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14장 - 주말이 더 바쁨
“하악, 하악….”
“후우, 후우….”
“하, 항복… 항복할 게요….”
불타는 금요일을 넘어 토요일 새벽을 지나 이른 아침까지.
두 남녀의 불길 어린 정사는 결국 여인 측의 항복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몸을 가눌 힘조차 없는지 율리아는 완전히 몸을 늘어트린 채 침대 위에 엎어져서는 숨만 간신히 허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율리아의 몸에는 남녀가 흘린 땀과 온갖 액체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위에 올라탄 클라우스는 땀을 엄청 흘렸고 또 율리아만큼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직 한 두발 정도는 더 뺄 수 있는 체력을 남겨둔 상태.
남자는 슬그머니 제 물건을 여인의 음부에 비비면서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연다.
“어째, 한 번 더 할까? 아직 할 만 한데.”
“아, 아뇨! 제, 제발 그만. 이 정도면 되었어요. 오늘은 항복! 더 하다가 나 진짜 죽어요.”
“그래요? 난 한 번 더하고 싶은데. 한 번 더 하자, 율리아.”
“제발! 제발요!! 항복!! 항보오옥!!”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라는 듯 율리아는 그녀답지않게 울먹거리는 목소리까지 냈다.
실제로 그녀는 한 번 더 했다가는 정말 온몸이 말라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새벽까지는 그래도 버틸 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클라우스도 슬슬 지쳐서 자존심 상하지 않게 물러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클라우스는 몇 달을 굶은 남자처럼 미친 듯이 자신의 몸을 탐하고 또 탐했다.
“하으으….”
간신히 몸을 일으킨 율리아는 슬쩍 밑을 바라보았다.
안을 꽉꽉 채우다 못 해 넘쳐흐르는 허여멀건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율리아는 그런 제 가랑이 사이를 바라보다가 눈을 흘기고는 입을 연다.
“…짐승.”
“억울하네요. 아니, 먼저 하자고 한 건 율리아였는데 왜 내가 짐승 소리를 듣는 거지?”
“이렇게 밤새서 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기껏 해야 새벽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여태까지는 내가 봐준 거예요. 율리아가 시작부터 나한테 겁을 먹으면 안 되니까.”
“겁을 먹어요? 내가요? 하! 내가 누구인데 그런 말을….”
“한 발 더?”
클라우스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율리아의 허리를 콱! 하고 붙잡는다.
분명 장난기 어린 손짓, 그리고 목소리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율리아는 질겁하면서 ‘아뇨! 살려줘요! 살려주세요, 클라우스님! 살려주세요!!’ 라고 앙앙 소리를 질러댔다.
정말 더 했다가는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린 눈길을 한 채 말이다.
여인의 반응에 남자는 킥킥거리면서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제야 클라우스의 장난임을 알아차린 율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서 스러졌다.
태어나서 가장 피곤하던 순간이 제 숙부를 피해 도망 다니던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부로 그 가장 피곤한 순간이 바뀌었다.
‘진짜 이 남자 뭐야…. 여태까지는 그냥 맛보기였던 거야…?’
자신을 꽤나 거세게 몰아붙이던, 그리고 많이도 지치게 하던 클라우스.
하지만 새벽이 되면 그도 흔들던 허리를 멈추고는 이만 하자고 말을 했었다.
여태 그게 남자 역시 지쳐서 이쯤 하자는 말인 줄 알았는데.
설마하니 이렇게 엄청난 정력가였을 줄이야,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아닌가? 다른 여인들도 있으니까 오히려 이게 맞는 것일 수도….’
그렇게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영 좋지 않은 마왕이었다.
자신이 허락했다고는 하지만 제 남자가 다른 여인의 가랑이 사이를 쑤셔댄다는 장면은 여인의 입장에서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헌데 또 생각해보니, 오늘은 정말 오롯이 자신한테만 집중했다는 걸 또 느낀 율리아였다.
다른 여인들은 이런 황홀경을 아침까지 맛보지 못 했을 거라 생각하니 승리감이 든다.
율리아는 행복한 눈동자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제 숙부와 같이 자신의 몸뚱이를 탐할 그런 남자일 줄 알았는데.
설마 그 클라우스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고 충성을 맹세하면서 들어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남자가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 했다.
“….”
갑자기 이 남자를 놀려주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다.
해서 율리아는 제 배를 소중히 어루만지는 모양새를 취하고는.
짐짓 걱정이라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임신하려면 어쩌려고요?”
“에?”
“내가 기억하는 것만 열 두 번이에요. 열두 번. 이 정도면 아이를 가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마왕을 임신시킨 인간이라니. 동부 역사에 길이 남겠군요.”
율리아의 말에 클라우스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정말 정신없이, 그녀의 말마따나 짐승처럼 박아댔다.
하지만 설사 자신이 그 부분까지 신경을 쓰지 않고 미쳐 날뛰었을까.
스킬도 스킬이지만, 이미 자신은 율리아의 위험한 날까지 죄다 파악하고 있었다.
해서 이런 장난에는 넘어갈 수가 없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장난에 한 번 맞춰주기로 한다.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할 건가요? 죽일 건가요?”
“…네?”
“율리아의 말대로 인간의 피를 가진 아이죠. 마왕가에 맞지 않는 자손. 오히려 혼혈이라고 불리면서 그 어떤 마족에게도 좋지 않은 눈길을 받을 겁니다. 일개 마족이라면 또 모를까. 자그마치 동부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마왕이, 인간과 전대 마왕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니.”
“어, 어어?”
“왕권이 심각하게 흔들릴 겁니다. 지금의 율리아보다 더 심하게요. 만약 그 아이 대신 다른 마족과 이어져서 순수 혈통의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이미 경쟁자가 있는 상태죠. 그럴 바에 차라리 그 아이를 죽이는 게 율리아와 마왕가에게 이득….”
더는 들을 수도 없다는 듯, 율리아는 클라우스의 입을 제 입술로 막아버렸다.
너무나도 지쳤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었지만.
너무 기가 막힌 소리를 듣다보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방금 말, 다시 해봐요.”
꽤나 격렬한 키스 이후, 율리아가 꽤 화가 난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린다.
그러자 클라우스는 아이를 죽일 것이냐는 말을 다시금 꺼냈다.
허나 율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마치 자신이 말한 건 그게 아니라는 듯.
“내가 다른 마족과 이어진다고 했죠, 당신. 아뇨, 나는 당신만 있으면 돼요. 당신이 내 것인데, 내 남자인데 다른 건 필요 없어. 인간이라는 당신보다도 못 한 것들 천지야. 나를 이용하고, 배신하고, 버릴 생각만 하던 놈들! 차라리 당신이 나아. 아니, 당신만이 내게는 최고야.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다른 남자한테 안긴다, 뭐 이런 소리. 절대 하지 말라고.”
율리아의 두 눈에서 시뻘건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이를 죽일 것이냐는 질문보다, 다른 남자에게 안기고 그 아이를 밴다는 부분.
바로 거기에서 무척이나 감정이 상한 모양이었다.
클라우스는 바로 그리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미 율리아의 마음이 진심인 것이야 다 알고 있으니 이 이상 자극할 필요는 없다.
자신은 그저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그녀에게 살짝 물어본 것이 전부였다.
“하아…. 괜히 분위기만 이상해졌네. 이걸 어쩔 거예요.”
“아이 이야기를 한 건 율리아인데요.”
“난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 없었어요!”
“하지만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나는 인간이고 당신은 마족. 둘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는 혼혈이죠.”
“혼혈이 뭐가 어때서요. 약하기를 해요, 아니면 일찍 죽기를 해요. 그냥 부모 중 하나가 종족이 다른 게 전부인데.”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자리에 있는지, 그걸 잊지 말아요. 율리아.”
“….”
“미래의 왕에게는 그런 부분조차 심각한 약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자 율리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으르렁대듯 중얼거렸다.
감히 그런 말을 할 마족이 있다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싸그리 잡아 죽여 버리겠다고.
다음 마왕을 위해서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불충한 자들을 모조리 태워 없애겠다고 말이다.
이대로 더 두었다가는 정말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울 기세라 클라우스는 그녀를 말렸다.
단순히 말로만 말리는 것은 그리 큰 효과가 없으니 그녀를 안아들고서는 욕실로 향한 것.
덕분에 율리아는 바로 사나운 기세를 거두고는 왜 그러냐며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깨끗이 씻고 좀 자요. 밤을 꼬박 샜으니 엄청 피곤할 겁니다.”
“클라우스, 당신은요? 당신도 같이 자야죠.”
“하루쯤은 잠을 자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또 할 일이 있어서.”
“그러면 싫어요. 같이 씻고 같이 있을래요. 잠들었다가 눈뜨면 또 주말이 다 지나갈 거 아냐.”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면서 싫다고 항의하는 율리아.
하지만 샤워를 마치고서 물기를 다 닦은 후, 옷을 갈아입고 딱 침대에 누운 순간.
“우응….”
그녀는 정확히 단 5분 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말했지만, 피곤하지 않고 버틸 만하다고 우겨댔지만.
애당초 멀쩡했다면 클라우스가 한 번 더? 하고 들이댔을 때 하자고 덤볐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 율리아의 체력에 대해서 꽤나 자세히 알고 있는 클라우스다.
그녀가 지쳤는지, 아직 더 할 수 있는지, 혹은 무리하고 있는지.
몸짓이나 표정, 하다못해 몸의 떨림만 봐도 다 알 수 있는 경지라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율리아가 임신을 해서 아이를 가졌던 건 몇 번 안 되네.’
마왕 곁에 있는 인간 남성, 심지어 그 정체는 과거 대륙 전쟁의 숙적.
거기까지는 어떻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그의 능력이 뛰어났고 또 율리아를 도와 대륙을 통일하는 데에 일조했다니까.
하지만 그와 마왕이 이어져서 아이를 가지고 또 낳는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항상 왕의 자리에 있어 그 후계자를 논하는 것은 최고로 민감한 사안.
때문에 클라우스는 일단 그 골치 아픈 부분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마인드로 율리아의 임신 엔딩을 최대한 피해왔다.
하지만 그걸 또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는 노릇.
당장 이번 회차에서는 모든 걸 제대로, 완벽하게 이루겠다는 목표를 지니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부분에는 율리아와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겠어.’
혹여 율리아가 깨지않도록, 클라우스는 아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밤을 샌다는 것, 심지어 가만히 앉아서 샌 것도 아니고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면서 여인을 안다가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로 엄청난 피로를 동반한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바로 율리아 옆에 쓰러져서는 한숨 푹 자고 싶었지만.
몸을 깨끗하게 씻었음에도 여전히 남자를 홀리는 야릇한 향을 잔뜩 풍기는 여인을 안고서 오직 나만의 것이라 생각하면서 같이 잠들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은 이번 주말에도 꽤나 바쁠 예정이었다.
‘일단은 여기저기 다 들쑤셔볼까.’
가장 먼저 할 일은, 역시나 곳곳에 숨어있는 이들에게 바람을 잡는 것.
조만간 나한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은데 돈에 대한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비밀 서신을 보낼 생각이었다.
겉으로야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너 나한테 받아먹은 게 있는데 내가 좆되면 너도 같이 좆되지 않을까.’ 하는 협박성 짙은 질문이 담인 것.
클라우스와 조금이라도 연이 있다면 왕국 측에서 본격적으로 그를 공격할 때 반드시 그 앞에 방패로나서서 그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막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리르인가.’
저녁부터 밤까지, 율리아의 숙부가 보낸 다른 그림자들과 전투를 벌일 예정의 리르.
그냥 무시하고 죽든 말든 내버려둘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본인이 안았던 여인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는 일은 상당히 더러운 일이었다.
자신한테 미쳐있을 마족 여인을 어떻게 대해줄까 생각을 하면서.
클라우스는 일단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서신들을 작성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