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중간시험은 이전에 예고했던 대로 금요일에 치러지기로 결정이 났다.
오히려 대련보다도 쉬울 것이라고 했던 중간시험은 말 그대로였다.
무제한의 시간을 줄 터이니 클라우스 본인이 내는 마법을 완벽하게 캐스팅해서는 사용해라.
이것이 이번 중간시험의 단 하나뿐인 통과 과제가 되었다.
여기서 이미 눈치 빠른 생도들은 무제한의 시간을 준다는 것.
그리고 클라우스가 요구하는 마법이라는 것에서 대충 눈치를 챈 듯 했다.
중간시험이 클라우스의 말마따나 일단 대련에서처럼 엄청난 것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방해와 견제 속에서 굉장히 난해한 마법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걸 말이다.
- 아무리 달갑지 않은 놈들이라고 해도 뭐 하나 얻어가게는 해줘야지. 양심적으로. -
전투 마법은 결국 적과 몸을 던지며 싸우는 상황에서 마법으로 틈을 벌리는 걸 목표로 한다.
그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결국 그 어떤 방해 속에서도 집중을 유지하여 마력을 끌어내 마법을 발현시키는 것.
마법이 취소된다면 단순히 공방에 구멍이 생기는 게 끝이 아니다.
체내의 마력을 기껏 가속시켜서 한 행동들이 역으로 몸에 충격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사소한 방해는 물론이고 당장이라도 맞으면 죽을 것 같은 살벌한 공격이 오고가는 순간에도 정신을 집중해서 마법을 끝내 발현시킬 줄 알아야 한다.
클라우스는 최소한 제 강의를 들은 생도들에게 그 부분만큼은 강조하고 싶었다.
괜히 어디 가서 클라우스의 강의를 들었는데 전투 마법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 하고 뒈져버렸더라, 뭐 이런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었으니까 말이다.
클라우스의 강의가 끝난 후, 요정들 특유의 뾰족한 귀를 머리칼 사이로 보인 채.
찰랑거리는 금발을 그 뒤로 부드럽게 흩날린 채 나타샤는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입가에는 잔잔하면서도 꽤나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채.
그리고 품에는 뭔가를 든 채로 무척이나 산뜻하면서도 가벼운 걸음을 뗀다.
‘우후후. 운 좋게 이런 귀한 커피를 구하다니. 오늘 기분이 꽤나 좋네요.’
자신을 정말 벨라루스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는 클라우스
그를 위해 본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본 나타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를 위해 딱히 대단한 뭔가를 해줄 수는 없었다.
당장 그 옆에는 마왕이 붙어있고 충성스러운 부관도 있으니 사람은 부족하지 않겠고.
재산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었다면 은광을 자신에게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은광 쪽은 정말 클라우스님의 말대로 진행이 되려나 모르겠군요.’
일단 은밀하게 서신을 보내서 자신 쪽의 자산을 전부 은광 개발에 투자하라고 해두었다.
그러자 아직 제대로 발견된 것도 없는 땅에 너무 막대한 자금을 넣는 게 아니냐고.
만약은광이 나오지 않는다면 엄청난 돈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가 날아들었다.
만에 하나 그 자산을 전부 잃는다면 그렇지 않아도 벨라루스의 겉을 돌고 있는 나타샤로서는 이제 완전히 끈 떨어진 신세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클라우스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투자를 강행했다.
조금은 못된 생각이 들은 것인데, 만약 정말 은광 투자가 실패한다면.
나타샤 본인은 그걸 핑계로 클라우스게 자신을 책임지라며 들러붙을 생각이었다.
벨라루스와 클라우스,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본인은 미련 없이 후자를 택할 거다.
아무튼 클라우스가 노력을 하는데 본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게 전부.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커피를 그냥 선호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집착 수준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질 좋은 찻잎이나 커피 열매는 주로 요정들, 혹은 수인들의 땅에서 나는데 벨라루스의 소속인 자신은 그것들을 그래도 비교적 용이하게 구할 수 있었다.
이번에 온 커피 열매도 그러했다.
향과 맛이 굉장히 진해서 아는 이들은 이걸 악마의 유혹이라고 부른다고도 했다.
이름은 꽤나으스스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무척이나 진한 맛과 향을 주었기에 아는 사람들은 이 악마의 유혹만 찾을 정도였다.
‘클라우스님이 좋아하시겠죠?’
나타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클라우스의 교수실 앞에 당도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율리아는 현재 다른 강의를듣고 있을 것이고.
카엘라 조교는 현재 클라우스의 명령을 받아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보이는 생도들을 직접 가르치느라 매우 바쁜 상황이다.
그리고 세실리는 전혀 부족하지 않음에도 일부러 카엘라의 강의(?)를 들으면서 꽤나 굉장한 기세로 굴려지고 있을 테고 말이다.
‘마침 경쟁자도 없군요. 클라우스님과 오붓하게 앉아서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다니!’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교수실 앞에 다다른 나타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조심스레 그 방문을 두드려본다.
통통통!-
“…클라우스 교수님? 나타샤 벨라루스입니다. 들어가도 되나요?”
이미 클라우스가 교수실로 돌아가는 건 다 확인했다.
설마 방 안이 비어져 있는 것도 확인하지 않고 이렇게 찾아왔을까.
해서 나타샤는 즐거운 마음으로 문 너머에서 클라우스의 대답이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헌데 잠시 후, 나타샤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 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들어오라는 클라우스의 목소리 대신 갑자기 달칵, 하고 문이 열리더니 처음 보는 여인이 그녀를 맞이한 것이었다.
“….”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무슨 달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듯한 은빛 머리칼.
거기에 굉장히 몽환적인 분위기가 나게 해주는 연한 보라색의 눈동자.
왠지 모르게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안으로 휙휙 빨려 들어가는 그런 느낌을 주는 외모였다.
결정적으로 자신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여인으로서의 훌륭한 아름다움까지.
“누, 누구시죠?”
나타샤는 저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으면서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차라리 율리아나 다른 여인들이 나왔다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의를 빠졌다거나 아니면 다른 모종의 이유로 자신보다 먼저 왔겠구나, 싶을 텐데.
지금처럼 완전히 처음 보는 여인이 바로 앞에 서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상대방은 입을 다문 채 묘한 눈길로 나타샤를 바라볼 뿐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 한 여인의 등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던 나타샤는 이윽고 와락 인상을 구기고는 다시 한 번 제 앞의 여인을 살펴보았다.
일단, 은발의 여인이 입고 있는 복장은 메이드 복.
생도복이 아니라는 점에서 나타샤는 당신은 누구냐고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음을 확인했다.
만약 상대가 아카데미 생도 중 하나였다면 바로 멱살을 잡아챘을 지도 모르는 일.
율리아는 자신보다 먼저 클라우스의 마음을 잡아챈 여인이고 카엘라는 대륙 전쟁 시기부터 클라우스를 따른 충성스러운 부관, 그리고 세실리는… 음,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들 이외의 다른 여인들이 클라우스한테 들러붙는 것은 절대 사절하고 싶었다.
그를 독점하고 싶다, 뭐 이런 감정보다는 주제를 알고 들러붙기를 바란다.
뭐 이런 마음이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이상하네요. 클라우스님이 메이드를 들였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예 이해를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클라우스가 직접 옷을 빨아서 입고 청소를 하고 잡다한 일들을 하는 그림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예 처음부터 전속 메이드나 시종을 데리고 온 이도 있다고 하니 클라우스라고 해서 불가능하다거나 안 될 일도 없었다.
“…저기.”
그러다가 비로소 은발 메이드가 입을 연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녀는 꽤나 예의바른 몸짓으로 허리를 숙인 채 안을 가리켜 보인다.
“들어가시죠.”
“에?”
“손님, 아니신가요.”
“일단은 그렇긴 합니다만, 당신은….”
“들어가시죠.”
분명 예의 바른 메이드 같은데 또 묘하게 박력 있는 모습의 여인이다.
얼른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뭐하냐고 묻는 그 모습에 나타샤는 평소의 그 자존심 강한 본인조차 잊은 채로 어어, 하고 탄식을 흘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클라우스 교수님?”
“어서 오세요, 나타샤 생도.”
그리고 그녀는 저 앞에 앉아서 한창 뭔가를 살피고 있는 클라우스와 조우할 수 있었다.
원래 오늘 강의에서 만나야 했지만 갑작스러운 출장으로 인해 볼 수가 없었다.
그 외에 주말에도 전혀 보지 못 했기에, 나타샤는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해서 막 클라우스 곁으로 다가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사이로 한 인영이 슬쩍 끼어든다.
이건 또 뭐야, 하고 앞을 쳐다보니 역시나 은발의 메이드가 앞을 딱 가로막고 서있었다.
“저곳입니다.”
“네?”
“손님께서 앉으시는 곳은, 저 곳입니다.”
두 눈을 껌뻑이던 나타샤는 플랑슈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클라우스가 앉아있는 책상 앞 의자와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소파.
원래는 저기 앉는 게 손님으로 당연히 맞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나타샤가 설마 손님으로 찾아오려고, 저기에 앉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겠는가?
이런 선물까지 들고 와서 말이다.
“플랑슈.”
클라우스가 슬쩍 제지를 하니 그제야 은발 메이드가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물러난다.
그런 플랑슈를 어이 없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는 나타샤.
한 눈에 봐도 뭐 저런 메이드가 다 있어? 쟤 뭐야?! 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손에 든 병은 뭔가요, 나타샤 생도?”
그런 나타샤의 관심을 다시금 자신 쪽으로 돌리기 위해 슬쩍 화제를 전환한다.
그러자 꽤나 날카로운 얼굴을 하고 있던 요정은 아! 하고 화사한 미소를 짓고는 이게 뭘까요? 하고 장난스레 질문을 던진다.
클라우스가 탄식을 흘리고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선물 같죠? 라고 말하니 나타샤는 정답! 이라고 외치고는 손에 들고 있던 병을 책상 바로 앞에 내려두었다.
그 병을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그게 뭐냐는 듯 한 눈빛을 보인다.
그러자 나타샤는 다시금 미소를 짓고는 제 병을 만지작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악마의 유혹이라는 거예요.”
“악마의 유혹이요.”
어디서 많이 들은 이름 같은데, 역시 작명 센스 참 젬병이었구나.
속으로 어떤 창조주를 욕하면서 클라우스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타샤가 가져온 저 커피는 꽤나 비싼 물품이기에 지금의 자신은 아직 즐길 처지가 되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모르는 식으로 가야만 했다.
“나는 처음 듣는 물품이군요. 악마의 유혹이라, 혹시 위험한 건가요?”
“설마요. 제가 미쳤다고 클라우스 교수님께 그런 걸 드리겠어요?!”
짐짓 무척 실망했다는 투로 나타샤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자 클라우스가 막 난감한 미소를 흘리면서 장난이라고, 설마 그렇게 생각을 했겠냐고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흠흠.”
갑자기 헛기침을 하더니 소리 소문 없이 옆으로 다가와서는 병을 잡는 플랑슈.
그러더니 미처 나타샤가 무슨 짓이냐고 제지를 하기도 전에 그걸 클라우스 바로 앞까지 가지고 와서는 그 앞에 위치시킨다.
“목소리를 높이시는 건, 무례합니다. 손님.”
“뭐, 뭐라고요?”
“무례합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데, 또 묘하게 엄한 분위기다.
나탸샤는 도대체 이 메이드 뭐야, 라는 시선을 하고 있었고 클라우스는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시 세계관 최고 메이드 아니랄까 당당해도 너무 당당하다.
“도대체 당신….”
결국 나타샤가 당신 뭐냐, 라는 말을 내뱉으려는 찰나.
갑자기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바로 몸을 돌린 플랑슈는 순식간에 문 앞으로 향해서는 문을 잡아당긴다.
“교수님, 들어가겠….”
막 인사를 하던 카엘라가 그 자리에 떡, 하고 굳어버린다.
냄새도 안 났고 기척도 제대로 못 느꼈는데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난 여인.
당연히 수인으로서, 그리고 클라우스의 부관으로서 무척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야, 너.”
슬쩍 송곳니까지 보이면서 으르렁거리는 카엘라.
그에 플랑슈는 잠시 제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수인 여인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 말이 그 말이라는 듯 경계 어린 눈길을 보내는 요정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