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9장 - 잘라내야 할 것들
말도 많고 사건도 많았던 무도회가 끝났다.
처음부터 마왕 율리아와 클라우스 교수로 집중되었던 모두의 시선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그 둘에게 집중된 채였다.
다른 종족들 앞에서 대놓고 인간 측에 실망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혈전을 벌였던 마족들의 군주, 마왕과 무척 친근한 모습을 보인다.
아직까지는 무슨 충성스러운 신하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아마 시간이 지나면 거기까지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몇몇 이들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누구는 대륙 전쟁의 영웅이 계속되는 배신과 토사구팽에 치가 떨려 결국 한때는 적이었던 이들에게 귀의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폈다.
꽤나 그럴 듯한 것이 그동안 클라우스가 희생한 게 너무 많았던 반면에.
그에게 돌아왔던 것은 하나도 없다시피 할 정도였던 것이다.
7년 동안 그 어떤 지원도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남부군을 유지하여 싸웠다.
병사부터 시작하여 무기, 군마, 군량, 마초, 그 외의 모든 것들을 전부 다 말이다.
그리고 수도 없는 싸움에서 모조리 승리하면서 역전의 발판까지 마련했건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갑작스러운 사령관 박탈,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군부에서의 완벽한 방출.
아마 다른 이였다면 진작 인간 측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을 것이다.
허나 그 의견에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젓는 이들도 많았다.
사령관 자리를 박탈당하고 쫓겨났다가 다 무너진 남부군을 이어받아 다시금 남부를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냥 가서 죽으라는 것과 다름이 없는 그 명령에 그는 군말 없이 따랐다.
이후에도 각종 의심과 불이익이 가해져도 클라우스는 끝까지 침묵했다.
오죽했으면 주변의 이들이 너무한 것 아니냐 해도 모든 걸 끝내 받아들였다.
엄청난 충성심, 그 누구도 감히 가질 수 없는 초인적인 자세.
그걸 직접 봤던 이들은 그가 이제 와서 인간들에게 등을 돌릴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의견에 생각보다 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도들이 아는 클라우스라는 인간은 자신들조차 인정하는 남자였으니까.
‘그렇게 오해해라. 그런 오해 받으려고 7년을… 아니지. 다 합치면 몇 년이나 되려나. 못 해도 100년은 훨씬 넘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오해를 받으려고 그 세월 그 염병을 떤 거니까.’
율리아를 방까지 데려다 준 후 클라우스는 제 교수실로 돌아왔다.
물론 그 앙큼한 마왕님이 쉽사리 그를 보내줄리 만무했다.
기껏 잘 걷다가 갑자기 방에 다 와서는 한다는 말이 ‘발목이 아파요.’ 였다.
거기에 짐짓 못 내치는 척 공주님 안기로 해서 방까지 데려가니 그대로 클라우스를 침대까지 잡아당기는 율리아였다.
이제야 밤인데, 그리고 내일은 주말인데.
당신의 여인이 외롭다고 속삭이는데 이렇게 그냥 가버릴 거냐고.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 그리 말할 때마다 심장이 뒤흔들리는 기분이었다.
‘진짜 이렇게 갈 거예요? 진짜?’
심지어 팬티까지 벗어던지고 가랑이를 벌리기까지 한다.
위에는 그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었는데, 아래는 보지를 활짝 드러낸 채 꼬리를 살랑거리는 못 된 여우라니.
하지만 클라우스는 이번만큼은 잠이나 자라고 그녀의 이마를 쿡 눌러주었다.
시작부터 달아오를 때마다 매번 안아주면 괜히 버릇만 나빠진다.
때로는 몸이 좀 달아올라도 참아주고, 그렇게 해서 더욱 애달프게 만들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자꾸만 제 남자가 떠오르게 만들어야만 했다.
율리아와의 관계에서 밀당은 선택이 아닌 필수 부분이다.
당장 지금은 자신이 더 위에 있다고 해도 나중에 가면 그녀가 자신을 앞지른다.
그 때가 되면 남는 것은 자신의 지식, 그리고 우람한 남근 뿐이다.
그 중 하나를 벌써부터 익숙하게 만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우우. 너무해.’
볼을 부풀리고 잔뜩 심통이 난 표정을 짓는 율리아.
고자도 다시 서게 만들어줄 여인이 그러고 있으니 다시 한 번 유혹이 일었지만.
끝내 클라우스는 그녀를 방에 두고 나섰다.
사실 율리아도 이미 무도회에서 계속 춤을 췄던 터라 꽤나 지친 상태.
거기에 클라우스 덕분에 처음으로 이런 거대한 파티의 뜻하지 않은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섹스까지 했다면 더더욱 좋았겠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방으로 돌아온 후 곧장 샤워실로 들어간다.
몸을 한 번 씻어내고, 온수가 가득 남겨있는 욕탕 안에 몸을 담근다.
“후우.”
아카데미 생활도 벌써 한 달이 넘게 흘렀다.
그리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바로 오늘, 자신의 변화를 일부러 생도들 앞에 보였다.
너희가 기억하던 그 예전의 클라우스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고.
그리도 싫어하던 마족들의 군주와도 오히려 잘 어울리고 있다고.
말까지는 하지 않았으나 행동으로서 거의 대놓고 보여준 것과 다름이 없다.
‘이제 이 소식이 조만간 다른 놈들에게, 특히 율리아의 숙부 놈에게도 들어가겠지.’
다 말라죽어가던 제 조카가 갑자기 남부의 악마와 붙어 다닌다.
심지어 그 둘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심상치가 않다.
생도들은 물론이고 조만간 그 소식이 다른 종족들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놈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슨 반응이겠어. 당연히 기가 막히고 속이 터지겠지. 조금만 더 말려주면 그대로 말라죽던가 아니면 다 포기하고 제 앞에 서서 젖통을 깔 텐데 뜬금없이 이상한 놈이 등장해서는 힘을 실어주고 있으니까 말이야.’
심지어 얼마 전 클라우스와 만남을 가졌던 중립파의 일원, 페르디난트 엘세가 중립파 사이에서 일대 변화를 이끌고 있을 테니 그 때문에 더더욱 골치가 아플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동부 전체를 먹고, 제 조카 보지를 쑤시고, 그 다음으로 갈 수 있을 텐데.
존재 자체만으로도 답이 없었던 남부의 악마가 갑자기 제 조카 편을 든다?
악몽도 그런 악몽이 따로 없을 것이다.
머리가 꽤나 좋은 마족이니 본능적으로 느낄 것이다.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꼬여도 꽤나 말도 안 되게 꼬였음을 말이다.
후우우-.
숨을 고르며 한동안 돌려보지 않았던 체내의 마력을 점검한다.
곧 몸속에 꾸준히 채워두었던 마력들이 일제히 가속하며 강렬한 기운을 뿜어낸다.
‘이쪽 상황을 더 자세히 안 이상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지. 어떻게든 율리아와 내 사이를 떨어트리기 위해서 이것저것 다 할 테고 특히 그림자들을 보내서 나를 암살하려고 할 거다.’
마침 귀족 생도들에게 엄청난 모욕까지 주었으니 정황 증거도 그들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다.
모욕을 당한 귀족 생도들이 가문에 연락하여 그 가문들이 암살을 사주한 게 아니냐고.
그렇지 않고서야 클라우스라는 남자를 대륙 아카데미에서 대놓고 죽일 자가 과연 또 누가 있겠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이미 전부 대비가 되어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그럼에도 자신의 점검을 결코 허투루 하지 않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했고, 사람 일이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당장 창조주라 할 수 있는 자신도 어느 순간 갑자기 일이 꼬이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마족들이 2차 대륙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리고 그 외의 절대 변하지 않는 몇몇을 제외한다면.
그가 알고 있는 소설의 내용은 언제든지 자신의 언행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그 회차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도 전개가 되기도 했다.
그가 이전 회차에서 율리아를 거의 완벽하게 손에 쥐고서도 다시금 다음 회차를 선택한 이유.
미처 알아차리지 못 했던 변화들, 그리고 그 변화로 인해 여기저기서 조금씩 꼬였던 부분들을 이번에는 모조리 바로잡아서 그것마저 전부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우우우웅!!-
치이익!!-
마력이 미친 듯이 속도를 내면서 몸 주변에 또 다른 기운이 씌워진다.
더 집중을 해서 이 이상까지 한 번 나가볼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 이상을 한다면 필연적으로 주변에 파동이 퍼질 것이고 율리아나 나타샤 같이 꽤나 실력을 지닌 생도들이 바로 알아차릴 수도 있음이다.
자신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카엘라는 두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마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득달 같이 달려오겠지.’
오늘도 자신을 따라서 무도회장에 가겠다는 걸 간신히 뜯어말렸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아카데미에 누군가가 말썽을 부리면 피곤하니 그쪽을 좀 신경 써달라고 부탁을 해서야 겨우 말릴 수 있었을 정도랄까.
샤워를 마친 후 클라우스는 대충 옷을 걸치고 책상 앞으로 향했다.
의자에 앉은 후 잠시 창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마력 파동을 일으킨다.
우웅-.
아주 짧고 미약하지만 가까이에 있을 누군가를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파동.
곧 기척이 느껴지면서 창가에 그림자가 생기는 듯 하더니 그 너머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찾으셨나요.”
원래는 따르던 이가 있었으나, 이제는 클라우스의 충실한 노예가 된 마족 여인.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있지만 실상은 보지에서 애액을 줄줄 흘리면서 언제쯤 클라우스의 자지를 받을 수 있을까 할딱이고 있을 탕녀, 리르였다.
“조만간 네 윗선에서 연락이 올 거다. 나와 율리아에 대한 조사 및 보고를 두 배로 올리라고.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샅샅이 감시하고 전부 살피라고. 그러면 이렇게 답변해라. 너를 제외한 다른 그림자 둘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말이야.”
“…끝까지 숨기는 게 아니었나요?”
“숨겨서 이용할 수 있는 순간이 있고, 그럴 필요가 없는 때가 있지. 사족 붙이지 말고 내가 하라면 그리 하면 된다. 불만이라도 있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전해. 어느 날 그들의 기척이 없어져서 아카데미 전부를 둘러보아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그러면 윗선에서 너를 지원할 다른 그림자들을 보낼 거다. 그러면 넌, 그들이 찾아오는 족족 다 죽이면 된다.”
“…!”
순간 리르의 눈동자가 잘게 떨린다.
제 동료들을 제 손으로 죽여야 하냐,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애당초 이미 클라우스의 자지에 뇌까지 물든 탕녀인데 그런 걸 생각할리 없다.
“클라우스님.”
“말해.”
“제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다는 거냐?”
“그게 아니라, 제 부족함으로 인해 제가 죽고 나서 그 이후가 걱정이라 그렇습니다. 제가 클라우스님께 제공하던 정보가 끊어지는 것이니까요.”
“아쉽긴 하겠지. 무엇보다 그림자답게 은밀한 일은 잘 하니까. 죽으면 확실히 아쉬울 거다.”
“….”
“하지만 뭐 어쩌겠어. 죽으면 죽는 거지. 네가 죽으면 나머지 그림자들은 내가 처리하면 된다. 어려울 것 없어. 설마 그렇게 말을 하면서 나서기 싫다는 걸 은근히 강조하려는 건가?”
그에 리르는 다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저 자신이 부족해서 목숨을 잃고, 클라우스가 괜히 귀찮은 일을 할까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무서워하더니, 지금은 꽤 변했다.
그동안 살살 건드려주고 애를 태워주면서 보지가 풀어지도록 했더니 아예 대놓고 애액 냄새를 줄줄 풍기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아마 지금도 자신이 무서우면서도, 얼른 옷을 벗고 가랑이를 활짝 벌린 채 자지에 박혀서 앙앙 울어대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할 것이다.
“리르.”
손짓으로 마족 여인을 불러본다.
그에 리르가 조심스레 곁으로 다가오자 클라우스는 바로 그녀의 몸을 잡아채서는 거칠게 테이블 위로 넘어트렸다.
“꺄악!”
갑작스러운 행동에 리르가 조금은 두려운 듯 버둥거린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그런 여인의 몸짓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바로 여자의 하의와 팬티를 벗기고는 그 어떤 애무도 없이 바로 자지를 쑤셔 넣었다.
쑤우욱!-
“하으읍!!”
클라우스 앞에 서기만 하면 자동으로 발정이 나는 몸이라곤 하지만.
시작부터 보지 안에 뿌리 끝까지 들이닥친 남자의 물건은 확실히 아플 수밖에 없었다.
리르가 몸을 덜덜 떨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이 클라우스는 그녀를 와락 안아들었다.
“하응!”
그리고는 아주 거칠게, 한 번씩 허리를 위로 쳐올려주며 이 발정 난 마족의 속살을 한껏 녹여주기 시작했다.
“흑! 아흑! 흐긍!”
“죽으면, 다시는 이런 거 못 한다.”
“아윽?! 흑! 아긍!!”
“그래도 죽는다는 말 할 거냐? 아니면, 무조건 성공할 생각만. 무조건 다 죽이고 다시 돌아온다는 생각만 할 거냐, 리르.”
“아흥! 이, 이거! 더, 더! 무, 무조건!! 다 죽이겠습니다!! 아흥! 으으응! 조, 좋아요!!”
죽으면, 다시는 이 황홀한 맛을 보지 못 한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리르의 두 눈동자에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제 손으로 한 때는 동료였던 자들을 잘라내야 함에도 그 어떤 거리낌도 없어 보이는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