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13장 -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결국 플랑슈는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속옷을 모두 착용한 채 클라우스의 등을 닦게 되었다.
못 이기는 척 받아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클라우스가 어림도 없다면서 냉큼 막아버린 것.
결국 아쉬운 대로 속옷을 입은 채로 플랑슈는 제 고용주의 등을 바라보았다.
“…상처가 많으시네요.”
“너와 같은 마족들이 입힌 거지.”
“…마족이 싫으신가요?”
“전혀. 싫었다면 너는 물론이고 율리아에 세실리까지 싫어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상처를 입힌 자들만 싫어하시는 건가요? 없애버릴까요?”
“지금 뭐라고 했냐.”
“아, 그러니까 제 말은 그들을 해하고 싶냐,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이 메이드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니면 모르고 그러는 건지.
자꾸만 제 본심을 슬그머니 드러내면서 클라우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만약 그가 침묵한다면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당장 실행할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클라우스가 플랑슈에 대해 아예 모르는 게 아니다.
그는 부탁이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확실하게 말해두었다.
지금 상당히 피곤하니 너까지 괜히 그러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클라우스의 입에서 피곤하다, 라는 말이 나오니 플랑슈는 안타까워 죽겠다는 듯.
어떻게 하냐면서 걱정이 가득한 한숨을 연신 내뱉었다.
“역시 클라우스님, 세실리님을 위해서 그러신 것이었군요.”
“굳이 말하자면 그렇지. 그보다 내가 세실리를 만나러 간다고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희미하게나마 세실리님의 냄새가 났습니다. 그것으로 알아낸 것입니다.”
수인도 아니고 냄새 좀 맡았다고 그 정체를 파악했단다.
심지어 체취보다도 다른 뭔가의 냄새가 더욱 진하게 났을 텐데.
그걸 세실리의 것이라고 단번에 알아차린 부분부터 역시나 최강의 메이드다웠다.
아무튼 간에 플랑슈는 열심히 클라우스의 등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물을 끼얹으면서 마무리 작업을 해낸 후.
막 일어나려는 클라우스의 어깨를 슬며시 붙잡고서는 입을 열었다.
“잠시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클라우스님.”
“음?”
“피곤하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때를 대비하여 저희 메이드들은 피로감을 싹 몰아내기 위한 안마도 기본 소양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안마를 해주겠다고?”
“그렇습니다. 가만히 있어주세요. 일단 어깨부터 부드럽게 풀어드리겠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였던 모양인지 플랑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후 천천히, 하지만 알맞게 힘을 줘서는 그곳을 꾹꾹 눌러주었는데 정말 플랑슈의 말대로 클라우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시원함과 함께 정신이 맑아지는 것도 함께 느꼈다.
기껏 해봐야 어깨 좀 주무르는 게 전부인데 몸이 이렇게 가벼워질 수가 있을까 싶다.
절로 입에서 ‘어으.’ 하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개운해지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클라우스의 반응이 무척이나 긍정적으로, 그리고 만족스럽게 흘러나온다.
그걸 눈치 챈 플랑슈는 이후로도 열심히 안마를 하다가 갑자기 아! 하고 탄식을 흘렸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제 뒤에서 여인의 탄식 소리가 들려오자 클라우스의 질문이 날아든다.
그러자 플랑슈는 고개를 젓고서는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클라우스님. 정말로, 별일, 아닙니다.”
“…묘하게 ‘정말로’ 와 ‘별일’ 에 악센트가 들어가는데. 솔직히 말해. 무슨 일이야.”
“정말 별일 아닙니다. 그냥 안마를 하다 보니 몸이 기울었고, 그래서 속옷이 클라우스님의 등에 닿았는데 거기에있는 물기로 인해 속옷이 다 젖어버려서 말입니다.”
진짜 대단한 여자야, 이런 작은 틈까지 놓치지 않는다니.
클라우스는 속으로 연신 감탄을 하면서 박수까지 쳤다.
율리아조차 이렇게 하지는 못 했던 것 같은데 역시 플랑슈답다고 해야 할까.
속으로 ‘그래, 네가 이겼다.’ 라고 중얼거린 그는 에휴, 한숨을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위는 젖었다고 해도 아래는 멀쩡하겠지.”
“그건….”
“상체를 기댔을 뿐이지 설마 하체까지 기대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게 아니라면 욕실 바닥에 주저앉기라도 했나, 플랑슈?”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됐어. 위의 속옷까지 벗는 건 넘어가주마. 대신 내 눈에 안 보이게 해라.”
네 생각대로 전부 다 되지는 않을 거다, 이 앙큼한 메이드야.
클라우스는 벗으라고 허락은 해주면서도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그렇게 네가 계속 들이대 봤자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고.
괜히 까불면서 간을 보려 하지 말고 그냥 차례를 기다리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플랑슈도 그런 클라우스의 속내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고개를 숙여 보인 그녀는 아쉬운 대로 일단 브래지어만 벗었다.
클라우스는 보지 않고 있지만 메이드의 가슴은 다른 여인들과 비교해도 꿀릴 것 하나 없이 아주 완벽한 풍만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면 안마를 재개토록 하겠습니다.”
일부러 클라우스의 귓가 가까이에 속삭이면서, 플랑슈는 다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어지는 안마 실력도, 그리고 전해지는 시원함도 전과 동일했다.
다만 이전과 확실히 다른 뭔가가 있다면 그건 클라우스의 등에서 느껴지는.
매우 말캉하면서도 부드럽고 또 따스한 뭔가일 것이다.
꾸욱! 꾹-, 말캉!!-
보지 않아도 다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이전 회차들에서 얻은 경험으로 통해 이 앙큼한 메이드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클라우스는 다 알고 있다.
안마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러면서 마치 제 가슴이 어떠냐고 질문을 하듯이 자꾸만 풍만한 유방으로 등판을 쿡쿡 찔러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들어먹을 생각이없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플랑슈 입장에서 최대한 많이 참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직접 청소를 하겠다면서 클라우스의 물건을 제 입 안에 넣으려고도 하니까.
가슴으로 등을 쿡쿡 찔러대는 건 차라리 약과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른 때에는 율리아 뺨치게 대단한데 이럴 때는 세실리만도 못 한 애가 되어버린다니까.’
이래서 플랑슈를 버릴 수가 없는 것이면서도 또 메이드 이상으로 쓰기가 모호했다.
다른 여인들은 클라우스를 강렬하게 원하면서도 또 원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성과를 일궈내서는 클라우스에게 선물로 내밀곤 했다.
하지만 플랑슈는 클라우스가 없으면 바로 생기를 잃고는 팔라티나트에서 보이던 모습그대로 말도 없고 감정 변화도 없고 그냥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은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런 식이면 다른 곳에 써먹고 싶어도 써먹을 수가 없다.
“플랑슈. 자꾸 가슴이 닿는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클라우스님. 하지만 클라우스님의 안마를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무척 불쾌하시겠지만 조금만 더 참아주시기를 간곡히 청하는 바입니다.”
“단순히 가슴이 닿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문지르고 있는 감각이 드는 건 내 착각인가?”
“아닙니다. 착각이 아닙니다. 제가 아직 안마에 미숙하여 몸을 밀착하지 않고 손을 쓰면 무척 부자연스럽기에 부득이 그런 방법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는 귀여움을 넘어서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차라리 다른 여인들처럼 그냥 박아달라고 한다면 그리 해줄 수도 있는데.
그런 말은 또 차마 못 하고 메이드로서의 업무이니 뭐니 하는 플랑슈였다.
그 후로도 플랑슈의 은밀하면서도 소심한 도발은 계속되었다.
만약 세실리와 한바탕 진하게 놀고 오지 않았다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클라우스도 자신이 어찌 변할 것이라고 장담을 할 수는 상황이었다.
“이쯤하면 되었다, 플랑슈. 이만 나가도 좋아. 가는 길에 밖에다가 내가 입을 겉옷들 몇 개 준비하고 그만 네 방으로 가서 쉬도록.”
“하지만….”
“명령이다.”
“…네. 알겠습니다.”
눈에 띄게 축 늘어진 모습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메이드.
그녀는 벗어두었던 옷들을 대충 걸치고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이만 가보겠다고.
편안한 밤 되시라고 인사를 한 후 욕실을 나섰다.
플랑슈가 사라진 이후, 클라우스는 피식 미소를 짓고 말았다.
여태까지 하도 닳고 닳아서 여인들의 성감대까지 죄다 꿰차고 있던 자신이다.
율리아부터 시작해서 리르까지 전부 다 말이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늘어지는 기분도 들고 긴장감이 떨어져서 심심하던 찰나였는데.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메이드, 플랑슈는 그런 클라우스의 권태를 지워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새로운 맛이 있어서 그런지 또 바로 낚아채고 싶은데… 급하게 먹다가는 체하니까. 일단은 천천히. 오늘은 세실리로 충분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클라우스는 일단 당장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특히 내일, 중간시험이 있는 바로 내일이 또 은근히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대놓고 예고를 했듯이, 합법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던 생도들.
특히 그 잘난 귀족 놈들을 아주 잘근잘근 밟아줄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 말이다.
* * * * * * * * * *
전투 마법 강의의 중간시험이 있는 금요일이 되었다.
생도들은 클라우스가 알려준 대로 강의실이 아니라 아카데미 안에 마련되어 있는연무장으로 전원 집합했다.
여태까지 열심히 강의를 듣던 생도들도, 그냥 대충 듣던 생도들도 전부 다 모인 상황.
“각 생도들은 다섯 명씩 짝을 지어서 시험을 치를 겁니다. 단순히 본인에게만 가해지는 방해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 가해지는 방해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내가 제시한 마법을 완벽하게 구현해해는 생도가 최고로 높은 점수를 받을 겁니다. 모두 숙지했습니까?”
“네, 교수님. 숙지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미리 정해둔 대로 첫 번째 조, 앞으로 나오세요.”
첫 번째 조에는 세실리와 다른 마족 생도, 그리고 요정 생도가 각각 하나씩.
그리고 클라우스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눈길을 보내던 인간 귀족 생도 둘이 있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펼칠 마법은 ‘섬광’입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나 강렬한 빛과 소리로 상대방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죠. 전투의 와중에 가장 중요한 감각인 시각과 청각이 마비되는 건 죽고 사는 문제로 직결되는 것입니다. 이 마법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섬광 마법을 사용하되 단순하게 빛만 폭발시키는 게 아닙니다. 본인의 눈과 귀까지 가린다면 그건 그냥 멍청한 자의 발악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마력의 양을 줄여 섬광의 크기를 반으로 줄이고 동시에 남은 마력을 재배치하여 귀를 보호하도록 합니다. 괜히 날 속일 생각은 마세요. 마력을 읽어보면 귀가 보호를 받고 있는지, 무방비 상태인지 다 알 수 있습니다.”
클라우스의 설명에 생도들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엘라는 조교로서 시간을 확인할 준비를 마쳤고, 이제 시험을 치를 일만 남았다.
“다들 준비되었으면… 시작토록 하겠습니다.”
시작하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섯 명의 생도 전원이 바로 마력부터 돌리기 시작했다.
섬광 마법 그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만 그 크기를 반 이하로 줄이는 것과 남은 마력을 재배치하여 귀를 보호하는 작업이 시간과 노력을 배로 잡아먹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생도들 중 가장 먼저 섬광 마법 쪽 준비를끝낸 건, 의외로 인간 귀족 생도.
다만 이 생도는 다른 생도들과는 다르게 일단 섬광 마법부터 준비한 후 거기에서 마력을 빼낼 생각이었는지라 바로 섬광을 터트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장 먼저 마법을 준비해낸 것은 사실이기에 다른 생도들이 오오, 하고 탄성을 흘리던 찰나.
“이건 보통 마법 강의가 아닙니다. ‘전투’ 마법 강의죠. 그리고 전투 상황에서는, 절대 적이 이렇게 순순히 마력이 모이는 꼴을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다.”
싸늘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고 잠시 후.
“꺼어어억!!”
어디서 돼지 멱따는 듯 한 구슬픈 소리가 들려왔다.
제 한 몸을 날려서는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귀족 생도의 배에 정확하게 ‘제트킥’을 날려버린 클라우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