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10장 - 흐르는 시간들
“그, 그만! 이제 그만!”
“후우, 후우! 하아앗!”
“크아아악!”
결국 나타샤의 일격을 버티지 못 한 한 요정이 그대로 바닥에 쳐박혔다.
무지막지한 공격에 무기까지 놓치고 등판을 두들겨 맞고는 쓰러진 것이다.
잠시 자리에 쓰러져서는 꿈틀거리던 그 요정 남성은 몸을 일으키고는 악을 쓴다.
“나, 나타샤 벨라루스!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당신 목숨이 오고 가는데도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야?”
“애당초 요정들은 이렇게 저급하게 싸우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상한 거예요!”
“적이 항상 화살만 맞아주고 마법에 당해줄 거라고 생각하나봐.”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실력입니다! 벨라루스 소속인 당신이 그걸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명예로운 바람과 숲의 후예들! 더러운 것과 어울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자 나타샤의 얼굴에 비틀린 조소가 가득 맺혔다.
대륙 전쟁에서 그리 데이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적들이 다가오기 전에 활로 제압하고, 그래도 다가온 소수는 창칼로 정리한다.
그런데 그 소수의 적이 근접 전투에 엄청나게 강력하다면 그 때는 어쩌려고?
아무리 활을 잘 쏜다고 해서, 마법을 잘 다룬다고 해서 뭐한단 말인가.
다가온 적들에 의해 모가지가 쑹덩쑹덩 잘린다면 그 때는 무슨 핑계를 붙이려는 건지.
따악!-
“끄윽?!”
“상당히 말이 많아졌네. 내가 뭐 아까 패배해서 이제는 좀 만만하다는 건가? 이제는 나 정도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막 드는 거니?”
“그, 그건….”
“주둥이 놀릴 시간에 얼른 덤벼. 나자빠져서는 입만 놀리는 거 상당히 꼴사납거든.”
“무례합니다! 이래 뵈도 나는 드렌느 소속의….”
스윽-.
요정 남성의 턱 밑에 나타샤의 봉이 자리한다.
거기서 한 마디로 더 한다면 그대로 목젖을 찔러주겠다는 협박.
상당히 오만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그 기세에 남성은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만다.
“결국 그럴 거면서 싫은 소리를 꼭 들어야 정신을 차리지.”
나타샤의 중얼거림에도 요정 남성은 속으로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서로의 가문이 가지는 힘과 명예에서도 차이가 명확할뿐더러 나타샤 벨라루스는 그 중에서도 특히 날카롭고 차갑기로 유명한 요정이었다.
마법을 쓰지 못 해 벨라루스에서 은근히 무시 받고 있다는 걸 풀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본래의 성격이 저리도 더러운 것인지 이제는 상관이 없었다.
제발 아무나 와서 이 미친 요정의 새로운 상대가 되었으면 하는 게 그의 속마음이었다.
“나타샤 벨라루스.”
그런데 오늘은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모양이다.
갑자기 옆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한 목소리가 나타샤의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그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방해한다고 생각한 듯 나타샤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또 누가 부르는 건… 가 했는데. 교수님이셨군요? 어서 오세요.”
으잉? 갑작스러운 변화에 남성 요정 생도는 당황을 감추지 못 했다.
조금 전까지 그리도 험악하고 오만했던 기세는 다 어디 가고, 싱글싱글 웃는 낯이 되어서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간 남자에게 날아가듯 다가가고 있던 것이었다.
‘저 남자는.’
이름은 수도 없이 들어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얼굴도 몇 번 보았다.
대륙 전쟁에서 서부를 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간 측 사령관, 클라우스.
이번에 전투 마법 강의를 맡았다고 했었는데 이리 보게 되었다.
“대련 중이었던 모양이군요. 혹 내가 방해를 한 건 아니겠지요?”
클라우스가 은근한 어조로 그리 물으니 나타샤가 바로 고개를 내젓는다.
그리고는 여태까지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갑자기 제 상대였던 이에게 다가가서는 어깨 위에 손을 올린다.
“전혀요. 이제 막 끝난 터라 아무런 문제없답니다, 교수님!”
물론 그리 말한 후에, 나타샤는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괜히 멍하니 서서 방해하지 말고 여기서 얼른 꺼지라고.
그러자 어찌 되었든 구원을 받은 건 확실하니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이탈했다.
바보 같이 더 시간을 끌다가 나중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말이다.
“무척 열심히 하는군요.”
“중간시험이 이제 코앞이잖아요. 더 노력해야죠. 여기 이러고 있지 말고, 일단 걸으실까요?”
혹 다른 누군가가 지금 이 장면을 보고서 이상한 소문을 퍼트릴까.
괜히 클라우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우려한 나타샤는 재빠르게 생도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으로 그를 안내하려고 했다.
하지만 고개를 저은 클라우스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그리고 나타샤가 이유를 묻기 전에 일부러 소리를 조금 높여서는 입술을 떼었다.
“어제 있었던 나타샤와 율리아의 대련에 대해서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마치 지금의 이 상황을 보거나 듣는 이가 있다면 이런 이유로 이 여자를 잠시 데려간다.
뭐 이런 느낌을 주기 위한 일종의 연막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클라우스가 정말 어제 있었던 대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고 생각했는지.
나타샤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발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죄송해요, 교수님.”
“뭐가 죄송하다는 건가요?”
“교수님께서 신경을 써주셔서, 그래서 마력을 이전보다 훨씬 잘 다루게 되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결국 율리아에게 패배해서요. 교수님의 가르침이 모두 헛수고가 되어서….”
“전혀요. 오히려 나타샤가 단기간 내에 엄청나게 성장해서 뿌듯했을 정도였습니다.”
“저, 정말인가요?”
“설마 율리아와 대놓고 마법으로 싸울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 했으니까요.”
요정 특유의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클라우스 앞에서 율리아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는지.
나타샤는 그런 식으로 마력을 사용하면 후반에 가서는 자신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마법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었다.
자신의 장기가 창을 다루는 것임을 감안하면 패배의 가능성을 높이는 지름길임을 알면서도 굳이 그걸 택해서 제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채우려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멋졌습니다, 나타샤.”
“아….”
“비록 패배했지만 추하게 이기는 자들보다 훨씬 나았어요. 얼마 안 되는 졌지만 잘 싸웠다, 라는 것의 좋은 예시라고 할까요.”
“감사해요, 교수님. 솔직히 저는 교수님께서 혹 제게 실망을 하신 건 아닐까 어제부터 마음을 졸이고 있었거든요. 딱히 제게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고… 또….”
우물쭈물하면서 제 할 말을 제대로 다 하지도 못 하는 나타샤.
방금 전 다른 요정을 잡아먹을 듯 몰아붙이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처음에는 이게 내숭을 떤다, 혹은 머리를 쓴다, 그렇게 오해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회차를 진행하면서 왜 나타샤가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강하고 오만하고 자존심 높은 여인으로 포장한 것이었다.
정작 그 속은 조금이라도 베이면 너무 아파서 울고 싶은 요정이라는 것을.
누구한테 기대서 위로를 받고 따뜻한 응원을 얻고 싶어 한다는 소녀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나타샤는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강한 척을 해왔다.
이러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율리아나 세실리, 그리고 카엘라와는 다르게 속이 너무 여려서 조금만 신경을 써주지 않아도 버림을 받은 건가 걱정하고 잔뜩 움츠러들 여인임을 뻔히 안다.
나타샤가 걱정을 하거나 마음에 의심이라는 못된 것이 고개를 들려고 할 때.
바로 그 타이밍에 나서서 가끔씩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다.
“오늘 오후 강의는 없으신… 흥읏?!”
교수실에 들어가면서 나타샤가 한껏 미소를 지은 채 그렇게 말하던 찰나.
갑자기 제 입술에 와락 달라붙는 남자의 숨결에 여인이 화들짝 놀라서는 어쩔 줄 몰라 한다.허나 곧 버둥거리던 몸짓은 미약해지고 대신 입술을 열고 혀를 움직인다.
그리고는 왜 이제 찾아왔냐며 울먹거리는 숨소리를 흘리면서 갑작스레 찾아온 이 순간을 참으로 기쁘게도 즐겨본다.
“…원래는 율리아 이후에나 상을 주려고 했는데.”
“했는데요?”
“생각해보니 다음 주에 너무 할 일이 많아서요. 그래서 나타샤를 내 방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여기는 제 방이 아니라 교수님의 방이군요.”
나타샤가 한창 쾌락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릴 때는 그녀의 방이었다.
미약도 잔뜩 발라두고 거기에 열병 스킬까지 제대로 발동되어서 아마 그 순간에 나타샤는 진작 천국이라는 황홀한 맛을 보았던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 방이 아니라 클라우스의 교수실에, 방에 들어와서 키스를 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너머로 나아가려는 듯 남자가 제 바지를 천천히 벗기고 있다.
클라우스가 제 공간을 허락했다는 점, 그의 영역에서 이렇게 안길 수 있다는 점.
그 부분들이 나타샤 특유의 성향을 계속해서 콕콕 찌르면서 자극을 가하고 있었다.
“이, 이러다가 교수님이 난처해지시는 건 아닌가요?”
“그러니까 몰래 즐겨야죠. 혹시 나타샤는 이런 새치기가 싫은 건가요? 나는 일부러 당신을 위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건데. 그게 싫다면 그냥 대련에 대해서 정말 이야기나….”
클라우스의 다음 말은 그대로 나타샤의 입술 너머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그녀가 클라우스를 와락 붙잡고는 다시금 키스를 퍼부은 것이었다.
투툭, 툭-.
남자의 손길이 부드럽게 여인의 몸을 훑으면서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치워낸다.
가장 먼저 겉옷이 벗겨지고 그 다음 옷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순식간에 요정의 새하얀 살결이 주변을 눈이 부시도록 밝히기 시작했다.
“…아, 자. 잠시만.”
그러다가 나타샤가 갑자기 허둥거리더니 급히 입술을 떼어내고는 클라우스를 제지한다.
이제 와서 부끄럽다거나, 혹은 걱정이 된다고 물러설 여인이 아닌데.
클라우스가 왜 그러냐는 뜻으로 시선을 꽂고 있으니 그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다.
“저 방금 전까지 대련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요?”
“그러니까… 땀도 흘렸을 거고, 몸 더러울 거예요. 일단 한 번 씻고 나서….”
“몰래 하는 중인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나요, 나타샤.”
“하지만, 하지만….”
“걱정 마요. 역한 냄새가 아니라 그냥 당신 특유의 향긋한 냄새만 더욱 진하게 날 뿐이니까.”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한창 대련을 했다고 하지만 나타샤에게서 나는 냄새는 역한 땀 냄새가 아니라 농익은 여인의 달짝지근한 향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클라우스는 일부러 목덜미에 코를 대고서는 아주 깊이 그 향을 흠뻑 마셔본다.
그러자 나타샤의 몸이 움찔움찔 떨리면서 부끄럽다고, 그러나 또 무척 행복하다고 귀엽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봐요, 나타샤.”
“뭘 솔직히 말하라는 건가요?”
“그 때 이후로 혼자서 몇 번이나 했나요?”
“네, 네?”
“자위 말이에요.”
“무, 무슨 그런 부끄러운! 저는….”
“나를 생각하면서, 내가 나타샤의 귀여운 가슴과 보지를 막 범해주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는 속으로 앙앙 울어대며 과연 몇 번이나 했을까요?”
찰박-.
“하읏!”
어느 틈에 속옷까지 벗겨낸 것인지, 보지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에 나타샤가 몸을 비튼다.
아직 제대로 된 애무 따위는 하나도 없었는데 이미 몸에 불이 붙은 것마냥 뜨겁다.
당장이라도 질문이고 대답이고 다 무사하고 그냥 상대방에게 안기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해진다.
“내가 말했었죠?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약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하으응….”
“말해 봐요, 나타샤. 몇 번이나 했죠?”
당장 부드럽게 제 보지를 훑는 클라우스의 손가락에 정신이 멍해져간다.
이렇게 만져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더 강하게 해줘도 좋은데. 그리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던 나타샤는 클라우스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걸 원하면 얼른 솔직하게 대답을 하면 된다는 뜻이 담긴 그 눈빛에.
“세, 세 번… 세 번 했어요….”
“정말요?”
“네, 네….”
“아닌 것 같은데.”
“하윽! 흐으읏! 아, 아아! 아, 안으로 조금 더…! 하으읏!”
“세 번 아니잖아요. 몇 번인가요, 나타샤?”
“…여, 열세 번… 열세 번 했어요… 아으응…!!”
결국 실토를 하고 마는 나신의 금발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