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6화 〉15장 - 차곡차곡 (166/341)



〈 166화 〉15장 - 차곡차곡

“….”
“….”
“….”


새로운 주, 그 시작을 맞이하는 월요일 오전.
클라우스는 점심시간도 되기 전부터 자신의 교수실 앞에 진을 치고 서있는 생도들 때문에 상당히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
이유야 뻔한 것, 당연히 저번 주에 있었던 중간시험 점수, 그리고 순위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러 온 것이었다.


“자, 여러분들이   찾아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
“여러분들의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서, 이것 하나만 확실히 알고 가세요. 되도 않는 헛소리로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고 판단될 시 가차 없이 교수실에서 내보낼 겁니다. 여기서 내보낸다, 라는 말의 의미는 말로서 좋게 보내는 게 아니니 참고하세요.”

한 마디로 이의 제기하는 건 좋은데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쳐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
개소리 지껄이는 것에 대해서 시간 낭비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이상한 트집을 잡을 바에 가서 밥이나 먹으라는 소리였다.

그러자 몇몇 생도들이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복도 끝으로 사라진다.
중간시험에서 클라우스가 얼마나 거칠게 생도들을 다루는 걸 보고  겪은 이들이다.
협박을 한다는 것은 정말 그가 약속한 보복이 뒤따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겁을 먹었거나 자신의 이의 제기가 아무런 일리도 없는 개소리라는  인정한 생도들은 바로 반항심을 접고 물러난 것이다.


“자, 여전히 많은 생도들이 남았군요. 그러면 그쪽 생도들부터 안으로 들어올까요?”


가장 많은 수, 그리고 가장 많은 불만을 가진 생도들은 역시나 인간 귀족 생도들.
대놓고 클라우스의 애정이 듬뿍 어린 구타를 받았으니 할 말이 많은  당연했다.


“클라우스 교수님! 이건 정말 말이 안 됩니다! 다른 생도들과 우리들을 대하는 것이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았습니까!”
“이건 우리들의 점수를 의도적으로 깎으려고 했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님. 이것은 우리들 귀족 생도들이 서명한 항의서입니다. 이 많은 인원들이 클라우스 교수님의 불공평한 행동에 분노하고 실망하여 직접 우려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당하던 귀족 생도들이었다.
다른 생도들도 클라우스에게 꽤나 많이 당했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들 인간 귀족 생도만큼 철저하게 짓밟히고  견제를 당한 생도들도 없었다.
그걸 클라우스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이렇게 압박을 가한다면 향후 언젠가는 왕국으로 돌아와야  클라우스의 입장에서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아, 그렇군요. 그러면 일단,  좀 닫을까요?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가면 서로에게 많이 난감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 클라우스의 행동에서는 망설임도 걱정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웃으면서 교수실 안에 들어온, 아니 교수실 안에 갇힌 귀족 생도들을 다시금 하나씩, 하나씩 사뿐히 짓밟기 시작할 뿐이었다.

“착각도 정도껏 하세요, 여러분. 너희들 같이 더럽게 약한 놈들이 혹 다칠까봐 일부러 마력을 돌리지 않고 몸으로만 밟았을 뿐입니다. 다른 종족의 생도들은 마력까지 동원해서 두들겨 팼는데 그조차 억울해서 이렇게 찾아온 겁니까? 어이구, 정말 사는 게 아까운 분들 같으니라고.”
“꺼억! 꺽!”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래도 같은 인간으로서 정이 있어서 소리만 요란하게 해주었더니 본인들이 가장 아팠던 모양입니다. 네, 좋아요. 이렇게 된  진짜 아픈 것이 무엇인지, 진짜 짓밟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직접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입 다무세요, 빌어먹을 님들.”

물론 다른 생도들을 팰 때 마력을 사용했다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미쳤다고 마력까지 둘러서 팼다면 분명 생도 중 최소한 하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어디 부러져서는 의무실로 실려 갔거나 했을 테고.

하지만 이들은  사실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그저 자신들끼리 모여서는 항의서인지 뭔지 하는 서명문 따위나 만들어 올 뿐이다.
다른 종족들에게 먼저 다가가서는 정확한 사태 파악은 하지도 않았다.
이런 식이니 클라우스가 이렇게 거짓말을 입에 담아도 전혀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교수실 안으로 들어온   명의 귀족 생도들을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아주 두들겨  클라우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재차 물었다.

“자, 다시 묻겠습니다. 혹 이번 시험에 있어서 불만 사항이 있습니까?”
“어, 없습니다!!”
“없습니다, 교수님!! 없어요!”
“그렇군요. 없다면 나가서들 점심이나 처먹으세요. 아, 실례. 점심이나 드세요.”

대놓고 욕설까지 하는 클라우스임에도 귀족 생도들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원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인데, 이곳에서는 귀족의  어떤 거도 통하지 않으니 결국 주먹만이 가장 무서운 곳이라고 할  있었다.

귀족 생도들이 교수실에서 우르르 나와서는 도망치듯 흩어진다.
저들 중 또 몇몇은 이번 일에 다시금 앙심을 품고 제 가문에 알린다거나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공론화를 할 것이다.
교수로서 생도에게 갖은 폭력과 학대를 가한다고, 그리고 그 교수는 다름 아닌 클라우스라고.

‘나야 좋지. 계속 그렇게 해주면 알아서들 피 터지게 싸우거든.’


이전에도 말했지만 클라우스와 귀족 간의 갈등은 결코 클라우스 하나만의 싸움이 아니다.
그 뒤에 있는 생환병들, 그리고 대륙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포상을 받은 이들.
더해서 그와 비슷하게 영웅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포함되는 싸움이다.

클라우스가 그냥 조용히 얻어맞고만 있어도 그 뒤에 서있는 자들이 나서줄 것이다.
그가 귀족들에 의해 침몰하는 순간 그 다음 목표는 자신들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귀족들이 대륙 전쟁의 흔적을 전부 지우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다음, 들어오세요.”

다음으로 들어온 이들은 마족 생도들이었다.
전투 마법 강의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생도들.
그럼에도 클라우스를 찾아온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교수님. 이전에 있었던 시험에서 교수님이 행하신 행동들 말입니다….”

물론 그들도 클라우스의 중간시험에 대한 행동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했다.
너무 과한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고, 단순히 방해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뭔가가 아니었냐고.
그런 질문들에 클라우스는 미소를, 아주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답해주었다.

“내가 정말 개인적인 감정을 담았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여기, 내 방이 아니라 의무실에 나란히 누워서는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을 겁니다.”
“….”
“사지가 멀쩡했을까 그 부분도 장담을 하지  하겠군요.”

괜히 까불지 말고 조용히 받아들이라는 말.
어차피 너희들이 꼴찌도 아니고, 너희 밑에 든든하게 받쳐주는 고정꼴찌들이 있는데 괜히 몰려와서 이러고 있을 바에 역시나 나가서 점심이라 먹으라는 뜻이었다.

결국 마족 생도들도 별 다른 말은 하지  하고 다만 모두가 물러났다.
솔직히 클라우스의 말마따나 자신들의 밑, 즉 시험의 꼴찌들은 대부분 귀족 생도들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으니 순위에 대해서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컸다.

“다음, 들어오세요. 아, 들어오기 전에 한 번 생각을 해보고 들어오는 걸 추천합니다.”


클라우스의 경고에도 마지막 생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여태까지의 생도들처럼 클라우스 앞에 항의하듯 서는 것과는 다르게.
산뜻한 걸음걸이와 달달한 향을 양껏 뿌리면서 이 방의 주인 앞으로 다가왔다.
직후 가볍게 몸을 날려서는 클라우스의 책상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걸터앉는다.


“불만 있어요, 클라우스 교수님.”
“네. 그 불만 사항 말해보세요.”
“너무 하고 싶은데, 교수님이 자꾸만 시간을 내주지 않는  같아요.”
“시간을 내주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원래 바쁜 거 아닐까 하네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바빠 보이지 않아서요. 다른 생도들 죄다 쫒아내고 이렇게 여유롭게 앉아계시잖아요?”
“앉아 있는 게 내 일이랍니다, 율리아 생도.”


그러자 책상 위에 앉아있던 마왕, 율리아는 미소를 짓고서는 자리에서 내려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클라우스에게 더 달라붙기 위한 것이었고,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겨든다.


“생도들이 귀찮게 했나보네요. 표정 봐, 무서워.”
“마족 생도들은 그래도 귀여운 편이었으니까 다행이었죠. 처음 들어온 쓰레기들 악취가 얼마나 심하던지 못 참고 다시 한 번 시험을 봐줄 뻔도 했네요.”
“그러면 그들은 꼴찌를 두 번 하는 건가요? 후후후.”

화사한 미소를 지은 채 따스한 숨결을 흘리는 율리아.
그 간질거리는 감각에 클라우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안아서는 다시금 책상 위에 앉혀두었다.

“그보다 방금 마족 생도들한테 귀엽다고 했네요? 혹시 다른 여성 생도한테 눈길을 준 건 아니겠죠? 우리 마족들이 워낙  나서 말이에요.”



율리아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듯.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점심시간을 틈타 남자의 단백질을 도둑질하고 싶은 듯.
자꾸만 클라우스를 툭툭 건드리면서 그를 자신에게로 이끌려고 했다.
생도복으로 완벽하게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단추를 조금만 풀어도 곧 그 어떤 것으로도 숨길 수 없는 그녀의 아찔한 자태가 드러날 것이다.

품고 싶다면 얼마든지 품어도 된다, 안고 싶다면 얼마든지 안아도 된다.
율리아는 몸짓과 표정으로서 그렇게 클라우스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이제부터 바쁠 거라고 했잖아요.  찾아온 건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요.”

하지만 클라우스는 노련하게 율리아의 욕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남자의 품에서 여인의 기쁨을 얻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지금 율리아는 무엇보다 마왕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실은 조금 있다가 나타샤와 점심을 같이 먹을 생각이에요.”
“둘이서요?”
“네. 둘이서 만요.”
“생각보다 사이가 좋아진 모양이네요.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가 먼저 요청했고, 단순한 식사 자리는 아닐 거라고도 말했어요.”
“그 말은, 식사 자리를 이유로 해서 뭔가를 말할 게 있다는 뜻이겠군요.”
“도대체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으니 흘리듯 이런 말을 했어요. 실은 이번에 요정 측에서 발견한 광산에 대해서 자세히 논의할 것이 있다고. 아마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이에요.”

그러자 클라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율리아는 자신의 말에 따라 국경 인근의 광산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그것을 동부를 지배하는 마왕의 뜻이라고 밝히라는 명을 마왕가에 알린 후였다.
물론 은이라는 귀중한 자원에 대해서 소유권을 왜 주장하지 않는냐는 반박일 막기 위해.
대신 그곳에서 나오는 일정량의 은을 받기로 할 것이라는 것도 덧붙였고 말이다.

“아무래도 당신이 말한  은광에 대해서 얼마를 떼어줄지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좋은 소식이군요.”
“좋은 소식인가요? 아직 제대로 개발도 되지 않은 곳인데 당신도 그렇고 나타샤도 그렇고 은맥이 발견되어서 대박이라도  것 같이 말하고 있잖아요.”
“당연히 대박이죠. 거기에 미리 자금을 넣은 나타샤는 아마 떼돈을  겁니다.”
“…음,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너무 아쉽잖아요?”
“그만큼 더 뜯어내면 되죠. 애당초 율리아가 물고 늘어졌으면 피곤해질 일이었으니까요.”

하긴 그렇죠? 라고 장난스레 웃으면서.
율리아는 클라우스가 밀어냈음에도 기어코 그의 품에 다시 안겨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체취를 가득 맡으면서, 속삭이듯이 입을 연다.


“당신이 말해 봐요.”
“뭐를요?”
“얼마를 받아야 할지. 얼마만큼이 적당할지. 당신이 말하는 대로  게요, 클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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