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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화 〉9장 - 잘라내야 할 것들 (119/341)



〈 119화 〉9장 - 잘라내야 할 것들

짝짝짝!!-

한 차례의 음악이 끝나고서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춤을 추던 마족 생도들, 그리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마족 생도들.
거기에 주변에 서있던 서부 연합의 생도들마저 꽤나 감탄했다는 표정을 숨기지  했다.


어찌 되었든 이곳 대륙 아카데미에  자들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라 모두가 제 사회에서 꽤나 잘 나가는 가문의 자제들, 혹은 핏줄을 지니고 태어난 자들이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무척이나 화려한 군무를 보았으니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들의 마음이 속삭였던 것이다.


“….”
“….”

알게 모르게 은근히 많은 이들이 어느  커플을 주시한다.
이미 남자 쪽이 생도가 아니라 아카데미의 교수라는 것은 대충 알려졌다.
바로 직전까지 외곽에  있다가 한 여인에게 이끌려서 무도회의 중심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러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그 교수를 붙잡고 춤을 춘 이가 누구냐는 것이다.

설마 서부 연합의 생도가 마족 측이 주최한 무도회장에 시작부터 나섰을 리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지, 거기에 바로 어울리기는 죽기보다 싫으니까.
허면 나오는 답은 마족 생도 중 하나라는 것인데 그것도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클라우스가 대륙 전쟁에서 마족의 군세와 얼마나 피 터지게 싸웠는지.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증오했었는지는 지나가던 애를 붙잡고 물어봐도 다 안다고  것이다.
지금도 그가 마족 생도들을 앞에 두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에 믿을  없다고 하거나.
혹은 인내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헌데 그 남자가 마족 생도와 손을 잡고 춤을 추다니.
심지어 마족 생도들이 주도하는  무도회의 바로 중심에서 말이다!


“뭐하죠, 율리아? 얼른 당신이라는  보여줘야죠.”
“…막상 진짜 하려니까 부끄러운 걸 어떻게 하라고요.”
“안타깝지만 여기서만큼은 율리아 생도가 아니라 율리아 아그네사 마왕이 되어야 한답니다.”

얼른요. 슬슬 생도들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거든요.
클라우스의 말에 율리아는 작은 한숨을 내뱉고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벗어낸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을 아는 이들도, 혹은 모르는 이들도 ‘억’ 하고 탄성을 토해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세상에도 메이크업이라는 게 존재한다.
막 엄청난 수준은 아니고 딱 적당한 선에서 외모를 조금  돋보이게 해주는 식으로.
허나 그것도 율리아가 한다면 그냥 독보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주는 것이 되었다.

실제로 적당히 메이크업을 하고 온 율리아의 외모는 달빛과 마력으로 만들어진 불빛으로 인해 보다 더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덕분에 그 아름다움에 홀라당 빠져든 생도들은 종족 가릴 것 없이 탄성을 토해낸다.



“마왕 전하.”
“오신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율리아의 주변에 있던 마족 생도들 중 몇몇이 바로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인다.
비록 그녀가 어떤 실권도 없는, 이름뿐인 마왕이라고는 해도 왕이라는 존재에 대한 예우를 갖출 줄 아는 생도들이었다.
이미 몇 번이고 마주했던 장면이지만 클라우스는 이번에도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렸다.
비록 율리아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은 지켰던 자들.
저렇게 마왕으로서 대우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단 합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율리아의 숙부 쪽에 붙은 가문들에 속한 마족 생도들은 당연히도 인상을 찡그린다.
당연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율리아는 무도회에 참가하겠다는 그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


이런 행사에서 기본 중의 기본 예의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참가 의사 전달.
그런 부분을 율리아는 전혀 지키지 않은 채 그냥 덜컥 들어와서는 자신들의 무대라고도  수 있는 곳을 날름 집어삼킨 것이었다.



“마왕께서 여기는 어쩐 일로.”
“언질이라도 주지 그러셨습니까.”



원래는 서부 연합 출신의 생도들과 동부의 마족 생도들이 부딪치는 그림을 예상했는데.
정작 묘한 기류가 흐르는 건 율리아와, 그녀의 숙부를 따르는 가문의 생도들이었다.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의 마왕, 그리고 네가 마왕 자리에 있을 자격은 있냐는 기색을 숨기지 않는 가문의 자제들.


“뭔데.”
“오오오, 싸운다!”

가장 먼저 수상한 기류를 눈치 챈  역시나 수인들.
조금 전까지 화려한 춤사위를 보이던 자들이 이번에는 싸움질이라니.
몰랐는데 마족 놈들 참으로 화끈하게 놀지 않는가!



“이상하군요, 여러분.”




바로  때.
율리아의 파트터였던 남자가, 전투 마법 강의의 교수인 클라우스가 입을 연다.


그는 상당히 이상하다는 듯 고개까지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조금은 과장된 부분도 있어서 바로 옆에 서있던 율리아는 저도 모르게 프흡, 하고 미소를 터트릴 정도였다.




“마족 생도 여러분. 내가 뭘 잘못 알고 있습니까? 왕이라 하는 존재는 그곳에서 하늘이자 땅이고 만인의 어버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먹고 자고 입는 모든 것이 바로 왕께서 있기에 가능하다, 그렇게 배우지 않습니까? 이런 파티도 왕께서 있기에  수 있는 거라고요.”
“그건….”




클라우스의 말에 마족 생도들이 침음을 내뱉는다.


그 말대로 왕이라는 존재는 모든 이들의 위에 있는 존재, 정점에 군림하는 자.
비록 지금은 율리아의 숙부에 의해 왕권이 거의 완벽하게 가라앉았다지만.
 대 전의 마왕까지만 해도 어느 존재도 감히 그 앞에서 눈조차 제대로 들지 못 했다.

왕의 은혜가 있어  땅이 풍요로운 것이고, 그로 인해 너희가 먹고 사는 것이다.
바로 그런 관점이 시작되어 종국에는 인간에게까지 전해진 게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인간 놈들이 마족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지.’


인간들이 왜 그리 멍청하고 어리석냐는 질문들을 상쇄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부족함과 꿀리는 부분을 메우기 위한 발악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그 자격지심은 자신들의 대부분이 요정이나 수인이 아니라 바로 마족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것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했다.

그 설명들이 지금 이 세상의 근간이 되었다.
마족들이 먼저 왕이라는 존재를 만들었고, 그 뒤를 따라서 인간도 왕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자신들이 최고라 외치고 싶지만 실상 자신들은 마족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분해도 너무 분했던 인간들은 그냥 뇌를 비우고서 우기고 또 우기기로 했다.
우리가 원조다, 우리가 먼저였다, 너희가 나중이다, 너희는 우리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 어떤 공산주의 나라가 그 지랄을 했던 것 같은데. 아, 천안문.’


딱 그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는 인간들을 생각하며 클라우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바로 그 웃음이 마족 생도들에게는 왠지 모르게 섬뜩한 악마의 미소로 보였고 말이다.



“왕께서 어느 곳을 가시든, 어느 파티에 참여하시든 그건 여러분들이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왕께서 오셨다면 그저 예를 갖추고 이런 조촐한 곳에 오셨음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알던 마족들은 마왕가에 아주 지극한 충심을 보였던 것 같은데. 참 이상하군요.”

제대로 돌려서 까버리는 말이었다.
지금 저들은, 굳이 말하자면 반역자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마왕을 해하려고 하는 자의 밑에 붙어 있으니 바로 그게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나마 율리아의 숙부가 가진 힘이 워낙 커서, 그리고  왕족이기에 입만 다물고 있는 거다.


“교수님, 그만해주세요. 여기서는 자신의 자리를 모두 두고 오직 한 명의 생도로서 있기로 모두가 약속을 했답니다.”




내로라하는 강자들도 두려워했던 인간이 바로 저 클라우스다.
지금도 자리에 모인 마족 생도들 중 절반은 아마 마른침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혹 저 남자가 ‘마족들이 갑자기 꼴 보기 싫군요. 다 죽여 드리죠.’ 라고 말하면서 칼을 뽑아들고 마법을 난사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남자에게 율리아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리 주문하고 있다.
비록 마왕의 자리에 있다지만  숙부에게 모조리 빼앗긴 빈털터리 주제에.
왕이라고 부르기조차 부끄러운 미약한 힘을 가진 주제에 말이다.




“그럴까요.”

하지만 놀라운 일은  다음 일어난 것이었다.
그 무서운 인간이, 마족들에게 있어서는 악마 자체였던 그가 말 한 마디와 함께 물러난다.
저게 단순히 마족 생도들을 놀리기 위함인지 아니면 같이 춤을 춘 여인에 대한 예의인지.
그도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을 위한 장치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뭐, 뭐야.’
‘남부의 악마가  마왕 전하께?’




눈치가 빠른 자들은 벌써 알아차렸다.
클라우스와 율리아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생각해보니 이전에 춤을 출 때도 어찌나 합이 잘 맞던지 마치 몇 년은 사랑을 속삭이며 미래를 약속한 한 쌍의 커플을 보는 듯 했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모습은 제 군주를 위해 나서는 이와, 그런 신하를 말리는 왕이라고도 할  있을 정도였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생도 분의 말대로 원래는 미리 참가 의사를 밝혀야 하는 게 예의죠. 그런데 내 사정도 있답니다. 과연 파트너가 이곳에 올까 확신이 없어 그럴 수가 없었죠. 참으로 나쁜 분이에요. 답도 늦고, 나오는 것은  늦고 말이죠.”
“그런 사정이 있으셨다면… 어쩔 수 없었겠군요.”
“내 실수로 인해 일어난 부분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대신 이곳의 어느 생도보다도 더 화려한 춤을 보여주었으니 그것으로 된  아닐까요?”



간단하게 자세를 잡으면서 고르고 고른 드레스를 살짝 흔들거리는 율리아.
이미 그 자체만으로 사기인 외모에 그런 추임새까지 들어가니 일단 남성들은 인간이고 마족이고 뭐고 다 입을 다물고 만다.
더해서 다른 여성 생도들도 똑같이 침묵을 지켰다.
실제로 그녀와  파트너가 보여준 춤은 자신들조차 탄성을 흘릴 정도로 훌륭했으니까.



“어머,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잖아요. 얼마 안 되는 무도회, 이렇게 보낼 건가요?”




제 뒤를 받쳐주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니, 뒤에서 칼을 맞지 않는다 확신이 드니.
곧장 사람들을 부리는 능력이 바로 살아나는 율리아다.
저기서 조금만 더 성장한다면 이제는 거의 쥐락펴락 다루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한편 율리아의 말에 정신을 차린 마족 생도들은 바로 다음 곡을 청했다.
곧 연주가들이 다음 곡을 준비하는 동안 율리아는 클라우스의 손을 재차 잡았다.




“한 곡 더 추실까요?”
“그러고 싶지만 아까 발목.”
“네? 아. 별  아니에요. 그냥 살짝….”
“한 번 삐끗하면 계속 삐끗합니다. 괜히 몸에 무리주지 말고 일단 한 템포 쉬도록 하죠.”




약간은 엄한 어조의 말에 율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우스의 분위기도 분위기였지만 자신을 챙겨주는 남성을 보고 있자니 괜히 심장이 두근거려서 그리 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도 슬쩍 껴도 됩니까?!”

그러는 사이, 가장 먼저 수인 생도들 중 몇이 손을 든다.
역시나 마족들과 그리 사이는 좋지 않지만 원래 호탕한 면이 강하 종족이기도 한 수인.
때문에 싸움은 싸움이고, 지금과 같은 파티는 파티라고 여기는 이들이 나선 것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죠. 다만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마족 생도 여러분.”


아마 이 장면을 루스칼 총장이 봤다면 바로 이거야! 라고 눈물까지 글썽거렸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현재 그는 한창 서류 작업을 하면서 밤샘 근무까지 해야 하는 형국이었지만 말이다.



‘일단 건방진 마족 놈들은 가볍게 한 번 눌러주었고.’


그렇다, 그냥 가볍게   눌러준 것뿐이다.
현재 클라우스가 노리는 한 바탕은 마족 생도들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그가 노리는 것은 바로 뒤에서 여전히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놈들.

“마왕 좀 보세요. 죽여주지 않습니까?”
“가슴 크기 봐. 와,  번 물어보고 싶네.”
“엉덩이는 또 어떻고요.”


클라우스의 귀에만 간신히 들리는, 인간 귀족 생도들의 율리아 품평회.
돼지 새끼들이 다이아몬드를 평하는 꼴이라 웃기지도 않을 수준이었지만.
감히 제 여자를 평하는 것이었기에 이대로는 절대 물러날 수가 없었다.

‘좋아. 오늘 잘리는 건 너희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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