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15장 - 차곡차곡
“다들 중간시험이 끝났다고 낙심한다거나 기뻐하지는 마세요. 앞으로 한 달하고 조금만 더 지나면 또 다시 기말시험이 있으니까. 그 시험에서의 순위가 진짜 성적에 대한 순위가 될 터이니 안심하지 말고 항상 긴장하는 게 좋을 겁니다.”
물론 귀족 생도 놈들은 그 때도 다른 생도들의 든든한 바닥이 되어줄 테지만 말이다.
클라우스가 위로 식으로 그렇게 말을 하니 대부분의 생도들은 기말시험에서 역전의 각을 노리고자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귀족 생도들 역시 분하기고 아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가해진 방해는 다른 생도들에 비하면 정말 조금 쓰다듬어준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클라우스의 말에 일단은 한 번 참고 넘어가고자 한 모양이었다.
클라우스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넘어간 것도 있겠지만.
“오늘부터 조금 더 어려운 마법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여태까지는 근접 전투 부분을 강조하면서 거기에 보조되는 형식만 강조했지만, 그래서는 전투 마법 강의라고 할 수 없겠죠. 때로는 근접 전투 능력이 보조가 되고 마법이 주가 되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
“이전에 내가 보여주었던 상대방의 마법을 완전히 파훼하는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지만 아직 숙련되지 않았거나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는 쓰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보다 더 강력하고 더 치명적이며 더 빠르게 마법을 준비하여 더는 적이 마법을 운용하지 못 하게 만드는 것이죠. 치명상을 주는 것도 좋지만 내부의 마력을 진탕으로 만들어서, 혹은 외부의 마력 흐름을 흐트러트려서 일시적으로 마법을 쓰지 못 하게 하는 방법도 하나의 좋은 수가 될 수 있습니다. 세실리 생도.”
“네, 네?!”
“미안하지만 잠깐 앞으로 나와 주겠습니까?”
많고 많은 생도들 중 하필 세실리를 부른 것은 역시나 이 다음 일어날 일이 매우 아프기에.
다른 생도들은 그 고통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확실하지만.
이 변태 마족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일 테니까.
‘중간시험 때 너무 신나게 조져두었으니까 잠깐은 회복 시간을 줘야지. 그래야 기말시험 때도 찰지게 쳐맞을 거 아냐.’
이번에 또 귀족 생도를 조지면 이 머저리들도 단합해서는 덤벼들 게 뻔하다.
그럴 바에 괴롭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오히려 너무 기뻐해서 문제가 될 여지가 다분한 여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 좋았다.
“세실리 생도. 이제부터 간단한 충격 마법으로 나를 공격하세요.”
“제, 제가요?”
“예. 당신이 나를 공격하면 됩니다. 간단하게 충격 마법 한 번이면 될 거예요. 혹시 뭐 불가능하다거나 힘든 부분 있습니까?”
“아… 어, 없습니다. 교수님.”
“그러면 시작이라고 말하면 바로 마법을 준비해서 내게 쏘아 보내세요.”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것이 더 취향일 여인이겠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슬그머니 자세를 잡는 세실리였다.
하지만 곧 그녀는 당하는 쪽이 클라우스가 아니라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준비하고, 시작하세요.”
우웅! 웅!-
클라우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세실리가 재빠르게 마력들을 조합해서는 미리 생각에 두고 있던 마법을 발현해낸다.
거창한 마법이 아니라 제압 수준의 충격 마법이니 오래 걸릴 것도 없다.
해서 세실리의 마법이 막 완성되는 순간, 클라우스는 그보다 조금 더 이른 타이밍에 반대로 충격 마법을 완성해서는 바로 세실리한테 날려 보냈다.
콰아앙!!-
“꺄악!”
쿵! 우당탕!
데구르르- 쿵!!-
그대로 마법에 적중 당해서는 뒤로 날아가 강의실 끝까지 데굴데굴 구르는 세실리.
겨우 벽에 부딪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던 그녀는 낑낑거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다른 생도들이 보기에는 고통, 그리고 부끄러움으로 인해 저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런 모든 부분이 쾌락으로 치환되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방금 내가 마법을 준비하는 것을 확인한 생도 있습니까?”
클라우스의 질문에 율리아와 나타샤, 그리고 꽤나 재능이 있는 몇몇 생도들이 손을 든다.
그들은 하나 같이 클라우스가 세실리보다 조금 더 늦게 마법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일단 이것으로 비겁하게 기습을 했다거나 생도를 속이고 공격했다는 말은 없을 테고.
“네. 맞습니다. 여러분이 봤다시피 나는 세실리 생도보다 더 늦게 마법을 구현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보다 더 빠르게 마법을 사용해서는 그녀를 제압하는 데에 성공했죠. 지금이야 단순한 강의이니 이 정도에서 끝났겠지만 이게 만약 생과 사가 오고 가는 전투의한 장면이었다면 지금쯤 저 뒤의 세실리 생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질문에 생도들은 뻔한 것이라면서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창칼이 한 번 늦게 나가는 것으로도 죽고 사는 게 갈리는데 하물며 마법에서 차이가 난다면.
그것보다 더 쉬운 대답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세실리보다 더 빠르게 마법을 썼을까, 궁금한 생도들이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신체 내부에 존재하는 마력 회로 곳곳에 일종의 마법 기억 저장소를 만들어둔 겁니다. 필요한 순간에 그곳으로 마력만 흘리면 바로 마법이 준비될 수 있도록 말이죠.”
“클라우스 교수님. 혹 지금 말씀하시는 그 저장소라는 개념이 마법학에서 말하는 부분 처리 이론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개념 부분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그건 어디까지나 이론만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두뇌와 중앙 마력 회로를 제외하고 다른 마력 회로에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일종의 장소를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마력 회로의 중간 중간에 마력만 흘리는 것으로 마법이 발현되는 저장소를 만든다.
그 말은 온 몸 곳곳에 새겨져 있는 그 저장소의 위치, 그리고 새겨져 있는 마법, 들어가야 하는 마나의 농도, 그리고 만에 하나 그곳이 파괴될 시 그 부분에 대한 처리 방안 등 온갖 부분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클라우스의 말에 조심스레 반박을 하는 생도의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이론상으로는 지극히 훌륭하나 그것을 진짜로 운용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또 난해하며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
때문에 대부분의 마법 운용은 마력을 가속한 후 중앙의 마력 회로를 거쳐서 마법으로 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생도의 말이 물론 옳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마력 회로가 망가져도 마나 가속이 힘든 마당에 그 곳곳에 저장소를 만든다면 더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죠. 하지만 저장소의 숫자를 줄인다면, 그리고 그것을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완전히 불가능한 이론 놀음은 아니랍니다. 충분히 운용할 수 있죠.”
실상은 회차를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거의 몸에 때려 박다시피 한 것이지만.
클라우스는 마치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이 나중에 가능해지는 인물이 이 자리에만 벌써 둘이나 있다.
‘나중에 가서는 세실리가 이걸 정말 유용하게 잘 써먹지.’
전투 부분에만 써먹는 게 아니다.
이 미친 변태 마족은 이후 중앙 마력 회로가 묶여 있는 상태에서도 마력만 가볍게 흘려서 제 몸에 스스로 전기 충격을 가하거나 조그마한 상처를 내는 등 별 해괴한 짓을 다 했다.
그나마 클라우스가 직접 괴롭혀주는 것에 비하면 너무 맛이 없다고 투덜거리면 얼마 가지 않아 관둔 게 다행이었다.
스스로 관두지 않았다면 분명 클라우스가 나서서는 미친 짓 좀 그만 하라고 일갈했을 테니까 말이다.
“여러분들이라고 해서 말도 안 되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잘만 하면 최소 하나 이상의 마법은 이렇게 운용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노력은 당연한 것이고 재능 역시 뒷받침을 해주어야 하겠지만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마법을 단 1초라도 빠르게 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차이가 나중에 가서는 2초, 5초, 10초가 될 수도 있음을 말입니다.”
“노력은 물론이고 재능까지….”
“이게 가능은 한 거야…?”
“아아, 오해는 마세요. 설마 두 달도 안 되는 시간을 두고 이런 정신 나간 짓을 때려 박으라고할 정도로 내가 막 나가는 교수는 아니지 않습니까?”
“….”
“….”
“….”
이 썩을 것들이 너무 대놓고 막 나가는 교수 맞다고 눈치를 주네.
그냥 확 다 한 번씩 밟아주고 다시 한 번 대답을 요구할까 생각도 했지만.
곧 클라우스는 율리아가 번쩍 손을 들고서는 ‘네!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해주는 덕분에 그 생각을 접을 수 있었다.
“흠흠. 아무튼 여러분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건 이겁니다. 순간적으로 마법을 확대한다. 즉, 마법이 발현되기 직전 마력의 출력을 높여서 상대방이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훨씬 더 강력한 공격을 가한다. 이 정도면 방금 전 내가 세실리 생도에게 가한 것과 거의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나보다 부족, 내지는 비슷하다고 여긴 마법이 갑자기 강해져서는 날아오는 것이니 당황 그 이상으로 허우적거릴 테죠.”
마력 출력을 높이는 방법은 크게 둘.
마력의 순간 가속을 월등히 높이거나 그게 아니면 마력 회로를 확장하는 것.
둘 모두 미친 듯한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설사 한 번 성공했다고 해도 그 상태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다면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굳이 비유하자면 운동이라고 해야 할까.
꾸준히 하면 조금씩 늘다가도 쉬다보면 순식간에 되돌아가는 것.
클라우스 본인이야 수십, 수백 년에 걸쳐 몸에 때려 박은 수준이라 가능하다지만 보통의 생도들은 매일 같이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범주였다.
“…해서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기말시험 전까지, 마력의 순간 가속을 본래 속도보다 더 내는 것. 혹은 마력 회로를 일부 확장하여 마력 공급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킬 수 있는 것. 이 둘 중 하나를 연습하면 되는 겁니다. 일단 이번 주는 그 부분들에 대한 간단한 이론을 잠시 설명하고 그 다음주부터 바로 실전으로….”
막 클라우스가 말을 이으려던 찰나 강의 종료 종이 울렸다.
다른 건 몰라도 강의 시작과 강의 끝은 확실하게 지키는 클라우스였기에 교수도, 그리고 생도들도 땡! 하자마자 바로 강의 준비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클라우스 교수님.”
막 강의실을 나서는데 옆에서 조심스레 다가오는 요정 생도.
클라우스 덕분에 평균 정도의 마법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달했으나 그 이상부터는 어쩔 수 없이 힘들어지는 한계를 지닌 나타샤였다.
그녀도 자신이 마법에 관해서는 영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지 이번만큼은 퍽 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다가온 것이었다.
“…다른 생도들은 얼추 이해가 가는 모양인데 저만 여전히 어려운 것 같아요.”
“그건 모르는 일이요. 어떤 멍청한 자들은 알지도 못 하면서 아는 척, 이해한 척 하고서는 나중에 가서야 다른 말을 하곤 하거든요. 그런 놈들이 가장 골 때리는 것들이죠.”
저 멀리 저들끼리 뭉쳐서 나가는 귀족 생도들을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었다.
마법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 하는 평민 클라우스가 해낸 것이라면 분명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혈통의 우월함에 기대는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이건 귀족이라고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튼 난해하다고 생각이 된다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아요. 나는 아는 것이 많은 생도보다는모르는 것이 많은 생도가 오히려 훨씬 더 좋거든요.”
그러자 나타샤는 싱긋 미소를 짓고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어째 당장 오늘 밤에라도 궁금한 건 참을 수 없다면서 찾아올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