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11장 - 잃어버린 것
제 팬티를 입술에 앙, 하고 문 채 슬며시 다가오는 율리아.
여기까지 듣는다면 옷 다 벗고 마지막 팬티까지 벗은 건 아닐까 할 수도 있겠지만.
저번에 율리아가 교수실에 찾아와서는 꿀에 흠뻑 젖은 음부를 보일 때의 모습과 비교한다면, 현재는 지극히 평범하고 또 멀쩡한 복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소 입는 정복에 단추까지 전부 여미고 치마 길이도 너무 짧지 않은 율리아.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엄청나게 고혹적인 눈매와 입가에 물고 있는 팬티는 오히려 다 벗고 있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도 더 야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팬티를 입에 물고서 오라고 한 적은 없는데.”
슬그머니 율리아의 팬티를 잡은 클라우스는 그걸 살짝 잡아당겨보았다.
그러자 율리아는 한 번 가져가보라는 듯 더욱 강하게 앙! 하고 그것을 문다.
그녀가 정말 고양이라면 줄다리기라도 하자는 건가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율리아는 고양이도, 수인도 아닌 마족이다.
냐앙!-
여전히 사령관의 새 고영희 씨라는 컨셉에 충실하고 있는 율리아.
그 모습이 퍽 귀여웠기에 클라우스는 그녀의 입술에 물려있는 팬티를 잡아당겼다.
잠시 버텨보던 율리아였으나 이에 꽉 문 것도 아니고 입술로 가볍게 물고 있었다.
때문에 얼마 견디지 못 하고 곧 팬티를 그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가지고 싶다면 그렇게 뺏을 거 없이 내놔, 라고 하면 되었을 텐데요. 냐앙.”
“가지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뺏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우으! 못 됐어! 이건 내가 작은 고양이라고 무시하는 게 분명해! 냐아앙!”
그래도 마왕이라는 자각이 확실히 있는 율리아인데.
해서 저렇게 고양이 역할을 하는 게 꽤나 부끄러울 텐데.
율리아는 끝까지 부끄러운 티를 전혀 내지 않은 채 미소만 짓고 있었다.
이제 슬슬 마왕님의 위엄을 되찾아줄 때가 온 것 같아 클라우스는 슬쩍 입을 열었다.
“율리아.”
“냐앙.”
“이제 그만 해도 됩니다. 난 그냥 카엘라가 부관일 때 너무 고생해서 조금 더 챙겨준 것뿐이에요.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또 알게 된 것이고요. 당신한테도 다 말해줄 테니 이제….”
“뭐라는 거예요. 클라우스 사령관님?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데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랍니다? 설마 내가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억지로 뭘 할 것 같나요?”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럴 여인은 아니다.
가끔 가다가 클라우스의 취향에 맞춰서 다가오기도 하지만.
주도권은 못 쥘지언정 분위기나 컨셉만큼은 율리아 본인이 꼭 쥐고 싶어 했다.
“냐앙, 이런 가녀린 고양이한테서 그걸 빼앗아갔으면 뭔가를 보여야죠.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가져간 거라면 돌려주세요.”
짐짓 슬픈 눈망울을 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간드러진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율리아.
어찌나 그 목소리가 요망한지 마왕이 아니라 색마왕을 보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또 사실 생각해보면, 클라우스 본인도 색마왕인 건 마찬가지였다.
클라우스는 잠시 율리아를 바라보다가 제 손에 들고 있던 팬티를 코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마치 싱그러운 꽃향기를 맡듯이 아주 깊게 숨을 들이쉰다.
흐으읍-.
“어떤가요?”
“…향기로운 냄새가 진짜… 엄청 야하네요.”
그 말에 율리아가 깔깔거리면서 박수를 친다.
괜한 말이 아니라 정말 그녀의 살결에서 나는 향과 보지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겹쳐서 더럽다는 생각이 들려야 들 수가 없었다.
아마 발기가 안 되는 남자라고 해도 이 향을 맡는다면 아마 피가 솟구칠 정도로솟아오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물론 자신 이외에 정말 율리아의 팬티를 가지는 놈이 있다면 찢어죽일 테지만.
“우후후. 사령관님이 그렇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이래야 고양이 하는맛이 나죠. 냐아앙?”
다시금 고양이 소리를 낸 율리아가 슬그머니 클라우스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그의 위에 슬쩍 올라타서는 제 가랑이 사이를 그의 허벅지에 대고는 살살 비비면서 연신 쾌락이 섞인 비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으응! 으흥! 으흐흣!”
“…이번에는 뭐하는 건가요, 고양이 율리아?”
“냄새, 냄새를 묻히고 있잖아요. 카엘라가 말해줬어요. 당신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면 본인도 모르게 자꾸 부비적거려서 냄새를 가득 묻혔었다고요.”
“고양이들은 냄새로 상대방을 구별하니까요. 친근감의 표시이기도 하고….”
“소유권을 주장할 때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나요? 으흥. 저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연신 남자의 허벅지에 제 음부를 비벼대면서 여인이 귓가에 속삭여온다.
그러자 남자와 여인의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고, 그 순간 불꽃이 파득! 하고 튀는 것 같았다.
“클라우스 사령관님.”
상대방에게서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두 남녀.
그들 중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이 상황을 만든 율리아였다.
“오늘은 아주 부드럽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해주세요. 조금이라도 아프다면 이 조그마한 고양이는 도망갈 지도 몰라요. 저는 어떤 큰 고양이만큼 인내심이 많이 않거든요. 아, 냐앙.”
“율리아야 말로 하다가 저를 깨문다거나, 할퀴는 법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고양이를 최대한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던 나로서는 무척 슬플 거예요.”
그리 말한 후 천천히 손을 뻗어서는 율리아를 품에 안아 든다.
이후 걸음을 옮겨서 침대로 갈까 잠깐 생각하던 클라우스는 긴 소파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주말 내내 이 여인과 지낼 텐데 벌써부터 침대를 잔뜩 더럽히면 조금 그럴 것 같다.
소파 위에 여인을 눕힌 후 손을 뻗어서 조심스레 단추를 풀어준다.
한 칸, 한 칸 단추가 풀어지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앞섬이 벌어지며 그 어떤 것으로도 가릴 수 없는 마왕의 풍만한 가슴이 확 드러난다.
“부, 부끄러워요.”
입가에는 색스러운 미소를 뻔히 짓고 있으면서 부끄럽다니.
살짝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클라우스는 계속해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조심스러운 손길로서 옷을 하나씩 벗겨냈다.
상의를 치우고, 구두를 벗겨내고, 치마와 양말까지 전부 거두어서는 옆에 내려놓는다.
이전과는 다르게 정말 조심스러운 그 몸짓에 율리아도 조금은 진심으로 놀란 상태였다.
설마하니 이렇게 진심으로 맞춰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한 모양.
‘너무 가라앉아 있었어. 이제는 조금 물러져도 되지 않을까.’
회차를 진행하면서 가장 마음이 쓰이는 점은 아마도 ‘상실’ 아닐까 싶다.
처음 율리아를 봤을 때 뭐 자지가 선다, 섹스하고 싶다, 뭐 이런 게 아니었다.
그냥 정말 예쁘다, 아름답다, 여신이라고 해도 믿겠다, 이런 순수한 감정들이었다.
그러다가 그 감정이 조금씩 변해서 아름답다, 가지고 싶다, 내 여자로 만들고 싶다, 로.
이후에는 실컷 먹자, 이용하자, 저 여자를 통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거다, 까지 번졌다.
결국 어느 순간 돌아보니 자신은 그저 목표 하나를 위해 눈깔이 돌아버린 놈이었다.
살고 싶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죽을 때까지 누리다가 죽어서도 누릴 수 있을까 해서.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 떨어진 것이 너무나 억울해서.
나름 창조주라는 놈인데 뭔가 대단한 것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오기가 들어서.
그래서 회차를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클라우스는 뭔가를 계속 잃어갔다.
‘이러다가 진짜 미치는 건 아닌가.’
스킬 덕분에 버티고 있다곤 하지만, 초기와 비교하면 자신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율리아는 출세를 위한 도구, 나타샤는 요정과의 다리, 카엘라는 충성스러운 부관.
세실리는 마족 측과의 연결 통로, 그리고 리르는 가끔 가다가 먹는 불량식품.
그렇게만 여기면서 회차를 진행하는 자신에게 염증을 느끼기도 했었다.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녀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도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했다.
결과가 중요하다지만, 과정은 결과를 내기 위한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지만.
최소한 그 과정에서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바로 그 부분 때문에 클라우스는 또 한 번의 회차를 선택하기로 했다.
이미 이전 회차에서 매일 같이 율리아의 보지를 탐하는 마왕가의 실세가 되었지만.
뭔가 비틀려도 너무 많이 비틀려있었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았기에.
클라우스는 이번 회차에서는 억지로라도 완전히 죽어버렸던 인간성을 조금은 되찾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결코 아니었다.
회차의 반복은 결국 클라우스의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크게 다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충격이 어마어마하다는데.
클라우스는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죽음을, 수 십 번 경험했다.
아무리 상실했던 것들을 되찾으려고 노력해도.
조금은 물러져도 된다고, 약간은 편히 있어도 된다고 최면을 걸어 봐도.
오직 그때만일 뿐 결국 원래의 그 온기 없는 모습이 될 뿐이었다.
“클라우스?”
이런 저런 생각을 너무 오래 했던 탓일까.
소파 위에 누워있던 율리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옷은 다 벗겨두고 왜 할 일을 하지 않느냐는 그런 것이 아니다.
혹 무슨 일이 있냐고,왜 당신답지 않게 잘게 흔들리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냐고.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그녀마저 도구라고 여기고 있던 클라우스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
천천히 손을 뻗어서 율리아의 볼을 조심스레 만져본다.
처음이 여인을 잔혹한 운명에서 구했을 때 감정이 어떠했나.
기뻤다,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정말 비참한 삶을 살아가던 여인을 구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기뻤을 뿐이었다.
여신조차도 한 수 접고 갈 것 같은 이 여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 그만 울어도 된다는 것을, 널 지켜줄 누군가가 왔다는 것을.
이후 회차를 진행하면서 제 실수로 인해 율리아를 잃기도 하고.
반대로 그녀의 앞에서 자신이 죽은 적도 있었으며 둘이동시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살자, 살아남자, 살기 위해서는 이용해야 한다, 이용하려면 역시 그녀뿐이다.
아마도 그런 생각이 들면서 뭔가 비틀리고 또 잃어버렸던 것 같다.
회차는 막힘없이 잘 진행이 된다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게 있었던 이유는 아마 그 부분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율리아.”
“네, 클라우스. 왜 그래요. 무슨 안 좋은 일 있나요? 갑자기 불안하게 왜 이래. 왜요, 왜 그래요. 당신이 왜 그런 얼굴을 해.”
이제는 몸을 섞을 생각도 없는지 율리아가 몸을 일으켜서는 다급하게 클라우스를 안아준다.
여태까지 숨기고 있던 공허함이 확 드러나니 그녀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당장이라도 연기처럼 사라질 것 같다고, 앞에 분명 있는데 또 그가 없는 것 같다고.
“어느 순간부터, 당신에게 말 못 했던 것 같은데.”
“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안 한 것 같은데.”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정말 괜찮아요? 왜요. 왜 그러는데요. 이유를….”
“나, 사실 당신 많이 좋아해요. 아니…. 사랑해요.”
“…에?”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고백, 분위기도 전혀 그런 것이 아닌데 튀어나온 진심.
덕분에 율리아가 완전히 당황해서는 본인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건 예견된 것이었다.
“저, 저기. 클라우스? 가, 갑자기 그런 말은 왜….”
“그냥 하고 싶어서요. 해야 되기도 했었고.”
이번 회차를 왜 또 시작했는지 떠올려본다.
빈틈없이 완벽한 한 편의 삶을 위한 것.
하지만 그 빈틈없이, 라는 부분이 기계적으로 돌아가기만 하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완벽하게, 이번만큼은 후회 없이 이루기 위해서.
이 지겨운 회차를 클라우스는 이번에도 기꺼이 반복한 것이었다.
“갑자기,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나, 나는 어떻게 하라고요. 나는 그냥 오늘… 오늘… 이, 이러려고 온 게 아니란 말이에요.”
제 앞의 남자가 진심이라는 것을 확신한 여인이 어쩔 줄을 모른다.
정신없이 몸을 섞는 그런 쾌락의 순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리 나오면 괜히 자신만 음탕한 짓에 빠진 여인으로 비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율리아를 바라보던 클라우스는 조심스레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이전과 똑같지만, 뭔가 묘하게 다른 느낌으로 따스한 입맞춤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