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3화 〉10장 - 흐르는 시간들 (133/341)



〈 133화 〉10장 - 흐르는 시간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벌써 금요일이군요. 내일부터 또 주말이니 다들 잘들 쉬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들 알고 있겠죠?  중간시험이 치러질 겁니다.”



클라우스의 말에 여기저기서 귀찮아 죽겠다는 한숨 소리가 터져 나온다.


딱히 성적을 잘 받을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성적이 낮아 다른 이들에게 무시를 받는 것만큼 또 치욕적인 것이 없는 곳, 그게 바로 대륙 아카데미라고 할  있었다.

자신을 부족한 이라고 여기지 않지만 다른 종족의 누군가가, 혹은 저 옆의 누군가가 자신보다  많은 칭찬을 받고 다른 생도들의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강점, 혹은 약점이 되어서 그 후로도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애당초 그들이 이곳 대륙 아카데미에 제 본래 자리까지 드러내지 않겠다면서 들어온 것은.
바로 이곳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더 나아가 자신이 속한 가문의 강력함을 돋보이게 하여 결과적으로 더 많은 아군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처음에 말했다시피 중간시험은 철저하게 실기로 치러질 겁니다. 너무 걱정할 건 없습니다. 제가 약속하겠는데 며칠 전에 있었던 각 생도들과의 대련보다도 더 쉬울 겁니다.”

 말에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짓는 생도들.
아무리 클라우스라고 해도 결국 지금은 아카데미의 교수에 불과하다.
괜히 생도들과, 그리고 그 주변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해서 여태까지는 압박감 좀 주다가 슬슬 조금씩 풀어주면서 분위기를 살피려는 것이겠지.

생도들이 그런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는 순간, 클라우스는 기다렸다는 듯 찬물을 끼얹는다.

“아, 한 가지 더. 중간시험 이후 성적은 첫 번째부터 마지막까지 공개할 겁니다.”
“예?”
“어?”
“무척이나 쉬운 시험이니 정말, 아주 조금만 노력해도 모두가 1등의 자리에  함께 앉아있을 겁니다. 반대로 방심을 한 몇몇 생도는 그 뒤에 있게 되겠죠.”



중간시험이 매우 쉬울 거라는 말은 이제 더 들리지 않았다.
점수 차에 따라서 순위를 매기고 그걸 전부  공개하겠다고?
그냥 선을 정해두고 통과냐 아니면 탈락이냐 그걸 가리는 게 아니라?


생도들 다수가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클라우스를 바라본다.
성적에 따라 순위를 공개한다는  누구는 환호를 받고 또 누구는 반드시 비웃음 어린 시선을 받게 된다는 것인데 그 후자가 누가 될지는 지금 가장 당황하는 이들이 잘 알 것이다.

그냥 대충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이들만 사귀면 된다는 식으로 임하던 생도들.
바로 그들 말이다.


“교수님, 드릴 말씀이….”
“대부분의 강의는 중간시험을 단순히 통과냐, 탈략이냐 이것으로 가린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설마 교수로서 다른 강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방법을 채택하는지  부분을 확인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안타깝게도 전투 마법 강의는 다른 강의들과 조금 다릅니다. 아주 작은 실수 하나가 전장에서 죽고 사는 것을 가릴 터이니 허투루 할 수 없지요. 생도 여러분들이 이해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순위를 매기는 부분에 말이죠.”



이해는 개뿔, 도대체 왜 순위를 매기겠다고 하는 거야! 라는 표정들이다.
심지어 여태까지 클라우스의 강의를 잘 따라오던 마족 생도들도 난감한 얼굴들이다.
이리 직접적으로 점수와 순위를 매긴다면 필시 불만들이 많을 것이다.

자신들이야 경쟁을 반기는 쪽이니  상관은 없다지만 당장 자신들에게 여전히 경계심을 표하고 있는 서부의 생도들은 혹 마족에게 지는 치욕을 감당하고 싶지는 않을 터이니….


‘다들 허투루 할 생각 말라고. 그래도 난 나름 최선을 다해서 가르쳤는데 얻는 것 하나 없이 방으로 돌아가는 것만큼 속이 터지는 일도 없다니까.’




이제는 인간이고 요정이고 수인이고 전부 미련 버리고 깨끗하게 마음 접기로 했지만.
그래도  번의 회차를 진행하면서 그들을 살리고자 했는데 조금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해서 최소한의 양심으로 서부 연합의 생도들에게 많은 부분을 알려주었다.
 효과적인 마력 제어 방법과 적을 상대하면서 어떻게 호흡을 해야 신체와 마력 모두에 무리를 주지 않을 수 있는지, 그리고  뛰어난 적을 상대로 어떤 방법을 써야 방심을 유도해서 빈틈을 얻어내는 천운을 얻을 수 있는 것까지 말이다.


실전이 아닌 이상은, 그것도 한  번 정도의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 번의 실전을 거친 이만이 가질 수 있는 노하우를 대부분 전수해주었다.
너무 쉽게 풀이해주지는 않았지만 저들 수준으로 한 1년 정도 노력한다면 율리아 정도는 아니어도 꽤나 실력이 오를 것이라고 클라우스는 자신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결국 자신의 가르침을 온전히 가져가는 것은 율리아, 단 한 명이다.
나타샤나 세실리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한 90퍼센트에서 80퍼센트 정도 가져가고.
나머지는 반조차 제대로 취하지 못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유는 사실 꽤나 단순했다, 간단했다.
생도들의 노력 문제도 있겠지만 결국 그들에게 허락되는 성장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만든 이가 저들을 엑스트라도 안 되는 수준으로 딱 정해두었기에.
그로 인해서 저들의 성장은  한계치가 아주 명확했다.

‘덕분에 마음 놓고 율리아와 나타샤, 세실리에게 포인트를 짚어줄 수 있었지. 어차피 저놈들은 이해도 못 하고 머리로는 인식해도 몸으로는 또 따라오지  하니까.’




그래서 아무 어려움 없이 점찍어둔 여인들을 성장시킬 수 있었고.
그런 이유로 무조건 저 여자들을 잡아두려고 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 변화시킬  없는 것, 그걸 클라우스는 잘 알고 있다.
해서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이용하고 불가능한 부분은 재빠르게 포기한다.
그게 30회차에 들어선 그의 생존 전략이자 영원히 반복되는 회귀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아무튼 다들 그렇게들 알고, 한 주 마무리들 잘 하고 다음주에 보도록 합시다.”

한 차례 폭풍을 불러온 클라우스가 그 말을 남겨두고는 바로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생도들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서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는 중이었다.

설마 대놓고 순위를 공개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했는데 이를 어쩌나.
강의를 열심히 들은 생도들도, 그 반대로 전혀 듣지 않은 이들도 모두 걱정인 모양.
클라우스의 강의를 절반도 채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율리아는 조용히 제 필기도구들을 챙겼다.
도대체 저들이 왜 저리도 걱정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최선을 다해서 클라우스의 강의에 열중했던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그저 자신들이 한 만큼 그 결과를 보여주면 되는 부분인데 말이다.


심지어 난이도도 이번에 있었던 대련보다 더 쉽다고 했다.
그렇다면 걱정할 부분은 단 하나도 없지 않은가.
굳이 하나를 걱정해야 한다면 그건 여태 클라우스의 강의를 대하던 자신들의 자세.
오직 그 뿐이 될 것이다.



“율리아.”

그녀가  강의실 밖으로 나서는 찰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는다.
고개를 돌려보니 나타샤가 얌전히 서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네, 나타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



처음에는 서로 엄청나게 경계하고 또 으르렁거렸다.
한쪽은 마족이고 다른 한쪽은 요정, 이미 그것만으로도 이유가 충분했었다.
거기에 서로가 노리는 바가 비슷하니 결국 부딪칠  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클라우스가 재빠르게 교통정리를 해주었기에 더는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저번처럼 저녁 식사나 같이 할까 하는데요. 어떠세요?”
“클라우스 교수님도 오시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대신 다른 분을 초대하기로 했어요. 저번에 오셨던 분으로요.”

저번에 오셨던 분이라 하면 분명 그녀를 말하는 것이다.

클라우스의 부관이었고 지금은 조교로 그를 돕고 있는 호랑이 수인, 카엘라 티거.
율리아 본인이나 나타샤 입장에서 정말 오싹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던 여인.
제 사령관 앞에서나 얌전한 고양이지 다른 이들 앞에서는 흉포한 맹수 그 자체.

“…괜찮을까요?”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당장 카엘라의 활동을 보면 클라우스와 연관된 것이 아니면 일체 움직이지를 않으니까.
율리아의 질문에 나타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술을 뗀다.


“사실 카엘라 조교님과는 이야기를 했어요. 전투 마법 강의에서 그래도 클라우스 교수님께 나름 괜찮은 평을 받은 이들끼리 모여서 조금 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 볼 생각인데 거기에 오셔서 조언 같은 걸 해주실 수 있냐고 말이죠.”
“대답은요?”
“클라우스 교수님 이야기가 나오니까 바로 고개를 끄덕이시던데요.”


나타샤의 말에 율리아는 역시, 하고 예상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우리 말고  명 더 있어요.”
“더 있다고요?”
“실은 세실리 레블랑도 같이 부를 생각이거든요.”
“….”

예상치 못 한 이름이 나오자 율리아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여태까지 클라우스 때문에 세실리의 근접 전투 쪽을 봐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있어서 레블랑 가문은 생각만 해도 얼굴이 절로 찌푸려지는 곳.
마왕에게 있어서  그대로 다른 이에게 달라붙은 배신자라고 할 수 있었다.

율리아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나타샤가 슬그머니 입을 연다.

“대륙 아카데미는  흥미로운 곳이에요.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적이라고, 절대 어울릴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고  나아가 꽤나 친근한 사이가 될 수 있으니까요.”
“….”
“당신과 나처럼 말이죠.”


그 말에 율리아는 진심을 다해서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나타샤의 말에 하등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음을 본인도 여실히 깨닫고 있다.


당장 마족들이 악마라고 칭하며 그리도 두려워하던 남자가 어느 순간 자신의 사람이 되어서는 힘껏 자신을 도와주고 있고.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요정과는 지금 이렇게 마주보고 서서는 마치 이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를 대하듯이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클라우스는 내가 레블랑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걸 원하고 있을 지도 몰라.’



모든 정보를 꿰고 있는 그 남자가 아무 것도 모른  자신에게 세실리를 붙였을 리 없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이곳에서 가장 경계하던 적  하나를 은밀하게 자신 쪽으로 다시금 당겨오는 그림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눈앞의 나타샤도 클라우스와 어느 정도 가까운 사이이니 언질을 받았을 확률도 매우 높다.



“…오늘 저녁 식사라고 했죠?”
“네, 율리아.”
“좋아요. 그러면 저번처럼 클라우스 교수님은 없이, 여인 넷이 함께 하는 자리가 되겠네요.”
“혹시 그 자리가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유지되고 싶다면 조금 더 논의를….”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당장 당신과 내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도 지금쯤이면 여기저기 퍼졌을 텐데 레블랑 가문의 여식과 식사 정도야 문제없죠.”

오히려 소문이 더욱 과장되게 퍼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다 떠나고 떠나 진실된 충신들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마왕성.
그 안에 알고 보니  무서운 배신자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났다.
덕분에  숙부에게 또  번 이를 갈면서 분노하고 있던 찰나에 시원하게 먹일 기회가 왔다.



‘레블랑 가문은 숙부의 든든한 지지 세력이었죠? 그러니까 어디  번 당신도 감당해보시죠.  레블랑 가문의 여식이, 당신이 그렇게도 밀어내고 싶어 하는 마왕과 개인적인 자리를 가졌다는 소문을 말이에요.’




당연히  숙부가 보통 남자도 아니고, 그걸로 레블랑 가주를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의연하다고 해도 주변 이들까지 그러할 수는 없는 법.
세력이 커진 만큼 어중이떠중이들도 많을 것이고 그러할수록 바람  번에 거세게도 흔들리는 것이 세상의 순리였다.

“그러면, 율리아.”
“네, 나타샤.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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