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8화 〉10장 - 흐르는 시간들 (128/341)



〈 128화 〉10장 - 흐르는 시간들



생도들 사이로 잔뜩 긴장하고 있는  여인이 보인다.
새카만 머리를 찰랑거리는  여성 생도는 꽤나 불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황빛 눈동자는 연신 저 멀리 대련장을 살피는 클라우스에게로 고정.



‘하,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여태까지 무척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지만 그동안 당한 것도 참으로 많다.
거기에 더해서 이번에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가차 없이 내치겠다는 말도 있었다.

세실리 입장에서 패배와는 비교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결말.
여태까지   번도 겪어보지  했던  짜릿한 괘락들을 미처 마음껏 즐기기도 전에 죄다 사라지게 생겼으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세실리 레블랑 생도. 준비하세요.”

그러는 사이 이번에 새로이 조교의 자리에 오른 카엘라가 입을 연다.
세실리는 그 말을 듣고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대련장 중앙으로 향한다.
이미 거기에는 무척이나 여유로운 자세로 서있는 클라우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세실리 생도.”
“크, 클라우스 교수님.”
“여태까지 당신의 대련 제안을 다 받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실력이 향상될 수 있도록 아주 ‘열심히’ 세실리 생도를 교육해주었지요. 오늘은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다른 생도들이 듣기에는 그냥 단순한 질문 같아 보이지만.
세실리에게는 저 말이 일종의 경고처럼 들리고 있었다.

만약 오늘도 기대 이하라면 여태까지 시간을 들여서 네게 해주었던 모든 것 다 취소다.
그리고 아예 이 강의에서 영구 제명시켜버릴 것이라고, 그렇게 말이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긴장을 털기 위해서, 세실리는 힘껏 소리쳤다.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라 정말 어제까지도 수련에 수련을 계속 했던 자신이다.
마법에 소질이 있다는 것에 자만하거나 과신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노력했다.

그렇기에 방금처럼 망설임 없이 대답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했으니 반드시 결과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클라우스 교수님, 그리고 세실리 생도. 준비되었으면… 시작하겠습니다.”

카엘라가 손을 들고서 재빠르게 뒤로 물러선다.
세실리는 그녀가 빠지자마자 클라우스의 공격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듯 뒤로 훌쩍 물러나서는 방어 자세를 취한 채 바로 마력을 가속시킬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딱히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공격할 자세를 잡지도 않았다.
그냥 처음 시작할 때의 자세 그대로 편히 서서는 세실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와,  정도면 거의 대놓고 무시하는 거 아닌가?”
“조용히 하세요.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오히려 클라우스 교수님이 봐주는 거죠.”
“난 아무리 봐도 클라우스 교수가 이길 것 같단 말이야.”



생도들이 떠드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섣불리 공격을 하지 못 하는 세실리와 딱히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클라우스.
누가 하나 움직여야 대련이 시작되었다고  수 있을 텐데 그럴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실리는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몸의 긴장은 풀리지 않고 더욱 심해져서 근육을 팽팽히 당기고 있다.
적당한 긴장은 필수라고 하지만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몸의 피로도가 극심해진다.
이러다가 갑작스레 몸을 움직이게 된다면 반드시 영향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

“흣….”




입술을 깨물던 세실리는 자신이 먼저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리 시간을 끌어봤자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이 하나 없다.
그렇다면 상대의 빈틈이 보이는 바로 이 순간이라도 어떻게 노려봐야 하지 않겠는가!

타앗!!-

힘차게 공중으로 도약하는 세실리.
검을 들고서 정확하게 클라우스의 머리를 노리면서 그녀는 재빠르게 마력을 가속시켰다.
만약 클라우스가 몸을 움직여서 공격을 회피하려 한다면 마법 공격으로 발을 묶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공격을 막으려고 한다면 추가타를 넣을 생각이었다.



“…?!”



하지만 세실리는 그 모든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가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아, 하는 그 찰나의 시간에 클라우스가 자신에게 검을 찔러넣고 있던 것이다.

‘늦어!’




닿을  없다, 자신의 공격은 이 상태로 클라우스에게 닿을 수 없다.
저 공격을 허용하면서 클라우스에게 이대로 공격을 한다고 해도 그게 유효할지 의문이다.
이전의 세실리였다면 바로 여기서부터 당황해서는 바로 허우적거렸을 것이다.
몸이 꼬이고 균형이 어그러져 스스로 자리에 주저앉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세실리는 달랐다.
당황해서 허우적거리지도 않았고 어찌  줄 몰라서 헤매지도 않았다.




콰앙!!-


클라우스의 두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제 찌르기를 확인한 세실 리가 단 몇 초 만에  반격에서 벗어난 것이다.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그대로 하나로 합쳐서 자신에게로 쏘아 보냈다.
클라우스를 제압하기 위해서, 혹은 그 비슷한 이유로 날린 것이 아니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 그렇게 해서 클라우스의 공격이 비틀리게 만들기 위해서.
이제는 공격을 접고 한 턴을 벌 줄도 아는 단계까지 오른 것이다.

‘율리아만큼은 아니어도 꽤 늘었군. 전투 센스도 많이 좋아졌고.’


그래도 기본이 잡혀있던 율리아나 근접 전투에서는 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나타샤.
하다못해 그림자의 일원으로서 간단한 전투 정도는  수 있는 리르와는 달리.
세실리는 아예 지금과 같은 ‘싸움’ 이라는 것을 두 달 여 전부터 시작한 이다.

저렇게 자신의 공격 사이로 파고드는 반격 앞에서 재빠르게 판단을 내리는 것이나.
기습을 위해서 숨겨둔 마법을 아끼지 않고 사용해서 빠져나가는 것.
공격을 접고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살피는 것까지.
이 정도면 초심자 치고는 정말 빠르게 습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다음부터는?’



선공을 취했다가 그 기세를 홀라당 뺏겼다면.
 다음부터는 완벽하게 상대방에게 흐름을 내어주는 꼴이다.
차라리 방금  공격을 맞아주고 달려들었다면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 싶다.

따로 마력은 돌리지 않는다, 다만 손에 든 검  자루로 몰아붙일 뿐이다.
봐주는 느낌 하나 없이 제아무리 목검이라고 해도 직격타로 맞으면 큰 부상을 입거나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는 급소만 골라서 노린다.


목, 머리, 배, 그리고 움직임에 있어 중요한 근육들이 뭉쳐있는 곳들.
어지간한 생도들은 감히 눈으로 쫓기도 힘든 움직임들이 수도 없이 들이친다.
거의 춤을 추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속공들이 연속해서 날아들었다.


“흣! 하아, 하아!”


잠시 후, 뒤로 물러난 세실리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대련이 시작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비 오듯 땀을 흘리는 모습이나.
마법으로 받아치고 검으로 막아내도 계속 날아들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구르면서 순식간에 먼지로 뽀얗게 뒤덮인 모습까지.
어느 누가 그녀를 동부 마족의 유력 가문인 레블랑의 막내딸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하아! 하아!…”




그래도 세실리는 자리에 쓰러지거나 더는 못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팔을 후들거리고는 있지만 끝내 검을 놓치지는 않았다.
아직은 몸을 움직여 상대방과 싸우는 것에 익숙지 않을 텐데도 용케 버틴 것이다.

“….”




한편, 율리아는 자리에 앉아 세실리와 클라우스의 대련을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클라우스의 압승을 예상했고 지금도  생각은 딱히 변하지 않지만.
 레블랑 가문의 막내딸이라는 마족 여인이 꽤나 대단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놀라운데요.”

그러다가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본다.
거기에는 은근슬쩍 제 옆에 엉덩이를 붙이는 나타샤가 있었다.



“나타샤 벨라루스.”
“율리아가 보기에는 어떤가요? 레블랑 가문의 저 세실리라는 마족 말이에요.”
“…같은 생각이에요.”
“네?”
“놀랍다고요. 처음에는 아예 기본도 잡혀있지 않았는데. 클라우스 교수님과 몇 번 대련을 하더니 순식간에 바뀌어서는 저 정도를 보이고 있잖아요.”



율리아의 대답에 나타샤는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실리가 보이는 움직임도 대단하지만 나타샤가 놀란 부분은 바로 그녀의 마음가짐.
검을 쥐고 상대방과 싸울 때 초심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제 몸에 날아드는 상대방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견뎌내야만 한다는 부분이다.

아차 하는 순간 방어가 뚫리고 날아드는 공격이 무서워서  눈을 감는다거나 아니면 조금만 허우적거려도 승부는 순식간에 끝나기 마련이다.
그런 것이 정상인데 세실리라는  마족 여인은 클라우스를 상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클라우스가 나름 많이 봐주고 있다는 부분을 감안해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결과는….”
“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요.”

콰직!!-

세실리가 들고 있던 목검이 흉하게 부러져서는 땅바닥에 떨어진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앞에는 마력을 두른 주먹으로 목검을 박살을 낸 클라우스가 가볍게 손을 털고 있는 중이었다.

여태까지 최선에 최선을 다해서 그 엄청난 맹공들을 버티고 또 버티고 있었건만.
클라우스에게는 아무래도 식후 운동거리 밖에 되지  했던 모양이다.
지친 기색 하나 없는, 난처했다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클라우스.
세실리는 고개를 떨구고는 어찌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클라우스 교수님.”


슬그머니 등장한 카엘라가 바로 클라우스에게 물수건을 내어준다.
클라우스는 그걸 받아 들어서는 잠깐 제 손을 닦다가 세실리에게로 넘겨주었다.

“어….”
“아주 조금은 나아졌더군요, 세실리 생도.”
“그, 그런….”
“그동안 굳이 시간을 들여서 고생을  이유가 있는 듯 해서 다행입니다.”
“클라우스 교수님. 그렇다면 저는 이대로 이 강의에 남아도 되는….”
“노력하는 생도를 쫓아내는  교수로서 그리 유쾌하지 않으니까요.”
“아아!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조금 전의 패배에 대한 상실감은  어디로 떨쳐냈는지.
지금의 세실리는 좋아라 하고 펄쩍 뛰면서 세상의 빛과 희망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클라우스는 짐짓 차가운 목소리로 한 마디를 해주는 걸 잊지 않았다.

“너무 좋아하지는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으니까.”
“아, 아아….”
“그런 의미에서 특훈은 계속 이대로 진행할 겁니다. 혹시 불만이라도 있습니까?”


특훈이라는 말에 다른 생도들이, 하다못해 율리아도 ‘으윽.’ 하고 얼굴을 찌푸린다.
클라우스가 말하는 훈련이 말만 훈련이지 실상은 그냥 죽고 싶을 만큼 굴리는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알고 있기 때문.



“아뇨! 없어요! 있을 리가요! 에헤헤!!”


하지만 세실리는 그런 부분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애당초 바로  특훈을 더 원했다는 듯 세상 행복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 제대로 미친 여자.’



조만간 세실리도 한 번 불러서 제대로 그 속을 즐겨줄 생각이다.
언제까지 괴롭히기만 하면서 그녀의 만족만 채워줄 수는 없는 노릇.
가는  있으면 응당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쾌락을 알려주었으니 이제는 클라우스 본인이 그녀의 몸으로 쾌락을 얻어갈 차례였다.
다만  과정이 또 세실리가 원하는 대로 아주 실컷 괴롭혀주는 방식이라는  문제였지만.



이후 이어진 대련들은 딱히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굳이 하나를 꼽자면 의외로 리르가 꽤나 선전했다는 것.
여전히 생도로 있는 때에는 평범한 남성 마족 생도로 위장하고 있는 그녀는 클라우스의 예상보다도 더 큰 실력을 보이면서 기어코 승리를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러면 상을 줘야 할 여자들이 너무 많은데. 누구부터 줘야 하나.
클라우스는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강의 종료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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