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8화 〉9장 - 잘라내야 할 것들 (118/341)



〈 118화 〉9장 - 잘라내야 할 것들

마족 생도들이 무도회 장소로 택한 곳은 그들이 대련장으로 쓰곤 했던 넓은 공터였다.
미리 루스칼 총장에게 부탁했던 악기들은 마족 측의 연주자들 손에 들렸고 그 중앙에서 저마다 꽤나 번쩍이는 복장을 한 마족 생도들이 음악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심부에서 멀어져서 그 주변을 채우고 있는 갤러리들은.
어디  번 몸 좀 놀려보라는 식의 인간 생도들 약간에.
그리고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수인 생도들과.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을 보여주려는 걸까 경계하는 요정 생도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듣고 자리한 아카데미의 교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확실히 이 갈고 준비한 티가 나는군.’




클라우스도 그 갤러리 사이에 끼어서는 마족 생도들의 무도회를 살폈다.
원래대로라면 간이 형식으로 준비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꽤나 권위 있는 귀족 가문에서 성대하게 여는 무도회처럼 너무 불편하지도 않으면서 춤사위를 펼치면 꽃이 만개하는 것과 같은 복장에.
얼굴에는 그들 특유의 가면을 쓰고서 반짝이는 장신구들까지 완비한 상태였다.


계속되는 서부 연합 생도들의 무시에 은근히 열이 받았던 모양.
야만적이라느니 교양이 없다느니 힘만 숭배하는 자들이니, 그런 말들이 특히 거슬린 듯 하다.


해서 이번 기회에 아예 동부의 문화를 제대로 보여줄 생각을 품은 것 같다.
원래의 마족이라면 그냥 결투를 해서 상대방을 조져버리고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신사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가죠.”




이번 무도회를 주도한 이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연주자들이 일제히 악기를 연주한다.
동시에 가만히 제자리에 서있던 마족 생도들이 일제히 군무를 뽐내기 시작했다.


“…뭐야.”
“와. 저거 뭐야?”
“허.”



무도회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마족들을 은근히 깔보던 인간 생도들부터.
춤이라고 하면 구애의 춤이나 뭐 의식의 춤, 그런 것을 상상하던 수인 생도들.
마지막으로 우아함만이 춤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여겼던 요정 생도들까지.
모두가 자신들 앞에 펼쳐진 화려한 춤사위에 넋을 놓고 만다.


마족들의 춤은 굳이 따지자면 왈츠와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어느 순간 갑자기 음악이 확 바뀌는 시점이 있는데, 바로 그 타이밍에  같이 파트너를 바꾸면서 장르가 갑자기 바뀌는데 흡사 탱고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느리고 우아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정열적이고 템포가 무척이나 빠른 모습을 보이면서 흐트러지는 모습 없이 춤을 추는 저들을 바라본다면.
무도회에 대해서, 마족들의 춤에 대해서 모르는 이라고 해도 절로 박수를 치게 될 것이다.


“마, 마족들 주제에 제법이군요.”
“뭐… 대충 보면 화려하고 우아한 것 같기는 하지만 조금….”
“조금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바로 내 말이 그겁니다. 겉만 가득 차있지 실상 안에 든  없는 것으로 보여요.”
“영혼 없이 그저 몸과 발만 놀리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춤이 그러면 몸과 발 놀리는 거지. 비보잉 마냥 머리까지 같이 돌려야 하나?
아무튼 이놈의 귀족 새끼들과는 도통 친해질 수가 없다니까.
고개를 내저으면서 클라우스는 일부러 그들을 헤치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다.

슬슬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이벤트가 열릴 때인데.
자신에게 최고의 여인이 다가올 때인데. 라고 생각할 무렵.

“아름다운 밤이네요. 신사분.”



고양이 가면을 쓴  마족 여인이 우아한 몸놀림으로 클라우스 앞에 다가온다.
한창 춤을 추고 있는 다른 마족 생도들과는 달리 아직 그곳에 껴있지 않던 여인.


춤을 약속한 파트너가 아직 당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마족 여인은 여태껏 단  명의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군요.”

 여인이 율리아임을 클라우스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녀가 무도회에 같이 가자고 했던 말이, 가서 자신과 어울려  곡 추지 않겠냐는 질문임을 그는 아주 잘 이해하고 있던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제가 아직 짝을 찾지  해서요.”
“혹 혼자 오신 겁니까?”
“아뇨. 분명 같이 가자고 했는데, 너무 늦어서 그만 저 혼자 이러고 있지 뭐에요.”
“그렇습니까? 이리 매력적인 여성분을 혼자 두게 만들다니. 참 못 된 남자군요.”
“…그렇죠?  못 됐어요. 일찍 와서 같이 가주면  좋았을 텐데. 끝까지 제게 한 번을 양보해주지 않아요. 이러면 저도 더욱 불꽃만 태울 수밖에 없는데 말이에요.”

가면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 있고 덕분에 표정도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그 너머의 활활 타오르는 눈빛만큼은 아주 선명하게 느낄  있다.
당장이라도 저 너머에서 레이저 빔! 하는 게 뿜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것 참 유감이군요. 허면 그 못 된 남자를 대신해서 저와 한 곡 추시겠습니까?”
“…늦은 감이 없잖아 있는데 뭐, 좋아요.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율리아의 허락에 클라우스가  그녀의 손을 잡고 무도회장으로 걸어가는 찰나.
갑자기 아! 하고 탄성을 내뱉은 여인이 다급히 입을 연다.


“저기요. 클라우스?”
“네, 율리아.”
“저, 혹시 춤…   알죠?”




왜 마족들에게 은근히 적대적인 서부 연합의 생도들이 오오, 하고 탄성을 내뱉었겠는가.
그건 현재 무도회의 중심에서 화려한 춤사위를 펼치고 있는 마족 생도들 때문이다.
음악이 느릴 때는 우아하고 고상한 춤을 춤다가, 갑자기 음악이 격렬해지면 파도가 한  휩쓸고 지나가듯 완전히 바뀌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격렬한 움직임을 보인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들 모두 어릴 적부터 이런 사교 생활에 이골이 난 자들이다.
마족 귀족으로서 춤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소리다.
그건 마왕인 율리아조차도 반드시 받아야 했을 정도로 필수적인 것.


하지만 클라우스는 마족이 아니다, 서부 연합의 인간이다.
그것도 귀족도 아니고 평면, 심지어 10년이 넘어가는 세월을 군부에서 활동한 남자다.
사교계와는 아예 거리가 있던 그가 귀족들이나 출 법한 춤을 출 수 있겠는가.



‘아뿔싸! 새, 생각을 미처 못 했어!’


그저 클라우스와 함께 이 무대의 중앙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되겠다고.
설사 그게 불가능하다고 해도 그와 함께 춤을 추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다고.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서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을 확인치 못 한 율리아였다.

‘이 멍청한 여자야!’

다급히 몸을 돌려 클라우스를 제지하려던 율리아.
하지만 이미 두 남녀는 막 무도회장 안으로 들어선 참이었고 마침 잠시 끊어졌던 음악이 다시금 시작되면서 주변의 모든 남녀 생도들이 짝을 이루고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크, 클라우스 교수님…?”

어라?


율리아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분명 자신은 춤을 아예 모를 것 같은 남자를 일단 밖으로 빼내기 위해 발걸음을 멈췄는데.
왜 갑자기 자신의 몸이 한 바퀴 빙그르르 돌더니 곧 그의 품 안에 안겨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다짜고짜 무도회장 중앙으로 가길래.”
“그, 그게….”
“이해해요. 너무 신나고 즐거워서 잠깐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섰던 것이겠죠. 오늘이야 내가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다지만 다음번에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됩니다.”
“….”
“만약 이곳이 무도회장이 아니라 전장이었다면, 난 죽었어요. 율리아. 당신 때문에.”



사락! 착, 착!-

다른 마족 생도들의 춤사위에 비교하여 전혀 부족하지 않은 실력.
인간으로서, 그것고 귀족도 아니고 평민으로서 보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멍하니 클라우스를 바라보던 율리아는 일단 자신의 차례가 오자 클라우스의 손을 붙잡고는 몸을  바퀴 천천히 돌리면서 우아한 몸짓을 선보였다.



“죄송해요. 할 말이 없네요.”
“방금 말했지만 다음에 실수하지 않으면 됩니다. 여기서는 몇 번이고 실수해도 괜찮아요.”
“…그보다 지금 이거 어떻게 된 건가요?”


무엇을 말입니까? 라고 중얼거리면서 현란하게 스텝을 밟는 클라우스.
그의 몸놀림을 보면서 율리아는 이 남자가 대충 눈대중으로 보고 배운 게 아님을 확신했다.


저런 모습은 그냥 심심해서  춰봤다는 이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확실하게 이런 곳을 여러 번 전전한 숙련된 이나 보일 수 있는 춤이다.



“내가 동부로 가자, 라는 생각을 하루아침에 결정했을 것 같습니까?”
“미리 생각을 해두었다는 소리인가요?”
“인간 왕국 측의 머저리 같은 귀족들 말고, 따를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바로 그리 할 생각이었습니다. 다행히 율리아, 당신을 만났고 말이죠.”
“…그러면 지금  춤 같은 경우에는.”
“당연히 다 준비했죠. 동부로 가는데 이런 기본적인 춤조차  춰서 무시 받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남부의 악마 자존심이 있는데 춤으로 깎이기는 싫어서요.”
“거짓말 같은데.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믿을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사실이에요. 그냥 계속 혼자 춤추다가 늘은 거랍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이었다.
확실히 춤을 계속 추면서 실력이 엄청나게 늘기는 했다, 그리고 몸이 기억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게 벌써 몇 번이자 반복되었는지 기억도 하기 싫은 회차들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휘리릭!!-


음악이 경쾌하게 바뀌면서 춤을 추던 이들의 속도가 다시금 확 빨라진다.
스텝도 더욱 정신없어지고 자신의 몸을 놀리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그 와중에 파트너까지 챙겨야 하니 여기서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발을 삐끗하거나 박자를 놓쳐서 종국에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이탈을 하기도 했다.

“…와아.”

여기는 정말 걱정인데, 잘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곧 율리아는 탄성을 내뱉고 만다.
오히려 자신을 리드하면서 부드럽게 한 번 안아주었다가 튕겨내면서 회전을 가해주는데 덕분에 율리아는 조금 더 편하게 자신의 차례를 받아낼  있었다.



“율리아, 보세요. 다들 슬슬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군요.”
“…이런  원했던 건데, 막상 너무 많은  같으니 부담스럽기도 하네요.”

설마 클라우스의 춤 실력이 이리도 출중할 줄은 미처 몰랐다.
덕분에 율리아의 예상보다도 훨씬 더 많은 눈길이 이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춤을 추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은데 상대방이 클라우스였다는 이야기까지 돈다.




도대체 클라우스, 그가 왜 마족들이 모인 이곳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마족들과 혈전을 벌이면서 결코 섞일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남자가.
어떤 상대와 저렇게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이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걸까.

잡생각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몸이 굳는다.
그리고 그 굳은 몸을 놀리고 있으니 당연히 실수가 나오게 된다.




“흣?!”

스텝이 꼬이면서 순간 발목을 삐끗하고 마는 율리아.
다행히 바로 균형을 잡아서 그대로 발목이 접질리는 것 까지는 막았으나 한창 춤을 추던 와중이었기에 이후의 것들이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음이었다.

급히 제 실수를 만회하고자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던 율리아는, 갑자기 자신의 몸이 가볍게 공중으로  하고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율리아가 휘청거리는 바로 그 순간에 클라우스가 그녀를 잡아당겨 품으로 끌어안은 다음.
마치 점프를 도와주듯이 허리를 붙잡으면서 위로 들어 올린 것이었는데 덕분에 그녀의 허우적거림은 역으로 쏟아지는 꽃송이들 마냥 아주 화사하게 피어났다.

마족들의 춤에 대한 이해도와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이 이뤄낸 말도 안 되는 조화.
동시에 음악이 끝났고, 그 순간 무도회장의 이목은 온통 클라우스와 율리아에게 집중되었다.
덕분에 무척 난감해진 율리아는  가면을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가면을 벗어야 돼, 말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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