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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146/341)



〈 146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뭐죠, 저건?”

아카데미로 돌아온 그날 오후.
강의를 마치고 교수실 안으로 들어선 클라우스는 다짜고짜 자신에게 질문을 날리는 율리아를 마주해야만 했다.
그녀는 상당히 매서운 눈빛으로 클라우스의 옆자리에 서있는 플랑슈를 가리켰다.

“보면 모릅니까? 이번에 내가 고용한 메이드입니다, 율리아 생도.”
“….”

다른 이가 바로 곁에 있으니 조금은 긴장하라는 뜻.
율리아는 바로 그 말을 이해하고서는 후우, 숨을 내뱉고서 입술을 떼었다.


“이상하네요. 분명 클라우스 교수님은 메이드를 고용한 적이 없는데. 바로 이틀 전까지 말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그것도 마족 출신의 메이드를 들였다고요?”
“월요일 날 출장을 나갔다가 어떻게 하다 보니 데리고 오게 되었습니다.”
“설마 저 메이드 때문에 출장을 다녀온 건 아니라고 믿을게요.”


메이드 때문도 있지만 일단 마족 내부의정세를 뒤흔드는 게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정세를 뒤흔듦으로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쪽은 역시나 율리아.
정리하자면 클라우스가 어제 출장을 다녀온 이유는 율리아를 위해서라고도  수 있었다.

당신, 율리아 생도. 그대를 위해서 다녀왔다, 볼일을 보고 왔다.
클라우스는 아주 당당하게 율리아 앞에 그렇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중립파와 반 마왕파가 꽤나 대단한 내전을 거칠 것이며 승리하는 쪽은 당연히 반 마왕파.
하지만 중립파의 주요 세력들 중 절반 이상이 새로운 충성파로서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이번 학기가 끝나고 아카데미의 휴식기, 즉 방학을 맞이하면 자연스레 이제는  마왕파와, 그 잘난 숙부라는 남자와 결전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당연히 율리아는 어어? 하는 반응을 보이다가 도대체 그걸 어찌 그렇게 확신하냐고 물었다.
하나, 하나가 너무나도 엄청난 사건들인지라 분명 비밀리에 진행되는 부분이 많을 터인데.
제아무리 클라우스라고 해도 들어오는 정보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말하는 내용들이나  과정들을 들어보니 너무나도 정확한지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에요, 당신.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 거예요.”


결국 클라우스의 이야기를 듣다 질려버린 율리아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묻는다.
대륙 전쟁의 영웅이니 남부의 악마이니 해도 이건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말하는 것이 마치 모든 걸 다 알고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오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율리아 생도.”


물론 클라우스는 이런 때를 대비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정확히는 훨씬 이전의 회차부터 연습하고 또 준비하던 것들이 있었다.


“대륙 전쟁이 끝난 지 벌써 5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내가  했을까요.”
“네?”
“귀족들을 상대로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면 여기 있지는 않았을 테고, 그들이말하는 대로 역모 모의를 했다면 목이 잘렸거나 아니면 새로운 왕국의 국왕이 되었겠죠. 그런데 그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닙니다. 현재 나는 그냥 대륙 아카데미의 교수로 있을 뿐입니다.”
“…설마  5년 동안 계속해서 끊임없이, 차곡차곡 준비를 했단 말인가요?”
“당신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마족들의 동태를 살핀다는 핑계도 있고 전후 회담 때문에 계속 동부로 오고 가는 이들도 많았으니 그들을 통해서 정보를 계속 모을 수 있었죠. 더해서 소식들을 전하면서 이후 어떻게 할지 의견을 구하고 또 의견을 보내주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 말대로 클라우스는 전후  어떤 대외 활동도 하지 않았다.
회담을 진행하면서 많은 마족들이 만나기를 희망하는 와중에도.
왕국 귀족들은 물론이고 제국의 귀족들까지 스리슬쩍 그를 건드리면서어떻게든 공적을 깎아내릴 궁리만 하면서 유언비어를 퍼트릴 때도.
제 거주지에 틀어박힌 채 두문불출했던 이가 바로 그였다.

클라우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들은 또한 대부분 그리 알고 있다.
외부의 관심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를 가두고 몇 년을 지냈다고.
그러는 동안 많은 정치적 공세가 있었고 결국 왕국을 떠나게 된 것이라고.


‘헌데 그게 자신을 권력의 경계로 몰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일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대륙 전쟁이 발발한 이후 클라우스는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만에 전략을 짜고 공을 세웠다.
막힘없는계획과 거침없는 실행능력, 그리고 결과로서 증명되는 모든 부분까지.
그렇게나 시달렸던 마족들이 또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서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정말 그 때부터 나를 따를 생각이었다고요? 이전에는 그런 말 한 적 없었잖아요.”
“괜히 그리 말했다가 수상한 자로 몰릴까 걱정이 되었으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세상 어떤 이가 너를위해서 몇  전부터 준비를 했다고 한다면 기쁘게 받아들일지, 아니면 뭐 이런 미친 놈이 다 있냐고 하면서 수상하게 여길지.”
“그거야 당연히….”


당연히 후자다, 자신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그 말을 들었다면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냐고.
설마 그 클라우스가 자신을 내던지면서 자신을 속이려 드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뭐, 좋아요. 그렇다고 쳐요. 어제의 출장이 나를 위하는 일이었다면 그렇다는 거겠죠.”
“당신을 위한 출장이었다니까요.”
“그래서 좋다고 하잖아요. 여기서 중요한 건 왜 그러면서  메이드를 데리고 온 거냐, 이거냐는 거죠. 여기가 무슨 귀족가도 아니고 당신이 청소를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메이드가 꼭 필요했나요? 혹시 뭐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겠죠?”
“다른 생각이라 하는  정확히 뭔데요.”
“뭐겠어요. 당연히 당신의 성적 취향이지. 그런 거 원하면 말해요. 제가 해드릴 테니까.”


잠깐 메이드 복장의 율리아를 상상해본다.
아카데미 생도복을 입고 있는 그녀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속옷만 입은 채 자신을 유혹하는 모습은 가히 밤의 여신이 강림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메이드 복이라, 메이드 복….


“이런 말 하면  되는데,  제안 은근이 구미가 당기네요.”


딱히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클라우스.
덕분에 율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킥킥 웃음을 흘리고는 제 가슴 언저리에 손을 올리고는 기대하라고 클라우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런 메이드로는 당신의 갈증을 채울  없을 테니, 당신을 겪어본 내가 가장  아니 저 메이드는 그냥 딱 메이드 업무에만 집중시키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클라우스의 마음  0순위는 율리아다, 첫픽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플랑슈가 사상 최강의 메이드라는 요상한 설정을 쥐고 있는 여인이라고 해도.
소설 내용 상 최후의 승리자이자 절대 군주가 되는 율리아를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율리아 바로 밑은 충분했었지. 무엇보다 메이드라는 부분 때문에 데리고 있기도 무척 편했고 다른마족들 눈에  염려도 없었지.’

나타샤는 요정 쪽 실세가 되고 세실리는 율리아 밑의 새로운 신하가 되며.
카엘라는 공식적으로 동부군의 1개 군을 맡는 사령관 자리에 오르게 된다.
모두가 클라우스와 대놓고 거리를 가까이 하면 다른 마족들의 견제를 살 수밖에 없는 이들.
지금이야 원하는 때에 계속 건드리고 있다지만 나중에 가면 그것도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런 순간에 플랑슈는 계속 클라우스의 메이드로 있기에 문제될  없었다.
실력도 좋아서 데리고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업무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말이 극도로 없다는 것, 그리고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플랑슈라는 조커 카드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써먹지 않는 건 병신 짓이었다.


“자, 그러면 클라우스 교수님의 우수한 생도로서 교수님을 모시게 될 메이드님을 한 번 살펴볼까요?”
“율리아?”
“클라우스 교수님을 얕보거나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메이드도 계약을 하고 또 고용해 본 이가 잘 아는 법이에요. 문제가 있어서 여기까지  거라면 큰일 아니겠어요?”


율리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겨서는 플랑슈에게로 다가갔다.
그 때까지 플랑슈는 공손하게 배꼽에  손을 모으고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상태였다.
그런 메이드를 잠시 쳐다보던 율리아는 ‘흐음.’ 하고 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천천히 주변을 돌면서 플랑슈의 몸 이곳저곳을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메이드를 샅샅이 훑는 그 시선이 어찌나 노골적이고 또 매서운지 다른 이였다면  그러냐고 말을 한다거나 불쾌하다는 티라도 냈을 것이다.


“….”


하지만 플랑슈는 그런 생각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는 듯.
아니면 이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냥 침묵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흠?”

율리라도 이제 플랑슈가 보통 여인이 아님을 대충 알아차렸다.
이런 노골적인 시선이라면 자연스레 불편한 감정을 내비치기 마련.
하다못해 눈동자 안에 아주 조금의 불만이라도 비치는 게 보통의 반응이다.
헌데 플랑슈는 그런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참는다, 뭐 이런 느낌도 아닌 정말 완벽하게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는 딱히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쓰는 거겠지만 율리아한테는 메이드라는 직업에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여인으로 보이겠지.’

허튼 생각  하고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율리아가 좋아하는 인물상 중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플랑슈는 그런 부분에 완벽하게 부합되는 인물이라고  수 있다.
혹시 메이드로 위장한 이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도 있을  있겠지만 그 부분은 다른 이도 아니고 클라우스가 데리고 온 메이드인데 설마 그런 틈을 줄까 하는 생각을 했고 말이다.


“메이드로서 꽤 잘 할 것 같은 분이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율리아 아그네사에요. 클라우스 교수님의 강의에서 명실상부 1등 생도라고 할 수 있죠.”


율리아 아그네사, 그녀는 지금 일부러 풀네임을 말했다.
메이드들은 귀족가에서 고용하는 이들이고, 그렇기에 왕의 진짜 이름을 들을 수도 있다.
과연 플랑슈가 어떻게 반응을 하나 시험을 한  해본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그녀는 순순한 메이드가 결코 아니었다.

“…네.”
“네. 만나서 반가워요, 플랑슈.”
“…네. 반갑습니다.”


플랑슈의 반응이 너무 경직되다 못 해 그냥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이제야 눈치 챈 율리아.
이 여자는 또 뭐지? 하는 반응을 보이다가 그녀는 흠흠! 헛기침을 한  한다.
그리고는 으레 있는 호구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제가 자기소개를 했으니, 당신도 본인에 대해 소개를 해주겠어요?”


율리아의 말에 플랑슈가 몇 번 눈을 빠르게 깜빡인다.
딱 봐도 꼭 본인의 소개를 해야 되느냐는 질문이었고 율리아는 바로 그 부분을 캐치하고서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말을 이었다.


“저만 소개를 하고 저만 모르는 건 조금 불공평하잖아요. 얼른요.”
“…플랑슈, 입니다.”
“그게 당신의 이름이군요. 메이드 플랑슈. 굉장히 예쁜 이름이에요. 그리고요?”
“….”


계속되는 율리아의 질문에 잠시 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플랑슈.
그러다가 여전히 높낮이의 변화가 전혀 없는 목소리로 율리아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지도 못 란 대답을 내놓았다.

“…별  없습니다.”
“별 거 없다고요?”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

갑작스러운 플랑슈의 뭔가 이상한 대답에 율리아가 엥? 하고 탄식을 내뱉는다.
갑자기 이건 무슨 생뚱맞은 소리란 말인가? 지나가던 메이드라니?

“크흡.”

그러는 사이 클라우스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플랑슈에게 기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곤란한 질문을 한다면 그냥 모른다고 대답하라고, 지나가던 메이드라고 말하라고 했던 것이다.

덕분에 플랑슈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그런 대사를 하고 있었고.
덤으로 율리아는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이야? 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대답인데요.”
“지나가던 메이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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