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9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149/341)



〈 149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이 여자들을 이대로 여기 두었다가는 죽도 밥도  된다.
하나 같이 개성이 강한, 정정하겠다. 성격이 강하다 못 해 지랄 맞은 이들이다.
클라우스 앞에서나 어쩔 줄 몰라 하는순수한 여인일 뿐이지 나타샤도, 카엘라도, 하다못해 세실리도 레블랑 가문의 마법 천재 막내딸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다.
저들이 한 곳에 다 모인다면 당연히 삐걱거리는 것이 훤히 다 보일 수밖에 없다.

여인끼리의 평화 회담? 당장 눈앞에  이상한 메이드가 클라우스 옆에 떡 버티고 서서는 마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빈틈이 보이는 것 같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날아들어서는 기회를 채갈 준비만 하겠지.

“차  잔 들으시겠습니까.”

정작 원인 제공자라  수 있는 플랑슈는 개의치 않고 자리에 앉은 여인들 사이를 종횡무진 다니면서 메이드의 업무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원인 제공은 그녀가 아니라 클라우스가 한 것이니 저런 당당함이 아예 이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슬슬 이 여인들을 전부 내보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노크 직후 바로 문이 열리더니 클라우스 공인 ‘여신’ 이 안으로 들어온다.

“저 왔어요. 시험 기간이라고 일찍 끝내줘서 바로… 뭐야. 다 여기 있네요? 무슨 일이람?”

확실히 다른 여인들에 비해서 여유가 느껴지는 마왕님의 등장이었다.
율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바로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슬쩍 플랑슈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고 있기는 한데, 율리아는 왜인지 모르게 그녀가 알게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 때 클라우스가 율리아에게 슬쩍 고갯짓을 해보였다.
자신이 죄다 내보내기에는 눈치가 보이니 같이  나서달라는 뜻.
눈치 빠른 율리아는 자리에 앉는 대신 플랑슈를 매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던 카엘라에게 다가갔다.

“카엘라 조교님. 중간시험 관련해서  도와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제가마력을 돌리는 동안 적당한 선에서 절 공격해주시면  것 같은데요.”
“…율리아 생도. 저는 적당한 선을  모르는데요.”
“크게 다치지만 않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
“그리고 나타샤, 곧 우리 강의 또 하나 있어요.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건가요? 전투 마법 강의에 열정을 보이는 것도 좋지만 다른 시험도 통과해야 보기 좋을 거예요.”


클라우스가 그런 율리아의 말에 ‘그렇지, 그렇지.’ 라고 동조하는 기운을 내비치자 얌전히 앉아있던 나타샤가 움찔! 하고 몸을 떤다.
그러고 보니 클라우스의 강의에만 너무 집중하느라 다른 강의에 소홀했던 자신이 생각난다.
전투 마법 강의에서 확실한 성적만 따면 되는  알았는데 설마 다른 강의의 시험 결과까지 신경을 쓴다니, 이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멍하니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다.

“카엘라 조교. 가서 율리아  도와주고. 나타샤 생도도 따라가서 훈련  같이 하다가 율리아 생도와 함께 강의에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네. 그러는  좋을  같네요.”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수님.”



클라우스 혼자만 해서는 잘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명실상부 첫 번째인 율리아가 와서는 빠르게 정리를 해주니 다른 여인들도 바로 수긍을 하고서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들 난다.

다만 아직 호명이 되지 않은 여인 하나는 심히 망설이고 있는 중.
세실리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면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따라 나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 건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세실리 레블랑 생도.”


당연히 클라우스는 그녀를 잊지 않고 챙겼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여인들은 죄다  번 이상은 안아준 마당에 세실리는 아직 제대로 쓰다듬어준 적이 없는지라 중간시험 전에 제대로 만져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중간시험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일 테고, 그렇게 해서 세실리의 이름값을 올려둔 다음 율리아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문을 더 퍼트릴 계획이기도 했다.


“시험 전날에 내가 직접 확인할 겁니다. 세실리 생도는 그래도 나와 대련을 하기도 했으니 직접 챙겨준다고 해서 다른 생도들이 불만을 가지지는 못 할 테죠.”
“아, 아아….”
“알겠나요, 세실리 생도? 목요일에 확인할 겁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라도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저거 진짜다.
실제로 세실리는 목요일 새벽부터 일어나서는 클라우스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율리아도, 나타샤도, 카엘라도 보통 여인들은 결코 아니지만 나사가  열  정도 빠진 부분에서는 세실리를 넘어설 인물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율리아가 오고 난 이후 잔뜩 날이 섰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후다닥사라지는 세실리를 필두로 카엘라, 그리고 나타샤까지 전부 클라우스의 방을 나선다.
마지막으로 그들을 이끌고 나가려던 율리아는 클라우스의 옆에 서있는 얌전히 플랑슈를 바라보고서는 설마 아니겠지만, 이라는 말로 운을 뗀다.

“설마 아니겠지만, 만에 하나 하는 말인데 말이에요. 메이드 플랑슈.”
“….”
“메이드로서 걸맞지 않은 업무를 한다면 당신의 고용주를 고용하는 이로서 화를  수밖에 없어요. 메이드의 업무에 소홀하지 마세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
“…네.”
“당신은 꽤나 영민해 보이는 여인, 아니 메이드 같으니  말을 이해했으리라 믿을게요.”

 마디로 허튼 짓 말고 맡은 메이드 업무에나 충실히 임하라는 것.
여기서 말하는 허튼 짓이 과연 무엇일지는 클라우스 본인이 가장  알 것이다.
율리아는 클라우스를 도와주는 동시에 이런 경고를 날려도 될 만큼의 정당성을 확보했으니 확실히 그녀에게 이득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플랑슈가 얼겠다는 뜻으로 작게 답을 하고서 허리를 숙여 보인다.
그에 율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서는 마침내 모두를 데리고 방에서 사라졌다.

쿵-.

“….”


마왕이 사라진 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플랑슈.
그러다가 슬쩍 클라우스의 책상 위 커피잔을 확인하고서는 슬쩍 입을 연다.

“커피, 더 필요하신가요.”
“한  더 끓여주면 고맙고. 아, 아니다. 한 잔이 아니라 두 잔으로 부탁하마.”
“알겠습니다, 클라우스님.”

예전이었다면 클라우스 본인이 스스로 커피를 끓여서는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능숙한 업무 능력을 자랑하는 메이드가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
거기에 단순히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1, 2위를 다툴 정도다.


“실례하겠습니다.”

쟁반 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오는 플랑슈.
그 중 잔 하나를 클라우스 앞에 내려놓고 비워진 잔은 쟁반 위로 올려둔다.
그리고는 클라우스가 그 잔마저  비우면 다른 잔을 또 내놓을 생각처럼 보였다.

“그거 하나는 네 거다, 플랑슈.”
“…?”
“그 커피,  마시라고 준비하라 한 거다.”
“….”
“쟁반은 테이블 위에 내려두고 그거 마시면서 자리에 앉아서 내 이야기 좀 들었으면 하는데.”

플랑슈는 잠시 동안 클라우스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잔 두 개가 올라가 있는 쟁반을 테이블 위에 두고서 조금 전까지 자신을 바라보던 여인들이 앉아있던 곳에 자리하는 플랑슈.
호록,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신 그녀는 클라우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다시 정자세를 한 채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앉아있었다.

제 앞에 앉아있는 은발의 메이드를 잠시 바라보던 클라우스.
그는 커피를 홀짝거리다가 잔을 내려놓고는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플랑슈.”
“…네.”
“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지?”
“…클라우스님 입니다.”
“더 자세하게.”
“…저를 새로 고용하신 분입니다.”
“그거 말고. 팔라티나트에서 지내면서 그  남매가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을 텐데.”
“….”
“정말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그것 밖에 없는 건가?”

도통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클라우스의 질문.
그러자 잠시 동안 그를 바라보던 플랑슈는 천천히 입술을 떼더니, 곧 팔라티나트의 어느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 했던 장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클라우스, 30대 초반에서 중반의 인간 남성. 전쟁 직전까지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음. 예상하기를 다른 평범한 인간들과 같은 삶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 중.  후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발발한 대륙 전쟁에서 일반 병사로 시작하여 엄청난 공을 세우며 평민의 몸으로 남부 사령관이라는 직위에까지 오른 인물. 마족들은 두려움과 경외의 의미로 남부의 악마라는 별칭을 지어주었으며 대륙 전쟁이 끝난 지 훨씬 후인 지금에도 클라우스라는 인물을 대단하다고 평가중. 총 7년이라는 전쟁 기간 동안 최소한 23번 이상의 회전(會戰)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며  외의 전투까지 합친다면 48번 이상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인간 측에 승리를 가져다 주었음. 마족들의 총공세를  번이나 격퇴하면서 동부의 마족들에게 엄청난 인적, 물적 손해를 가했음. 그로 인해 더는 피해를 복구하지 못 한 마족 측이 정전 협상을 제시. 전후 귀족들의 견제로 인해, 그리고 본인 스스로 정쟁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사령관 직위 반납 후 한동안 근신하다가 최근 대륙 아카데미에 교수로 있는 사실이 확인되었음. 신기하게도 휘하에 인간 소속의 병사뿐만이 아니라 요정이나 수인들도 일부 데리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그만, 거기까지.”


이대로 더 놔두었다가는 날이 샐 때까지 말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클라우스의 제지에 플랑슈는 공손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메이드라고 하는데 꽤나 많이 알고 있군.”
“…팔라티나트 영지에서 일할 때 들었던 이야기들을 간추린 것뿐입니다.”

플랑슈의 간결한 대답에 클라우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아무리 팔라티나트 삼남매가 자신에게 미쳐있는 열렬한 추종자라고 해도.
한 메이드 앞에서 그런 부분들을 매일 같이 떠들 만한 이들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메이드라 하면 그냥 자신들의 업무에만 충실해도 정신이 없는 이들이다.
저렇게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무슨 대본 외우듯 외워서는 줄줄 읊어댈 정도로 집중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소리였다.


“메이드들은 그런 부분에 관심 안 써. 대륙 전쟁 중이라면  모를까. 5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 대륙 전쟁의 영웅들은 이제는 지나간 영광, 혹은 전장의 망령 수준이지.”
“….”
“그런데 넌 나에 대해서 토씨 하나 틀리거나 빠트리지 않고 그렇게 외우고 있잖아? 그에 대해서 내가 수상하다고 느낀다면, 과연 그건 틀린 것일까 아니면 옳은 것일까.”
“….”

플랑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꽤나 오랫동안 이어지는 침묵, 그 속에서 메이드와 그 고용주는 서로를 마주본 채 여차하면 마치 생사를 가르는 결투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실은.”

그러다가 마침내 은발의 메이드가 조용히 말을 꺼내놓는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고수하고는 있지만 입가에 지어진 은은한 미소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실은, 클라우스님. 당신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나고 싶었습니다.”
“날 만나고 싶었다? 팔라티나트의 메이드였던 네가 무슨 이유로?”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이유 자체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유가 없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 만한 대답이다.
만나고싶었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하다가 이제는 이유 자체가 없는 것 같다니.
듣는 이 입장에서는 되도 않는 헛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말을, 플랑슈는 아주 공손한 자세와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그렇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당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언젠가 반드시 만나야 할 분이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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