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12장 - 지나가던 메이드입니다
에슐리는 어이가 없다고, 드디어 미친 거냐고 으르렁거리면서도 부탁을 들어주었다.
도대체 뭔정신으로 팔라티나트에 메이드를 요청하고 있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데, 그리고 하고 싶지도 않은데 일단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했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그러면 뭐, 아무나 한 명 데리고 오면 되는 건가?”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고. 청소도 잘 하고 행동도 빠릿빠릿한데 말수는 많이 적은 메이드면 좋겠어.”
“바라는 것도 많아요. 그냥 아무나 하나 데리고 갈 것이지.”
“약속을 지키겠다는 마족 치고는 불만이 많은데. 들어줄 생각이 없는 건가?”
클라우스의 말에 에슐리는 다시 한 번 투덜거리면서 알겠다고 소리쳤다.
그녀는 잠시 동안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메이드들 중 클라우스의 조건에 부합하는 이가 누가 있나 하고 생각하다가 아, 하고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고 보니 네 조건에 맞는 메이드가 하나 있어. 조금 과하게 말이 없기는 하지만.”
“메이드 업무 능력은?”
“평균 이상. 네 말대로 청소도 잘 하고 일도 잘 하고. 그런데 말수가 진짜 적어. 아니, 그냥 솔직히 말하자면 ‘네.’ 하는 대답 외에는 말하는 걸 본적이 없을 정도야.”
“좋네.”
“…좋은 거 진짜 맞아? 아무리 말수가 적는 메이드가 필요하다고 해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하는 메이드가 좋다고. 그 녀석은 진짜 말이 없다니까.”
“이름이 뭐지, 그 메이드?”
에슐리의 말은 듣지도 않은 듯 질문을 이어가는 클라우스.
덕분에 말이 안 통하네, 라고 한숨을 내뱉은 팔라티나트의 영주는 답을 내놓았다.
“플랑슈.”
그래, 그 이름이다, 사상 최강의 메이드. 플랑슈.
도대체 왜 그딴 설정을 넣었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는데 일단 최강 메이드가 맞다.
업무 능력도 그렇고 다른 능력도 그렇고 밤 시중까지 전부 다 말이다.
“플랑슈. 이름부터 딱 일 잘 할 것 같은 느낌이 나네. 그 메이드 좀 불러주겠나?”
“…난 분명 말했다. 아무리 업무 능력이 좋아도 대화가 안 되면 그게 또 엄청 답답하거든?”
“숙지했다.”
“나중에 갑자기 찾아와서 얘는 진짜 아닌 것 같다, 뭐 이런 말 하지 말고.”
“충분히 숙지했다고. 내가 설마 그런 쪼잔한 놈으로 보이는 거냐.”
“여기까지 와서 고작 메이드 하나 부탁하는 놈이 말 참 예쁘게 하네.”
투덜거리는 에슐리의 말에 클라우스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러면 내가 무슨 부탁을 하는 걸 기대했느냐고.
이 정도 부탁이면 팔라티나트에 부담도 안 되고 그 메이드도 새로운 계약을 잡는 거고 자신에게 더는 빚도 없으니 마음이 시원하지 않냐고 말이다.
클라우스의 질문에 에슐리는 팔짱을 끼고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답했다.
팔라티나트의 삼남매를 몸 성히 집으로 돌려보내주었는데, 가문 하나가 통째로 무너지는 걸 막아줬는데 그래놓고 한다는 부탁이 너무 허접하다고.
못 해도 반 마왕파의 정보라던가 계획을 알려달라고 할 것이라 예상했다고.
그 말에 클라우스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에슐 리가 엄청 심각하게 말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무엇보다 이미 자신은 반 마왕파의 다음 행동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둔 것마냥 뻔히 알고 있던 터라 그 말이 더더욱 웃겼다.
“아무튼 기다리고 있어봐. 그 메이드 데리고 오라고 할 테니까.”
“사람을 불러서 그녀보고 오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따로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앉아있어.”
에슐 리가 무슨 할 일이 있어서 잠시 방을 나서려는 것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영주성 어딘가에 있을 두 동생에게 클라우스가 왔다는 사실을 직접 알려주기 위함이다.
팔라티나트의 또 다른 직계들, 애틀리와 에밀리가 바로 그들이었다.
장녀인 에슐리는 상대적으로 츤데레 냄새가 좀 나긴 하지만 둘은 그렇지 않다.
누나나 언니인 그녀보다는 자존심도 덜 강했고 그래서 클라우스를 정말 열렬히 추종했다.
에슐리도 그런 두 동생을 끔찍이 여겼기에 그들이 추종하는 대상이 왔다는 것을 본인의 입으로 직접 알려주고 싶은 것이었다.
“금방 올 거다. 얌전히 기다려. 어디로 도망가지 말고.”
“이렇게 쳐들어와서는 갑자기 도망을 갈까. 무엇보다 메이드 아직 소개 못 받았어.”
“남부의 악마가 메이드 하나에 뭐 그리 목숨을 거는 건지 모르겠네.”
그 말을 끝으로 에슐리가 영주 집무실을 빠져났다.
잠시 혼자가 된 클라우스는 이후 일들에 대해서 대충 간추려보았다.
일단 팔라티나트는 미리 클라우스가 작업을 해둔 터라 어렵지 않게 설득이 된다.
만약 영주가 삼남매의 아버지로 유지되고 있었다면 힘들다 못 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참된 무장은 적이든 아군이든 존경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인해 삼남매는 클라우스의 팬이 되어 있었고 그 부분을 십분 활용한 클라우스였다.
이들은 이후 동부의 내전 기간에 반 마왕파의 선두에 서게 된다.
겉으로는 침묵하고 있던 팔라티나트에게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최우선으로 준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팔라티나트에게 가장 중요한 선두를 맡긴다.
뭐 이런 이유를 붙였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아무리 충성파가 한 줌이라고 해도 단결력만큼은 대단하다.
무엇보다 결사 항전을 할 터이니 자연스레 앞에 서는 자는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된다.
율리아의 숙부라는 놈은 초창기에 자신을 도운 팔라티나트를 완벽하게 견제하고 또 몰락시키기 위해 그런 번지르르한 이유를 들먹인 것뿐이다.
‘진짜 여러모로 대단한 새끼지. 암.’
해서 클라우스는 그 버림받은 팔라티나트에게 기회를 주었다.
자신들을 엿 먹이려는 남자에게 역으로 아주 거대한 엿을 선사할 수 있는 기회를.
그의 측근들을 제외하고선 아직 반 마왕파의 대부분은 팔라티나트가 그래도 반 마왕파의 쓸 만한 무력 카드라고, 해서 율리아의 숙부가 그들을 선두에 세운 줄 알고 있다.
마왕에게 첫 번째로 날아드는 반 마왕파의 날카로운창날.
헌데 그 창날이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거꾸로 자신들을 향해 날아온다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반 마왕파의 어중이떠중이들은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놈들의 결속력은 지금 매우 느슨하다. 정세도 계속 변하고 있고 주군이라는 놈은 자꾸 지지 세력들을 갈아 치워대니 신뢰가 제대로 생기지 않은 거지. 그런 상황에서 굳건한 지지 세력일줄 알았으며 선두에 서는 창날이라고 생각했던 팔라티나트가 충성파로 돌변해서는 자신들을 향해 돌격해온다? 당연히 일이 시작부터 아주 완벽하게 꼬였다고 여기게 된다.’
과거 클라우스는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걸 보면서 참 궁금했었다.
도대체 그놈의 ‘사기’ 가 뭐기에 사기가 떨어져서 병사들이 후퇴를 한다느니 무기를 버리고 투항을 한다느니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그리고 이후 대륙 전쟁을 거치면서 그는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순풍이 갑자기 역풍이 되어서 병사들의 기세가 꺾였다거나 깃발 하나 부러졌다고 전투에서 패퇴한다는 그런 말들이 허풍이나 꾸며낸 말이 절대 아님을.
한 번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은 그 전장에서 더는 ‘병사’ 가 아니라 그냥 날카로운 무기 좀 들고 있는 평범한 사람 혹은 마족임을.
팔라티나트의 이반(離叛)을 시작으로 반 마왕파의 사기는 흔들리고 반대로 충성파의 사기는 더욱 고양되어서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이글거리게 된다.
그 상황에서 충성파의 병사들이 돌격을 감행한다면, 그리고 그 선두에 반 마왕파의 든든한 지지 세력이라고 생각했던 팔라티나트가 있다면 과연 반 마왕파의 병사들은 어떻게 될까.
‘그 남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거야. 감시도 많이 붙여두고 딱히 배반의 기운이 전혀 보이지 않던 팔라티나트가. 결정적인 전장에까지 와서 선두에 섰던 그 가문이 갑자기 창칼을 돌려서는 자신에게 그걸 겨눌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겠지.’
상대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어이가 없고 믿을 수 없는 광경.
하지만 바로 그 부분을 위해서 대륙 전쟁 당시 마족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목을 쳐야 한다는 부하들의 충언을 뿌리치고 삼남매를 살린 클라우스였다.
덕분에 후방의 귀족들한테 마족한테 얼마를 받아먹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고.
남부 사령관 자리에서 해임될 때 바로 그 일이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팔라티나트 말고도 이용할 수 있는 반 마왕파의 가문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 영지의 한 세대 모두가, 삼남매가 참된 무장! 하면서 두 눈을 반짝인다는데.
가장 존경한다는 무장이 다름 아닌 클라우스 본인이라는데.
거기서 그들을 다 죽여 없애고 다른 가문을 선택하는 건 솔직히 끌리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지. 거기에 삼남매 모두가 능력도 괜찮고 나중에 율리아 휘하에서 공도 많이 세우니까 나한테는 더더욱 이득이다. 괜히 다른 놈들 선택했다가 나를 견제하는 쓰레기들이 되면 안 된다.’
진짜 잘 살아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되도록 적이 없는 것도 중요하다.
마왕 옆에 붙어있는 인간은 항상 불편할 수밖에 없는 존재.
때문에 율리아의 옆에 최대한 자신에게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는 이들로 채워두는 게 좋았다.
“…! …!!”
우당탕! 탕탕!-
슬슬 오는 모양이군, 클라우스는 그리 중얼거리면서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에슐리와 비슷하게 생긴 두 남녀가 들이닥쳤다.
“저, 정말이다. 누님의 말씀이 진짜였어.”
“정말 클라우스님이네요, 오라버니.”
넋이 나간 시선, 멍하니 클라우스를 바라보며 깜빡이는 두 시선들.
클라우스는 슬쩍 몸을 돌려서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애틀리 팔라티나트, 그리고 에밀리 팔라티나트.”
“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클라우스 사령관.”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클라우스님.”
“사령관 자리는 예전에 내려놓았고 지금의 난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네 누님, 언니처럼 편하게 말해도 돼.”
“편하게 말입니까? 누님이?”
“언니가요? 매일 클라우스님의 자료들을 연구하면서 뭔가를 배우려고 하던….”
“둘 다 입 닥치렴.”
도끼눈을 뜨고 위협을 가하는 팔라티나트의 영주.
덕분에 애틀리와 에밀리는 헙! 하고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그들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무서운 이가 바로 누님, 언니였으니까.
“동생들의 헛소리는 사과하도록 할게.”
“받아들이지. 딱히 헛소리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냥 두 동생처럼 솔직하면 될 터인데.
또 자존심은 있어서 대놓고 환호는 못 하고 뒤에서 낑낑대는 에슐리였다.
“그보다 누님이 처음 말씀을 하실 때에는 무슨 날벼락 맞는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맞아요. 갑자기 클라우스님이 동부에 들어왔다고, 거기에 우리 영지에 왔다고. 장난을 치실 분이 아닌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장난이 과하다고 말이 나갔을 정도였어요.”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클라우스 사령관님.”
“사령관 아니라니까 그러네.”
인간 쪽에서 지내던 시절 그 어떤 귀족도 이렇게 정중하게 대했던 적이 없다.
물론 키엔마이어 후작가의 눈치를 보는 자들은 무례하게 굴지 않았지만 그 언행에서 진정성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웃긴 일이지.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고.’
클라우스에 대한 평가가, 그리고 대우가 왜 이리 극과 극을 가르느냐.
심지어 인간과 마족 측이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느냐, 거기에도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상당히 더럽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는그럴 만한 이유 말이다.
인간 귀족 측은 자신들의 잘못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륙 전쟁의 심각함과 피해 규모를 또한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전쟁이 있긴 했으나 버틸 만한 싸움이었다, 모두가 잘 이겨냈다.
그런 이유로 대륙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클라우스의 공을 낮춰야만 했다.
대륙 전쟁이 그리 치명적인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거기서 공을 세운 평민이 영웅으로 추앙을 받으면 그림이 전혀 맞지 않으니까.
반대로 마족 측은 결과적으로 패한 쪽이기에 비록 졌지만 모든 이들이 최선을 다해 싸웠다, 라는 감정을 실어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원래부터 자신들을 두드려 패던 클라우스의 존재를 더욱 띄워주었다.
이런 대단한 인간이 있었기에 우리가 아쉽게 진 거다, 마족들이 못 싸운 게 아니라 저 클라우스라는 인간이 너무 잘 나서 어찌 할 수가 없었던 거다, 라고.
‘그 결과가 바로 이거지. 마족임에도 클라우스라는 이름에 매료된 세대들.’
똑똑똑-.
클라우스가 애틀리와 에밀리에게 질문 세례를 받던 순간.
집무실의 방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