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8화 〉8장 - 호환 (虎患) (108/341)



〈 108화 〉8장 - 호환 (虎患)

정말이지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그림이다.
덕분에 클라우스는 연기를 할 필요도 없이 정말 기가 막히다는 표정과 목소리를 내보일 수 있었다.




“…뭐냐, 이건?”
“천막입니다.”
“누가 천막인 걸 모르나?  말은, 왜 이걸  안에다 치고 있는 거냐고.”

천막이라는  무엇인가.
야외에서 부득이 지내야 할 경우 최소한의 보온을 위해서, 찬바람과 이슬을 피하기 위해서.
대부분 그런 용도로 사용되는 일종의 가건물이 아니던가.

지금 클라우스와 카엘라가 서있는 곳은 아카데미 안의 방 안이다.
허름한 여관도 아니고, 비바람이 들이치는 헛간도 아니다.
어지간한 귀족들의 성보다도 훨씬 더 좋은 곳이란 말이다.
안락함은 물론이고 그 어떤 부분에서 주거 공간의 부족함을 논할 수 없는 곳.

그런데 카엘라는, 바로 그 방 안에 천막을 쳐놓고 있는 것이었다.

“너 설마 바닥에 못까지 박았나?”
“그건 아닙니다. 소음이 심할까 일단 줄로만 고정해두었습니다. 다행히 이곳은 비바람이 불지 않으니 줄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래,  잘 했다. 비바람이 불 리가 없지. 여기는 방 안이니까.”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헌데   안에 굳이 천막을  이유는 또 뭐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천막은 야외에서 최소한의 주거 여건을 보장 받기 위한 가건물이다.
지금과 같이 주거 여건이 완벽하게 보장된 실내에서 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카엘라가 친 천막은 귀족들이 가끔 사용하는 호화로운 것도 아니고 ‘군용’ 이다.
외형은 투박하고 거칠며 아주 기본적인 주거 공간만 보장하는 그런 천막 말이다.


“실은, 하도 저곳에서 지내다보니 이제는 천막 안이 제게는 더 익숙합니다. 이렇게 호화스러운 방에서 지낼 걸 생각하니 너무 숨이 막혀서 말이죠.”
“그래서 이 넓은 방 안에 굳이 군용 천막을 쳤다?”
“그렇습니다.”



클라우스는 진심을 다해서 얼굴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환장한다. 여러 번을 봐도,  환장하겠다.
도대체 세상 어디에 군 활동 시 사용하던 물건을 그리워 할 이가 있을까.
하다못해 전쟁 영웅이란 자신도 그 시절 사용하던 모든 군 물품에 진절머리가 났는데.
그 때 사용하던 막사? 아무리 최고 지휘관용 천막이라고 해도 불편하긴 매한가지다.
지금처럼, 아카데미 생활처럼 푹신한 A급 침대는 생각하지도 못 했던 순간이다.

사람이든 마족이든 요정이든 수인이든 결국 잠자리가 편해야 매사가 편안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군용 천막은 정말 최소한의 여건만 보장하는 곳이지 편한 곳은 결코 아니다.
헌데 카엘라는 오히려 그 군용 천막에서의 생활이 그립다고 이러고 있는 중이란다.

‘진짜 가끔 가다가 못 말릴 정도로 황당한 여자라니까.’


수인들 특성인가 싶어도 그들 역시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조차 평소에는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머물고 싶어 한다.
훨씬 안락하고, 훨씬  좋은 곳이니까.



“…정말 못 말리겠다, 카엘라.”
“죄송합니다. 혹 철거하시라 명령을 하신다면 바로….”
“됐다. 됐어. 기껏 쳐둔 거 다시 걷으라고 할 생각은 없다.”

저곳이 아니면 영 불편하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진실로 그러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해서 클라우스는 얼른 천막을 치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걸음을 옮겨 카엘라가 쳐둔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호랑이의 보금자리에 냅다 뛰어든 것이니 원래는 경계하는 내색을 하거나.
그게 아니면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게 정상이라  수 있다.
하지만 카엘라는 오히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클라우스를 뒤따르고 있었다.
마치 제 보금자리를 찾은 수컷에게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암컷 같다고 해야 할까.

“…얼씨구.”




그러는 사이 천막 안으로 들어선 클라우스는 다시 한 번 기가 막힌 웃음을 내뱉었다.
단순히 천막만 군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부에 들어차있는 것 모두가 전투를 앞두고 있는 장교의 천막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당장 원목 테이블 위에 올려 있는 건 각종 보고서들.
곁에는 어두워지면 으레 쓰이곤 했던 마력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붙어있는 것들은 꽤나 세세하게 그려진 지도들이었다.

“아무리 봐도 아카데미 지도 같은데.”
“맞습니다.”
“딱 보니까 네가 직접 만든 것 같고.”
“정확하십니다, 사령관님.”




어디 전쟁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군용 천막에 작전 지도 제작에 보고서까지.
클라우스가 도대체 뭔 생각이냐는 뜻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카엘라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입술을 떼었다.




“지도는 어디까지나 사령관님을 위한 것입니다. 사령관님이 머무시는 곳에서 한 치의 빈틈이라도 발견되어서는 안 되니 제가 직접 주변을 돌면서 허술한 곳과 방비가 강한 곳, 침입에 유리한 지형이나 공격에 취약한 곳들을 전부 조사했습니다.”
“아카데미를 공격할 이는 아무도 없다. 애당초 여기를 공격하면 그냥 전 대륙이 전쟁터가 되는 거야, 카엘라.”
“그렇습니까? 아무튼 그런 식으로 지도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보고서는 여기까지 마차들이 오는 시간, 말을 달려서 당도하는 시간, 걸어서 오는 시간, 그리고 주변 지형에 대한 조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분명 이곳은 아카데미일 터인데.
카엘라는 아무래도 여기를 무슨 총사령관이 머무는 일종의 성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아카데미가 하나의 거대한 성 모양을 하고 있지만.
전투를 치른다면 당장이라도 수성전을 치를  있을 정도로 견고한 곳이긴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도 아카데미 바깥에서,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노리면서 시작될 것이다.

잠시 보고서와 지도들을 살피던 클라우스는 감탄을 흘리고 말았다.
이것들 전부를 아카데미로 오는 그 찰나에 전부 조사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직접 발로 뛰고 오고 가는 것들을 사냥꾼의 눈길로 전부 주시하면서.
혹시 클라우스에게 도움이  만한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이러니 조금은 과하게 충성을 바치는 이 호랑이 여인을.
가끔은 엉뚱한 모습도 보이는  여자를 싫어할 수가 없었다.

이리 헌신적인데 도대체 어느 누가 이런 여인을 내칠 수가 있겠는가.
심지어 저리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근사한 사냥꾼을 말이다.

“내가 내린 임무는 모두 완수했나보구나.”
“네. 혹 시일을 끈다면 사령관님께 유리한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 하루 안에 모든  정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혹 제가 너무 과했던 것이라면….”
“아니다. 오히려 일을 빨리 끝내주어서 내게 생각지도 못 한 이득이 돌아왔어. 그러니 너는 내 예상보다도  큰 공을 세운 거다, 카엘라. 정말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사령관님. 다만 저는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야.”



슬쩍 걸음을 옮겨 가까이 다가가서는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준다.
그러자 호랑이의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제 기분이 좋다는  여실히 드러낸다.



“아, 그리고 오늘 저녁 식사가 있다.”
“저녁 식사 말입니까?”
“그래. 세실리 레블랑이 마련한 자리인데 나뿐만이 아니라 율리아 아그네사와 나타샤 벨라루스도 참석할 거다. 생도들이 으레 하는 친목 도모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지.”
“레블랑 가문의 공녀에 마왕, 그리고 벨라루스의 여인까지. 대단하십니다, 사령관님.”
“난 그 자리에 너도 참석했으면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그러자 카엘라는 ‘예?’ 하고 반문한다.
원래의 그녀라면 군말 없이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을 터인데 저리 반문을 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자신이 껴도 되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생각하는 것이었다.



“율리아 아그네사 마왕은 사령관님의 새로운 주군이시니 당연히 참석하시는 것이고 나타샤 벨라루스는 요정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가문의 여인. 세실리 레블랑은 저녁 식사 자리의 주인이니 당연한 것이겠죠. 하지만 저는 그저 일개 조교로서….”
“너도 수인 쪽에서는 최고  하나로 쳐주는 호랑이 일족이다.”
“저는 제 일족에서 방출된 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딱히 속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카엘라가 호랑이 수인의 일족에서 방출된 이유는  하나.
스스로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고 충성 서약을 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을 쉽게 따르는 개나 늑대 수인도 아니고 수인 중에서도 최고로 강하고 또 도도하다는 호랑이 일족으로서 그리도 가벼운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말이다.


당장 돌아오라는 일족의 명령에 카엘라는 스스로 일족임을 포기하고 왕국에 귀화를 했다.
그렇게 해서 일족의 귀찮은 참견 질에서도 벗어나고, 클라우스를 마음껏 따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면 내 부관 자격으로 해두지. 이러면 되나?”
“…괜히 저로 인해 즐거워야 할 저녁 식사에 방해가 되는  아닐까 걱정됩니다.”
“허면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는 건가, 카엘라 티거?”



갑작스레 확 다가와서는 카엘라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덕분에 움찔 놀란 여인이 잠시 두 눈을 깜빡이다가 바로 고개를 내젓는다.

“제가 어찌 감히 사령관님의 말씀에 반발을….”
“그게 아니라면 나와 함께 가는 거다.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반사적으로 알겠다고 대답하는 카엘라였다.
그에 클라우스는 흐음, 하고 턱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뒤로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거기를 좁혀왔다.



“사령관님?”
“아무래도 내 부관, 이라는 위치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예?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런….”

 들을 것도 없다는 듯 클라우스는 그대로 카엘라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그녀를 앉힌 후 차례대로 카엘라가 신고 있던 구두와 양말들을 순서대로 벗겨냈다.

“뭐, 뭐하시는….”
“조용히 해라.”


그 말 한 마디에 바로 입을 다무는 카엘라.


조금 더 반응을 해주면 좋을 텐데 정말 조용히 하라고  조용히 하는 여인이었다.
정말이지 너무 충성스러운 호랑이다. 댕댕이도 아닌데 댕댕이보다도 더 하다.

“내가 만들어줄까? 카엘라.”
“예…?”
“저녁 식사에 네가 갈 만한 적당한 이유.”

클라우스의 말에 카엘라가 무슨 말이냐고 막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갑자기 그녀가 입고 있던 치마가 그대로 쑥! 하고 벗겨져서는 천막  귀퉁이로 날아갔다.
동시에 오늘 처음 지급 받은 옷의 단추가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다 떨어져 내렸다.



“흐앗?!”




순식간에 속옷만 걸친 형태가 되어버린 카엘라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클라우스의 시선이 닿지 않도록 몸을 돌린  말했다.




“사령관님!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당연히 곤란할 것이다. 부끄러운 것도 있지만 자칫 자신이 시동이 걸리면 안 되니까.
수인들의 정사는 그 어떤 종족들보다도 정열적이고, 조금은 과한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참아온 것인데.

클라우스가 갑자기 이리 나오면 곤란해도 너무 곤란한 상황이었다!



“카엘라.”
“아,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아직도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같은데?”
“…예?”
“아직도 나를 다만 사령관으로 보고 있냐는  질문 말이다. 대답, 아직 못 들었다.”

카엘라는 잔뜩 흔들리는 눈빛으로 뒤에 서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단추가 다 떨어져서는 헐렁해진 검은 정복이 뒤로 스르륵, 흘러내린다.
여인의 탄탄하면서도 매끈한 몸매가 훤히 드러나고 잠시 후 카엘라가 입을 열었다.



 

16599862905502.jpg 






“버, 벗을까요…?”




애써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대답을 한 여인이었다.
사령관과 부관 사이로만 있기는 싫다고.


 

0