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0화 〉9장 - 잘라내야 할 것들 (120/341)



〈 120화 〉9장 - 잘라내야 할 것들

서부 연합의 생도들과 동부 마족 생도들이 혹 부딪치기라도 할까.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채 쉬지도 못 하고 무도회장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생도들보다 그래도 나은 구석이 있는 실력자들을 추려 왔기에 대충 가능은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 각자의 세력을 이미 구축하고 있는 곳의 자제들이다.
본심으로 대했다가는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교수들은 되도록 큰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간절한 바램이 하늘에 닿았는지.
마족 생도들의 무도회는 생각 이상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도대체 이런 발재간을  하는 거지? 혹시 구애의 춤이라도 되나?”
“그런  아닙니다.”
“그러면 뭔데.”
“그냥 자신의 멋짐을 폭발 시킨다 식으로 받아들이세요, 수인 생도.”
“음, 확실히 이런 발재간이면 좋아할 만한 암컷이 있을 것 같기는 해.”


처음 마족 생도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쪽은 수인 생도들이었다.
원래부터 쿨내가 진동하는, 호탕한 면모가 강한 종족이라서 그럴까.
저들은 무리 없이 마족 생도들과 섞여서는 무도회의  축이 되었다.




“…저 마족들이 우리 앞에서 춤을 논하는 게 상당히 불쾌하군요.”



그 뒤는 인간이 아니라 요정 생도들.
춤이란 저리 요란하고 격렬한 게 아니라 우아하고 고상하면서 느린 템포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면서 몇몇 이들이 무도회장 한 쪽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서로가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평화로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족 생도들은 서로의 춤에 집중하고 수인들은 그 춤을 보고 대충 따라하고 있으며.
요정들은 꿋꿋하게 자신들의  고상하다는 춤을 추고 있는.
어찌 보면 난장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싸움판보다는 훨씬 낫다고도 볼 수 있었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요.”



잠시 휴식을 위해 나온 율리아는 그런 생도들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시작부터 서로 으르렁대기 바빴던 생도들이라 잠깐 구경하다 흩어질 거라 생각했다.
비록 확실하게 어울리는 건 아니라고 하나 저리 섞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여기 생도들은 대부분이 대륙 전쟁 때 적과 직접 싸워보지 못 한, 혹은 싸우지 않은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경계심이 대부분이고, 적의는 옅게 남아있을 그럴 상황이죠.”
“….”
“무엇보다 아직 노는 게 좋을 시기랍니다.”



클라우스의 장난기 어린 대답에 율리아는 프흣, 하고 미소를 흘리고 만다.
그의 말대로 여기 생도들 대부분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자들이다.
다만 그런 말이 생도들을 무시할 수도 있는 발언이기에 딱히 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그런 부분에 굳이 눈치를 볼 생각은 없다는 모습이었다.



“물론 너무 환상을 품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율리아. 저건 어디까지나 아주 잠깐의 평화, 어쩌면 평화라고 부르기도 모호한 단순한 호기심일 겁니다.”
“동부와 서부가 다시 한 번 싸운다면, 그리고 그 전쟁이 저번처럼 몇 년이나 지속된다면 결국 양측 모두가 공멸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저럴까요?”
“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클라우스의 대답에 율리아는 이해할  없다는 반응이었다.
평화로 나아가지 않으면 다 죽을 수도 있는데 굳이 싸우겠다니, 어리석은 생각이 아닌가.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이성조차 통하지 않는 법이다.

당장 손을 잡으면 둘 다 죽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해도.
그저 당장 싸워서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일단 저놈 먼저 죽는 꼴을 보고 말겠다, 라는 생각을 품은 이들도 생각보다 많다.
불행하게도, 서부 연합에는 그런 생각을 품은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보다 훨씬 많았다.



‘미안하다. 설정이 그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던져질  알았다면.
그리 개판으로, 그리 극단적으로 세계관을 잡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보다 이제 괜찮아요. 그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정말인가요?”
“네. 정말 괜찮아요.”

율리아의 말에 그녀의 발목을 살피던 클라우스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마왕의 옆에 앉아서 조금은 정신없는 무도회를 바라본다.



“고마워요. 아까 제 편을 들어줘서.”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제 난 당신 사람이라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그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됐잖아요. 그런데도 절 도와주신 거죠. 거기에 대한 감사인사에요, 클라우스 교수님.”
“별 거 아닙니다.”
“그렇게 대답하지 말고요.”




정말 별 거 아니다. 그리고 그리  수밖에 없었고.
클라우스는 이미 율리아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마족 생도들을 전부 확인했다.
그들의 얼굴, 그리고 이름까지 전부, 모조리 말이다.
당연히 보통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스킬의 힘을 빌린 것이었다.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당연한  아니겠는가.




‘나중에 싸그리 모아서 뎅겅뎅겅 다 잘라 버릴 싹들이니까.’



아주 극소수는 갱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해도.
나머지는 그냥 답도 없는 쓰레기들, 그리고 찌꺼기들 수준에 불과하다.
시작부터 율리아를 우습게 알고 큰 놈들인데 나중에 그녀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존경심을 보내기보다는 오히려 약점이 있다고 대들만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을 모조리 잘라낼 것이다.
후환이 없도록 미리 싹부터 자르는 것, 그리고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

아마도 그들 전부를 처리한다면 분명 동부에 비는 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다.
어찌 되었든 능력이 나쁘지는 않은 놈들이고 아주 예전부터 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니 그들을 정리한다면 남은 이들에게 엄청난 무리가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클라우스는 그들을 모조리 잘라낼 생각이었다.
이건 단순히 자신만의 의지가 아니라 율리아의 뜻도 약간은 포함된 것이니까 말이다.

‘차라리 능력은 조금 떨어져도 믿을  있는 놈에게 주는 게 좋아. 생선이 썩어 문드러지는 한이 있어도 고양이한테는 절대 맡기지 않는 거지. 미쳤다고 후환을 왜 두려고 하겠어.’


잘라내야  것이 한둘이 아니다.
율리아의 숙부라는 놈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율리아를 무시하는 머저리 놈들까지.
물론 지금 당장 잘라버릴 것은 그들의 모가지가 아니라 뒤에 있는 놈들이다.
정확히는 그들의 모가지가 아니라 알량한 자존심 말이다.


“정말 눈 뜨고는 못 봐주겠군요.”
“그러게 말이야. 저게 도대체 뭣들 하는 건지.”



무도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몇몇 생도들.
바로 인간 출신의, 그것도 귀족 가문의 생도들이었다.


험담을  거면 돌아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잘 것이지.
 남아서 자꾸 비웃고 떠들고 있느냐.




‘말은 그렇게 해도 놀랐으니까. 알아가고 싶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알아가서 자신들이 제 것이라고 떠들며 써먹고 싶으니까.
당연하게도 저들은 마족들의 진짜 춤을 처음 보는 것이다.
그 화려하고 정열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유려한 몸짓을 보이는 춤사위들.
저걸 어떻게든 눈에 담고 머릿속에서 한 번 춰보고 몸에 익히고 싶은 것.
그래서 언젠가 자신들의 성으로 돌아가 무도회를 여는 날에 많은 이들 앞에서 보이는 거다.
이게 바로 진짜 춤이라고, 너희들보다 훨씬 화려한 나를 보라고 말이다!




‘머저리 새끼들.’


날강도도 저런 날강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일단 기다리던 클라우스.
곧 그가 기다리던 순간이 점점 다가왔다.



“저기.”




도통 움직이지 않던 인간 생도들  네 사람이 드디어 움직였다.
그들은 잠시 무도회를 벗어나 쉬고 있던 마족 생도들에게 다가가서는 말을 이었다.
혹시 그 춤, 자신들도 좀 배울 수 있겠냐고 말이다.
그에 마족 생도들은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어려울 것 없다고 대답했다.
설마 인간 생도까지 이리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다는 반응이랄까.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저들에게 다가간 인간 생도는 정말 몇 남지 않은 ‘평민’ 출신의 생도.
일단 선천적으로 지닌 능력이 좋아서 인간 측을 대표하여 들어오기는 했으나.
귀족 출신의 생도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불쌍한 자들이었다.



“하? 저기, 저기 보세요. 지금 저게 뭐하는 거랍니까?”
“뭐야. 저런 생도가 있었나? 어디 가문의 누구지?”
“가문이 아닙니다. 저것들 평민 출신의 생도입니다.”
“얼씨구. 잘들 하는군. 역시 평민 새끼들이다. 인간의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어.”
“혼자 어깨 너머로 배우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직접 숙이면서 가르침을 얻다니.”
“이래서 평민들은 안 된다는 겁니다. 자존심이 없어요, 미련한 것들.”
“쯔쯧. 평민이면 평민답게  굴 것이지. 하여간에 없는 것들이 더 하는군.”



근처에 평민 출신인 클라우스도 있는데 점점 목소리가 커진다.
아무래도 은근히 이 말을 클라우스가 듣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그래서 그 잘난 전쟁 영웅을 계속 깠다는 안주거리라도 얻고 싶은 모양인데.


불행하게도 이 남자는 그걸 넘어갈 중도로 마음씨 좋은 자가 결코 아니었다.

“저걸 또 가르쳐주는 마족들도 참….”
“평민과 마족이라. 이거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저런 놈들이 어찌 저런 아름다운 춤을 추는 것인지. 춤이 다 불쌍하군.”
“제 말이 그 말입니다. 하여간에….”
“지랄 육갑 떠는 소리 말고 입 좀 닥쳤으면 좋겠군요. 귀족 생도 여러분.”


낄낄거리던 귀족 생도들은 갑자기 들려온 육두문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도대체 어떤 이가, 감히 자신들에게 이리도 원색적인 비난을 한단 말인가.



“크, 클라우스 교수?”
“교수님입니다. 아무리 평민 출신이라고 해도 존칭은 제대로 붙여주세요, 생도들.”
“그보다 방금 전 그 무슨 막말입니까. 아무리 교수라지만 지켜야 할 것이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거 말입니까? 여러분들이 평민, 평민 하면서 제 출신답게 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 평민 출십니다. 해서 평민답게 여과 없이 내뱉고 있는 건데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무례한 언행입니다.”
“클라우스 교수! 적당히 하시오! 우리가 생도의 신분이라 평민인 그대의 무례를 참아주고는 있다만 그 자리를 악용하여 계속 그런 날 선 어린 말을 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요!”
“아, 뭔  같지도 않은 말을. 좆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뭐, 뭐…?”




무례를 범하지 말라고 하니 오히려 더 큰 무례를 범해주는 클라우스다.
덕분에 귀족 생도들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냐고 입을 열려는 찰나.

짜악!- 짝! 짝!-


귀족 생도들은 갑자기  얼굴에서 불이 나는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동시에 저마다 고개가 오른쪽으로 휙, 하고 돌아갔다.


멀뚱멀뚱 두 눈만 뜨고 있던 그들은 곧 클라우스에 의에 뺨을 맞았음을 자각했다.



“이, 이이이…!”




평민이, 귀족의 몸에 감히 손을 댔다.
심지어 스친 것도 아니고 아예 뺨을 올려붙이기까지 했다.
이건 생도, 그리고 교수 관계라고 해도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뭐하는!!….”



짜아악!! 짝!! 짜악!!-


이번에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아간다.
조금 전보다 배는  세진 강도에 그대로 뇌가 정지한다.

아프다, 정말 더럽게 아프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진짜 아프다.

“끄어어어….”
“평민답게 같잖은 허례허식 다 집어치우고, 교수답게 생도 교육 들어간다. 분란을 조장하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 말귀를 못 알아 쳐먹으니 안타깝지만 교수로서 마땅히 옳은 길로 인도하는  옳지 않을까 싶은데.”



신체에 심각한 상해만 입히지 않으면 된다.
그 선만 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대충 묻어버릴 수 있다.
어차피 지금 클라우스가 잘라낼 것은 이놈들의 목이나 혀가 아니라 자존심이니까.



“제발  좀 쳐 들으세요, 생도 여러분. 가르치는 사람 입장으로서 참 좆같습니다.”


짜악! 짝!-
짝짝짝짝!!-


수도 없이 많은 생도들, 심지어 수인에 요정에 마족 생도까지 모인 자리에서.
그 잘나신 귀족 생도들은 정신없이 뺨따귀를 쳐맞는 대굴욕을 선사 당하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