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0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150/341)



〈 150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저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뭔 되도 않는 헛소리인가 싶었다.
혹시 자신을 노리는 비밀 집단이  여인을 미끼삼아 자신을 꾀어내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빈틈을 찾아 후벼 파기 위한 정적들의 책략인 것일까.

반짝이는 은발에 보랏빛 눈동자를 지닌 미녀 메이드.
클라우스가 건드릴 만한 여인으로는 충분하고도 남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때문에 그런 부분을 생각해서라도 클라우스는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뒷배가 전혀 없다, 그냥 정말 평범한 인생을. 그리고 메이드의 생활을 보낸 여인이다.
가지고 있는 능력은 분명 엄청난데 그것에 비해서 본인을 드러내지 않았고 아주 가까웠던 이들조차 플랑슈의 진가를 전혀 모르고 지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여인들처럼 미리 작업을 해둔 것도 아닌데, 서로 만난  순간부터 플랑슈는 정말 헌신을 다 해서 메이드 업무를 소화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메이드가 아니라 여인으로서 대하던 날.
클라우스는 왜  여자가 자신에게 이리 호의적인 눈길을 보내는지 알게 되었다.


‘설마 나로 인해 창조되었다는 부분이 그런 성향을 가지게 했을 줄은.’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플랑슈는 정말 뜬금없이 고안했고 또 등장했다가 사라진 인물.
클라우스가 예상키로는 아마 그 부분이 창조주인 자신에게 무한한 호감을 보이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전조사를 하고 뒤를 살피고 스킬을 써서 속마음까지 들여다보아도.
플랑슈의 어디에서도 수상한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저 뭐라도 더 해주고 싶다는, 오직 자신만이 클라우스를 위해 헌신하는 여인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장한 메이드일 뿐이었다.


“상당히 특이한 메이드군. 플랑슈.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나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습니다.”
“그 대답으로 인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고?”
“알고 있습니다.”


흔들림 하나 없는 표정, 그리고 몸짓으로 플랑슈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유가 없다는 저 말은 우습게도 사실이다.
그냥 존재할 때부터 저 여자는 클라우스에게 호감을 가지도록 설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심이 듬뿍 들어간 상태로 창조되어 잠깐 등장했다가 곧장 사라진 캐릭터.
그런 부분이 플랑슈를 창조주라 할  있는 클라우스에게 다가가려는 본능으로 이끌고 있었다.

‘문제는 저게 점점 심해져서는 조금 위험한 단계까지 간다는 거였는데….’

클라우스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라는 부분은 다른 여인들과 비슷하다.
헌데 여기서 문제는 갑자기 끼어들게 된 캐릭터여서 그런지 다른 인물들과의 마찰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캐릭터로.
아니, 더 나아가서 아예 다른 여인들은 배제하고 싶다는 마인드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성향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로 변모해간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아서 대놓고 혈투를 벌인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플랑슈를 처음 만났던 회차에서는 카엘라와 한바탕 거하게 붙기도 했었다.
그리고 심지어,  전투에서 약간이나마 우위를 차지하던 쪽은 플랑슈였었다.

호로록-.

커피를  모금 마시면서 클라우스는 플랑슈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아직 감당 불가능이라거나 어디로 튀어나갈지 알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다.
클라우스라는 확실한 잠금 장치가 있으니 어느 때고 지나가던 메이드를 잠가두고서 필요한 순간에만 ‘만져줘서 잠금 해제’ 로 둘 수도 있다.

거기에 율리아는 자신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마왕이어서, 나타샤는 요정 쪽과의 연결 고리를 맡아줄 것이어서, 세실리는 공식적으로는 마왕의 신하, 카엘라는 군단장을 맡을 것이어서.
그런 이유들로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아카데미 생활처럼 가볍게 대할 수가 없다.
하지만 플랑슈는 그런 거 없이 그냥 계속 클라우스의 메이드로서 근무할 뿐이다.

믿을 수 있는,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런 이가 바로 옆에 있다면.
심지어 메이드로서의 업무 능력만 뛰어난  아니라 다른 모든 부분이 완벽하다면.
거기에서 이미 이야기는 끝이 났고, 결정은 내려졌다고  수 있었다.


“…혹시 고용 계약을 파기….”
“안 한다. 고용한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자르겠냐. 그 먼 곳까지 가서 데리고 왔다면 못 해도 한 달 정도는 써먹어야 나도 좋고 너도 좋지.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하는 플랑슈였다.
그 모습에서 묘하게 적극적인 느낌을 받은 클라우스는 일단 그녀의 속내는 확인했으니 이제부터 주의할 점을 일러주기로 했다.

“다만 플랑슈. 내 메이드로서 지낼 거라면 몇 가지 인지하고 있어야 할 부분이 있다.”
“무조건 클라우스님이 먼저라는 것 말인가요.”
“그거 말고. 그건 당연한  아니냐.”
“아니면 위급 상황 시 클라우스님을 위해서 활로를 뚫는다거나.”
“그걸 왜 네가 하냐. 해도 내가 할 거고 그렇지 않아도 할 녀석은 많아.”
“…허면 제가 알아야  부분이 뭡니까?”
“아까 전 만났던 여인들  기억하나?”

그러자 플랑슈는 잠시  눈을 껌뻑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우스가 한 번 꼽아보라고 하니 금발의 요정은 나타샤, 호랑이 수인은 카엘라,  후에 들어온 마족 여인은 세실리, 마지막으로 등장한 이는 율리아라고 까지.
아무래도 클라우스와 그녀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그들의 생김새와 그들의 이름까지 전부 파악했던 모양이다.
역시 숙련된 메이드, ‘지나가던’ 이라는 칭호를 쓸 만했다.

“그들을 대할 때는 되도록 조심하도록 해.”
“클라우스님의 신변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자들입니까?”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라는 말이 혀끝에서 맴돈다.
막 플랑슈에게 뭔가를 말하려던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한기가 감도는  확인한다.
그 느낌이 마치 ‘그렇지 않아도 거슬리던데 죽이면 안 될까요?’ 라고 묻고 있는 듯 했다.
클라우스는 바로 고개를 강하게 저으면서 절대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 사람들이다. 내게 중요한 이들이란 말이야.”
“…손님이 아니었습니까?”
“손님이기도 하지. 아무튼 함부로 대해서는  돼. 알겠나?”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항상 클라우스님을 앞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 중 하나는 내 상전인데.”
“제게는 클라우스님이 유일한 상전입니다. 무엇보다 아무리 상전이라고 해도 이곳의 주인은  분들이 아닌 클라우스님이지 않습니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것이 당연한데 그들은….”
“플랑슈.”

엄한 목소리를 내니 플랑슈는 바로 흉흉한 기세를 거두고는 공손한 메이드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그게 자신에게 내리는 명령이라면 당연히 따르겠다는 말을 내놓았다.

확실히 얘도 이상해, 이상해도 아주 많이이상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커피 잔을 들었다가 이내 어느 순간 안의 내용물을 다 마셔버렸음을 깨닫고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기호식품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중독 수준으로 마시고 있는  같은데.
조금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몇 번 마시다보면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해서 플랑슈에게 다시금 커피 한 잔만  부탁을 한다.
그러자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잠시 후 다시금 커피  잔을 제대로 타 와서는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면 식사 시간입니다.”
“응?”
“너무 많은 음료는 좋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클라우스의 손에 들린 커피 잔만 바라보면서 그리 말하는 플랑슈였다.
그 모습이 마치 마시면 안 좋아요! 마시지 마! 하는 감정을 담아 열렬히 소리치고 있는 모습과도 같았기에 클라우스는 저도 모르게 흠흠 헛기침을 해댔다.


“아직 하루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런 질문을 하는  좀 이상하다만. 어떤 것 같아.”
“…이곳 말입니까?”
“그래.”

잠시 침묵. 그리고 생각을 마친 플랑슈가 입을 연다.

“상관없습니다.”


좋다, 나쁘다, 괜찮다, 아직 모르겠다,  이런 대답이 아니었다.
상관없다, 질문을 한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치   것이라고 할  있었다.

“상관없다?”
“좋든 좋지 않던 상관없습니다.”
“…이유는?”
“클라우스님이 절 고용하셨으니까요.”


이유가 참, 바람직한 것 같으면서도 또 바람직하지 못  것이다.
플랑슈를 말없이 바라보면서 그 대답을 진심으로 하는 것이냐고 재차 질문을 던져본다.
그에 은발의 메이드는 흔들림 하나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가 없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군. 믿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믿음이 가지를 않아.”


일부러 그렇게 딱 선을 그어두니 플랑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서는 어떻게 해야 자신을 믿어줄 수 있냐고 질문을 해온다.
클라우스는 그녀의 질문에 당연한  아니냐는 말을 하고서는 상세한 부분을 설명했다.

“앞으로 내가 하라는 건 하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으면 된다, 플랑슈.”
“어렵지 않군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끔은 메이드의 업무와 살짝 관련이 없는 일을 시킬 수도 있다.”


이전의 회차에서 클라우스는 시험 삼아 플랑슈에게 암살을 한 번 명령한 적이 있었다.
들키거나 아예 침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될 경우 바로 빠져나올 것을 말해두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클라우스 본인이 그녀의 뒤를 몰래 따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플랑슈는 그런 걱정 따위 전부 기우라고 클라우스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아주 완벽하게 상대를 암살하고서 그 증거랍시고 손가락을 잘라오기까지 했다.
제 주인이 자신에게 내린 일을 완수했다는 부분, 클라우스를 성가시게 만들던 놈을 제 손으로 죽였다는 즐거움, 플랑슈는 그런 부분들에서 환희를 느끼고 있었다.

그 후로 되도록 메이드 업무 외의 다른 것은 시키지 않았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을 경우에는 또 그와 비슷한 부탁을 해야  수도 있었다.

“…메이드의 주된 업무와는 다른 것 말입니까?”


헌데  말을 들은 플랑슈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입술이 가볍게 씰룩이는 것이나 여전히 공손한 기색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으나 손가락들이 서로 꼼지락거리는 모습하며 상당히 수상한 기색이 가득하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반응인지 몰라서 상당히 애를 먹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클라우스는 속으로 얼씨구? 하고 탄식을 흘리고는 플랑슈를 바라보았다.

“혹시 말씀하시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맞다면….”
“아서라.”

하다못해 그 세실리도 부끄러워하는 모양새는  취하던데.
플랑슈는 시작부터 대놓고 기대 중이라고 말하듯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아닌 척 하면서도 밤 시중을 들고 싶어 안달이 났을 때 으레 보이곤 하던 반응.
그걸  음흉한 메이드가 만난  하루 만에 바로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아니야, 이 여자야. 메이드까지 건드릴 명분이 없다고, 명분이.’

나타샤, 세실리, 카엘라까지. 모두 클라우스가 안아줄 적당한 명분이 있던 이들이다.
리르라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그녀는 아직 여인이라기보다는 장난감이나 불량 식품 정도가 한계이니 논외로 치도록 하자.
아무튼 율리아도  세 여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모두가 자신과 클라우스에게 나름 중요한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는  깨달았다.
해서 그들이 클라우스에게 다가가는 부분에도 적당히 해달라는 살짝 경고성이 어린 부탁을 했을 뿐 날을 세우고서 으르렁거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플랑슈는 아직 아니다.
당장 조금 전에 율리아가 나가면서 ‘허튼 짓’ 하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거라고 명백한 경고까지 날리지 않았던가.
그게 단순히 플랑슈에게만하는 게 아니라 클라우스 자신에게도 하는 것임을 모를 리가 없었다.


“플랑슈.”
“네, 클라우스님.”

여전히 뭔가를 기대하는  꽤나 강렬한 눈빛을 하고 있는 플랑슈.
그에 클라우스는 꿈 깨라는 듯 찬물을 끼얹어주었다.


“가서 청소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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