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8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148/341)



〈 148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
“….”
“….”

어쩌다 보니 여인들의 삼자대면이 되었다.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그 때는 모두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로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나름 클라우스와 연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때봐 비교하자면 무척이나 달랐다.

일단 자리에 앉아있는 이는 벨라루스 가문의 요정, 나타샤.
찻잔을  채 가만히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중.
 맞은편에는 테이블 앞에 놓인 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앉아있는 카엘라.
두 눈 가득 경계심이 가득한 눈길로 역시나 누군가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차,  필요하십니까.”

그리고 그런  여인의 시선을  몸에 받고 있는 이는 역시나 은발의 메이드, 플랑슈.
나타샤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카엘라만큼 싸늘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인 특유의 동공, 특히 호랑이 수인의 섬뜩한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게 만들 정도로 스산하고 오싹한 기운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플랑슈는 어디서 고양이가 자신을 노려보는가 싶은 반응.
아주 여유로운 몸짓으로 차가 담긴 주전자를 들어 보인 그녀는 카엘라가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을 계속 노려보기만 하자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차  마실 생각이 아니면 말고, 라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또각, 또각-.

심지어 한술 더 떠서 플랑슈는 걸음을 옮겨서는 클라우스 바로 옆에 섰다.
다소곳하게 서있는 자세는 언제든지 자신을 고용한 이의 시중을 들 수 있도록 준비하는 준비된 메이드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당장 그 앞에 앉아있는 나타샤나 카엘라에게는 거의 광역 도발을 시전 한 것이었다.

“…크릉.”

당장이라도 뭐하는 짓이냐고, 떨어지라고 포효를 하고 싶은 카엘라였지만.
하필클라우스의 면전에서 함부로 소리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에 더해서 당장 카엘라 역시 메이드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을 고용한 이의 편의를 봐주는 이기에 플랑슈 입장에서는 저렇게 클라우스의 옆에 있는 것이 과거 대륙 전쟁 시절 자신이 그의 옆을 지키던 것과 같은 일이었다.

‘분해, 분해, 분해! 크아아앙!!’

으드득, 이를 갈면서도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카엘라였다.
차라리 플랑슈가 클라우스에게 살살 꼬리를 치는 여우같은 이였다면 나중에 두고 보자, 아주 제대로 손을 봐줄 테다! 라고 벼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헌데  여인은 정말 메이드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는 느낌만   다른  없다.
그러니 자신이 이렇게 분노와 질투를 하는 것마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편, 본래 가장 난처한 자리여야 할 클라우스는 한 발자국 뒤로 떨어져서는 낄낄대면서 상황을 관람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저 두 여인이 메이드 하나의 눈치를 보고 있다니.
 모두 클라우스 앞에서만 순종하는 여인일 뿐이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자존심이 강하다 못 해 아예 날이 잔뜩 선 여인임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우스운 상황이었다.

“플랑슈. 이 둘이랑 할 이야기가 좀 있으니 자리 좀 비켜줄래.”

물론 민심 관리는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분명  둘은 클라우스의 마음이 떠난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빠질 것이다.
플랑슈는 클라우스의 명령에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는 다른 방으로 사라졌다.

“…클라우스 교수님. 저 마족 여인 도대체 누구인가요.”

역시나 참지 못 하고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지는 건 카엘라였다.
물론 나타샤도 궁금한  참지 못 하겠다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얼른 대답해달라고 소리 없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클라우스는 카엘라의 질문에 별  아니라는 목소리로 답했다.
월요일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고용주를 찾고 있던 메이드를 만났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괜찮은 여인 같아서, 마침 점점 바빠지는 터라 청소나 다른 부분이 소홀해지고 있어서.
그런 이유에서 적당한 값을 치르고  여인을 메이드로 고용했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카엘라는 ‘저도 청소는 잘 할 수 있는데….’ 라고 중얼거렸고 나타샤는 ‘시간  때마다 찾아와서 청소 해드릴  있는데….’ 라며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아서라, 이것들아. 일단 카엘라 너는 청소를 하는 건지 파괴를 하는 건지 모를 수준이고 나타샤는 일단 하긴 하는데 너무 느려서 탈이야. 느린 건 죽어도  참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청소 쪽에서는 클라우스가  둘을 압도할 것이다.
둘 모두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쪽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부터 청소라는 것과는 거리가 아주 먼 그런 부류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청소를 시켜두면 하나는 꼭  개를 깨트리거나 부숴먹었고 다른 하나는 청소를 하는 건지 아니면 조각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의 느릿함을 자랑했다.

‘나라고 아무 생각 없이 플랑슈를 덜컥 아카데미에 메이드로 들인  아니란다. 애들아.’


클라우스는 가볍게 제 책상을 두드렸다.
메이드를 들이는 것은 개인적인 일, 두 여인이 관여할 부분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이 둘은 클라우스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카엘라 조교. 어제 생도들에게 중간시험은 잘 통보했겠지.”
“네. 확실히 알려줬습니다.”
“나타샤 생도. 중간시험의 방식에 대해서 말해보세요.”
“클라우스 교수님이 보이는 마법을 시간제한 없이 완성하는 것입니다. 채점 방식은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마법을 만들어 내는 순으로 들어가며 빠르게 마법을 완성했다고 해도 그 마법이 클라우스 교수님께서 확인하기에 완벽하다 싶지 않다면 점수가 깎인다고 했습니다.”
“즉 빠르기보다는 마법의 정확함, 그리고 치밀함에 신경을 써야겠죠. 잘 전달이 되었군요.”


후룩-.

플랑슈가 타다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는 클라우스.
역시 악마의 유혹이라는 이름답게 확 와 닿은 달콤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클라우스는 조금 더  맛을 첨가하는 걸 선호했는데 딱 자신이 좋아하던 커피 맛과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었다.

“….”

클라우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는  보면서 나타샤는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원래는 본인이 타서는 내어주려고 했지만 그 부분은 플랑슈에게 빼앗겼다.
거기서 조금 분한 마음이 들기는 했으나  그 커피를 즐겁게 마시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니 부정적인 마음이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다른 커피를 구해야겠군요.’

질 좋은 커피는 기호식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치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구하기 쉽지 않지만 나타샤 정도라면 어렵다고 볼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커피 정도로 클라우스의 저 웃는 얼굴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가 아닐까 싶다.


“당연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나타샤 생도.”
“네, 네!”
“실망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많이 챙겨줬잖아요?”

챙겨줬다 뿐이겠는가. 거의 다른 사람으로 만든 수준인데.
원래는  수준의 마법을 구사하는 게 불가능했던 캐릭터다.
만나는 여자마다 죄다 후리고 다니면서 희대의 카사노바 생을 살았던 회차에서 얻은 스킬로 막혀있던 벽을 뚫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여태도 마법은 최악이었을 것이다.

율리아나 세실리 정도는 되지 않더라도 평균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동안 신경 써서 교육도 해주고 개인 강습도 해준 보람이 있다.


“카엘라 조교는 이후 강의부터는 자율 훈련으로 전환할 테니 혹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생도가 있으면 바로 알려주고. 단순히 마법 실력이나 마력 가속 능력을 보는 게 아니야. 어떤 상황에서도 끝내 마법을 발현해서 자신의 약점을 가리고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야 해. 그것만 제대로 익혀도 어이없게 뒈질 확률이 줄어들 거다.”
“알겠습니다, 클라우스 교수님. 그런 의미에서 질문  가지만 해도 되겠습니까?”


클라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니 카엘라는 일단 클라우스의 교육 방식에는 전혀 불만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아무래도 질문이 시험 방식에 관한 것인 모양인데, 역시나였다.

“꽤 깊은 부분까지 보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럴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전쟁은 끝이 난지 오래고 괜히 그렇게 강하게 나가다가 자칫 생도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까 우려됩니다.”

 전쟁 상황도 아닌데 굳이 클라우스의 방식으로 시험을 치러야 하냐는 질문이다.
카엘라 입장에서는 당연한 질문인 것이 클라우스의 방식이 나중에 도움이 되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만 지금의 생도 세대들은 전쟁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자들이다.
당연히 그런 거친 방식을 이해하지 못 할 것이고 또 불만을 표출하거나 대놓고 적의를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카엘라는 그런 꼴을 그냥 넘어갈 자신이 없었다.
전쟁인 끝났다지만 또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것이 전쟁인 법이고 한 번 배워두면 분명 이득이 될 터인데 아무 것도 모르는 놈들이 감히 불만을 제기하는 꼴을 과연 넘어갈 수 있겠는가.

“당연히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겠지. 너무 거친 게 아니냐고, 이건 그냥 시험을 망치려고 이를 악물고 하는  아니냐고 말이야.”
“….”
“오히려 환영이다. 그런 반응이 나와야 진짜 거칠게 해준 거지. 그런 말이 안 나온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은데? 단체로 개과천선을 했거나 다 같이 미치지 않은 이상은.”
“클라우스 교수님, 그래도….”
“놔둬라, 카엘라 조교. 어차피 따라  놈은 다 따라오고 이탈할 놈은 붙잡아도 이탈하게 되어 있어. 남부에서의 일을 기억해봐라. 거기서도 내 방식에 불만을 품은 자들을 내가 붙잡았나? 다른 사령관 밑으로 가고 싶으면 얼마든지 가라고 했지. 보내줄 때 가라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이탈한 놈들의 결말은 어땠더라?”


당연한 말이지만, 전부 뒈져서는 길가의 나자빠진 시체가 되었다.
아마 죽는 순간에 다들 후회라는 걸 했을 것이다.
그냥 조금 더 힘들어도, 조금 더 거칠어도 원래 있던 곳에 있을 걸, 이라고.
물론 클라우스 입장에서는 말도 안 듣는 쓰레기들이 알아서 빠져나간 게 고마웠지만 말이다.


“눈치가 빠른 놈, 머리가 돌아가는 놈은 힘들어도 다 따라온다. 그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일단 이득을 보는 것과 손해를 보는 걸 구분할 줄 안다면 자격은 충분해. 그래도 명색이 전쟁 영웅이, 남부의 악마가 가르치는 전투 마법 강의인데 쓸 만한 생도들이 좀 나와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까지 말하니 카엘라도 더는 이견을 달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그녀가 걱정하는 건 괜히 생도들의 입에서 클라우스에 대한 평가가 오르내리는 것뿐.
칭찬일색만 가득해도 모자랄 판국에 감히 그 애송이들이 평을 하려고 든다니.
생각만 해도 그냥 죄다 찢어죽이고 싶었지만 카엘라는 그 감정을 어렵지 않게 참아냈다.

“그보다 나타샤 생도.  다른 강의 시간 아닌가요?”
“아, 아직 시간이 좀 남았어요. 괜찮답니다, 클라우스 교수님.”
“카엘라 조교, 너는 다른 생도들, 특히 세실리 레블랑 생도 잘 보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그 생도에 대해서 이야기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일단….”


똑똑똑!-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아니 변태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클라우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노크 소리가 들려온 쪽을 주시했다.
 그 너머에서 상당히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크, 클라우스 교수님 계신가요? 그,  카엘라 조교님이 보이지 않아서. 이, 일단 여기로 왔는데 호, 혹시 들어가도 괜찮을지….”

이번에 교수실을 찾은 이는 세실리였다.
일단 카엘라라는 핑계를 대고는 있는데 결국 원하는 건 자신일 터.
해서 클라우스가 막 들어오라고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도도도도!!-

무척이나 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문 앞에 당도하는 은발의 메이드.
그리고는 문을 열고서는 손님을 맞이한다.

“교수… 님이 아니야…?”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한 번 가르쳐줬더니 아주 계속 써먹고 있는 플랑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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