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3화 〉10장 - 흐르는 시간들 (123/341)



〈 123화 〉10장 - 흐르는 시간들
“가겠습니다, 율리아 생도.”
“네, 교수님. 준비 되었습니다.”



율리아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클라우스의 손이 움직였다.
동시에 싸늘한 기운을 품은 마력 응어리들이 순식간에 그녀에게로 날아든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격들이었지만 율리아는 회피 동작이나 방어 마법을 준비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 역시 마력을 가속시켜 응어리들을 만들어 냈는데 그 크기나 집속력이 클라우스의 것보다는 약간 덜 한 느낌이 있었다.

저것만으로 지금 날아오는 공격들을 모두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분명 양측이 부딪치면 거의 백이면  율리아 쪽의 마력이 버티지 못 할 것이었다.
차라리 견디지  하고 터지면 다행이다.
역으로 마력이 흡수당해서 클라우스의 공격만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음이다.




하지만 율리아는 입술을 앙다문 채 그 응어리들을 쏘아 보냈다.
하나, 둘, 셋, 숫자를 파악한 후 온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상대가 날려 보낸  마력 덩어리들의 중심을, 핵을 찾는다.



반짝!-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은 율리아가 가볍게 손을 휘젓는다.
그 직후 클라우스의 마력 응어리들이 갑자기 속도를 잃더니 그대로 바스러진다.


“하아, 하아….”



무척 짧은 순간이었지만 엄청나게 집중을 했던 탓인지 땀을 줄줄 흘리는 율리아.
그것도 모자라서 잠깐이나마 휘청거리는 것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로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곧 자신이 비로소 상대의 공격을 완벽하게 파훼해냈음을 깨닫고는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축하합니다, 율리아 생도. 내 강의에서 처음으로 이 기술을 습득한 이가 되었군요.”
“가, 감사합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제야 겨우 첫 발을 내딛은 수준이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자, 생도 여러분. 모두 율리아 생도에게 박수  번 쳐주죠.”

짝짝!-


클라우스의 강의를 듣던 생도들 모두가 박수를 쳐준다.
딱히 율리아와 가깝지 않은 마족 생도들도, 마족 자체를 싫어하는 요정 생도들도.
그들 모두가 이번만큼은 대단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율리아가 해낸 이 기술은 어려운 것이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100의 마법 공격을 그보다 훨씬 아래인 70, 혹은 50 수준의 마력으로서 완전히 파훼하는 것.
가장 적은 마력으로 상대 공격의 중심을, 마력의 핵을 완벽하게 파괴하면 된다.
이론상으로는 틀린 부분이 없으나 그걸 실전에서 옮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것.


그걸 율리아가 기어코 성공해냈으니 어찌 대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인간 귀족 생도조차 뚱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몇  박수를 칠 정도였다.



‘역시 희대의 사기 캐릭터답다. 이걸 가르쳐준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에서 성공하다니.’



사실 생각해보면 아주 당연한 결과다.
지금의 이 기술은 애당초 율리아가 고안한 것.
그걸 본 이후로는 클라우스가 아주 알차게 써먹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덕분에 자연스레 그가 먼저 고안한 것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말이다.


그러니까 율리아가 이 기술을 이리도 빠른 시간 내에 따라잡은 건 순리라 할 수 있다.
다른 생도들은 알맞은 타이밍에, 훨씬 더 적은 양의 마력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읽고서.
마지막 순간에 그 중심을, 핵을 일격에 아주 완벽히 파괴하는 것.
이 중요한 부분들에서 단 하나도 제대로 해내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이건 결코 다른 생도들이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율리아가 뛰어난 것이고, 그만큼 그녀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원래의 흐름에서야 숙부라는 놈이 하도 잡아먹으려고 안달복달에.
도대체가 믿을 수 없는 놈들 천지에 기껏 믿었던 이에게도 배신을 당하는 일의 연속.
악몽과도 같은 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겹쳐서 그 능력이 나중에 피어난 것이다.

지금처럼 바로 옆에 믿을  있는 이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준다면.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안정된 상태에서 오히려 행복하다는 느낌까지 받는다면.
이건 호랑이에게 날개가 돋쳤다, 뭐 그런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 되게 된다.



‘아, 이거 이제 슬슬 긴장 타야 하는 순간이 왔네.’

원래 소설에서는 7년 후 2차 대륙 전쟁을 터트리는 율리아다.
그 말인 즉, 지금보다 훨씬 뒤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재능을 꽃 피운다는 것.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으니 자연스레 전쟁도 앞당겨진다.
무엇보다 괜히 시일을 끌어봤자 귀족 놈들이 준비할 시간만 주는 꼴이다.

전쟁을 막을 생각? 당연히 없다.
2차 대륙 전쟁을 막아서 이득을 얻는 건 그 꼴 보기도 싫은 귀족들이다.
더해서,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2차 대륙 전쟁은 발발하게 되어 있다.

그 지겹고도 기가 막힌 회차를 진행하면서 얻은 제일 확실한 결론.
율리아가 죽어도 일어나고, 동부와 서부의 사이가 좋아져도 일어나고, 무슨 별 지랄을 다 해도 전쟁은 일어난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이기는 쪽은 여태도 말했지만 동부의 마족들이다.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는, 운명의 데스티니인지 뭔지 하는 2차 대륙 전쟁.
그렇다면 차라리 마족 역사상 최강의 마왕으로 이름이 남을 여인을 꽉 잡는 게 낫다.
 마왕을 붙잡고서 그 여자가 자신만 바라보게 만든다면 그보다 더 달콤한 인생은 없다.


‘해서 율리아에게 투자를 하는데… 역시 사기야.’




이 정도 속도라면 몇 년 안에 자신을 뛰어넘을 것이다.
몇 번의 회차를 반복하면서 겨우 겨우 알아내고 몸이 익힌 기술인데.
그걸 두 달도 안 돼서 습득한 천재 중의 천재, 사기 중의 사기 캐릭터, 율리아 아그네사.



너무 풀어지면 안 된다, 긴장해야 한다.
아무리 그녀가 자신에게 완벽하게 넘어왔다고 해도 원래 마음이란  언제든 변하는 법.
긴장 풀려서 허튼  하거나 갑자기  쓸모없는 쓰레기가 된다면.
율리아 입장에서는 당연히 실망할 것이고, 그 실망은 곧 심각한 균열로 이어진다.

당장 언제 회차인지는 몰라도 율리아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서.
그래서 방심을 해서 조금은  나갔던 때가 있었다.
그 결과 당연히 사방에서 자신에 대한 견제가 이어졌고 결국 율리아도 내부의 단합을 위해서 클라우스를 밀쳐내는 일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어찌 보면 토사구팽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골칫거리를 제거한 것이다.
자신이 방심해서 벌어진 일이니 왕의 자리에 있는 율리아를 탓할 수도 없었다.
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소리는 언제든 그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는 것.
멀리 볼 것도 없이 당장 그녀의 아버지였던 전대 마왕도 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철저하게 견제를 당하다가 비참하게 죽지 않았던가.

철저하게 율리아의 그림자로, 그러나 결코 능력도 없이 빨대만 꽂는 놈은 아닌 것으로.
 부분을 지키면서 야금야금 그녀의 속살을 갉아먹다보면 결국  여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여인으로 남게 된다.
그러면서 클라우스 본인은 대륙 최고의 여인을 뒤에 둔 남자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생도 여러분들도 율리아 생도를 본받아서 조금  수련에 열중하세요. 설마 이런 어려운 기술을 고작 두 달도 안 된 시점에서 행할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 괜히 ‘마왕’ 의 자리에 있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율리아 생도.”
“과찬이세요. 그냥 아주 기초적인 부분만 간신히 행한 건데.”

살포시 미소를 짓는 율리아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아마 이 자리가 강의만 아니었다면, 이대로  밀어붙여서는 바지와 팬티를 한 번에 벗기고 와락 그녀를 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율리아 생도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는 다시금 체내의 마력을 가속시켜보겠습니다. 전부 준비해주시고, 카엘라 조교? 부탁 좀 하겠습니다.”

클라우스의 부름에 뒤에 얌전히 서있던 호랑이 여인이 날쌘 걸음으로 나타난다.
마법과 그리 친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기본적으로 중상위권 정도의 마법을 쓰는 카엘라.
그녀는 이렇게 클라우스를 대신하여 생도들을 봐줄  있는 정도의 실력을 지닌 상태였다.



“클라우스 교수님의 말씀처럼 체내의 마력을 가속시키면서 그 중심을 한 번에 읽어내도록 해봅니다. 어느 곳에서 어느 위치로 흐르는지, 속도는 어떠하며 그 세기는 또 어떤지. 자신의 마력부터 읽을 줄 알아야 상대의 것도 읽을 수 있는 법이라고 하셨던 부분을 떠올리세요.”

아카데미의 정식 교수도 아닌, 그 밑에 딸린 조교의 말이다.
아마 원래의 경우라면 은근히 조교를 무시하거나 혹은 아예 대놓고 시비를 걸 수도 있음이다.

아카데미의 생도들은 모두가 아주 높은 가문의, 또는 대단한 혈통의 자제들.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를 조교 정도는 무시하고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
“….”

하지만 전투 마법 강의를 듣는 모든 생도들은 조용히 카엘라의 말을 따랐다.
무시한다는 기운 하나 없이, 오히려 아주 얌전하게  눈을 감고 마력 제어에 집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클라우스는 소리 없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무렴 나와 카엘라가 싸우는 모습을 봤는데 그런 무서운 여자한테 나댈  있는 강심장이 있을까. 지금의 율리아나 나타샤도 아직 카엘라를 이길 수 없는데 말이야.’

아카데미의 교수들 대부분이 꽤나 편한 부분이 있음에도 조교를 들이지 않는 이유.
생도들의 은근한, 혹은 대놓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클라우스도 잘 알고 있다.
해서 그런 부분들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그리고 카엘라가 열 받아서 생도들 몇을 그야말로 작살 내놓은 비극을 막고자 일종의 무력시위를 해주었다.


강의에 들어가기 앞서서 좋은 상대가 왔으니 전투 마법의 진가를 보여준다는 명목 하에 카엘라와 거의 전력을 다하는 살기 가득한 싸움을 보여준 것이다.




- 카엘라, 진심을 다해서 덤벼. 명령이다. 나라고 망설이지 마. -
- 하지만 그래도 제가 어찌…. -
-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네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인다면 아마 네게 크게 실망할 거다. -



실망할 거다, 그 말이 카엘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클라우스가 모를 리 없다.
 알고 있기에 내뱉은 말, 덕분에 카엘라는 클라우스 앞에서 전혀 위축되거나 적당히 하겠다는 기색 없이 엄청난 공세를 펼쳤다.

율리아도, 나타샤도, 세실리도, 리르도, 그리고 다른 모든 생도들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과 사가 오가는 진정한 전투가 바로 그들 앞에 펼쳐졌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끔찍한 부상을, 최악으로는 팔다리  하나가 잘릴 수도 있음이었다.

마침내 클라우스가 카엘라를 제압하고 그녀의 항복을 받아냈을 때.
생도들 전원은 놀란 토끼 눈을 한 채로 무척이나 공손하게  손을 모은 후였다.

벌써 5년이 넘게 흐른 대륙 전쟁.
그러나 그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은 여전히  안에서 살아가는 전쟁 병기임을.
자신들과 같은 애송이들은 간단하게 찢어버릴 수 있는 강자임을 눈치 챈 것이었다.
언젠가는 자신들이 저들을 앞지를 것이지만, 그리고 저들은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지만.
최소한 지금이 그 순간은 아니었다.


“…조금 이상하네요. 다른 마족 생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교를 들인 교수들은 하나 같이 그 조교들이 도망가거나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고 했는데.”
“카엘라를 상대로 그 앞에서 뻣뻣하게 있을  있는 생도는 아직 여기 없습니다. 나중이라면 또 모를까, 애송이들만 가득한 상황에서는 불가능해요.”
“카엘라 라는  수인, 클라우스 교수님의 부관이 그리도 강한가요?”
“강하기도 하지만 실전을 경험하지  한 자와 밥 먹듯이 경험했던 이의 차이라고 해두죠.”


굳이 따지자면 카엘라가 지닌 재능은 평범한 축에 속한다.
그걸 무수한 실전으로 대신한 것이 바로 카엘라 티거, 클라우스의 충실한 부관이었다.



“이제 되었습니다. 어떤가요?”
“…감사해요. 이제 좀 속이 괜찮네요.”
“너무 무리하게 마력을 쓰면 안이 다 뒤틀립니다. 알아두세요. 무리하는 순간 몸이  망가지고 이겨도 이긴  아닌 수준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율리아는 이번에 반드시 성공을 하기 위해 무리를 많이 했다.
당장 몸에 과부하가 걸리고 체내의 마력이 뒤틀린 것만 봐도 예측이 되는 상황.
만약 이곳이 전장이었다면 아마 큰 위험에 빠졌을 게 자명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저, 그리고 클라우스 교수님. 저녁에 잠깐 만나 뵙고 싶은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네. 실은 마왕성에서 편지가 왔는데, 같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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