말입니까.”
“내가 배웅하다가는 괜스레 실례를 저지를 것 같아서 말이다.”



돌려서 말하고는 있지만 더 보기 싫으니 얼른치워달라는 것.
그에 플랑슈는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여전히 멍하니 앉아서 눈만 껌뻑이고 있는 로머스를 향해 다가갔다.



“이만 일어나시죠, 손님. 제 주인께서 볼일은 다 보셨다고 하셨으니 이제 그만 나가주시는 게 응당 예의일 것입니다. 나머지 분들도 얼른 일어나시길 간. 곡. 히. 부탁드립니다.”



간곡하게,  정말 간곡하게 인지 아니면 너희 입에서 곡소리가 나기 전에 얼른 꺼지라는 말인지  수가 없을 정도로 섬뜩함이 느껴지는 부탁이었다.
덕분에 로머스의 떨거지 친구들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역시 밑의 사람은 위의 사람을 닮는다더니 메이드조차 건방지기 그지없다면서 얼른 이곳에서 나가자고 성화를 낸다.

정작 이 중에서 그나마 가장 살아있는 눈동자를 하고 있는 인물은 로머스인데.
나머지 이 떨거지들은 클라우스는 고사하고 메이드인 플랑슈에게 완전히 겁을 먹어서는 얼어붙은 몸짓과 흔들리는 눈빛을 하고 있는데.
참으로 어느 곳의 어느 귀족이든 입만 살아서는 나불거리는 것이 최고 수준이었다.

결국 플랑슈의 말과 제 떨거지들의 성화에 자리에서 일어난 로머스.
그는 내쫓기듯 클라우스의 교수실을 나서다 말고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클라우스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그의 차가운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움찔 몸을 떨고서는 입을 연다.



“…죄송합니다.”



로머스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서 교수실을 나섰다.
여전히 입만 산 제 떨거지 친구들과는 다르게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얼굴로.
이제야 뭔가를, 너무나 뒤늦게 깨닫기는 했으나 그래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듯이.

‘나중에 가서 귀족 사회의 개혁이니 뭐니 좀 떠들어줘라. 아주 신나게 말이야.’



 로머스라는 귀족 생도는 얼마 가지 않아서 귀족 사회의 이단아가 될 것이다.
갑자기 귀족도 평민과 다를 바가 없으니 그들에게 그 어떤 언행도 함부로 해서는  된다.
모든 것이 공평하게 적용되는 세상 속에서 비로소 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말할 것이니 귀족들 입장에서는 이단아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키엔마이어 후작도 평민들에게 유한 정책을 피자는 이지만 귀족 사회를 과하게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넘지 않아야 할 선에서 눈치껏 잘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로머스 차가르는 귀족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묘한 정의와 신념을 지니고 있다.
여태까지는 당연히 귀족은 옳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뇌의 뿌리까지 박혀 있었다지만.
클라우스가 아주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그 잘난 정의관과 신념을 새로 뚫어주었다.

정말 네가 원하는 그 신념을 당당하게 외쳐보고 싶다면.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너와 그 주변부터 엄하게 살펴보라고.
괜한 헛소리로 사람 속 터지게 만들지 말고 생각머리부터 바로 잡으라고 말이다.




“…정말이지 멍청한 놈들이었어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플랑슈,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나요?”
“그렇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차를 대접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메이드 입장에서 주인의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지 않는다는 수준이라니.
상당히 귀여우면서도 현재 그녀가  수 있는 가장 큰 분노가 아닐까 싶다.
클라우스는 쿡쿡, 하고 작은 웃음을 내뱉고서는 플랑슈가 정성스레 타준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클라우스님. 나타샤 벨라루스님은 어떻게 할까요. 역시 돌려보내는  좋을까요.”
“플랑슈? 그게 무슨 말이죠? 왜 나까지 내보낸다는 거예요.”
“주인께서 상당히 불쾌하신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이런 순간에는 혼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들끓는 속을 진정시키는 것이 최고로 좋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야 그렇지만 지금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그렇죠, 클라우스님?”
“주인께서는 많이 피곤하실 것입니다. 강의를 마치고 바로 오신 부분에  이상한 자들까지 대하셨으니 응당 손님들은 모두 물린 채 잠시나마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플랑슈의 말에 나타샤의 눈매가 매섭게 좁아진다.
율리아나 세실리, 그리고 카엘라는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했다지만.
더해서 초기부터 클라우스의 곁에 있던 여인들이니 경쟁심을 가지기보다는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이득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에 반해서 이 플랑슈라는 메이드는 영 불편하다고 할 수 있었다.




“메이드라면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다만 명령이 떨어지면 움직이기만 하면 될 텐데요.”
“그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숙련된 메이드는 때로 주인께서 놓치는 부분에 조심스레 말씀을 올리고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는 법이죠.”
“저번에는 그냥 지나가던 메이드라고 하지 않았나요? 왜 갑자기 ‘숙련된’ 으로 바뀐 걸까요.”
“지나가던 숙련된 메이드, 라고 정정토록 하겠습니다.”

이것들은 왜  갑자기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걸까.
클라우스는 슬슬 캣파이트의 낌새를 보이는 여인들을 빠르게 제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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