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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화 〉14장 - 주말이 더 바쁨 (162/341)



〈 162화 〉14장 - 주말이 더 바쁨

안젤리카는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제 앞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저를 찾아온  그 서신들을 각각의 이들에게 전달해라. 그걸 부탁하기 위함이었다고요.”
“맞아.”

너무나도 여유로운 자태, 그리고 목소리.
상대방의 그런 반응에 안젤리카는 다시 한 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자신이 무슨 서신을 전달하는 전서구도 아니고, 붉은 독거미의 단장이다.
얼마 전에 기어코 암흑가를 제패하고 주인이 된 세력.
그곳에서나오는 돈은 모두 붉은 독거미의 손을 거친다고 봐야 할 것이며.
암흑가에서 여인을 함부로 건드렸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 정도.
그게 바로 붉은 독거미라는 이름이 가지는 현재의 위상이었다.

물론 그 뒤에는 눈앞의  남자와, 그가 보내준 여인 덕이 아주 컸지만.
원래 암흑가에는 빈자리가 금방 채워지는 만큼 자신들이 아니었다면 그 빈 곳을 다른 세력들이 날름 먹어치우고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군림했을 것이다.
 붉은 독거미가 암흑가를 손아귀에  것은 그녀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결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신이 앞에 앉아있는  남성, 클라우스도 당연히 알고 있다.

“밑의 애들이 많이 바쁠 거다.   장이 아니니까.”

헌데 클라우스는 마치 당연한 일을 시키듯 그녀에게 서신들을 내밀었다.
그 수가 그의 말마따나 정말 꽤나많았기에 안젤리카는 한숨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붉은 독거미 측에 오셔서 하신다는 말씀이 고작 서신 전달이라고요.”
“고작이라니. 말이 조금 심한 거 아닌가 싶어.”
“아뇨. 적당한 수준입니다. 현재 암흑가 쪽이 많이 진정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곳저곳에 손이 많이 가는 상황이에요. 우리 애들도 눈코  새 없이 바쁘고요.”
“그래서?”
“그런 일들은 다른 자들에게 시킬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이런 말입니다.”
“내 부탁을 거절하겠다, 이렇게 들어도 되는 건가?”
“…최소한 우리들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지, 그 정도는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안젤리카는 클라우스에게 빚이 있다.
그리고 그걸 갚으려고 노력했고 얼마 전 마왕가에 엄청난 자금을 보내면서 그 마음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부탁한 일은 밑의 아이들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행하기에는 너무 보잘 것 없는 일로 보였다.
물론 클라우스에게 은혜를 갚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어디선가 피를 흘리며 싸우거나 진땀을 흘리면서 일하고 있을 밑의 부하들도 챙겨야만 했다.

클라우스도 그런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 고려해주는  알았는데.
그래서 그 엄청난 자금을 부탁하면서 제 부관을 시켜 암흑가를 싹 쓸어버린 줄 알았는데.


‘도대체 저런 무리한 부탁을 왜 하시는 걸까.’

이유라도 알았으면 속이라도 좀 시원했을 것이다.
서신을 전달하는 일을 왜 하필 음지에서 활동하는 붉은 독거미에게 부탁하느냐.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을 텐데 왜 하필 자신들이냐.
만약 자신들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결코 좋은 내용의 서신이 아닐 텐데.
은혜를 갚는 것은 당연하지만 만에 하나 그로 인해 죄 없는 밑의 여인들까지 해를 입는다면 자신은 또 얼마나 난처해지겠는가.

안젤리카는 그런 문제로 인해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려야만 했다.
당연히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과 그래도 자신이 한 집단의 수장인만큼 밑의 사람들을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하고 있었다.



“궁금하면 열어보던가.”
“…예?”
“아직 봉하지 않은 서신들이다. 열어봐도 아무 상관없다, 안젤리카.”
“하지만 제가 안의 내용을 보게 된다면 그건….”
“그로 인해서  불안감과 궁금증이 사라진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지.”


클라우스의 말에 안젤리카는 잠시 동안 갈등하다가 결국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가 내민 서신  하나를 집어 들어서는 조심스레 안의 내용들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어?”

 바람 빠지는 소리와 비슷한 탄식을 흘리더니 클라우스를 쳐다본다.
마치 이 서신에 적혀있는 것이 사실이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 클라우스는 네 생각이 맞다는 뜻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반응에 여인은 멍한 시선으로 다시금 자신이 들고 있던 서신을 확인한다.


“하하….”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한 안젤리카.
그녀는 그 후로도 계속 웃어대다가 다른 서신을 잡았다.
안젤리카는 안에 적힌 내용들을 읽기보다는 이 서신을 누구에게 전달해야 하는가.
그 부분을 집중해서 확인했고  자신이 원하던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왕국 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저는 아직 소식을 듣지  했는데.”
“걱정마라. 네가 늦은  아니라 내가 너무 빠르게 정보를 받은 거니까.”
“그러고 보니 클라우스님의 장기 중 하나가 정보 수집이었죠.  부분을 잊고 있었네요.”

안젤리카는 이제야 모든 수수께끼가 다 풀렸다는 듯 여유로운 모습을 되찾았다.
이후 서랍을 열고서는 담뱃대 안에 담배를 채우고서는 불을 붙인다.
후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여인의 퇴폐적인 모습이 한층 농밀해진다.


“왜 붉은 독거미 측에 이 서신들을 전달하라고 부탁을 했는지 이제 알겠어요.”
“서운하네. 난 조금 더 일찍 알아차릴 줄 알았어.”
“설마 이렇게까지 우리들을 생각해주실 줄은 예상하지 못 했으니까요. 빚은 제가  것이지 당신이 진 게 아니잖아요? 클라우스님.”
“아니. 너와 붉은 독거미 덕분에 나도 급한 불을 끌  있었다. 그러니까 빚은 갚은 걸로 쳐도 돼. 오늘 부탁에 대해서는 그 값으로 그들과의 연을 맺을 기회를 주는 것이고.”

서신들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는 클라우스.
이미 안젤리카는 알고 있겠지만,  안에 적혀있는 것은 다름 아닌 클라우스와 연이 닿아있는 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안부 인사.
허나 그 안에 교묘하게 들어가 있는, 이후 왕국의 상황과 클라우스의 입지.
그리고 그로 인해 흔들릴 수 있는 그들에게 향하는 걱정과 은근한 압박이었다.

클라우스는 이 서신들을 붉은 독거미를 통해 은밀하게 전달할 겸.
동시에 붉은 독거미를 자신의 든든한 지지자들이자 자신이 투자한 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이번에 이런 친구들과 연을 맺었으니 너희들도 혹 필요한 일이 있다면 의뢰를 넣어라.
우리들이 하는 일들이 결코 깨끗하지만은 않은 것들이니까.
암흑가의 이 독거미들이라면 분명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테니까.
뭐 이런 식으로 붉은 독거미를 그들에게 홍보해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챙겨주시는 것도 모르고 저는 그저 이기적인 생각만 했군요.”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인해 얻을 이득과 손해를 따졌다는 거군.”
“은혜를 입은 이로서, 은인을 앞에 두고서 그런 생각을 했으니 욕을 먹어도 싸죠.”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좋은데. 은혜를 갚는 게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 은혜 갚을  이왕 네가 더 잘 살고  커져서  많이 도와주는 것. 그게 나한테 훨씬  큰 이득이다. 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생각이 전혀 없거든.”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안젤리카는 그렇게 말한 후 제 앞에 있던 서신들을 조심스레 챙겼다.
그리고  서신들을 잘 봉해서 각각의 이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붉은 독거미의 신뢰를 걸고서 그리 하겠다고 말했다.



“고생 좀 해. 그게 전달되면 아마 너희들도 꽤나 편해질 거다. 이제는 아무 것도 아닌 나와는 다르게 다들 각자의 사회에서 한 가락 정도는 하는 이들이니까. 양지로 나아갈 때 꽤 많은 도움이 될 거다.”



그 말을 끝으로 클라우스는 안젤리카와의 만남을 끝내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농익은 몸을 지닌 여인을  번 안아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당장 오늘 아침까지 율리아와 침대 위에서 전쟁을 펼치다 온 터라 딱히 땡기지가 않았다.
배터지게 희대의 별미와 진수성찬을  먹었는데 보통 요리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또 저녁에는 불량 식품을 챙기러 가야 한다.
안젤리카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지만 그녀에게 더는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다음에 또 보도록 하자고, 안젤리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클라우스님.”

붉은 독거미의 아지트를 나선 클라우스는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
그 전에 간단한 상비약과 붕대를 구입한 그는 창 바깥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기말시험까지 끝내고 동부로 들어가면 율리아의 숙부놈을 조진다. 거기까지는 확정이야.  이후를 좀 생각해야 하는데. 모조리  죽일까? 아니면 몇 놈 정도는 살려줄까.’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한테 한 번이라도 좆 같이 군 귀족들은 모조리 쳐죽일 계획이다.
자신이 무슨 성자도 아니고,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뺨을 내주는 이도 아니다.
자그마치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당하고, 당하고,  당하기만 했다.
그저 율리아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버틴 것이지 결코 좋아서 참은 게 아니었다.

다만 이후 일이 조금 고민이었는데, 자신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 귀족들이야 항복을 종용해서 살게 해준다고 하지만 나머지 이들이 고민이었다.
적의를 품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도 아닌 자들.
그런 놈들까지 싹 다 정리를 해서 인간 측을 침묵시키느냐.
아니면 그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써서 율리아에게 자비로운 마왕의 이미지를 주느냐.


‘고민이네.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도 있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결국 전부 다 나오는 것이니… 어찌한다. 불만의 기운을 싹 다 없애는 편이 낫나. 아니면 요정들과 수인 측에 갈등의 분위기를 조장하기 위해 살려두는 게 낫나.’


고민을 하는 사이 마차는 아카데미에 다다랐다.
마침 딱 저녁 시간이 가까워졌기에 클라우스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여는 순간 예상했던 대로 플랑슈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때를 맞춰서 오시니 참 다행입니다, 클라우스님. 저녁 식사를 준비해두었습니다.”
“고생했네, 플랑슈.”
“과찬이십니다. 서둘러 씻으신다면 요리들이 식기 전에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어제 밤에 율리아에 의해 강제적으로  방으로 쫓겨났던 플랑슈다.
그 부분에서 꽤나 화가 났었던 모양인데  분노를 이전보다 훨씬  근사해진 요리에 퍼부은  했다.

‘자신을 쫓아낸 율리아보다 당신에게 훨씬 더 쓸모가 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거지. 누가 메이드 아니랄까봐 표현하는 방법도 참 특이하단 말이야.’

여기서 그냥 아무 말도 없이 지나가면 분명히 이 여자, 더  앙심을 품을 것이다.
물론 율리아의 커피에 독을 넣는다거나  그런 짓을 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커피에 설탕을 일부러 조금 넣는 행위는 플랑슈에게 도움  것이 하나도 없다.
해서 클라우스는 자신이 나서서 이 메이드의 짜증을 풀어주기로 했다.

방법은 생각 외로 무척이나, 그리고 아주 간단하다.
플랑슈가 혼신의 힘을  한 이 저녁 식사를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

“예술인데, 플랑슈. 정말 놀랐다. 이렇게 맛있는 저녁 식사는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아.”
“과찬이십니다.”
“정말이야. 매번 그저 그런 저녁 식사를 하다가 이런 진수성찬을 맞이하다니 꿈만 같을 정도다.”


너무 과한 칭찬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도 하지만.
이미 클라우스에게 완벽하게 호의적인 플랑슈에게는 그런 것도 없었다.
클라우스가 말하는 대로 듣고 생각하는 단계에 있으니 불편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앞의 남자가 정말 정신없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면서.
플랑슈는 자신이 조리한 요리들의 종류와 요리 방법부터 시작해서 양과 색까지 전부 기억했다.
그리고는 행여  부분들을 잊어먹을까 뇌리에 각인을 시켜두었다.


‘클라우스님께서 이런 요리들을 좋아하셨군요! 돌아가서 바로 철저하게 복습을 해야겠어요!’


원래라면 또 제 방에 가지 않고 어슬렁거릴 플랑슈이지만.
이렇게 방으로 돌아가서 할 일을 만들어준다면 그녀는 무조건 돌아갈 수밖에 없다.
클라우스는 바로 그 부분까지 노리고서 칭찬 일색을 늘어놓은 것이었다.
오늘 밤에는 불량식품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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