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
“….”
원래 저렇게 문을 두드린 후 ‘누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게 정상이다.
그렇게 하면 안에 있던 고용주가 ‘응, 그래. 들어와라.’ 하고 답하면 들어오는 것이고.
하지만 집무실 문을 두드린 이는 그런 말 한 마디가 없었다.
그냥 침묵을 유지한 채 안에서 허락이, 하다못해 질문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누구지?”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에슐리 쪽이었다.
하지만 팔라티나트 영주의 질문에도 여전히 상대방은 묵묵부답.
그에 에슐리는 ‘내가 말했지. 이런 식이라고.’ 라고 중얼거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플랑슈인가?”
“…네.”
“대답 참 빨리도 한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
허락이 떨어지자 곧 집무실 문이 조심스레 열리기 시작한다.
그 너머로 메이드 복장을 한 마족 여인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역시나 의도치 않게 태어난 캐릭터답게 다른 마족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은을 녹여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반짝거리는 은발.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신비스럽다는 분위기가 아주 강하게 났다.
상당히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외모까지 겹치니 마족이라기보다는 요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은발의 마족 메이드, 플랑슈는 얌전히 걸음을 옮겨서는 에슐리 옆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찾은 이유가 뭐냐고 묻는 것처럼 침묵을 유지한 채 그녀의 눈치를 살핀다.
그 덕분에 한숨을 내뱉는 건 역시나 에슐리 쪽이었다.
“클라우스, 당신도 잘 보고 있지. 이 정도야. 말을 안 해. 자신이 왔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자신을 왜 찾는 것이냐, 뭐 그런 질문도 없어. 일은 잘 하는데 정말 그게 전부라고.”
“….”
“왜 당신까지 말이 없어?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아?”
“아주 잘 듣고 있다, 에슐리.”
정말 잘 듣고 있는 건 맞아? 아무리 봐도 아닌데?
에슐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에휴, 한숨을 내뱉고는 플랑슈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팔라티나트 가문과 계약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묻는다.
“….”
그에 플랑슈는 대답 대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슬그머니 검지 하나를 들어서는 조심스레 제 앞에 세워 보인다.
물론 그렇게 해서는 에슐리가 플랑슈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아먹을 리가 없었다.
“그게 뭔 뜻인데. 1년?”
도리도리-.
“한 달?”
도리도리-.
“…일주일?”
끄덕끄덕-.
일주일이 맞다는 반응에 에슐리는 ‘그럴 거면 차라리 손가락 일곱 개를 들어!’ 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도대체 어떤 놈이 검지 하나 펴서 일주일이라고 표현을 할 생각을 하냔 말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누님?”
“플랑슈, 저 아이는 왜 부른 거예요?”
“저기 앉아계시는 대단한 클라우스 사령관님께서 메이드 하나를 구하고 싶으시단다. 도대체 어떻게 데려갈 생각인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우리 팔라티나트에서 데려가야만 하겠다네.”
제발 이유 좀 설명해달라는 뜻으로 두 동생에게 상황 설명을 하는 에슐리.
덕분에 애틀리와 에밀리 역시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메이드가 무슨 동부에만 있는 직업도 아니고 서부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심지어 메이드라 하는 직업은 전문직으로서 불법도 절대 아니기에 대놓고 고용을 한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문제가 될 수가 없다.
헌데 여기까지 찾아와서 부탁을 한다는 게 메이드라니?
차라리 직접 뽑아서 계약을 하는 게 훨씬 더 좋을 텐데?
“묻지 말고 그냥 부탁이나 들어주면 된다, 에슐리.”
“그래서 더 안 묻고 플랑슈를 데리고 왔잖아. 플랑슈!”
“…네.”
“그 일주일 계약 기간 더해서 나머지는 저 인간 남자와 계약하는 거 어때.”
“….”
“일단 신분은 내가 보증하마. 계약금을 떼어먹는 놈은 아닐 거고 널 무시하거나 나쁜 의도를 가지고서 접근하지도 않을 거다. 오히려 여기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을 수도 있어.”
클라우스한테는 툴툴거리면서도 플랑슈에게는 좋은 말만 하는 에슐리.
저게 현 팔라티나트 영주의 진심임을 알고 있었던 클라우스는 속으로 큭큭 웃음을 흘렸다.
“어때. 일주일 남은 계약에 대한 금액은 주도록 하마. 그냥 오늘부터 저 남자를 따라서 아카데미로 향한 다음 그의 말을 들으면 되는 거다. 할 생각 있나?”
“…네.”
답이 나오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는데, 고민을 해서 시간이 걸린 건지.
아니면 그냥 대답은 정해져있는데 그 대답이 나오는 데에 원래 시간이 걸린 건지.
에슐리는 ‘도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 라고 투덜거렸다
“계약서는 돌아가서 써. 여기서 쓰지 말고.”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거기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어.”
“진짜 끝까지 말 하는 거 얄밉네. 볼일 끝났으면 얼른 가. 이러다가 정말 발각될 수도 있어.”
“누님? 이미 저녁입니다. 이 시간에 클라우스 사령관님을….”
“그러니까 더더욱 이 시간에 보내자는 거란다, 동생아. 내일 아침이 되면 그 남자가 풀어둔 첩자가 클라우스의 정체를 알 수도 있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될지는 뻔하디 뻔한 것.
해서 애틀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 한 채 침음만 흘리고 말았다.
그런 삼남매를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자신의 제안을 잘 생각해보라고 일러두었다.
어차피 저들이 율리아 쪽으로 오는 거야 반 고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번 더 흔들어주는 편이 훨씬 확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머지않은 때에 또 보자는 말을 끝으로 클라우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웅할 생각은 없다는 에슐리와 배웅을 하고는 싶은데 혹 훔쳐보는 눈길이 있을까 그러지 못 하는 애틀리와 에밀리를 뒤로 하고서 걸음을 옮긴다.
“….”
뒤를 슬쩍 돌아보니 플랑슈가 무척이나 조용한 발걸음으로 뒤를 따르고 있었다.
메이드들이 제 고용주가 혹 시끄럽다고 할까 소리를 죽이는 방법을 배운다지만.
그래도 플랑슈와 같은 경우에는 너무 조용했다, 기척조차 너무 옅었다.
클라우스조차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놓칠 정도로 말이다.
에슐리가 말해준 영주성의 후문으로 향한 클라우스는 아카데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지금부터 쉬지 않고 내달려야 새벽이 다 되어서 도착할 시간.
거기에 혼자도 아니고 플랑슈를 안고서 가야 하기까지 했다.
“플랑슈.”
“…네.”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이쪽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서. 널 안고서 내가 왔던 곳까지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되겠지?”
“…네.”
역시나 고민을 해서 나온 대답이라기보다는, 그냥 답이 느린 것 같은 느낌만 난다.
도대체가 도통 그 속을 알 수없는 마족 출신의 은발 메이드.
혹시나 해서 플랑슈의 속내를살짝 들쳐 봐도 보이는 건 그냥 멍한 느낌이 전부였다.
무턱대고 스킬을 쓰자니 다른 여인들과는 다르게 아직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다.
차릴 이왕 이렇게 된 거 율리아와 비슷하게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흣챠.”
여태까지 많은 여인들을 안았었지만 플랑슈는 특히나 더 가벼웠다.
노출도가 거의 없는 복장이긴 하나 어찌 되었든 메이드 복장이다.
이런 옷을 입은 여인을 안고서 내달린다는 생각을 하니 마치 종족을 뛰어넘은 사랑의 도피라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플랑슈.”
“…네.”
“일단 내 이름은 클라우스다. 클라우스.”
“…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눈 뜨라고 할 때까지 그냥 계속 눈 감고 있어.”
“….”
“자도 좋고 안자도 좋아. 그냥 내가 뜨라고 하기 전까지만 눈 뜨지 않으면 돼.”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능력을 다른 이에게 알리게 되는 부분.
그나마 다행인 건 침묵 그 자체인 플랑슈가 그 상대라는 것이고 일단 눈을 감은 상태가 되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지간해서는 알 수 없으니 설명을 해야 하는 부분들도 많이 줄어들 것이었다.
가볍게 땅을 박찬 클라우스는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가기 시작했다.
플랑슈가 가볍다고는 하나 그래도 어느 정도 무게를 지닌 여인이 추가된 상황이다.
원래부터 체력 소모가 심한 스킬인데 거기에 무게가 더해지니 시간이 좀 지나자 클라우스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역시 둘은 무리야.’
말을 달려도 꼬박 이틀은 걸릴 거리를 두 다리로 떼우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단 몇 시간으로 줄이는 스킬이니 당연히 엄청난 체력 소모가 뒤따르기 마련.
거의 율리아와 이틀 밤낮 섹스를 하던 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
그만큼 이번 여정은 클라우스에게 무척이나 고단하고 힘든 것이었다.
“허억, 허억….”
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래도 새벽이 밝기 전에 아카데미로 향하는 마차가 오고 가는 도시까지 기어코 도착하고 만 클라우스였다.
‘후우. 진짜 뒈질 뻔 했네. 이 짓은 정말 언제 해도 힘들다니까.’
터질 듯이 차오르는 숨을 애써 삼켜가면서 플랑슈에게 말했다.
이제 되었으니까 눈을 떠도 좋다고.
그러자 품에 얌전히 안겨있던 메이드가 천천히 두 눈을 뜬다.
주변을 살피던 그녀는 시간이 꽤나 많이 지났음을,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동부의 것과는 꽤나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 눈치였다.
“….”
하지만 플랑슈는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여기가 어디냐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문 채 클라우스만 바라볼 뿐이다.
설명을 해주실 거라면 해주시고, 그게 아니라면 말라는 듯이.
“일단 첫째. 여기는 대륙 서부다. 우리는 곧 아침 첫 마차를 타고 아카데미로 갈 거야. 넌 거기에서 내 교수실을 전담하는 메이드로 지내는 거지.”
“….”
“둘째, 오늘 있었던 일은 전부 비밀로 한다. 너는 그냥 계약이 끝난 메이드로서 아카데미를 방문하는 마족들을 따라왔다가 나와 계약을 맺은 것으로 한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는다.”
“….”
“숙지했나?”
“…네.”
이미 몇 번 본 모습이지만 참 답답해지는모습이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니 생각이라는 건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멍한 표정.
거기에 나오는 대답이라고는 그저 ‘네.’ 뿐이니 더더욱 답답하다.
아마 에슐리도 이런 플랑슈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고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서 그냥 이대로 내보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전의 회차들에서는 플랑슈를 클라우스가 발견하지 못 한 것이고 말이다.
“가자.”
아침 첫 마차를 타고 아카데미로 향하는 길.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 채 정자세로 앉아있는 플랑슈와는 달리 클라우스는 완전히 의자에 늘어진 채 천천히 호흡을 하고 있었다.
불굴 스킬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탈진했다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완전히 곯아떨어졌을 것이다.
스킬 중에 열 방출 같은 거라도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는 챙기지 않는 모양.
따라서 클라우스는 온몸 가득한 열기 속에서 헉헉대면서 조금이나마 체력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팔랑, 팔랑-.
바로 그 때, 어디선가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한 바람이 느껴진다.
마차의 창문은 닫혀있기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이 바람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
“….”
팔랑! 팔랑!-
클라우스는 여전히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 정자세로 앉은, 그러면서 두 손을 열심히 흔들면서 손부채질을 하고 있는 플랑슈를 볼 수 있었다.
짓고 있는 표정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멍한 느낌에 강하게 나는 반면.
열심히 파닥이고 있는 모습은 굉장히 노력하는 메이드의 표본 그 자체.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어이가 없다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아무래도 클라우스가 땀을 뻘뻘 흘리며 더워하고 있으니 메이드로서 고용주를 어떻게 도와주려는 것 같은데.
‘의도는 좋은데 결과물은 영… 아니다. 귀여우면 된 거지.’
저 여자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부분도 문제긴 하지만.
역시나 지금 상황에서 드는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일 거다.
‘…그러고 보니 율리아한테는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